[BK연쇄살인] 신문관이 연쇄살인범에게 지는 이유

김갑수 통일추리소설 (48회) '신문(訊問)'

등록 2010.01.03 10:20수정 2010.01.03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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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철식은 여러 행동대원 중의 하나에 불과할 것이다. 수사진은 이미 주철식의  인간 됨됨이를 알았다. 그는 짐승 이하의 사람이다. 일단 다른 행동대원들의 수준도 주철식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가정을 해 볼 수 있다. 주철식은 삶을 포기한 자였다. 그대로 두면 연쇄살인이나 저지를 위인밖에는 안 된 인간이었다는 것은 증명되었다. 조직을 이탈한 그는 실제로 야만적인 추가 범행을 저질렀다.

2.나머지 행동대원들도 주철식과 차이가 없는 인간 부류일 거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면, 주범은 나름대로 도덕적 소신을 가지고 그들을 살인 기계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인체에 약물을 투여한 것이다. 물론 그것은 범인의 아전인수식 발상과 행동이다.

3.주범은 행동대원들이 사회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는 조치를 강구했을 것이다. 주철식의 예에서 보듯 범인의 의도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범행도 저지른다. 그들이 사회로 경찰에 체포되면 수사에 결정적인 단서를 주게 된다.

4.행동대원들은 처음 납치되어 교육 받았던 장소에 재수감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범행의 아지트를 두 곳으로 만드는 일은 어렵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지트에 감금되어 있다. 그러므로 아지트를 알아내는 일이 사건 해결의 관건이다.

5.범인은 남·북한 피해자들을 모두 그 사회의 부정적 집단으로 간주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업을 한 인물이 남·북한을 아우르며 진행하기는 불가능하다고 판단된다. 그렇다면 남과 북의 지역책이 따로 있다.

6.남과 북의 지역책은 행동대원 못지않은 부정적 인물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그들이 누구인지를 알아내야 한다. 우리는 해방 이후 남·북한의 냉전·호전 세력이 끊임없이 야합해 왔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그들이 노린 바가 무엇일까를 합리적으로 추정해 보아야 한다. B. K. 라는 명칭도 이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이미 B. K.가 노린 바는 남·북한에 각각 나타나고 있다. 특히 언론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남한에서는 그 파장이 심각한 수준으로까지 치달았다. 북한에서의 파장도 만만치 않다. 그 파장이란 냉전 체제로의 회귀 현상이다.

7.남과 북의 지역책은 지금 유착되어 있다. 그렇다면 한 장소에서 자기의 테러리스트들을 각각 관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남·북한이 은밀히 야합할 수 있는 장소는 남한이겠는가, 아니면 북한이겠는가? 둘 다 아닐 가능성이 크다. 제3의 장소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예전의 야합 세력은 교통이 좋은 북경을 이용한 바 있다.


8.주철식의 체포는 수사 진전에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는 지금 주철식을 통하지 않고는 범인의 아지트를 알아낼 수가 없다. 그에게 말을 시켜야 한다. 하지만 그는 중증 사이코패스이다. 고문으로는 되지 않는다. 심리요법, 최면 요법 등의 방법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이미 조수경의 수사 추정은 아브라함과 일치되어 있었다. 이제 그의 조언은 조수경에게 수사 방향을 새로이 알려 준다기보다는 그녀가 품었던 수사 방침에 확신을 주는 정도의 의미가 있었다.

조수경은 주철식의 신문 방법을 더 연구하기로 했다. 지난번처럼 그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방법은 쓰지 않아야 할 것 같았다. 주철식은 자기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 하는 이기주의자이다. 그보다 더 단순해지자. 그래야 그를 이길 수 있다. 합리를 배제하고 최고의 단순을 추구하자.

조수경은 주철식에게 할 말들을 순서대로 20개 정도의 문장으로 만들었다. 그러고는 그의 반응에 따라 대처할 후속 방안을 마련했다. 중요한 말에는 반응을 보이지 말자. 그래야 그는 더 중요한 말을 할 것이다. 눈치 채지 못하게 그를 띄워 주자. 그래야 그는 의기양양해질 것이다.

