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에서 만난 《人間の土地》. 이 책을 만난 그날 곧바로, 아버님을 떠나보낸 분한테 선물로 드렸습니다.
최종규
<人間の土地>에 실린 사진이 그지없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책 뒤쪽을 봅니다. 헌책방 <신고서점>은 책 뒤쪽에 작은 쪽지를 붙이고 책값을 연필로 적어 놓기 때문입니다. 헌책방 아저씨가 붙인 책값은 5만 원. 뜨끔합니다. 자그마치 5만 원이구나 하고 생각하다가 헌책방 아저씨가 이 책을 더없이 잘 알아보았다고 생각을 고쳐먹습니다. 그저 흔해빠진 사진책이 아님을 깨달았기에 이 책을 옳게 섬기고자 '이만한 값이면 잘 안 팔릴 노릇'일 테지만, '이 책을 알아볼 사람한테는 5만 원은 하나도 안 비싼 알맞춤한' 값일 테니까, 이렇게 하셨다고 느낍니다. 지난 열여섯 해에 걸쳐 이곳 <신고서점>에서 오천 권이 넘는 책을 장만하여 읽었으면서 새삼 빙그레 웃습니다. 흰 봉투에 넣은 십만 원 가운데 절반을 덜어 책값에 보태기로 합니다. 그리고, 이 책은 도움돈을 드리고 나서 밥과 술을 한 상 받는 자리에서 ㄱ출판사 사장님한테 "마음 선물입니다" 하고 말씀드리며 건넵니다.
저로서는 참 가슴 뛰도록 하는 사진책이었기에 제가 간직하면서 둘레에 널리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진책은 아버님을 떠나 보낸 출판사 사장님 넋을 달래는 데에 쓰는 쪽이 한결 낫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면서 제 몫으로는 <野島宣弘-I♥U>(心交社,2005)라는 사진책을 남깁니다. <I♥U>는 열넷(山本愛莉)과 열다섯(高橋結衣) 살짜리 계집아이를 담은 화보입니다. 학교옷과 헤엄옷을 입힌 모습으로 책 하나를 엮는데, 얼굴이 이쁘장한 계집아이들은 벌써 이 나이에도 화보를 내는군요. 책 사이에는 광고쪽지가 한 장 끼어 있습니다. 광고쪽지를 펼치니 이 사진책을 낸 출판사에서 여태까지 내놓은 다른 사진책과 디브이디를 알려줍니다. 백 가지가 조금 안 되게 나와 있으나, 일본에서는 이곳 말고도 다른 숱한 출판사에서 훨씬 갖가지로 사진책을 내고 디브이디를 내겠지요. 다른 사진책은 열넷이 아닌 열셋이나 열둘, 또는 열하나나 열, 또는 아홉이나 여덟 살짜리 계집아이를 모델로 삼아 사진책을 내고 디브이디를 낼는지 모릅니다. 일본말로 '오타쿠'라고 해야 할까 싶은데, 이 갈래 사진책을 즐기는 사람과 이 갈래 사진 모델이 되는 사람이 많으며 이 갈래 사진책을 힘껏 펴내는 사람 또한 많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이 갈래 사진을 찍는 사람도 많겠지요. 그러면 이 갈래 사진을 찍는 이들을 놓고 '사진이 어떠하고 사진 느낌이 어떠한가' 같은 이야기도 있을까 궁금합니다. 어린 계집아이 아닌 젊은 아가씨 몸매를 알몸으로 찍는 사진은 '예술'이라는 이름을 붙이는데, 이 같은 사진을 놓고는 어떤 이름을 붙일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니, 이 갈래 사진을 '사진'으로 여기는 사람은 있기나 있을까요? 우리는 우리 가슴을 뛰도록 하는 사진을 어느 갈래에서 찍고 있을까요?
┌ 《人間の土地》(Libro,1987) └ 《I♥U》(心交社,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