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1989, <인간> 13집
눈빛
"살아있다면 베토벤 사진 찍고 싶어"<인간가족>으로 시작한 그의 사진인생은 <인간>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가 사진으로 담은 인간 군상들이 사진집 <인간>으로 담겼다. 벌써 13집까지 나왔고 내년에 14집이 나올 예정이다. 그에게 <인간>은 여러 악장으로 이루어진 교향곡과 같다.
"촌놈이 출세했지. 82년에 독일정부 초청으로 유럽 촬영여행을 했어요. 독일에 도착해 우리나라로 치면 문화부 같은 곳을 찾아갔지. 거기 담당 국장이 여성이더라고. 내가 그때 나온 <인간> 3집을 줬어. 그랬더니 그 국장이 '베토벤은 교향곡 9번까지 만들었는데 최 선생은 <인간>을 몇 집까지 낼 거냐'고 묻더라고." 자신의 사진집을 그가 제일 좋아하는 음악가인 베토벤의 교향곡에 견주는 것에 그는 감동했다. 그래 얼떨결에 대답했단다. "10집까지 낼 거다."
57년에 사진을 시작해 68년에야 처음 <인간> 1집을 냈던 그였다. 그 국장에게 했던 대답을 지키기 위해 그는 부단히 찍고 계속해서 사진집으로 엮었다. 1999년, 그가 목표로 했던 <인간> 10집이 나왔다. 그는 "14집 이후에도 두 권은 더 나올 자료들은 있지"라고 말했다. 인생목표의 160% 달성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엮은 <인간> 교향곡의 울림은 계속된다.
베토벤 이야기가 나오니 그의 얼굴이 달뜬다.
"난 참 베 선생을 좋아해. 그 사람이 평생 작곡을 760곡 했어요. 57세에 죽었는데 36살 때 귀가 멀었어. 근데 귀가 먼 후에 760곡 중 83%를 작곡했어." 그는 베토벤이 얼마나 자기가 작곡한 곡을 듣고 싶었겠냐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도 베토벤이 귀가 머는 고통을 겪었기에 그 선배인 하이든이나 모차르트와는 다른 음악을 작곡할 수 있었던 거라고도 했다. 귀가 먼 후 귀족들도 안 만난 베토벤이 한 말을 들려준다. "나의 음악은 특히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바쳐져야 한다."
그의 서재엔 베토벤이 촛불을 켠 채 지휘하고 있는 그림이 액자에 담겨있다. 그가 책에 나온 작은 그림을 3일 걸려서 따라 그린 거란다. 휘갈긴 베토벤의 사인까지 그대로다. 베토벤의 사진은 남겨진 것이 없다. 베토벤이 살아있을 때도 사진기는 있었지만 이동이 불편했던 당시 사진기를 그가 있는 곳까지 가지고 가지 못했단다.
최 작가가 그림 속 베토벤을 가리키며 말한다. "저 사람 살아있으면 밀가루 한 포대랑 치즈 2봉지랑 양주 2병 가지고 가서 '당신 독사진 한 장 찍으러 왔습니다.' 하고 싶어요." 저녁거리가 없을 만큼 살림이 어려웠던 베토벤에 대한 존경과 애정의 표현이다.
그가 오디오를 켠다. 책꽂이 양쪽에 놓인 30여 년 된 스피커에서 맑은 피아노 소리가 울린다. 베토벤의 피아노 삼중주 '대공'이다. "이 곡은 4악장까지 있는데 특히 3악장이 좋아요." 인터뷰가 갑자기 음악감상 시간으로 바뀌었다. 생애 첫 클래식을 들으면서 하는 인터뷰다. 그가 추구하는 사실주의와 클래식은 어째 어색한가. 그 역시 가진 자들이 클래식에 덧씌운 포장이다.
그의 말에 힘이 들어간다. "예술가는 다른 분야의 예술도 알아야 해요. 음악, 미술, 조각, 연극 등등을 다 알아야 내 사진이 더 깊어지죠."
