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정연주 전 KBS 사장의 강제해임 저지 및 공영방송 사수투쟁의 최일선에 서 있었던 김현석 전 KBS 기자협회장을 느닷없이 지방으로 발령낸 데 항의하는 KBS 내부 구성원들의 반발이 거세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준)와 KBS 기자협회는 4일 잇달아 성명을 발표하고 '김 기자의 지방발령은 부당 인사'라며 적극 반발했다.
KBS 기자협회(회장 김진우)는 4일 밤 9시 30분부터 약 1시간가량 총회를 열고 '김인규 사장 취임 후 보복인사가 재현되고 있다'며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기자협회를 당분간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해 운영하고 제작거부, 법률소송, 사내 선전전 등을 벌이기 위한 구체적 방법을 모색하기로 했다. 또한 이번 인사의 실질적 책임자인 이정봉 보도본부장과 고대영 보도국장을 KBS 기자협회 회원에서 제명하는 방안도 논의하기로 했다.
이날 열린 기자총회에 참석한 기자 80~90명은 김현석 기자의 전보인사철회요청서에 서명했으며 비대위는 앞으로 서명운동을 더욱 확대하기로 했다. 비대위 체제로 전환한 KBS 기자협회는 5일 저녁 6시 첫 번째 비대위를 개최하고 향후 일정을 조율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준)는 "김현석 기자의 보복성 지방발령을 즉각 철회하라"는 성명을 내고 "본인협의나 동의 없이 서류상으로 간단하게 무자비한 인사를 단행했다"며 "회사 내 비판세력에 대한 보복과 공포심을 조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또 "정직 4개월과 파면까지 당했지만 뜻을 굽히지 않고 소신을 지킨 김 기자에게 회사는 뚜렷한 사유 없이 보복성 인사를 저질렀다"며 "부관참시가 아니고 무엇이냐"고 개탄했다.
이어 이들은 "이번 인사 조치는 새 노조 결정에 대한 회사의 조직적 방해"라고 못 박은 뒤 "상징적 인물을 손봐서 심정적으로 새 노조에 동조하는 다수의 구성원을 주저앉히고자 하는 안간힘"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이들은 "직종별 순환인사규칙을 어긴 지방발령을 즉각 취소하라"며 "KBS본부(준)는 김 기자의 지방발령이 취소될 때까지 법적 투쟁뿐만 아니라 모든 수단을 동원해 싸울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KBS 기자협회도 지난해 12월 31일 발표한 성명에서 "이번 인사가 김현석 기자 등에 그치지 않고 모든 기자들의 양심에 재갈을 물리려는 시도라고 판단하기 때문에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싸울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김현석 KBS 탐사보도팀 기자는 지난해 12월 31일 오후 아무런 사전 언급 없이 올해 4일자로 춘천방송국으로 전보된다는 통지를 받았다. 김 기자는 이명박 정부의 정연주 전 사장 강제해임과 공권력의 KBS 난입 사태, 이병순 사장 취임 등에 적극 반대하며 투쟁을 벌이다 지난해 초 파면을 당한 바 있다. 당시 내부의 거센 반발로 징계수위가 낮아졌지만, 4개월간 정직을 당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KBS 측은 이번 인사와 관련해 "업무상 필요에 의한 수시 인사 중 하나"라며 "춘천총국에 기자 인력이 필요해서 들어간 것일 뿐 다른 의미는 없다"고 일축했다.
KBS에서 '해직자의 겨울'은 방송 불가 아이템인가
한편, 김 기자는 KBS 사내 게시판인 KOBIS에 올린 인사 글에서 "발령사실을 알고 본부장에게 인사하러 갔더니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왜 돼지도 않는 아이템을 올려서 분란을 만들고 그러냐'고 했다"며 "이 말은 최근 취재를 시작한 '해직자의 겨울'을 언급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기자는 "화가 나 처음으로 본부장에게 언성을 높였다"며 "대한민국 최고 언론기관인 KBS에서 이런 문제를 내부논의로 풀지 못하고 결국 법에 호소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는 "누가 또 '돼지도' 않는 이유로 이런 일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에 소송을 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며 "내일부터 춘천으로 출근한다"고 전했다.
김 기자의 인사 글을 읽은 동료들은 댓글을 달고 그를 위로했다. 탐사보도팀의 한 기자는 "KBS가 배부른 '돼지' 같은 아이템을 '돼지'게 만들지 않으면 '돼지'도 않는 아이템 만드는 기자로 찍혀서 '돼지'는 곳이 되었군요"라고 자조했다.
지역 편성제작국의 한 관계자는 "되지도 않을 아이템이라는 게 애시당초 어디 있느냐"며 "스스로 양심과 도덕적 기준, 세상에 대한 비전조차 없는 아이템이야말로 선정기준이 되지 못할 뿐"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세상에서 힘들지만 보고 싶지 않은 진실들까지 보여줄 수 있을 때 언론이 진정한 감시자가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기자는 "권력에 빌붙어 더러운 칼자루를 손에 쥐었다고 시시덕거리며 등 뒤에서 비열한 칼질이나 저지르는 천박한 사람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냐"며 "너나없이 똥물 뒤집어쓰고 히죽대는 미친 굿판에서는 정신 멀쩡한 이가 매질 당하는 법"이라고 비판했다.
그의 인사 글은 전체 1589건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2010.01.05 13:09 | ⓒ 2010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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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에서 '해직자의 겨울'은 되지도 않는 아이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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