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2년 반만의 부녀 휴대전화 교체기

'공짜폰' 마련한 딸, 문자 보내는 연습을 열심히 하신 아버지

등록 2010.01.18 09:01수정 2010.01.18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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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선생님, 선생님 폰이 이상해요. 화면이 하얗게 되어 버려요."

 

2년 반동안 내 곁에 항상 함께 했던 휴대전화가 사망신고를 하기 전 마지막 한숨을 내쉬는 순간이었다. 얼마 전부터 휴대전화 카메라가 고장이 났는지 '프로그램을 실행할 수 없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뜨더니, 약 1주일 전부터는 액정이 시시때때로 하얗게 되어 버려서 문자메시지를 확인하기가 힘들어졌다. 아침에 휴대전화 슬라이드를 열어서 액정이 제대로 나오는 날은 왠지 모르게 좋은 일만 있을 것 같을 정도였으니.

 

그러다 어제, 드디어 휴대전화 액정이 검게 변하더니,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안 그래도 아버지 명의로 되어 있는 걸 내 명의로 바꿔야 했는데, 오히려 잘 됐다 싶어 아버지와 함께 휴대전화 매장을 찾기로 했다.

 

막상 휴대전화를 바꾼다고 생각하니 정말 좋은 기종을 사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저번 휴대전화도 크게 좋은 건 아니었지만 있는 기능도 다 안쓰고 전화, 문자, 카메라 이 세 가지만 썼기 때문에 다음에 휴대전화를 사면 꼭 기능이 적은 걸로 사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솔직히 요즘 그런 휴대전화를 발견하는 건 쉽지 않았다. 거기다 여기저기서 들은 '아이폰' 이야기에 솔깃해서 '스마트폰 하나 가지고 있으면 괜찮겠다'라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최신 휴대전화 목록을 검색해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종류가 너무 많아 어떤 폰을 사야할지 정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 목록을 보면서 내가 괜찮다고 생각한 기종은 아이폰은 아니었지만 가격대가 좀 비싼 휴대전화였다. 그래도 요즘은 무료로 휴대전화를 살 수 있는 기회가 많다고 들어서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나 : 명의변경 대신 신규가입, 최신 기종 대신 적은 기능을 선택하다

 

그리고 드디어 휴대전화 대리점으로 갔다. 일단 그동안 벼르고 있었던 명의 변경을 하기 위해 아버지와 난 각각 신분증을 내밀고 명의변경을 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기변경도 가능하냐고 물어봤는데, 이런! 명의변경을 하면 3개월 동안 휴대전화 기기를 바꿀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기기변경을 먼저 하고 명의변경을 바로 할 수 있냐고 하니 그것 역시 안 된단다. 명의자가 그동안 사용한 걸로 기기변경 혜택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역시 3개월 이상 사용해야지 명의를 바꿀 수 있다는 것.

 

그러면서 대리점에서는 지금 쓰는 휴대전화를 해지하고 신규가입을 하면 어떻냐고 했다. 솔직히 번호를 알려줘야 하는 사람도 많지 않고, 명의변경을 굳이 할 필요도 없었기에 난 그 방법을 선택했다. 그래도 전화번호 11자리 중 딱 한 자리 숫자만 바뀌었기에 다행이었다.

 

그렇게 신규가입을 하기로 하고, 휴대전화를 보러 갔다.

 

"여기 공짜폰 혹시 있습니까?"

 

아버지의 한 마디에 대리점 직원은 '공짜폰'을 다섯 개 정도 보여 주었다. 터치형식 세 개, 슬라이드형 하나, 폴더형 하나. 딱 보기에도 터치형식이 최신 기종이고 예뻐 보였지만, 워낙 휴대전화를 험하게 쓰다 보니 터치형을 쓰면 한 달도 안되서 고장났다고 서비스 센터에 맡길 것 같은 생각이 순간 들었다. 그래서 일단 터치형은 제외하고 폴더형과 슬라이드형을 보는데, 둘다 막상막하였지만 그나마 폴더형이 예뻐서 폴더형으로 골랐다. 다행히 이 휴대전화는 내가 쓰기에 적당한, 전화와 문자, 그리고 카메라 기능밖에 없는 아주 간단한 기종이었다. 당연히 금액은 무료.

