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릿재를 넘어 해방구 율어 가는 길

[바이크올레꾼 길 따라 남도마을여행 12] 연재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등록 2010.01.28 17:31수정 2010.01.28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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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율어 해방구로 가는 길 '주릿재'를 넘기 위해 가고 있다 ⓒ 서정일

필자가 율어 해방구로 가는 길 '주릿재'를 넘기 위해 가고 있다 ⓒ 서정일

순천시에서 낙안면이 외지며 분지 듯 보성군에서 율어면은 외지로 분류되며 지형도 낙안면과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다. 두 곳 모두 신(神)이 만들어 놓은 자연산성의 모습으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있고 그 안쪽은 평야다.

 

낙안면 산성과 율어면 산성의 접경지인 주릿재는 낙안면에서는 서문이며 율어면에서는 동문이라 할 수 있다. 현재 그곳엔 조정래 작가의 <소설 태백산맥> 문학비가 서 있다. 여순사건과 6.25가 있던 50년 전쯤, 그 누군가는 이 문을 통해서 해방을 찾고자 율어로 넘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두 곳이 모두 인간 최고의 희망을 지니고 있다. 한 곳은 낙안, 즉 영어로 파라다이스며 한 곳은 해방구, 즉 인디펜던스다. 주릿재를 넘어가면 해방이며 주릿재를 넘어오면 천국인 것이다. 그런데 왜 굳이 넘어가고 넘어오고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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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릿재 정상에서 옛 낙안군 땅을 내려다 보면서 감회가 새로웠다. 지난 2년여 기간 동안 폐군 된 낙안군을 연재했었기 때문이다 ⓒ 서정일

주릿재 정상에서 옛 낙안군 땅을 내려다 보면서 감회가 새로웠다. 지난 2년여 기간 동안 폐군 된 낙안군을 연재했었기 때문이다 ⓒ 서정일

필자는 조선시대 전통도시며 낙안군의 치소인 낙안읍성을 중심으로 옛 낙안군 지역과 인근지역의 길을 따라 달포 이상을 바이크와 함께 돌아다녔다. 송광사, 선암사, 보성 녹차밭, 순천만, 상사호 길 등 낙안읍성에서 출발하는 길이란 길은 모두 달려봤다.

 

그리고 오늘 길이란 주제의 마지막 편으로 율어 해방구 가는 길, 주릿재를 넘었다. 길은 험하고 고불고불했다. 산은 깊고 넓었다. 이 길이 소설 태백산맥에서 염상진이 넘던 길이지만 가상의 인물이 아닌 실질적으로 빨치산들이 해방을 찾아 넘던 길이다.

 

주릿재를 넘기 위해서는 859번 도로를 타야 한다. 그 길은 벌교에서 외서로 넘어가는 15번 도로 중간쯤인 추동삼거리에서 시작된다. 아직도 땅을 파면 이름 모를 유골들이 쏟아져 나온다는 골짜기를 지나고 스산한 산머리도 함께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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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릿재 정상에는 소설 태백산맥문학비가 서 있다 ⓒ 서정일

주릿재 정상에는 소설 태백산맥문학비가 서 있다 ⓒ 서정일

드디어 고갯길 정상에 올라서면 그곳엔 조정래 대하소설 태백산맥문학비를 만나게 된다. 매섭던 지난 2008년 겨울 조용히 세워졌던 표지판에는 소설의 한 대목을 인용했는데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리면 땅속의 실뿌리까지 흔들린다고 한다. 한반도의 남쪽끝 벌교를 무대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벌교 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민족 전체의 비극인 분단과 그 갈등의 축소판이며 상징이다'라고 기록해 놨다.

 

필자는 감회가 새로웠다. 지난 2년여간 '한 형제가 외세에 의해 남이 되고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져버린 낙안군'에 관해 연재를 해 왔었기 때문이다. 그 <낙안군>에 대해 외치고 싶었던 말이 표지판은 대신해 주고 있었다.