"사진은 사상이다"베토벤만큼이나 당황케 하는 건 그의 서재를 가득 채운 1만여 권의 책이다. 사진집은 물론 각종 전기와 에세이, 문학책들이 빼곡하다.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철학개론을 비롯해 사회 사상사, 사회학 등의 책들도 상당하다.
'예술가가 웬 철학책이야.' 또 궁금해진다. "철학, 사회사 등을 읽어야만 우리 인간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죠." 그에게 사진은 '사상'이다. "어린아이나 원숭이도 셔터를 누르면 물리적으로 사진은 찍혀요. 하지만 작가의 자기 느낌이나 생각인 사상은 우러나오지 않죠." 무엇을 찍느냐보다 무엇을 전달하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 사상은 작가가 온몸으로 체험한 경험으로부터 나온다. 직접 체험을 하기 힘든 요즘 젊은이들은 책을 통해 간접체험이라도 하라고 그가 몇 번씩 말한다.
간접체험엔 여행도 있다. 그가 탐구하는 '인간'엔 국경이 따로 없다. 지금껏 43개국에 가봤다.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걸 좋아해서 가능한 혼자서 여행을 떠난다.
"한 번은 인도를 갔는데 마을 족장집을 찾아갔어요. 그런데 환영을 안 해. 인사도 잘 안 받고…. 구석을 보니 짚더미를 쌓아놨어. 그 짚더미 밑을 조금 빼니 터널이 돼. 거기 안에다 가방이나 카메라를 집어넣고, 그 안에 들어가 얼굴만 밖에 내놓고 수건을 뒤집어쓰고 잤어요. 아침에 일어나니까 막 웅성웅성해. 수건을 걷어보니 애, 어른 할 것 없이 한 30~40명이 쭉 둘러서 날 쳐다보고 있더라고." 그들은 외국 거지가 온 줄 알고 물을 가득 담은 양동이와 세숫대야, 비누와 수건을 내밀었다. 그는 짚더미 속에 있는 카메라를 꺼내 그 장면을 찍고 싶은 생각에 휩싸였다. '거지가 어떻게 사진을 찍냐' 싶어 그 욕망을 꾹 참았다. 그들이 건네는 우유 탄 커피만 홀짝였다. "그 마을 언덕을 넘는데 언덕 밑에서 마을 사람들이 죽 서서 막 손을 흔드는 거야." 영화 같은 이야기를 그는 이렇게 실제로 경험하고 있었다. 그 경험이 고스란히 사진이 된다.
▲서울, 1957, <인간> 13집
눈빛
돈 못 버는 다큐 작가 아들에게도 권하기 힘들어그는 상당히 많은 인터뷰를 했고 그의 인생을 담은 다큐멘터리도 만들어졌다. 그런데 그 속에서 가족 이야기를 찾기가 쉽지 않다. 예술가의 피는 유전되는지 궁금했다.
"자식이 3남1녀인데 둘째가 선박회사 다니면서 외국에 오래 있었지. 그때 월급타서 사진만 찍으러 다녔는데 애 엄마가 카메라를 압수했어. '너도 네 애비처럼 되려냐'면서…." 어려운 형편에 다방, 술집으로 일수까지 찍으러 다녔던 그의 부인은 여전히 그가 사진 하는 걸 못 마땅해 한다. 언론사에서 인터뷰를 하러 오면 숨어버린다고. 그는 아직 아내의 사진을 못 찍어 봤다고, 하지만 영정사진은 찍어주고 싶다고 했다.
사진 찍는 걸 좋아했던 둘째는 요리사 자격증을 따서 작은 식당을 하고 있다. "애가 셋이야. 애들 키우려면 돈 많이 들잖아. 나야 좋아서 했지만 집안 망할 거 각오하고 돈 못 버는 다큐 작가하라고 못하지." 대신에 둘째는 최근 서예를 배우기 시작해 한 대회에서 입선을 했단다. 그 아버지의 아버지 피가 이어지고 있다.