대체로 조수경은 이런 신문 계획을 궁리하며 깊은 밤까지 시간을 보냈다. 

신문(訊問)

조수경은 주철식에 대한 효과적인 신문 방법을 궁리하느라 거의 밤을 지새웠다. 사실 북한 수사관 유천일의 신문 방법으로 요긴한 정보를 얻어낼 수 없겠다는 생각을 진작부터 하고 있던 차였다. 유천일은 주철식에게 빨리 자백하도록 만드는 데에만 신문의 초점을 맞췄다.

신문 받는 범인이 수사관보다 지능이 높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많은 범인이 신문에서 수사관을 이긴다는 것을 조수경은 잘 알고 있었다. 왜냐 하면 수사관은 합리적이지만 범인은 단순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었다. 합리적인 사고로는 단순함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럴 때는 함께 단순해지는 것이 더 합리적인 신문 방법이다.

북한 수사관들은 주철식이 범행을 부인하는 이유가 뭔지를 잘 몰랐다. 그가 범행을 부인함으로써 처벌을 면해 보려는 수작쯤으로 간주해 버리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에게 범행을 자백하도록 유도하는 말만을 거듭해 왔다.

"야, 주철식. 네가 아무리 부인해도 대동강에 뜬 배우 사체에서 채취된 유전자는 네 것으로 판명 났단 말이야. 자, 유전자 사진을 보여 줄까? 그러니 지금이라도 순순히 불어야 사형을 면할 수 있지 않겠냐?"

북한의 수사관들은 이미 상대에게 신문에서 이기는 데 필요한 무기를 다 공개하고 만 셈이었다. 상대가 단순해 보이면 자기는 합리적으로 나가는 것이 보통 수사관들의 관행이었다. 그들은 주철식이 범행을 부인하는 이유를 알려 하지 않았다.

주철식은 단순했다. 그는 범행을 자백하건 부인하건 자기 신상에 돌아오는 결과는 똑같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어차피 수사진에서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해 놓은 상태에서 자기가 범행을 부인한들 자기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그는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반대로 자백한들 달라질 게 없다는 것도 그는 꿰뚫고 있었다. 주철식은 극도로 이기적인 인간이었다. 게다가 그는 근시안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었다. 자백하는 순간 수사관들은 의기양양해지면서 자기를 개 취급할 것이고, 자기는 수사관들의 요구대로 이리저리 개처럼 끌려 다니게 될 것을 그는 걱정하고 있었다.

- 경찰에게 이익은 곧 나에게 손해다.

그것은 연쇄살인범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흑백논리였다. 연쇄살인범 중에는 경찰과 게임을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자가 의외로 많다는 것을 북한 수사관들이 알고 있을까? 심지어는 범행의 목적이 유일하게 경찰에게 이기기 위해서인 연쇄살인범도 많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을까? 남한에서 21명이나 살해한 유영철의 경우가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는 수사진을 애먹이고 농락하는 일에 목적을 둔 연쇄살인범이었다.

- 연쇄살인범은 수사진을 곤경에 빠뜨림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한다.

결국 주철식을 신문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너 때문에 곤경에 빠지는 일은 없다'는 것을 알게 해 주는 일이었다.

새벽녘에 메일함을 열어 본 조수경은 아브라함에게서 또 한 통의 편지가 와 있는 것을 보았다. 편지에는 아무런 말도 없이 장황한 성경 구절이 씌어 있었다. 그것은 체포된 예수가 대제사장에게 심문(審問) 받는 장면이었다.

대제사장의 심문과 베드로의 철야 부인(否認)

예수를 체포한 자들이 예수를 끌고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가니, 그곳에 서기관과 장로들이 모여 있더라. 그리고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쫓아 대제사장 집 뜰에까지 와서 결과를 보려고 하속들과 함께 앉아 있더라.

대제사장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증거를 구했다. 거짓 증인이 많이 왔으나 뚜렷한 것이 없어 취하지 못하였다.

후에 두 사람이 와서 가로되,

"이 사람은 말하기를 자기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 만에 다시 지을 수 있다 하였소."

대제사장이 다시 일어나 예수께 물었으나 아무 대답도 없었다.
#신문 #연쇄살인범 #예수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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