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 이럴 줄은 몰랐다

[TV리뷰] 버라이어티 프로가 예능과 감동을 다 잡는 비결

등록 2010.01.25 10:40수정 2010.01.25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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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해피선데이 - 남자의 자격>. ⓒ KBS 화면캡쳐


KBS <해피선데이 - 남자의 자격>(이하 <남자의 자격>)이 처음 방송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이 프로그램의 성공을 점치는 이는 많지 않았다.

SBS <라인업> 실패 이후 꾸준히 하락세를 겪으며 위기론에 시달렸던 이경규, 오랜 공백기 이후 성공적으로 방송가에 복귀하긴 했으나 리얼 버라이어티를 겪어보지 못한 김국진, 개그맨 출신도 아니고 예능에 익숙하지도 않은 김태원, 김성민, 이정진,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큰 존재감 없었던 이윤석, 그리고 예능 초보 윤형빈까지…. 출연진 구성을 볼 때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게다가 프로그램의 포맷 또한 신선하다고 보기 힘들었다. 6~7명 집단 MC 체제의 리얼 버라이어티, 격주로 미션을 수행하는 방송의 구성은 익숙하다 못해 식상한 수준이었다. 입담 좋은 예능인들을 대거 기용해 그들로부터 웃음을 끌어내려는 것도 아니고, 신선한 구성과 발상으로 접근하는 것도 아닌 <남자의 자격>이 첫 선을 보였을 때 많은 이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러나 <남자의 자격>은 그런 우려와 의심의 시선을 비웃기라도 하듯 방송 8개월여 만에 정상에 우뚝 서며 KBS 일요일 저녁 예능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들이 수행하는 미션은 이제 매회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시청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고, 예능 프로에 낯설어하던 김태원, 김성민, 이정진은 캐릭터를 확실하게 구축해 이제 각각 '할매', '봉창', '비덩'이란 별명으로 더 많이 불리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대한민국 아저씨의 스탠더드, <남자의 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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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자격>의 도전은 때론 다큐멘터리로 불릴만큼 어렵고 힘들다. ⓒ KBS 화면캡쳐


<남자의 자격>은 어떻게 화제의 예능이 될 수 있었을까? 원인은 '아저씨의 도전, 그리고 변화'에 있었다. 주지하다시피 <남자의 자격> 멤버 7명의 평균 연령은 40.6세로 그 어떤 예능 프로보다 연령대가 높다. 멤버들 모두 30대 이상이며, 40대는 물론 50대 멤버도 있다. 막내 윤형빈과 이정진을 제외하면 모두 '아저씨' 소리가 익숙한 나이인 이들이 회를 거듭할수록 점점 변해가는 모습이 시청자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아저씨로 대변되는 멤버들은 최초 의욕 부족에 의지박약인 상태에서 출발했다. 해병대에 간 이경규는 대대장의 나이를 물으며 나이가 벼슬인 우리 사회의 통념을 이용하려 했고, 간약을 복용하고 있는 관절염 환자 김태원과 한 여름을 제외하면 사시사철 내복이 필수인 류머티스 환자 이윤석은 허약한 신체가 천연 방패막이가 됐다. 강단 있는 김국진도 금연 미션에 있어서는 인내심의 한계를 절감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게 대한민국 아저씨의 스탠더드를 리얼하게 보여줌으로써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기 시작한 <남자의 자격>은 소소한 일상 속의 작은 일에서부터 도전을 시작했다. 육아체험 편에서는 하루 동안 아이를 돌보면서 그동안 아내의 몫으로 맡겨뒀던 육아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깨달았고, '아내가 사라졌다' 편에서는 여성들의 전유물로만 여겼던 집안일을 스스로 해냄으로써 멤버들은 새삼 그들의 빈자리를 크게 느끼게 됐다.

사실 육아체험이나 가사체험은 다른 예능에서도 숱하게 다뤄온 에피소드였다. 아이가 우는 모습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모습이나 집안일에 서툴러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을 통해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은 익숙한 그림이었다. 그러나 그 체험을 아이돌이 아닌, 아내가 있고 아이가 있을 법한 '아저씨' 또래의 연예인들이 함으로써 <남자의 자격>의 육아체험과 가사체험은 그 어떤 예능도 갖지 못했던 리얼리티를 갖게 된다.

