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한 시신 7만 구, 구출된 생존자 70여 명"

아이티 정부 "1월말까지 국가비상사태"... 치안 악화로 구호활동 차질

등록 2010.01.18 15:14수정 2010.01.18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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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아이티의 한 병원 앞에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부상자를 살펴보는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원.

아이티의 한 병원 앞에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부상자를 살펴보는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원. ⓒ 조현삼 목사


규모 7.0의 강진이 훑고 간 아이티의 실상은 참혹 그 자체다.

사망자 추정치가 갈수록 상향 조정되고 있는 가운데, 아이티 정부가 지금까지 수습한 시신이 7만 구를 넘어섰다고 AFP 통신이 17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 특히 아이티 정부는 최근 사망자 수가 15만~2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아이티 현지에서 미군의 구호작업을 지휘하는 켄 킨 중장도 ABC 방송과 인터뷰에서 '이번 지진 참사로 15만~20만 명이 숨졌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할 것"이라고 답변, 그 이상의 인명피해 가능성을 시사했다.

가족들이 개인적으로 매장해버린 시신은 아예 통계에 잡히지도 않는다. 길거리에서는 미처 수습하지 못한 시신들이 부패하고 있고, 일부 아이티인들은 물·음식·의약품 등 생필품을 얻기 위해 시신들을 시위 도구로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시간이 흘러갈수록 생존자 구출 가능성은 점차 낮아지고 있다. 43개국에서 파견된 1700명의 국제구조팀이 지금까지 구출한 생존자는 70여 명에 불과하다.

무너진 건물 아래 매몰된 생존자들이 물과 음식물 없이 견딜 수 있는 한계 시한은 72시간. 국제 구조팀에 따르면 생존자를 구출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은 17일이다. 물을 먹지 못한 매몰자들은 현재 심각한 탈수 증상을 겪을 수밖에 없다.

물론 기적의 생환자들이 계속 나오면서 한 가닥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 지진 발생 100시간여를 맞는 지난 16일 12명을 구출했고, 17일에도 최소 4명 이상을 무너진 건물 아래서 찾아냈다. 현재 국제 구조팀은 지진이 강타한 지역에서 시계 방향으로 진행해 약 60%의 지역에 대한 수색 작업을 완료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수도인 포르토프랭스에서는 수천 명이 거리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약 150만 명이 이번 지진으로 집을 잃었고, 도미니카 등으로 탈출하는 아이티인 행렬도 점차 늘고 있다. 아이티 정부는 1월말까지를 '국가비상사태'로 선언하고 한 달에 걸친 애도 기간을 갖기로 했다.

아이티 구호 본격화... 치안 악화에 폭동까지


각국 지도자들이 아이티 재건을 위한 대규모 지원을 약속한 가운데 유럽연합(EU)은 18일 브뤼셀에서 긴급 장관회의를 개최하고 아이티 재건을 위해 최소 1억 유로(약 1600억 원) 규모의 지원계획을 발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은 앞으로 6개월간 300만 명의 아이티 주민을 구호하기 위해 5억6200만 달러(약 6300억 원)가 필요하며 당장 200만 명 정도는 긴급구호가 절실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주민들에게 구호물자가 원활하게 공급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구호물자를 실은 비행기들이 아이티 공항에 제대로 들어오지 못하는 것은 물론, 들어온 이후에도 곳곳의 도로가 막혀 생존자들에게 구호물자가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 킨 중장은 17일 CNN과 인터뷰에서 "되도록 빨리 아이티에서 이용 가능한 항구를 찾아 연료를 포함한 구호물자를 운송할 것"이라고 밝혔다.

물과 음식 등 생필품을 찾는 약탈자들이 흉기까지 소지하는 등 치안상황이 악화된 것도 구호활동에 어려움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아이티 현지 경찰은 폐허가 된 포르토프랭스시 여러 곳에서 폭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아이티 경찰에 따르면 폭도들은 경찰·언론인·일반인 등 대상을 가리지 않고 총격을 가하고 있다. 폭동이 심화되자 아이티 정부는 이 지역에 소총 등으로 무장한 경찰력을 증강 배치했다.

30대의 한 남성은 포르토프랭스 도심에서 약탈자 무리에게 발포한 아이티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하기도 했다. 거리를 누비는 약탈자들을 피해 포르토프랭스 교외로 나가서 직접 생필품과 피난처를 찾고 있는 아이티 주민들도 늘어나고 있다.

르네 프레발 아이티 대통령은 "3500명의 미군이 치안 회복을 위해 배치될 것"이라면서도 "2000명의 포르토프랭스 경찰이 심각하게 타격을 입었고, 3000명의 수감자마저 탈옥해 상황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켄 킨 중장도 "아이티에서 증가하는 폭력사태로 구조활동이 지연되고 있다"면서 18일까지 1만2000명 이상의 미군이 아이티에 도착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이티 주민들에게 응급 의료품과 식량을 지원하기 위해 15일 아이티에 입국한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 소속 조현삼 목사는 17일 밤 봉사단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굶주린 아이티 사람들을 눈앞에서 보고도 차를 돌려야 하는 안타까움을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다"며 아이티 치안 상태가 "악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첫날 들어왔을 때와 이제 세 번째 밤을 맞으려고 하는 짧은 기간 동안 아이티 상황이 더 어려워진 것 같다"며 "오늘 구호품을 나눠주러 가다 '성난 아이티 사람들'을 만났다. 치안이 안정되어야 구호품 분배 작업도 가능하다"고 전해왔다.

