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서울과 지방으로 쪼갤 셈인가?

[지역언론 별곡 313] 언론에 투영된 무지개 빛 '세종시 스펙트럼'

등록 2010.01.13 08:28수정 2010.01.13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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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태풍' 위력이 대단하다. 연일 맹위를 떨치는 동장군 위력은 저리가라 할 정도다. 전 지역을 매섭게 강타했다. 세종시에 대한 국민여론을 수렴하겠다면서 정부가 민관위원회를 출범시킨 지 2개월 만이다. 이 문제의 공론화를 위해 뜸들이기 시작한 지는 4개월 만이다.

 

수정안의 핵심은 예상했던 대로다. 9부2처2청의 세종시 이전을 백지화하고, 기업·학교·연구소 등의 유치 계획과 지원방안을 구체화한 것이 골자다. 원안인 '행정중심 복합도시'에서 행정부처를 뺀 '복합도시'를 건설하겠다는 의지다. 그러나 발표 직후 충청권은 물론이지만 비충청권 지역의 우려와 반발이 예사롭지 않다.

 

수도권 집중 완화와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국가적 과제로부터 비롯된 세종시의 정체성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때문이다. 세종시 특별법은 국가 균형발전이라는 대의에 걸맞게 숱한 논란과 두 차례의 헌재 결정을 거쳐 2005년 여·야 합의로 만들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국민적 합의로 탄생한 세종시를 3년째 공사가 진행 중인 현 시점에서 백지화해야 할 현실의 변화는 아무것도 없다.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실낱 같은 꿈을 끝까지 저버리지 않았던 각 지자체들은 "'퍼주기'식의 기업·학교 유치를 위해 정부가 제시한 내용은 지원책이라기보다 특혜"라며 완강하게 저항하고 있다. 땅값·세금 등 각종 특혜는 도시정책의 근간을 뒤흔들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지역언론들도 "수정안 논의 과정에서 보여준 꼼수는 국민을 우습게 아는 오만과 독선의 전형"이라는 날선 비판과 함께 "세종시 수정안은 '위헌적 발상'"이라는 비난의 목소리를 연일 경쟁적으로 다루고 있다.  

 

서울과 지방 '세종시 태풍' 위력 이렇게 다를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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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일보> 12일자 1면. ⓒ 광주일보

▲ <광주일보> 12일자 1면. ⓒ 광주일보

12일자 전국 각 언론의 헤드라인 뉴스와 해설, 사설은 온통 세종시 관련 기사로 채워졌다. 실제 <한국언론재단>의 기사 검색 사이트인 '카인즈(www.kinds.or.kr)'에서 이날 오전 11시까지 제목과 본문에서 '세종시'로 입력된 종합일간지, 경제일간지, TV의 기사는 모두 364건.

 

서울 외 종합일간지 225건(25개사), 서울 종합일간지(10개사) 79건, TV 33건(4개사), 경제일간지 27건(9개사) 등의 순으로 검색됐다. 한 날 동일 의제를 이처럼 한꺼번에 집중적으로 보도한 사례는 근래 보기 드물다.

 

이 가운데 서울 외 일간지, 즉 서울과 대칭되는 지방일간지는 평균 9건으로 가장 많은 관련 기사를 보도했다. 그러나 기사의 보도태도가 서울과 지역에 따라 다르다. 서울종합일간지와 경제일간지, TV의 관련 기사들의 긍정(찬성) 또는 중립일변도의 보도태도와 지방언론의 이날 보도태도는 확연히 다르다.

 

특히 이날 신문들의 거의 모든 지면에서 묻어났다. 대부분 지방일간지들의 이날 기사와 제목은 수정안에 대한 부정(반대, 또는 갈등)이 주를 이뤘다. '세종시 발' 기사에서 긍정(찬성)적인 성격의 보도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게 특징이다. 1면 머리기사와 2, 3, 4면 해설기사에서 '세종시 발' 후폭풍을 지역적 시각에서 조명했으나 대부분 부정적인 기류가 강했다. 당초 약속을 어긴 데 대한 분노와 수정으로 인한 또 다른 역차별을 걱정하는 어조도 사설에서 분명히 드러냈다.

 

대부분 지방신문들은 이날 지역민과 정치권 반응, 현지 분위기 등을 일반기사와 사진 등으로 전하는 것 외에 사설과 전문가 기고 등을 통해 여러 지면을 할애했다. 1면 기사와 사진에서 우선 읽을 수 있다. "지역균형발전은 고사하고 각 지역들이 그동안 야심차게 추진해 왔던 혁신도시와 배후산업단지 등 성장동력의 꿈이 물거품이 됐다"는 아우성이 넘쳐나고 있다.   