아르바이트 편과 대학 새내기 편, 신입사원 편은 시청자로 하여금 향수에 젖어들게 하며 세대를 아우르는 공감을 형성했다. 이런 에피소드가 전 연령대의 공감을 산 것은 이경규와 김국진, 김태원 덕분이었다. 다른 리얼 버라이어티에서는 보기 힘든 40대 이상의 노장 예능인들이 말하는 젊은 시절의 추억은, 비록 큰 웃음이 터지게 만들지는 못했지만 묘한 감흥에 젖어들게 했다.

아저씨의 도전과 변화 그리고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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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할매 김태원의 지리산 등반은 그 자체로 뭉클한 감동을 선사했다. ⓒ KBS 화면캡쳐


하숙보다는 원룸이 익숙한 요즘 세대에게 이경규의 대학시절 하숙경험담은 신기한 일이었다. 심야방송이나 24시간 케이블방송이 없던 그 시절 라디오가 깊은 밤 유일한 벗이었노라 말하는 그 모습에 나이든 세대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가에 잔잔한 웃음을 매달았으며, '대학교 배지를 가슴에 달고 다녔는가'를 주제로 멤버들 사이에서도 세대가 갈리는 모습과 그런 세대차이로 인한 사소한 언쟁은 유쾌한 웃음을 선사했다.

이렇듯 사소한 일상 속의 에피소드를 통해 리얼리티의 기반을 구축한 <남자의 자격>은 점차 그 도전의 범위와 영역을 확대시켜 나갔다. 이색 스포츠에 도전하기도 하고, 전투기 조종사의 꿈을 펼치기도 했다. 그리고 하프코스 마라톤에 도전한 이들…. 마라톤에 도전한 멤버들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모습이었다. 웃음기를 쏙 뺀, 웃기고 싶어도 웃기기 어려운 상황에서 멤버들은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코치가 정해준 코스 길이는 모두 제각각이었으나 그들은 모두 하프코스를 목표로 달렸다. 상대적으로 젊고 체력이 좋은 멤버들에게도 버거운 하프코스를 이경규나 김태원, 이윤석이 달리는 것은 누가 봐도 무리였다. 그러나 이경규와 이윤석은 끝까지 달려냈다. 보다 못한 제작진이 나서서 뜯어말렸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제일 먼저 그만뒀을 법한 그들이 이를 악물고 달려내는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감동이었다.

"나는 살면서 지금까지 끝까지 해낸 게 없다. 포기한 게 너무 많아"라며 지팡이의 힘을 빌려 코스를 완주하는 이윤석의 모습. 구토가 밀려오고 온몸이 아파 제작진이 먼저 포기할 것을 종용했음에도 끝까지 달린 맏형 이경규. 그들을 보며 끝내 눈물을 보이고 만 김성민의 모습은 이들의 도전이 성공과 실패라는 결과를 떠나 그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보여줬다.

21세기 예능이 시청자를 감동시키려면

그리고 지난 2주에 걸쳐 방송되었던 지리산 종주 편은 김태원을 위한 방송이었다. 마라톤 도전기에서 지병으로 인해 얼마 달리지 못하고 그만둬야 했던 그는 "딸이 방송을 보고 내게 실망했다더라"고 말하며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 묵묵히 산을 올랐다. 자기 집 앞동산에도 한 번 오르지 않았던 그에게 지리산 등반은 그 자체로 고통과 고난의 도전이었다.

그러나 김태원은 해냈다. 자신의 무거운 짐을 다른 멤버들이 나눠지고, 뒤처지는 자신을 김성민은 뒤에서 밀어주고 이경규는 앞에서 끌어주며, 그렇게 동료들의 힘이 자신의 의지에 더해져 결국 목표했던 노고단에 오를 수 있었다. 목표지점에 도착한 뒤 "이제는 딸에게 면목이 설 것 같다"며 담담히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남자의 자격>이 왜 지리산 등반을 선택했는지 알 수 있었다.

<남자의 자격>은 그들의 도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려 하지 않는다. 어떤 공익이나 감동, 눈물이 목적도 아니다. 그러나 이들의 도전은 이경규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 자체로 '예능이 아닌 다큐멘터리' 수준이고, 그들이 그 도전에 충실할 때, <남자의 자격>은 그 어떤 예능보다 시청자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21세기 예능이 시청자를 감동시키는 방법을 알고 싶다면? <남자의 자격>을 볼 것을 추천한다.
#남자의자격 #이경규 #김국진 #김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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