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이대암
그 이상의 싸움, 극단적 자본체제 넘어서기이렇듯 "우리 안에 이명박이 있음"을 상기시킨 김 발행인은 이어서 그 '이명박'의 생명줄인 "신자유주의 자본화" 자체를 꼬집는다.
그가 보기에 "이명박과 이명박의 패거리로 대변되는 정치적 실체는 바로 극단적인 자본의 체제"이다. 이 체제는 "자본과 지배계급을 위한 세상, 극소수 부자의 이익을 위해 돌아가는 세상, 이미 노동자의 58%가 비정규 불안정 노동자이고 끊임없이 양극화하고 비인간화하는 세상"이다.
그런데 이 극단적인 자본의 체제는 이명박이 발명하거나 시작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명박과 싸우는 건 단지 이명박이라는 개인이나 그 패거리에게 앙갚음"하는 것이 될 수는 없다. 그 이상의 싸움이 필요하다는, 김 발행인의 말을 들어보자.
"이명박이 우리가 어렵게 얻은 절차적 민주주의마저 무시하는 이유가 뭘까? 이명박은 사람들 괴롭히는 것이 목적이냐? 아니다. 이명박은 절차적 민주주의 무시에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자본의 편에 확실히 서려다 보니 이를 무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반이명박 연대의 목적은 절차적 민주주의 회복이 아니라 자본 체제와의 싸움이어야 한다." 결국 이명박과의 싸움은 극단적 자본 체제와의 싸움이고, 몰아내야 할 '내 안의 이명박'은 내 안의 극단적 자본 체제의 가치관인 것이다. 극단적 자본체제의 문제에 대한 "중요성 자체가 자꾸 은폐된다면", 그를 넘어설 수 없다면 "우리 사회는 계속해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 김 발행인의 분석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 다르게 살아가기, 다르게 행복하기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까? 그는 우리에게 자기성찰과 용기를 제안한다.
"우리는 이미 출구가 어디인지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출구까지 가는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그래도 지금보다는 조금 나은 곳으로라도 가자는 사람들을 따라 몰려가는 것이지요. 그런 우리에겐, 우리 아이들에겐 공멸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놓아버린 정신을 추슬러서 함께 출구를 향해 간다면 우리는 이 사악한 세상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명박과 그 패거리, 그리고 극단적 자본 체제에서 벗어날 출구를 우린 이미 알고 있음에도 그 길이 비현실적이란 이유로 또는 "그래도 현실이 어쩔 수 없으니..."라는 이유로 우리는 출구를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 김 발행인의 생각이다. 현실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는 길은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지금 현실이 아니니까. 그래서 현실을 벗어나는 길은 사실 비현실적인 것에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이때, 그 길을 외면하지 않고 걸어가게 하는 힘은 바로 우리의 자기성찰과 용기에서 나온다.
"다들 돈귀신에 들려 있는데 돈귀신의 괴수 이명박이 왜 겁을 내겠나? 이명박은 내 앞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바로 내 안에 존재한다. '우리 안의 이명박'은 이명박과 싸우지 말자는 게 아니라 진짜 싸우자는 것입니다. 싸우는 시늉만 말고, 싸운다 착각 말고, 진짜 제대로 싸우자는 말이다. 그래서 이 캄캄한 현실을 뚫고 우리의 삶과 우리 아이들의 미래에 희망을 만들어가자는 것이다.""우리가 아이들을 이명박과 다르게 키우기 시작할 때, 우리의 행복이 이명박이 말하는 행복과 달라질 때, 돈귀신 체제가 강요하는 온갖 부질없는 삶의 규율들에 순종하지 않을 때, 내 스스로 작은 이명박이라 성찰하고 다르게 살기 시작할 때 이 사악한 체제는 거짓말처럼 무너져 내리기 시작할 것이다." 이명박과 다른 '잘 살기', '행복하기'의 기준을 세우고 지금 그대로 살아가는 것. 이명박을 욕하긴 쉽지만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김 발행인의 지적에 "우리 안의 이명박"이 마구 꿈틀거린다. 우리에겐 과연 진정으로 이명박을 넘어설 자기성찰과 용기의 힘이 있는가?
'내 안의 이명박'이냐, '내 밖의 이명박'이냐한편 김 발행인의 발제 후 토론자로 나선 김종엽 교수는 "김규항씨의 말씀엔 별로 이견이 없음"을 전제로 하면서도 "자기비판의 과잉"을 지적하고 "우리 밖의 이명박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역사를 보면 "강한 품성, 윤리적 고집 가진 건 항상 소수"라며 "사람들이 가치관을 스스로 혁파하는, 다수가 도덕적으로 뛰어난 사람으로 변하는 것보다는 여러 가지 제도적 가능성을 찾아서 현재의 기회구조로부터 더 확장된 기회구조를 만드는 정치적 투입과 조직화의 길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김 발행인이 지적한 "공적시민으로서의 삶과 사적 개인으로서의 삶의 분열"은 "자본주의 사회의 고유한 분열"이기에 "그렇게 비난 받아야 할 일이 아니다"라며 이 분열 속에서도 "성찰의 잠재성이 살아있음"을 강조했다.
"초점을 두어야 할 부분은 우리가 사적 삶 속에서 불안한 가족의 미래를 걱정하며 적응적으로 행동하는 나약함이 아니라 그런 나약한 우리가 여전히 공적 시민으로서의 태도를 가지고 성명서도 쓰고 토론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노력이 정치적으로 투입되고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면, 우리 사적 삶에서의 긴장 또한 덜어질 것이다." 김교수의 토론을 정리하면 "자학의 위험까지 내포한 자기비판의 엄격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웃과의 화해된 삶을 향한 지향을 위한 제도적 수로를 여는 것"이며 "'우리 안의 이명박'이란 문제설정보다는 '우리 밖의 이명박'이란 문제설정이 낫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 발행인은 "사회제도가 사람을 결성하는 것, 사람들의 상태가 사회에 반영되는 것 사실은 둘 다 맞다"면서 하지만 "중요한 건 지금 현재 상황에서 어느 쪽이 부족한가를 살피며 균형을 잡는 것"이라고 답했다. '내 안의 이명박'과 '내 밖의 이명박' 두 문제는 모두 중요하지만, 그가 보기에 지금의 우리는 "우리의 생각, 가치관보다는 사회제도에 대해서만 더 많이 편중되게 생각"하고 있기에 '안'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안'과 '밖'의 강조점은 달랐어도 결국 발제자나 토론자나 "세상이 변혁되려면 사회구조도 변혁되어야 하고 나도 변혁되어야 한다. 즉 내 밖의 적과도 싸워야 하고 내 안의 적과도 싸워야 한다 (김 발행인)"는 말엔 전적으로 의견을 같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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