 

아버지 : 2세대를 유지하는 대신 나보다 더 비싸게 새 휴대전화를 마련하다

 

이렇게 내 휴대전화를 마련하고 나서 아버지 휴대전화를 바꾸러 갔다. 나와 통신사가 다른 데다 아버지는 2세대 휴대전화고 번호도 바꾸고 싶지 않다고 하셔서 근처의 다른 매장으로 갔다. 해외출장이 잦은 아버지는 해외 자동로밍이 되는 기종을 사용하고 싶어하셨고, 직원은 한 기종을 아버지께 보여드렸다. 하지만 그 기종은 아버지께서 이전에 쓰시던 기종보다 너무 커서 큰 기종을 좋아하지 않는 아버지께는 별로였다.

 

그래도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아버지께서는 그냥 그 기종을 쓰기로 하셨다. 그리고 가격을 물어보는데,

 

"아버님 확인해보니까 6만원짜리 기기변경 쿠폰 있으시네요. 그거 적용받으시고 보상기변(이전 휴대전화 기종 반납)하시면 12만원입니다."

 

순간 아버지와 나 모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난 2년 반 전에 휴대전화를 바꾸면서 통신사를 옮겼는데 흔히 말하는 '공짜폰'을 샀으면서, 아버지는 이 통신사를 10년 가까이 사용하셨는데 12만원이 드니, 혜택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유를 물어보니, 아버지께서 휴대전화를 거의 사용하지 않으셔서 큰 혜택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한 통신사에서 오랜 기간 사용을 해도, 결국 평소에 얼만큼 요금을 냈느냐가 할인혜택의 기준이 된다는 게 좀 씁쓸했지만, 그렇게밖에 할 수 없다니 어쩌랴. 그냥 보상기변을 하고 12만원에 휴대전화를 샀다. 내 휴대전화가 돈이 좀 들고 아버지는 오래 사용했으니 무료로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건 오산이었다.

 

그렇게 둘 다 휴대전화를 바꾸고 집으로 돌아가니 어느새 2시간 가까이 시간이 흘러가 있었다. 아버지 명의의 휴대전화를 해지하고 내가 신규가입을 하면서 시간이 좀 걸리기도 했지만, 아버지 휴대전화 기종을 바꾸면서 하필 전산이 먹통이 되는 바람에 한참 기다린 게 컸다. 분명 한 건 휴대전화 기기를 바꾼 것밖에 없는데, 2시간 정도를 그냥 앉아 있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보너스 : 아버지, 휴대전화로 문자 보내기 연습하다

 

그리고 저녁식사 후 우리 가족은 좀 특별한 시간을 가졌다. 바로 '아버지 휴대전화로 문자보내기 연습'. 나는 기존에 쓰던 휴대전화와 자판 배열이 똑같아서 괜찮았지만, 아버지 휴대전화는 자판배열이 완전 달라 연습이 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한동안 아버지 옆에 붙어서 문자 보내는 법을 다시 가르쳐드렸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옆에서 가르쳐드린 대로 어머니께 문자를 보내셨다.

 

"ㅅ ㅏ ㄹ ㅏ ㅇ ㅎ ㅐ ㅇ ㅛ"

 

아직 문자 보내는 속도가 느려서 초성과 중성, 종성이 다 흩어지는 문자였지만, 어머니께서는 그 문자를 옆에서 보면서 좋으신지 살짝 미소를 지으셨다. 그리고 그렇게 몇 번 연습하시더니 나중에는 '사랑해요'라는 문자를 완벽하게 써서 보내는 걸 성공하셨다.

 

그리고 오늘 아침, 아버지께서 내게 가장 먼저 하신 말씀.

 

"지혜야, 이젠 문자도 잘 쓸 수 있다. 이 폰도 문자 보내기가 꽤 쉽네."

 

너무나 당당하게 말씀하시는 아버지. 그 뒤로 어머니 휴대전화에 문자가 도착하는 소리가 몇 번 울렸다. 문자 쓰는 법을 제대로 이해하시기까지 어머니께 '사랑해요'라는 말을 여러 번 보내신 아버지. 겉으로는 문자 보내기 연습이라고 하셨지만, 그 틈을 빌어서 어머니께 사랑고백을 엄청나게 하고 싶으셨던 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이렇게 2년 반만의 휴대전화 교체는 끝이 났다. 다른 것보다 이번에 산 휴대전화는 될 수 있는 한 고장내지 않고 오래 쓰고 싶은데, 워낙 덜렁대는 성격이라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최대한 조심, 또 조심해서 사용해 봐야겠다. 정말 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2010.01.18 09:01ⓒ 2010 OhmyNews
#휴대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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