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낙안에 가면 金金金이 보인다

금둔사, 금강암, 금전산, 그리고 豚고기

등록 2010.01.06 08:33수정 2010.01.06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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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암 의상대에서 내려다 본 낙안들. 바로 아래가 낙안읍성이다. ⓒ 전용호


산 이름에서 돈 냄새가 난다

순천 낙안에 가면 금전산(金錢山, 667.9m)이 있다. 산 이름 유래는 부처님의 제자인 금전비구(金錢比丘)를 지칭해서 지었다는데. 산 이름이 금전산이라? 금전(金錢)은 돈이니, 언제부터 '돈 되는 산'이 되어 버렸다. 나도 그렇게 믿고 싶다. 사는 게 번잡해질수록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소망 때문에….


산행을 준비하고 추운 겨울 아침 서둘러 나선다. 국도 2호선을 벗어나 58번 지방도를 구불구불 타고 간다. 금전산을 끼고 돌아 불재를 넘어서면 낙안읍성이 나오고, 다시 금둔사 방향으로 길을 잡고가면 낙안온천이 있다. 산행은 낙안온천에서 금강암 지나 오공재로 내려오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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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전산 등산로 ⓒ 전용호


금전산 산행 들머리는 불재, 휴양림, 낙안온천, 오공재로 오르는 길이 있다. 산행객들은 정상 바로 아래 커다란 바위 틈 사이에 자리 잡은 금강암을 거쳐 가는 낙안온천에서 오르는 길을 선호한다. 숲 사이로 눈이 아직 녹지 않은 산길로 들어선다.

호남 제일의 기도도량이었던 금강암

겨울이지만 큰 나무가 없어 햇살을 가득 받고 있는 산길은 따스하다. 춥다고 잔뜩 껴입고 왔는데, 가파르게 올라가는 산행에 땀이 배어난다. 쉬엄쉬엄 올라가는 길. 가끔가다 뒤를 돌아보면 낙안읍성이 울타리를 치고서 편안하게 자리 잡고 있다. 들이 넓어 참 넉넉한 풍경이다.

산길은 우뚝 가로막고 있는 커다란 바위를 만난다. 형제바위다. 산행객들이 여럿 모여 한해 안전을 기원하는 시산제(始山祭)를 지내고 있다. 형제바위를 지나면서 산길도 깊어진다. 커다란 바위들 사이로 길이 이어진다. 가파른 길 사이로 커다란 바위를 이고 있다. 극락문(極樂門)이다. 단지 커다란 바위에 글씨만 써놓았을 뿐인데. 극락으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생각에 즐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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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암으로 들어서는 극락문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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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연등과 금강암 벽을 장식한 청미래덩굴 열매 ⓒ 전용호


극락문은 다시 다리가 되어 금강암으로 건너간다. 돌계단 위로 알록달록한 연등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작은 암자 금강암(金剛庵). 지금은 집 한 채 있는 작은 암자지만 역사는 깊다. 백제 위덕왕 때 검단선사가 창건하고, 신라 의상대사가 중수하고, 고려 때는 보조국사가 거쳐 갔던 호남 제일의 관음기도 도량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여수·순천사건 때 불타버렸다. 1992년 작은 집하나 지어놓은 게 다시 암자가 되었다.

스님은 안 계시고 산행객들만 북적거린다. 암자 법당 작은 문은 기도를 하려는 사람들로 좁게만 느껴진다. 작은 암자지만 오색연등을 걸치고 사립문과 벽에 붉은 청미래덩굴과 노란 노박덩굴 열매를 걸어놓은 절집의 아기자기한 풍경에 흠뻑 빠진다. 오래도록 머물고 싶다.

소원을 말해 봐?

