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꿈의 책'을 선물하는 9가지 방법 1

초등학교 때부터 플라톤, 칸트를 읽는 사회

등록 2010.01.28 14:07수정 2010.01.28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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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보는 부모와 아이의 동상이몽

책을 사러 서점에 가면 어린이책 코너에서 엄마와 함께 놀러 온 아이들을 쉽게 보게 된다. 아이들은 무척이나 익숙하게 읽고 싶은 책을 꺼내 읽는다. 예전에는 어린이책 코너에서 어린이들을 잘 볼 수 없었다. 부모님들이 책을 사서 아이들에게 선물해 주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책 한 권'을 선물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를 잘 살펴보고 어떤 주제에 흥미가 있는지, 혹시 책 자체를 따분해 하지 않는지 등을 따져보아야 아이와 어울리는 책 후보를 고를 수 있다. 하지만 보통 부모들은 책 한 권을 선물하기보다는 "통 크게" 전집 한 질을 선물하며 뿌듯해한다. 그러고 나서 친척이나 친구들에게 틈만 나면 자랑을 한다. 마치 아이에게 큰 선물을 한 것처럼 자랑하고, 아이가 크게 고마워할 것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정작 그 자랑스러운 명작 전집은 먼지랑 놀고 있다.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날 때가 많은데 어떤 신도시에서 많은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책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싫어한다'고 대답한 아이들이 적지 않았는데 집에 책이 많으냐는 질문에는 하나 같이 "가득 쌓여 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단 한 권도, 아니 한 페이지도 걷어보지 않았다는 아이들도 있었다. 아이와 부모 사이에 마치 하나의 긴 강이 흐르는 것처럼, 동상이몽도 이런 동상이몽이 없다. 이런 부모님들은 아이가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남의 눈치를 보며 값비싼 사교육을 시켜주는 것이 아이의 미래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고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세월을 희생하기 쉽다. 대학시험을 치를 때까지 제대로 된 대화를 하지 못하니 마음의 문은 닫혀 버린다. 아이는 부모의 영혼을 그대로 닮아 똑같은 부모가 된다. 차라리 책을 읽지 않고 맘껏 논다면 영혼이 훨씬 자유롭게 되겠지만, 우리들에게 '책'이란 '교육'과 직결되고, 사교육의 한 분야로 인식될 때가 많아서 번번이 책의 진면목이 퇴보해 버린다.

사교육으로부터 책을 구출시키기

책 자체가 아니라 책에 교육과 좋은 대학 등 과도한 목적성이 부여돼 있기 때문에, 목적을 다하면 죽을 때까지 책과 인연을 맺을 기회가 사라진다. 목적성이 부여된 최고의 책은 단연 토익, 토플책이다.


주변에 있는 어떤 도서관이든 들어가 보면 열람실은 모두 토익, 토플책이 점령했다. 도서관 역시 일상적인 문화공간으로서 자리매김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지만, "독서실"이라는 인상이 무척 강하다. 그것은 우리들이 "책"에 과도한 목적성을 부여하는 것처럼, "도서관"에도 역시 목적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책이 한 사람의 인간을 낳으려면 책을 읽는 사람에게 영감을 줄 수 있어야 하고, 영감을 줄 수 있으려면 사람보다 더 큰 뜻을 담고 있어야 한다. 목적성이 있는 책이란 기껏 해야 읽는 사람의 필요에 의해서 쓰이다 버려질 도구로 전락할 뿐이다. 시험이 끝나거나 학기가 끝나면 토익책, 전공책이 버려지듯이.


책은 먼저 깨달은 사람[先覺]이 뒤에 깨닫는 사람[後覺]에게 건네는 마음이므로 필연적으로 '교육'이라는 특징이 담겨져 있다. 교육과 책이 결혼해 낳은 아이가 바로 교과서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교육과 책이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 "교과서적이다"는 말만 봐도 부정적인 느낌을 주는 것은 이 때문이다. 교육과 책의 관계를 '연애'의 비유로 설명했지만, 둘 사이의 관계가 좋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손해를 본다. 교과서 공부하느라 아이들은 책 읽을 시간을 빼앗기고, 여유 있게 읽을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기가 워낙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아이들이 점점 책과 담을 쌓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대학입시교육을 중심으로 초등, 중등교육을 역설계하는 방식으로 맞춰지다 보니 '책'이 들어갈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권장도서가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한다. 책과 제대로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여전히 멀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는 대입 진학이라는 지상 목표 때문에, 대학 가서는 학점과 스펙에 대한 압박, 직장인이 되어서는 승진시험과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더 나이가 들어서는 처자식 먹여 살리기 바빠 책을 들지 못한다. 운이 나쁘면 죽을 때까지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게 얼마든지 가능하다.

