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은 기다림의 여유에서 나오는 법

[맛객의 맛] 홍합은 지금부터 제철

등록 2010.01.30 16:33수정 2010.01.30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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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여름에도 패류독소가 없을 정도로 청정성을 자랑하는 여수 가막만에서는 홍합이 여물고 있다. 맛도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여름에도 패류독소가 없을 정도로 청정성을 자랑하는 여수 가막만에서는 홍합이 여물고 있다. 맛도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 맛객


미식의 조건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재료, 요리사의 수준, 먹는 자세, 경험, 분위기, 건강, 식기, 오픈마인드 등. 하지만 이 모든 요소도 여유가 없다면 진정한 미식을 행한다고 볼 수는 없을 겁니다. 음식의 맛이란 본디 음미에서 나오죠. 그러자면 시간적 여유는 필수입니다. 음식을 주문하자마자 빨리 달라고 닥달하는 사람은 미식과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헌데 이 시간적 여유가 꼭 식탁에서만의 얘기는 아닙니다. 음식의 기본이 되는 재료는 자연에서 얻습니다. 자연은 우리가 재촉한다고 해서 음식점처럼 서두르지 않습니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움직일 뿐이죠. 헌데 사람들은 너무 서둘러서 자연의 맛을 찾고자 합니다. 제대로 맛이 들기도 전에 겨울별미의 환상에 젖어 찾아 먹지만 그것 또한 미식과 거리가 멀기만 합니다. 그분들께는 죄송한 얘기지만 대게, 굴, 등은 봄이 기웃거릴 때 더욱 맛있어집니다. 그때 가장 맛있는 건 또 있습니다. 그게 뭘까요~

a  홍합탕이 무척 달다. 서두르지 않으면 자연은 우리들의 미각을 책임지는데 인색하지 않다

홍합탕이 무척 달다. 서두르지 않으면 자연은 우리들의 미각을 책임지는데 인색하지 않다 ⓒ 맛객


찬바람이 불면 선술집의 국물로서 홍합탕이 있습니다. 한국사람이 홍합탕을 가장 많이 먹는 시기는 아마도 12월이 아닌가 싶네요. 음주 기회도 많거니와 홍합들이 나오기 시작하는 무렵이니 신선하게 느껴질 테니까요. 그런데 그 시기의 홍합을 잘 살펴보셨나요? 대부분의 홍합살이 흰색을 띠고 있을 겁니다. 이상하죠? 홍합은 살이 붉어 홍합인데 말이죠. 여기에는 한 가지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홍합은 어릴 땐 숫놈이었다가 커갈수록 암놈으로 변신을 시도합니다. 그런데 이게 홍합의 맛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더란 말이죠.

a  홍합 산지에서 장작난로위에 구워먹는 홍합맛은 굴구이와 견줘도 향이 부족한 것 빼면 부족함이 없다. 오히려 단맛은 굴보다 낮다

홍합 산지에서 장작난로위에 구워먹는 홍합맛은 굴구이와 견줘도 향이 부족한 것 빼면 부족함이 없다. 오히려 단맛은 굴보다 낮다 ⓒ 맛객


홍합은 암놈이 숫놈보다 세 배는 맛있습니다. 단지 이렇게만 말하고 끝난다면 실감이 안 들겠죠. 맛이 어떻게 다른지 정도는 설명을 해야 맛객답지 않겠습니까. 해서 직접 실험을 하였습니다. 홍합회를 준비한 것이죠.

a  홍합회

홍합회 ⓒ 맛객


홍합도 회로 먹어? 놀라셨나요? 홍합은 생식도 가능합니다. 단 절대 신선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시장에서 파는 홍합을 가져다가 날로 먹지는 마세요. 쌔(혀)가 아리 아리 할 겁니다. 물론 바다에서 갓 건진 놈도 아린 느낌이 있지만 능이버섯보다도 훨씬 약합니다. 어른이라면 단맛 뒤에 감도는 약간의 씁쓰름함 정도는 즐길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a  봄이 가까워올수록 홍합은 붉게 물든다. 맛도 흰 홍합에 비할 바 아니다

봄이 가까워올수록 홍합은 붉게 물든다. 맛도 흰 홍합에 비할 바 아니다 ⓒ 맛객


12월의 홍합에 비해 더 자란 탓에 붉은기가 많이 돌고 있네요. 앞서 설명 드린 대로 숫놈은 흰색, 암놈은 홍색, 그렇다면 어중간한 놈은? 자, 맛을 보겠습니다.


a  홍합은 붉을수록 맛도 좋다

홍합은 붉을수록 맛도 좋다 ⓒ 맛객


숫놈(흰색)은 말 그래도 담백한 수준입니다. 하지만 암놈(홍색)은 구수하고 단맛까지 감돕니다. 농액(濃液)적인 질감은 맛과 영향을 품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아! 처음부터 암놈이 더 맛있다는 것을 알고 먹은 건 아닙니다. 단지 홍합회를 먹고자 했을 뿐인데 먹으면서 암놈의 맛이 월등하다는 것을 깨달았던 겁니다.

이래서 미식이란 경험을 좇아올 순 없습니다. 때문에 제가 늘 말하는 천재꼬마요리사는 나올지언정 천재꼬마 미식가는 나올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경험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죠. 미식가는 시간과 돈을 투자해가면서 다양한 맛의 세계를 찾아가지만,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단지 모니터를 통해서 경험을 공유할 수 있으니 참 좋은 세상이죠. 실은 제 블로그 자주 들어오시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겝니다.


미식은 여유다! 라는 저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나요? 홍합은 3월부터 산란기에 들어갑니다. 뭐든 산란 직전의 것이 가장 맛있는 법이죠. 홍합은 지금부터 달포 동안 절정의 맛으로 돌입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다음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홍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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