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380)

― '무언의 시위', '무언의 압력', '무언의 칭찬' 다듬기

등록 2010.01.27 16:57수정 2010.01.27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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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무언의 시위

 

.. 승부를 거는 타격이든 빗맞은 것이든, 아무튼 이상철에게 무언의 시위를 하는 거야 ..  <산바치 카와/정선희 옮김-4번 타자 왕종훈 (36)>(서울문화사,1998) 54쪽

 

"시위(示威)를 하는 거야"는 "시위를 한단 말이야"나 "시위를 하겠어"나 "시위를 하는 셈이야"로 손봅니다. 또는, "이야기를 거는 셈이야"나 "할 말을 하는 셈이야"로 손볼 수 있습니다. "승부(勝負)를 거는 타격이든 빗맞은 것이든"은 "승부를 거는 타격이든 빗맞은 타격이든"이나 "내 모두를 걸고 휘두르든 빗맞았든"으로 손질해 줍니다.

 

 ┌ 무언(無言) : 말이 없음

 │   - 무언의 저항 / 무언의 압력 / 무언의 약속 / 그의 눈빛은 무언의 언어였다 /

 │     수행의 한 방법으로 무언을 택했다 / 상대편을 대개 무언으로 제압했다

 │

 ├ 무언의 시위를 하는 거야

 │→ 조용히 시위를 한단 말이야

 │→ 말없이 시위를 하겠어

 │→ 차근차근 시위를 하겠어

 │→ 시위를 한단 말이지

 └ …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말없이'는 실려 있습니다만, '말없다'는 실려 있지 않습니다. 말수가 적은 사람은 "말없는 사람"이라 적으면 좋을 텐데, '말없다'는 한 낱말로 삼고 있지 않아서, 이 나라 맞춤법대로 따르자면 "말 없는 사람"으로 적어야만 합니다. 그렇지만, '말없이' 꼴로 적을 때에는 "그 사람은 말없이 앉아 있다"처럼 적어야 하니,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이래저래 얄궂습니다. 말법이 없는 말법이요, 말법이 서지 않은 말법입니다.

 

보기글을 살펴봅니다. "말없이 시위를 하는 셈이야"처럼 풀어도 되고, "말없는 시위를 하는 셈이야"처럼 풀어도 됩니다만, '말없다'라는 낱말은 국어사전에 안 실려 있으니 '말 없는'으로 적어야 맞는 셈입니다.

 

 ┌ 무언의 저항 → 말없는 저항 / 말없이 맞섬 / 조용히 맞섬

 ├ 무언의 압력 → 말없는 압력 / 말없이 힘을 넣음

 ├ 무언의 약속 → 말없는 약속 / 말없이 다짐함 / 눈짓 다짐

 └ 무언의 언어였다 → 소리 없는 말이었다 / 들리지 않는 말이었다

 

좀더 생각해 봅니다. '말없다'뿐 아니라 '소리없다' 같은 낱말 또한 국어사전에 안 실립니다. 어쩌면 우리 나라에서만큼은 너무도 마땅한 이야기 같은데, '생각없다/사랑없다/마음없다/뜻없다' 같은 낱말은 한 낱말이 되지 못합니다. 한 낱말로 삼으며 쓰는 사람이 더러 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느낌을 살리거나 키우면서 새로운 말투를 빚거나 일구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우리 말 살리기라든지, 우리 글 빛내기라든지, 우리 말 북돋우기라든지, 우리 글 실찌우기 같은 일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한글이 세계에 빛나는 문화유산이라는 이야기는 끝없이 펼치지만, 그렇게 빛난다는 문화유산을 제대로 가꾸거나 돌보려는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보지 못합니다. 많이 배운 이들한테서도, 교육을 맡은 이들한테서도,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이들한테서도, 문화와 예술을 한다는 이들한테서도, 아무런 빛줄기를 찾아보지 못합니다. 어떤 땀방울이나 몸짓도 느낄 수 없습니다. 한국사람은 한국말이 이리 되건 저리 되건 아무런 말이 없습니다.

 

 

ㄴ. 무언의 압력을 가한다

 

.. 나옹은 항상 밥을 조금씩 남기는 버릇이 있다. 그러고는 새 밥을 줄 때까지 나를 쳐다보며 무언의 압력을 가한다 ..  <권윤주-to Cats>(바다출판사,2005) 138쪽

 

 '항상(恒常)'은 '늘'이나 '언제나'로 손질합니다. "압력(壓力)을 가(加)한다"는 "힘을 넣는다"나 "옆구리를 찌른다"로 손질하고요.