실제로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08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성인 중 1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이 무려 10명 가운데 3명인 것으로 조사됐다. 책을 사교육으로부터 구출할 수 있는 방법은 우리가 책의 제대로 된 쓰임을 찾는 것이다. 특히 교육적인 쓰임을 잘 찾아내면 아이들이 학교 공부하느라 책과 담을 쌓을 일도 줄어들고 교육과 책이 지금보다는 더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책벌레 꼬마 시인을 만나다

어릴 적 읽었던 책은 인생을 빛나게 한다. 어린이는 몸과 마음 전체가 감수성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어린 마음의 감수성을 적셔 주면 평생 동안 향기가 난다. 어릴 적 읽었던 계몽사의 세계명작동화집. 거기서 보았던 솔로몬의 명판결 이야기는 잊히지 않는다. 아기의 신체를 잘라 나눠 가지라고 판결함으로써 진짜 엄마를 찾아주는 장면은 충격 그 자체다. 내용 전체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거대한 심연이 어린 마음속에 만들어지는 듯했다. 뭐든지 먹어치워도 허기를 느껴 결국 자신의 팔다리까지 먹어치운 노인, 목사를 바다에 빠뜨려 죽인 벌로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저주를 받은 선장 이야기는 20년도 넘은 이야기인데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내가 이 이야기를 기억하는 까닭은 책이 가져다주는 뇌의학적인 강점 때문이다. 뇌의학자들이 제시한 뇌 구조에 맞춘 '3단계 뇌 단련법'을 따르면 건망증을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첫째는 크게 파악할 것, 둘째는 순서를 밟아가면서 기억할 것, 셋째는 몇 번 실패하더라도 떠올리도록 노력할 것이다. 어떤 지식을 암기할 때 이러한 방법을 쓰면 오래도록 기억을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인위적인 암기는 한계가 있다. 책은 깊이 생각해보고 다듬은 마음의 정수이므로 의미가 크게 파악되면서도 단계와 단계가 세밀하게 연결돼 있다. 목차만 봐도 논리적인 연결고리가 잡혀 있다. 책을 읽으면 기본적으로 이 논리구조를 익히게 된다. 책을 즐겨 읽는 어린이들이 학습능력이 뛰어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어릴 적 독서습관이 얼마나 중요한지 온몸으로 보여준 아이를 만났다. 나는 그 아이에게 '꼬마시인'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지난 여름 판교 신도시의 주민자치도서관과 함께 <아동문학 작가와의 대화>를 공동주최할 때 이성자 시인(아동작가)이 아이들에게 동시를 쓰게 했는데, 한 아이의 시가 눈에 띄었다.

비 오는 날 길가에 지렁이 한 마리가 나타났는데
날이 그쳐도 돌아가지 않고 애를 태워
간밤에 집나간 동생을 찾으러 왔나 봐

맨 앞에 앉아서 작가의 물음에 맨 먼저 대답하고, 동시를 제일 먼저 써서 제출하는 부지런한 어린이였는데 책벌레였다. 이성자 시인은 책을 많이 읽은 어린이는 '발견'하는 힘이 길러진다고 말했다. 발견은 인생을 긍정적으로 보도록 하고 세상에 대해서 애착을 갖게 만든다고 덧붙였다. 예컨대 책을 읽지 않는 아이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 "에이, 씨!"라고 하면서 한 번 더 걷어차지만, 책을 읽은 아이는 "돌부리야 많이 심심한 모양이구나, 그치만 나 많이 바뻐"라고 말할 줄 아는 여유를 갖는다고 한다. 그렇게 발견과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자란 어린이는 세상을 긍정적인 것으로 만들어준다.