 

[부산·경남] "부산 국비사업 세종시 불똥 연쇄 차질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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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문> 12일자 1면. ⓒ 국제신문

▲ <국제신문> 12일자 1면. ⓒ 국제신문

"혁신도시 역차별 우려감 고조"

"부산 국비사업 세종시 불똥 연쇄 차질 불가피"

"국제산업물류도시·명지지구 타격, 지역사업도 세종시 수준 지원하라"

 

이날 부산·경남지역 일간지들의 1면 제목 키워드는 '역차별', '타격', '차질'이 주를 이뤘다. <부산일보>는 1면 머리기사 제목으로 '부산국비사업 세종시 불똥 연쇄 차질 불가피'를 뽑았다. 이 신문은 이날 사설도 ''세종시 태풍' 앞에 흔들리는 부산 숙원사업'이란 무거운 제목을 실었다. 신문은 "세종시 수정안은 타 지역에 대한 역차별이고, 국민의 혈세로 재벌 특혜주기"라고 못 박았다.

 

<국제신문>은 "그동안 중점적으로 추진하며 크게 기대해 왔던 국제산업물류도시 꿈과 명지지구 타격이 불 보듯 하다"며 걱정했다. 1면 머리기사 제목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이 신문은 1면 머리기사 제목으로 "국제산업물류도시·명지지구 타격, 지역사업도 세종시 수준 지원하라"를 뽑았다. 사설에서도 단단히 화가 났다. '세종시 수정안 정면돌파 외친다고 될 일 아니다'란 제목의 사설에서 충고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대구·경북] "대구·경북 배려 완전히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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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인터넷신문 캡쳐 화면. ⓒ 매일신문

▲ <매일신문> 인터넷신문 캡쳐 화면. ⓒ 매일신문

"대구·경북 배려 완전히 빠졌다"

"정부 공약 '5+2 경제권' 空約 만드나"

"대구·경북권 '그린에너지' 주축기업 거의 세종시로"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이 11일 발표되면서 대구·경북지역도 핵심사업의 중복과 지체를 우려하며 위기감에 휩싸였다. 특히 지역신문 1면과 사설에서 잘 읽힌다. <영남일보>는 이날 "대구경북 배려 완전히 빠졌다"를 1면 머리기사 제목으로 올렸다. 또 <매일신문>도 '대구경북권 그린에너지 주축기업 거의 세종시로'란 부제와 함께 '정부 공약 5+2 경제권 空約 만드나'란 제목을 뽑았다.

 

대단히 서운했던 모양이다. 두 신문은 사설에서도 조목조목 비판하며 충고했다. <매일신문>은 '세종시 수정으로 다시금 벼랑 끝에 선 대구경북'을, <영남일보>는 '차라리 지역균형발전정책을 포기하라'란 제목의 사설에서 호되게 나무랐다. "대구·경북은 세종시의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지정으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의 꿈이 물거품이 됐다"며  "세종시에 준하는 파격적인 발전방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는 준엄한 주문이 눈에 띈다.

 

[광주·전라] "호남권, 국가발전 성장축에서 장기간 소외될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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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전북신문> 12일자 1면. ⓒ 새전북신문

▲ <새전북신문> 12일자 1면. ⓒ 새전북신문

"세종시 결국은 블랙홀"

"새만금 과학연구용지 기본틀 '휘청'"

"광주·전남 신성장동력 태양광·LED 무력화"

 

호남지역도 신문 지면이 온통 위기와 불안감으로 얼룩졌다.  광주·전남지역은 정부가 세종시를 행정중심 복합도시에서 교육과학중심 경제도시로 전환하기로 발표하면서 태양광과 LED 등 광주·전남의 미래 먹을거리인 신 성장동력이 사실상 무력화하게 됐다며 울상 지었다.

 

더구나 세종시는 헐값 토지매입 등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활용해 기업은 물론 교육·과학분야까지 끌어들이는 '블랙홀'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고, 수도권 규제완화의 계기로 작용할 것으로 보여 호남권이 국가발전의 성장축에서 장기간 소외될 우려를 낳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날 <광주일보>는 '세종시 결국은 블랙홀... 광주·전남 신성장동력 태양광·LED 무력화'란 제목을, <무등일보>는  '세종시 수정안 거센 후폭풍'을 각각 1면 머리기사로 올렸다. 두 신문은 또한 이날 '지역 미래에 찬물 끼얹는 세종시 수정안', '세종시 문제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인가'를 각각 사설 제목으로 다뤘다. 새만금 완공을 눈앞에 둔 인근 전북지역은 더욱 원성이 높았다. 이날 <전북일보>가 내보낸 '새만금 과학연구용지 기본틀 휘청'이란 1면 머리기사 제목에서부터 잘 읽힌다.

