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 옛길을 만나다
무등산을 찾아간다. 산자락을 구불구불 2차선 도로가 달려간다. 밤새 내린 눈이 바람에 흩날린다. 마치 봄에 꽃비가 내리는 것 같다. "벚꽃 같다." 한겨울 풍경 속에서 화려한 봄날을 느끼다니….
무등산 원효사 입구 주차장을 다 가지 못하고 차들은 멈춰 섰다. 차량정리를 하는 공원관리 아저씨는 주차장이 좁아 차 댈 곳이 없단다. 차를 돌려 한참을 내려서서 길가에 주차를 하고 산행을 준비한다.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겠다."
포장도로 위, 산 속으로 산행객들이 걸어간다. "우리도 저리 올라가 걸어볼까?" 숲속으로는 길이 있고, 그 길에서 '무등산옛길'이라는 안내판을 만난다. 산수동에서 원효사로 이어지는 1구간 끝자락이다. 조금 더 가니 관음암이 나오고, 원효사 일주문이 나온다.
눈이 산마루에 쌓인 무등산. 처음 계획은 원효사에서 장불재까지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가려 했는데, 무등산옛길 표지판을 보고서는 마음이 바뀌었다. 새로 연 옛길을 걷고 싶다.
서석대 가는 가장 짧은 길. 그 길은 일방통행
무등산 옛길은 현재까지 2구간 11.87km가 개통되었다. 1구간은 산수동에서 충장사를 거쳐 원효사까지 7.75km, 2구간은 원효사에서 제철유적지를 거쳐 무등산 산행 정상인 서석대까지 4.12km다. 특히, 옛길 2구간은 생태적으로 매우 우수한 자연의 보고(寶庫)일 뿐만 아니라 약 500년 전 선조들의 자취가 서린 역사적인 길로 작년 10월 10일 개통되었다.
무등산 옛길에는 40개의 안내기둥이 300m 간격으로 서있다. 옛길 입구를 지키고 있는 관리인 말로는 서석대로 올라가는 가장 짧은 길이란다. 원효사에서 군사도로로 가면 6.5㎞정도, 증심사에서 장불재 거쳐서는 7㎞, 무등산옛길 2구간을 따라가면 4.12㎞다.
옛길을 걷는 세 가지 주의사항도 본다. '올라가는 등산로만 이용', '쇠지팡이(스틱) 사용 자제', '조용한 가운데 한사람씩 이용'이다. 그럼 일방통행? 혹시 잘못 들어선 사람들을 위해 나가는 곳까지 만들어 놓았다.
오감으로 느끼는 무아지경의 길
"경사가 급하지 않을까?" 전혀 급하지 않다. 산길은 부드럽게 구불거린다. 산책을 나온 기분으로 걸어간다. 500년 전 마치 조선시대 선비가 걸어가는 기분으로, 나무꾼이 나무를 하려고 산길로 들어서는 기분으로…. 산길 가로 산죽이 작은 배 같은 댓잎위에 하얀 눈을 소복이 쌓아놓았다.
소나무 사이로 난 길은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가느다란 나무와 산죽 사이로 난 길은 여유를 가지며 걷는다. 숲길을 걷다보니 '무아지경의 길'이라는 표지판을 만난다. 표지판에는 '이 길은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만 있어 마음으로 걷는 길입니다. 숨소리 죽여 가며 조용한 가운데 오감으로 느껴보십시오'라고 쓰여 있다. 잠시 서서 오감으로 산을 느껴본다. 바람소리가 싸락싸락 계곡으로 달려간다.
숲길은 포근하다. 산길은 부드럽게 돌아간다. 임진왜란 때 김덕령 장군이 무기를 만들었다는 주검동 제철 유적지를 지난다. 조금 더 올라서니 물통거리. 옛날부터 나무꾼들이 땔감이나 숯을 구워 나르던 산중길로 이용되어 왔으나, 1980년대에는 군부대가 보급품을 나르던 길로 사용되다, 80년대 이후에는 사용되지 않던 길이란다. 그 길이 '무등산옛길'로 다시 태어났다.
무등산에서 무등산막걸리를 먹다
산길은 점점 하얗게 변해간다. 치마바위는 서석대를 1.8㎞ 남겨두고 있다. "어! 이게 무슨 소리야?" 조용한 계곡을 뒤흔드는 소리. 산길을 상당히 올라왔는데 계곡은 큰 물소리를 내면서 흐른다. 작은 폭포들이 모여 커다란 소리를 내고 있다. "한 여름 시원한 물소리보다 더 크게 느껴지네."
잠시 쉬었다 간다. 힘들다. 점심시간이 지난지라 허기가 진다. 주차장에서 간식거리 사러 갔다가 '무등산 막걸리'를 보고 한 병 샀다. 무등산에 올라서 무등산 막걸리를 먹는 기분. 너무나 좋다. 시원하다.
산길은 하얀 세상으로 변했다. 산길에 동무하던 푸른 산죽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건 하얀 눈과 앙상한 가지뿐. 나뭇가지에 눈이 붙어있는 모습이 애처롭다. 한쪽 방향으로 하얀 눈이 붙었다. 속도감이 느껴진다. 눈은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표정이다.
눈 덮인 산정은 산호초가 가득한 바다 속
머리 위로 터널을 이루던 나무들이 키가 작아지더니 하늘이 보인다. 사슴뿔 같은 잔가지마다 눈이 붙었다. 뒤돌아보니 중봉으로 줄지어가는 산행객 무리도 보인다.
산길은 군부대를 향하는 도로를 횡단하더니 서석대까지 500m를 남겨둔다. 이제부터는 일방통행이 아니다. 내려오는 사람들과 올라가는 사람들로 뒤엉켰다. 바짝 얼어붙은 돌계단을 쉬엄쉬엄 올라간다. 하얀 눈꽃 터널을 걸어간다. 눈꽃 터널에서 고개를 내밀면 서석대가 보인다.
하얀 눈꽃은 마치 바다 속 산호초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모습처럼 보인다. 그 산호초가 살고 있는 큰 바위가 서석대다. 수정병풍이라 했던가? 시리도록 아름다운 풍경에 넋을 놓는다. "와!" 저절로 입이 벌어진다. 서석대전망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서 아름다운 모습을 눈(目)에 담으려고 한참을 올려다본다. 수정병풍 위로 반달이 하얗게 떴다.
날씨가 춥다. 정상이 바로 지척이다. 얼마 남지 않은 산호초 터널을 지나면 '무등산옛길 종점'이란 표지판을 만난다. 표지판 위로는 더 이상 바람을 막아주는 산은 없다. 눈꽃은 더욱 크고 탐스럽게 뭉쳤다. 서석대에 올라서서 광주 시내를 내려다본다. 춥다.
덧붙이는 글 | 원효사에서 서석대까지 4.12㎞를 3시간 가량, 내려오는 길은 군사도로를 따라 2시간 걸었습니다.
무등산옛길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무등산도립공원(http://mudeungsan.gjcity.net) 홈페이지를 참조하세요.
2010.01.26 11:07 | ⓒ 2010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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