 

 ┌ 무언의 압력을 가한다

 │

 │→ 말없이 압력을 넣는다

 │→ 조용히 힘을 넣는다

 │→ 가만히 옆구리를 찌른다

 │→ 슬며시 밀고 당긴다

 └ …

 

이 자리에서는 '무언의'를 덜어낼 수 있습니다. "나를 쳐다보며 압력을 넣는다"로 적어도 넉넉합니다. 사이에 다른 말을 넣어서 뜻을 좀더 또렷이 한다거나 힘을 잔뜩 실어서 말하고 싶다면, '무언의'가 아닌 다른 말을 넣어야 알맞습니다. 이를테면, "나를 쳐다보며 아무 말 없이 힘을 넣는다"라든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힘을 넣는다"라든지, "나를 하염없이 쳐다보며 힘을 넣는다"라든지.

 

또는 "어서 밥을 달라는 눈빛이다"나 "빨리 밥을 내놓으라는 몸짓이다"처럼 적어 볼 수 있습니다.

 

 

ㄷ. 무언의 칭찬

 

.. 아버지나 어머니가 사진하는 것을 반대하지만 아버지는 사실은 내 행동을 인정하고 있구나, 무언의 칭찬을 하는 거구나, 나는 그렇게 받아들이면서 그날 그 바닷가에서 아버지가 주는 술잔을 받으며 하염없이 울었던 것 같다 ..  <최광호-사진으로 생활하기>(소동,2008) 138쪽

 

"사진하는 것을 반대(反對)하지만"은 "사진하는 일을 안 좋아하지만"이나 "사진하는 일을 달가이 여기지 않지만"이나 "사진하는 일을 못마땅해 하지만"으로 다듬고, '사실(事實)은'은 '알고 보면'이나 '아무래도'로 다듬습니다. "내 행동(行動)을 인정(認定)하고"는 "내 일을 받아들이고"나 "내가 하는 일을 받아들이고"로 손보고, "하는 거구나"는 "하고 있구나"로 손봅니다. "울었던 것 같다"는 "울었던 듯하다"로 손질해 줍니다.

 

 ┌ 무언의 칭찬을 하는 거구나

 │

 │→ 말없이 칭찬을 하고 있구나

 │→ 넌지시 칭찬을 하고 있구나

 │→ 조용히 칭찬을 하고 있구나

 │→ 살며시 칭찬을 하고 있구나

 └ …

 

딱히 말을 하지 않으면서 믿어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온갖 말을 늘어놓으면서 조금도 안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끄러미 지켜보기만 하면서 믿어 주는 한편, 들여다본 적이 없는 가운데 믿을 마음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입에 발린 말로 사랑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고, 입으로 사랑을 외지 않으나 온몸으로 사랑을 보여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앞에서는 아무런 티를 내지 않으며 따순 손길을 내미는 사람이 있고, 앞에서 갖은 티를 태지만 조금도 따숩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겉모습이 있고, 겉치레가 있으며, 겉삶이 있다고 느낍니다. 겉얼굴이 있고, 겉마음이 있으며, 겉사랑이 있다고 봅니다. 겉발림이 있고, 겉말이 있으며, 겉사람이 있구나 싶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속모습과 속치레와 속삶, 속얼굴과 속마음과 속사랑, 속차림과 속말과 속사람이 있겠지요.

 

 ┌ 말은 없어도 칭찬을 하고 있구나

 ├ 말은 안 해도 칭찬을 하고 있구나

 ├ 에둘러 칭찬을 하고 있구나

 ├ 마음으로는 칭찬을 하고 있구나

 └ …

 

눈앞에 무언가 보여주어야만 믿음이나 사랑은 아닙니다. 눈앞에 나타나지 않으나 믿음이나 사랑이 됩니다. 많이 가지고 크게 떨치고 널리 펼쳐야만 믿음이나 사랑이 아닙니다. 적게 가지거나 빈손이거나 외롭다 하여도 믿음이나 사랑이 됩니다.

 

우리 눈길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믿음과 사랑이 달라집니다. 우리 눈길을 어디로 맞추느냐에 따라 믿음과 사랑이 거듭납니다. 우리 눈길이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믿음과 사랑이 새로워지거나 고꾸라집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2010.01.27 16:57ⓒ 2010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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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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