왼편으로 금강암을 호위하고 있는 커다란 바위가 원효대. 오른쪽으로 가파른 낭떠러지를 막아선 바위가 의상대다. 금강암을 신라의 대표적인 고승 두 분이 지키고 있는 형상이다. 의상대는 전망이 좋다. 낙안들판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바위벽으로 붉은 입술을 한 관음보살이 말끔하게 앉아있다. '마치 소원을 말해봐!'라고 소곤거리는 듯하다. 나의 소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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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대 바위벽에 새겨진 관음보살. 붉은 입술이 인상적이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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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을 말해 봐. 의상대 바위에 새겨 놓은 관음보살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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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전산 정상에서 돌무지 탑에 작은 돌멩이를 던져 올려본다. 올해 좋은 일만 있기를... ⓒ 전용호


북적거리는 금강암을 뒤로하고 정상으로 향한다. 정상에 가까워지니 바람이 차다. 금전산 정상에는 돌무지 탑이 하나 있다. 작은 돌멩이 하나씩 주워 돌무지 탑에 던져본다. 올해 좋은 일이 있으려나.

금둔사 매화는 봄을 기다린다

정상에서 오공재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길이 미끄럽다. 눈이 녹아 질척거린다. 길은 산속 오솔길 같이 편안하게 돌아서 내려간다. 하늘로 독수리 10여 마리가 큰 날개를 펼치고서 빙빙 돌고 있다. 작은 애는 처음 본 독수리가 신기한지 사진을 찍겠다고 카메라로 연신 셔터를 누른다. 길이 넓어지더니 산장이 보이고 버스정류장이 나온다.

돌아오는 길에 봄에 일찍 피는 홍매화로 유명한 금둔사(金芚寺)에 들렀다. 금둔사는 백제 위덕왕 30년(서기 583)에 담혜화상이 창건하고, 의상대사를 거쳐 철감국사와 그의 제자 징효대사가 주석하였던 선종가람이었는데 정유재란 때 불타고 폐사되었다. 최근에 지허스님이 복원을 하면서 낙안읍성에서 종자를 가져와 심은 매화가 매년 봄을 알리는 꽃소식을 전해준다. 오늘은 너무 서둘러 왔다. 매화는 꽃눈을 달고서 추운 겨울을 지내고 있다. 봄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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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 옆 텃밭이 정겨운 절집 풍경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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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945호와 946호로 지정된 삼층석탑과 석불비상. 석탑의 중대석에는 마치 부처님께 공양하는 공양상이 양면으로 새겨져 있다. ⓒ 전용호


금둔사에는 보물이 두 개 있는데, 공양상이 새겨진 금둔사지삼층석탑(보물 945호)과 바로 옆에 비석형태로 부처님을 모신 금둔사지석불비상(金芚寺址石佛碑像, 보물 946호)이다. 한 바퀴 돌아 나간다. 요사 옆 텃밭에는 배추가 얼었다. 마루 위로 걸린 칠판에는 '우리 절은 반농반선(半農半禪) 합니다.'라고 써 놓았다. 살아가는 정이 느껴지는 절집이다.

고기 굽는 참나무 장작은 어디서 가져올까?

낙안에 오면 들르는 식당이 있다. 읍성 뒤쪽으로 골목길을 따라가다 보면 참나무장작구이하는 집이 있다. 애들이 고기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활활 타오르는 참나무 장작불에 초벌로 구운 돼지고지 맛이 좋다. 지난 여름에 왔을 때는 익모초를 쌈으로 내와서 매우 독특한 맛을 느끼기도 했다.

구이를 주문하고서 고기 굽는 것을 구경한다. 참나무 장작에 불이 피어있다. 불도 타는 나무를 닮는지 황금색으로 바짝 타오른다. 돼지고기를 쇠꼬챙이에 꼽고서 굵은 소금을 뿌리고 불 위에 돌려가면서 굽는다. 소금이 조금 검다. 후추를 섞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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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고기 참나무장작구이. 2인기준 17,000원이다. 큰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 오리도 있다. ⓒ 전용호


작은애는 가지런히 쌓인 나무 장작이 궁금한 가보다.

"아빠! 나무는 어디서 가져와?"
"산에 가면 많이 있잖아. 가서 대충 베어오면 돼."

고기를 굽던 아주머니는 정색을 한다. "큰일 나요. 산에 나무도 다 주인이 있어요."

고기를 굽는 참나무 장작은 산림조합에서 사온다고 한다. 나무로 불을 때던 시절이 지났지만 지금도 나무를 파는 나무꾼은 있는가 보다. 고기가 맛있게 익어간다.
#금전산 #금강암 #금둔사 #장작구이 #낙안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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