봉사활동을 많이 하는 그의 딸은 아버지가 여러 매체와 인터뷰하는 데 불만이 많다. 그의 책엔 언젠가 딸이 "아버지는 가난한 사람들을 팔아서 자신을 자랑하려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은 매스컴 안 타고도 얼마든지 좋은 일을 하잖아요! 왜 자꾸 응하세요? 전 아버지가 그러실 줄 몰랐어요"라는 가슴 찌르는 질문을 했다고 써 있다. 그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은 이랬다. "찾아오는데 막을 수 없잖니." 실제로 기자가 전화했을 때도 그는 많은 걸 묻지 않았다. 명예를 찾거나 이름을 내고 싶은 게 아니다. 지난 50여 년간 외면당해온 그의 사진과 사진 속 사람들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을 뿐이다. 그가 세상을 등지면 다시 세상에 묻힐지도 모를 이야기들 말이다.
진실 좇아온 50년 "난 행복해"최 작가를 처음 봤을 때 여든이 넘은 나이가 상상이 안 됐다. 립서비스가 아니라 정말 20년도 훨씬 더 젊어보였다. 그래 처음 그의 서재에 자리를 잡고 물은 질문이 건강관리 비결이었다.
"많이 걸으니까 건강해요. 그리고 뇌를 많이 쓰지." 독서와 사색, 사진에 대한 연구가 그의 뇌활동이다. 사진에 대한 연구엔 다른 작가들의 사진을 계속 보는 것, 그가 찍은 사진들을 사진집 낼 주제별로 분류해 계속 좋은 사진들로 교체하는 것들이 포함된다. 그밖에도 신문이나 잡지에서 청탁한 원고 쓰기, 대학에서의 강의까지 여느 젊은이 못지않은 왕성한 활동에 하루 24시간이 부족하다.
사진작가 최민식은 |
1928년 황해도 연안에서 태어났다. 1957년 일본 도쿄중앙미술학원 졸업 무렵부터 독학으로 사진을 익혔다. 그후 평생 '인간'을 소재로 한 사진을 찍어왔다.
1962년 대만국제사진전에서 입선을 시작으로, 미국·독일·프랑스·영국 등 20여 개국 사진공모전에서 220점이 입상·입선되는 등 세계적으로 반향을 일으켰다.
1968년 사진집 <인간> 1집을 낸 이후, 지금껏 13집까지 펴냈다. 현재도 활발한 사진활동과 함께 부산대와 인제대 등에서 사진학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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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도 사진촬영 시간은 꼭 확보한다. 학기 중엔 강의가 있는 이틀 오후를, 방학 중에는 거의 매일 사진가방을 메고 나선다. 자갈치 시장, 용두산 공원, 인도, 네팔…. 그의 카메라 렌즈가 향하는 곳은 늘 가난한 이들이 숨쉬는 생생한 현장이다. 그는 지금도 기차로 30분 가는 거리까지는 거뜬히 걷는단다.
그에게 '사진이란 무엇인지' 물었다. 간단한 답이 되돌아 왔다.
"사진(寫眞)은 말 그대로 진실을 찍는 거지." 50여 년을 인간 내면에 담긴 진실을 좇아 굽은 길을 걸어온 그다.
"나는 행복해요. 원하는 것을 이루었으니까. 사진을 통해 세상과 감동을 나누는 삶 말야. 내 인생은 성공한 거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월간 <노동세상> 1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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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삶엔 이야기가 있다는 믿음으로 삶의 이야기를 찾아 기록하는 기록자.
스키마언어교육연구소 연구원으로 아이들과 즐겁게 책을 읽고 글쓰는 법도 찾고 있다.
제21회 전태일문학상 생활/기록문 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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