 

'폐군 된 낙안군 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민족 전체의 비극인 분단과 그 갈등의 축소판이며 상징이다'

 

그리고 율어쪽을 봤다. 올라올 때 봤던 낙안면의 모습과 어쩌면 그렇게도 흡사하게 주위는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있고 드넓은 평야는 황토색 빛을 띠고 있었다. 그곳은 다를 것이다는 생각을 무색케하는 '천국'도 '해방구'도 모두가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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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어 땅에서 만난 25년여 전에 폐교 된 칠음교라는 다리 ⓒ 서정일

율어 땅에서 만난 25년여 전에 폐교 된 칠음교라는 다리 ⓒ 서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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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음교라는 이름은 같지만 한쪽은 이렇게 낡고 녹슬어 가고 있다 ⓒ 서정일

칠음교라는 이름은 같지만 한쪽은 이렇게 낡고 녹슬어 가고 있다 ⓒ 서정일

그렇게 주릿재를 넘어선 바이크는 직선으로 평야를 달리다가, 지금은 사용하지 않아 난간이 벌겋게 녹슨 '칠음교'라는 다리 앞에서 멈췄다. 그 옆에는 80년대 중반에 세워놓은 또 하나의 칠음교가 있었다.

 

같은 이름의 칠음교, 새로 난 교량이 아무리 튼튼하고 빠르게 지날 수 있다고 해도 필자의 바이크는 낡아서 곧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옛 칠음교위에 고집스럽게 걸터앉았다. 이름이 같다는 것은 한 핏줄이다. 어느 것이 좋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어떤 이는 이렇게 녹슨 난간에 걸터앉아있지 않은가?

 

언제 만들어졌고 왜 이름이 칠음교며 가운데 교각은 또 왜 그리 높은가라는 물음은 다음으로 넘기기로 했다. 그저 길 따라 달렸던 달포동안은 그런 의문에 대해 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닌 도대체 이 지역에는 어떤 길들이 있는가 하는 다소 표면적인 것들에만 관심을 기울일 생각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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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려놓은 집, 깃발로라는 이상한 이름을 가진 주소 모두 궁금했지만 다음을 기약했다 ⓒ 서정일

그림을 그려놓은 집, 깃발로라는 이상한 이름을 가진 주소 모두 궁금했지만 다음을 기약했다 ⓒ 서정일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율어면 소재지를 돌아 나오면서 기정마을에 들렀다. 유신리 마애불상을 한 번 보고가자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목적은 불상을 보기 위해서였지만 '깃발로'라는 신기한 주소판을 보고는 또 질문신이 강림하셔서 곧장 노인정으로 향했다.

 

"여기 기정마을인데 왜 '깃발로' 라고 하는가요?" "어? 뭐라고? 여기 기정마을이여" 가는귀가 먹으셨는지 기정마을만 되풀이 하시기에 더 큰 소리로 물어보니 다시 말을 바꿔 여기가 깃발마을이라고 한다. 왜냐는 질문을 다시 꺼내려는 찰나 그 할아버지는 "나도 잘 모르는데 그냥 깃발마을이라고 해"라고 끝을 맺었다.

 

'그래, 필자의 연재 <바이크올레꾼, 길 따라 남도마을 여행>에서 지금은 그냥 길 따라다. 마을여행은 그 다음이니까 다음에 와서 다시 물어보자'고 꾹 참으면서 인사를 드리고 물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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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여일간 바이크로 길 따라 다녔기에 이제는 마을속으로 들어 갈 예정이다 ⓒ 서정일

지난 20여일간 바이크로 길 따라 다녔기에 이제는 마을속으로 들어 갈 예정이다 ⓒ 서정일

그동안 20여일 가깝게 필자는 평소(?)와는 다르게 취재과정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에 관해 답을 찾기 위한 질문을 최소화했다. 그저 개들이 길을 나서면서 소변으로 영역을 표시하듯 '이번 연재는 여기까지가 영역이다'는 그 영역표시를 바이크로 하고 다녔던 것 같다. 이제 '길 따라'가 마무리 된 이상 본격적으로 '마을여행'을 해 볼 생각이다.

 

<바이크올레꾼 길 따라 남도마을여행>은 일단 바이크가 갈 수 있는 한계 내에서의 남도지역 마을에 대한 얘기다. 하지만 좀 국한 시켜 정리해 보면, 첫 번째는 송광사에서 출발해 고인돌공원, 서재필기념관, 보성차밭, 율어해방구로 이어지는 마을에서 발견하게 되는 이야기

 

두 번째는 외서면구석기유적지에서 출발해 낙안읍성 벌교 고흥 동강, 대서까지의 마을이야기, 세 번째는 선암사를 출발해 낙안읍성, 동화사, 별량, 화포, 순천만의 마을에서 찾아보는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사호를 돌아 승주읍과 주암면에서 만나는 얘기들을 풀어낼 것이다. 어찌 보면 지금부터가 필자의 연재인지도 모를 일이다.

덧붙이는 글 | 남도TV에도 실렸습니다

2010.01.28 17:31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남도TV에도 실렸습니다
#바이크올레꾼 #율어 #주릿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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