수천년 세계의 현자들이 어린이를 동경한 까닭

책읽기를 즐기고 생활화한 어린이는 죽을 때까지 단 한번도 '어린이의 마음'을 잃지 않는다. 세월이 가면 누구나 어른이 되고 노인이 되지만, 마음속에서 어린이를 없애고 어른이 되는 것과 어린이를 안고 어른이 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사실 어린이는 영혼의 대변자다. "어른이니까 이제 철 들어야 해"라는 말은 영혼을 함부로 하겠다는 무서운 말일 따름이다.

어린이의 마음을 잃지 않은 채 어른이 되는 것은 동서양을 통틀어 수천년을 거쳐간 현자들의 공통된 관심사다. 그들이 어린이를 얼마나 귀하게 여겼는지 그 말을 보면 알 수 있다.

천재성이란 스스로를 표현하기 위해 이제 튼튼한 기관과 제멋대로 축적된 재료들을 모두 정리해 주는 분석적 정신을 갖춘 마음껏 되찾은 어린 시절에 지나지 않는다. (보들레르, 꿈꾸는 알바트로스)

"대인이란 그 어릴 적 마음을 잃지 않은 사람이다."(맹자)

만약 너희가 어린이처럼 되지 않는다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누구든지 자신을 낮추어 이 어린이처럼 되는 사람은 하늘나라에서 가장 위대하다. (예수 그리스도)

중후한 덕을 품은 이는 갓난아이와 같으니, 독충이 쏘지 않고, 맹수도 덮치지 않으며 독수리도 할퀴지 않는다. (노자, 도덕경)

"그 천진난만함과 완전한 것에 이를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가지고 아이들이 끊임없이 태어나지 않는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무서운 것으로 되어 버릴까!" (故이오덕 선생)

영혼을 다치지 않고 어른이 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책을 방패로 삼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현실의 벽이 높아가고 부당한 사회적 압력 앞에 사람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 균형을 잡는 것은 세계에 대한 이해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다. 이 힘은 지혜의 빛을 따라가지 않고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다. 책은 수천 년을 살다 간 사람들이 세상으로부터 영혼을 지켜온 비법을 담은 보물이다. 시대가 변하면 조금씩 수리해야 하겠지만, 수천 년 동안 강력한 광채를 뿜으면서 영감을 주는 태양과 같은 책들이 많이 있다. 그것을 우리는 고전이라고 부른다.

초등학교 때부터 플라톤, 칸트를 읽는 사회

몇 년간 초등학생에게 논술을 가르칠 기회가 있었다. 강의 계획을 세우기 위해 참고자료를 찾던 중 인터넷에서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어느 학원의 초등학교 논술 커리큘럼이었는데, 서울대 추천 100권이나 플라톤, 칸트의 이름이 들어가 있었다. 플라톤의 대화편을 몇 번 들여다본 적이 있었지만, 어른들도 반복해서 읽지 않으면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내용을 초등학생에게 가르치겠다는 발상이 놀라웠다. 실제로 시중에서는 <서울대 추천 100권>을 만화로 풀어 초등학생과 부모들에게 인기를 얻기도 했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플라톤도 아니다.

초등학생에게 플라톤을 읽히는 세태는 몇 가지를 알려 준다. 먼저 선행학습의 측면이 강하다. 고등학교 때 배워야 하는 내용이 점차 중학교, 초등학교로 내려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교육체계는 대학입학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초등, 중등과정 자체의 의미가 살아나지 않는다. "좋은 대학 가기 위해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준비해야 한다"는 학원가의 상술이 부모들로부터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선행학습에 비싼 돈을 들이는 이유는 다른 사람보다 앞서고 싶기 때문이다. 왜 앞서야 하고 왜 겨뤄야 하는지는 별로 문제되지 않는다.

이 현상이 보여주는 가장 큰 문제점은 우리가 아직도 아이들에게 무엇을 읽혀야 하는지 모르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비싼 전집을 사다주는 부모님, 비싼 사교육비에 많은 것을 희생하는 부모님, 동화,동시도 모르는 아이에게 플라톤을 배우게 하는 부모님을 보고 있으면 부모님과 아이들의 거리감이 절로 느껴진다. 사실 핵심적인 문제는 아이들이 책을 읽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아이들 옆에 없다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어린이도서관 개관 30주년 기념호 <어린이와 독서>에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어린이도서관 개관 30주년 기념호 <어린이와 독서>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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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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