 

[대전·충청] "부처이전 백지화됐지만 신성장 첨단도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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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일보> 인터넷신문 캡쳐 화면. ⓒ 대전일보

▲ <대전일보> 인터넷신문 캡쳐 화면. ⓒ 대전일보

"세종시거점 과학벨트 전 국토 연결"

"부처이전 백지화… 신성장 첨단도시로"

"세종시 부처이전 백지화·· 삼성·한화·웅진 유치"

 

어느 지역보다 마음이 편치 않은 곳이다. 7년여 동안 추진해왔던 국책사업이 불과 100여일 만에 폐기처분된 셈이니 얼마나 허망하고 분할 노릇인가. 민심이 연초부터 부글부글 끓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를 감지한 지역언론은 당근과 비판을 동시에 전달하느라 여념이 없다. 이날 <대전일보>는 '부처이전 백지화… 신성장 첨단도시로'란 제목의 1면 머리기사와 함께'충청·야·친박 원안사수 반발'이란 제목의 다른 기사를 동시에 실었다.

 

<충청투데이>는 '세종시 부처이전 백지화·· 삼성·한화·웅진 유치'란 제목을 역시 1면 머리로 실었다. 다른 지역 신문들의 제목이 풍기는 뉘앙스와는 사뭇 다르다. 대기업 유치를 반기는 기색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론 짓밟힌 자존심을 걱정했다. 원안고수를 열망했던 충청권 민심은 온 데 간 데 없고 정부의 의지만이 수정안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 지역 언론들이 특히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 행보에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강원·제주] "강원·제주에도 세종시 수정안 '후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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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 인터넷신문 캡쳐 화면. ⓒ 제주일보

▲ <제주일보> 인터넷신문 캡쳐 화면. ⓒ 제주일보

"지역경제 기반 붕괴되나"

"제주에도 세종시 수정안 '후폭풍'"

 

세종시 태풍 위력은 강원과 제주지역도 빗겨가지 않았다. 두 지역 언론사들도 정부가 11일 내놓은 세종시 수정안의 핵심이 해당 지역이 추진 중인 역점사업과 중복돼 경제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영상과 지면에 가득 담았다.

 

이날 <강원도민일보>는 1면 머리기사 제목으로 '지역경제 기반 붕괴되나'를, <제주일보>는 '제주에도 세종시 수정안 후폭풍'을 뽑았다. 강원지역은 특히 충북 오송, 대구 신서 첨복단지에 이어 세종시에도 대규모 생명과학 단지 조성이 가시화 돼 바이오 및 의료기기 관련 기업을 모조리 빨아들이는 '빨대효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졌다며 걱정하는 눈치다.

 

후폭풍 위력은 제주에서도 실감했다. <제주일보>는 이날 기사에서 "제주특별자치도가 적극적으로 유치에 나섰던 '정부전산백업센터'가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에 포함되면서 결국 무산됐다"며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에 정부전산백업센터가 포함되면서 그동안 제주도의 유치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고 비통해 했다.

 

[서울] "장밋빛 알파" vs. "결국 균형발전 포기""

 

지방과 달리 서울에서 발행되는 신문들의 스펙트럼은 두 가지로 구별된다.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 결정에 대한 긍정, 부정이 그것이다. 1면 머리기사 제목에서 고스란히 묻어난다.

 

<경향신문> "부처 이전 전면 백지화 대기업 입주"

<한겨레> 수도권 과밀화 해소 포기

<조선일보> 행정부처 대신 '과학벨트+삼성 한화+α'

<동아일보> 투자 8조→16조, 고용 8만→24만, 인구 17만→50만

<중앙일보> "갈등해결 모델로…세종시는 기회다"

 

<경향>, <한겨레> 등은 이날 기사와 사설에서 "과밀화·집중화 된 수도권 분산을 통해 국가 균형발전을 도모하려는 당초 취지가 물 건너가게 됐다"며 "정부의 수정안의 효과도 불분명한데다 기업유치를 위해 다른 지역과 불균등한 특혜성 조치들이 남발됐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조중동>은 이날도 달랐다. 특히 <중앙>은 '세종시는 갈등해결 모델이 될 수 있는 기회'라는 해괴한 논리를 제목과 기사에 담아냈다. <동아> 역시 1면 '투자 8조→16조, 고용 8만→24만, 인구 17만→50만'이란 제목의 머리기사를 통해 정부의 수정안이 추진되면 투자도 2배 이상이 늘어난 16조 원으로 확대되고 고용효과도 8만 명보다 3배나 많은 24만 명으로 늘어난다는 점을 강조했다.

 

<조선> 1면 '행정부처 대신 과학벨트+삼성 한화+α' 기사와 3면 '수정안, 세종시 이름만 빼고 다 바꿨다' 등의 관련기사를 통해 "일자리와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산, 학, 연 클러스터'를 조성해 세종시를 신 성장동력의 거점도시로 육성하겠다"는 정부 입장을 여과 없이 전달했다.

 

세종시를 둘러싼 언론의 보도는 이처럼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의 이해관계와 세종시로 상징되는 비수도권 지방의 이해관계를 둘러싼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나라를 둘로 쪼개놓은 듯 하다.  

2010.01.13 08:28 ⓒ 2010 OhmyNews
#세종시 #후폭풍 #정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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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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