부족한 의료품 등 생존자에게 '새로운 위협'... 전염병 확산 우려

병원에 파견된 국제 의료팀들이 부상자를 돌보고 있지만 의사와 항생제, 진통제 등이 턱없이 부족한 것도 큰 문제다. CNN방송 인터넷판은 17일 "(생존자들이) 병원에서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뒤에도 새로운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포르토프랭스의 유엔본부 부지에 설치된 간이병원에서 지진 피해자들을 돌보고 있는 하버드 의대의 제니퍼 푸린 박사는 "환자의 30%가량이 바로 수술을 받지 못할 경우 앞으로 24시간 이내에 사망할 것"이라고 말했다. 환자들이 즉시 수술을 받지 못할 경우 감염, 괴사, 영양실조 등으로 목숨을 잃게 될 것이라는 우려다.

'국경 없는 의사회'(MSF)는 지진 이전부터 아이티에서 봉사 중이던 의료진 30명과 지진 발생 직후 현장에 도착한 70여 명 등 100여 명의 의료 인력을 투입했다. MSF는 포르토프랭스 인근 카르푸에 임시 병원을 설치하고 응급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지만 열악한 의료 시설과 약품 부족 등을 호소하고 있다.

프랑스의 한 의료봉사 단체 소속 외과의사는 AFP 통신과 인터뷰에서 "불행하게도 우리는 엄청난 수의 신체 절단수술을 집도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400여 건 이상의 절단수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온이 30도를 웃도는데다, 사망자들의 시신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전염병 발병 등 방역대책에도 비상이 걸렸다. 도미니카공화국의 주요 일간지 <리스틴 디아리오(Listin Diario)>는 17일 "아이티의 위생여건이 최악인데다 이번 지진참사로 인해 식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하고 "각종 전염병 및 수인성 질병의 확산 우려가 매우 높으며, 현지에서 활동 중인 구조대원과 응급구호요원들의 위생문제도 도전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이티를 관할하는 도미니카 주재 한국대사관도 아이티에서 전염병이 발병할 가능성이 높아지자, 현지를 방문하는 구조대원 및 관계자들에게 위생문제에 각별히 유의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이와 관련, 17일 오후 현지에 도착해 구조활동에 착수한 한국의 119 국제구조대원들도 전염병 예방에 필요한 마스크와 장갑 등을 착용하고 있다.

도미니카 주재 한국 대사관측은 "지진발생 후 벌써 5일 이상이 흘러 아직 구조되지 않은 상당수 피해자들은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고, 발굴된 시신도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전염병 확산 가능성이 무척 높다"면서 "구조대원 등 현지를 방문하는 분들은 각별히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119국제구조대 구조 활동 시작... 반기문 "많은 사람들이 인내심을 잃고 있다"

한편 소방방재청은 119국제구조대가 지진 피해지역에서 구조 활동에 들어갔다고 18일(한국시간) 전했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구조대는 포르토프랭스에 도착하자마자 현장지휘소를 설치한 뒤 탐색조와 구조1·2조, 현장상황관리조 등으로 나뉘어 디지털 내시경과 매몰자 탐지기 등 첨단 장비와 구조견을 활용한 생존자 수색과 시신 발굴 활동을 시작했다.

구조대는 강철수 대장을 포함한 총 25명의 대원과 구조견 2마리로 구성됐고, 국제보건의료재단 소속 의료진 7명과 한국국제협력단(KOICA) 직원 2명, 대한적십자사 직원 1명 등이 함께 활동한다. 구조대에는 원희룡 의원 등 한나라당 재난구호단도 동행했다고 소방방재청 측은 전했다. 구조대는 오는 25일까지 구조활동을 벌인 뒤 28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할 예정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17일 포르토프랭스에 도착했다. 반기문 사무총장은 수천 명의 아이티인들이 천막을 치고 임시로 거처하고 있는 내셔널 팰리스 앞 광장에 잠시 멈춰 기자회견을 열고 "많은 사람이 절망에 사로잡혀 있고, 점점 인내심을 잃어가고 있다"며 "아이티 국민들이 좀 더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줄 것을 진심으로 당부한다"고 말했다.

반 총장은 유엔 세계식량프로그램(WFP)이 향후 2주내에 100만 아이티인들을 먹일 수 있는 식량 제공을 계획하고 있으며, 한 달 내에는 200만 명의 아이티인들을 구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폭동을 피하기 위해) 300만~350만 명분의 식량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고 전했다.

반 총장은 "대통령궁 앞 거리에서 많은 사람들을 보고 만났다. 그들의 얼굴을 통해, 또 말하는 얘기를 통해 아이티인들이 더 나은 미래를 찾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내가 여기에 온 이유는 이들에게 희망을 말해주고 더 나은 미래를 가져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티 #강진 #구호물품 #폭동 #전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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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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