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元祖 반미 지식인' 하워드 진의 '충고'를 들어야 할 사람은 누구?

<조선>, 이명박 정권의 반민주성 꾸짖을 땐 들은 척도 안 해...

등록 2010.02.06 13:46수정 2010.02.06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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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3일자 조선일보 '데스크칼럼'에 재밌는 글이 실렸다. 제(題)하여 <元祖 '반미 지식인'의 충고>. 여기서 "元祖 '반미 지식인'"은 노옴 촘스키와 더불어 미국의 대표적인 좌파 지식인으로 평가받는 미국 역사학자 하워드 진을 가리키는 말이다.

'반미'란 말도 들어도 극심한 알러지 증상을 일으키는 조선일보에 '원조 반미 지식인' 딱지가 붙은 하워드 진의 이름이 등장한 것도 뜬금없는 풍경이려니와, 더구나 불순하기 짝이 없는 그 이름 뒤에 감히 "충고"란 단어를 달아서 "귀 기울여 들으라"는 식의 글을 내보냈으니 눈길이 가는 건 당연한 이치.

조선일보가 '반미 지식인' 하워드 진을 '충고'의 주인공으로 지면에 갑자기 소환한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29일 신문에는 미국 역사학자 하워드 진(Zinn·87)의 타계를 알리는 기사가 일제히 실렸다"는 첫문장에 첫번째 답이 나와 있다. 한 마디로 그가 최근 유명을 달리 했기 때문이다. 반미 좌파 지식인을 혐오하다 못해 증오하는 조선일보지만 그러나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그의 죽음을 마냥 외면하기도 어려웠을 터.

그러나 아무리 세계적 학자라도 변고 사실만으론 역부족이다. 그가 조선일보 '기피인물'이라면 더더욱. 적어도 칼럼란에까지 이름을 올리려면 조선일보가 활용한 만한 모종의 가치 내지는 쓰임새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게 무언가? 하워드 진의 2005년 문화일보 인터뷰 한 토막을 소개한 마지막 문단에 그 두번째이자 결정적 답이 나와 있다.

"한국 젊은이들에게 내 책이 반미주의 도구로 쓰이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렇다면 내 생각을 잘못 읽는 것이다. 나는 미국을 좀 더 살기 좋은 나라로 바꾸기 위해 싸우는 사람이지 미국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이 아니다." 
 
조선일보에게 필요한 것은 사실 이게 전부다. 조선일보에게 하워드 진은, 말하자면, 적의 손을 빌어 적을 치는 '이이제이'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의 양심을 일깨운 그의 삶, 그의 연구, 그의 투쟁 등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하워드 진의 입에서 조선일보 구미에 맞는 몇 마디 말이 나왔다는 것 뿐. 

하워드 진이 누군가? 한국 보수주의자들에게 그는, 한 마디로, '반미 바이러스 주범'이나 다름 없는 인물이다. 글을 쓴 김기철 문화부 차장대우도 밝혔듯이, 흑인과 인디언, 백인 노동자, 여성 등 소수자의 시각에서 미국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다루었을 뿐 아니라, 미국이 원주민들과 노동자들의 시체 위에 세워진 나라라는 걸 폭로해 자유와 민주의 나라라는 미국의 전통적인 이미지에 큰 생채기를 낸 진보적 역사학자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혔던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미국을 새롭게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해 준 것도 그이였다. 미국을 '절대선의 나라'로 떠받들며 미국의 아름다움으로 한국의 표준을 삼고자 했던 조선일보에게 이러한 움직임이 위험천만한 것으로 보였을 것은 불문가지. 더구나 이렇듯 붉으스레한 책이 한국의 독서시장을 지배하다시피 했으니 조선일보의 두려움이 오죽 했을까.


"대학 시절 진과 촘스키를 탐독했던 386세대들이 논술 학원 강사로 나가서 중·고등학생들에게 그 책들을 읽히는" 것을 상상만 해도 조선일보는 잠이 안 올 정도다. 학교 교사들이 "방학 때 읽어야 할 권장 도서로 이 책들을 빼놓지" 않는 것도 걱정거리다. 2008년 광우병 파동 때 학생들이 거리로 몰려나오게 된 일단의 책임이 "젊은 세대들의 이런 독서 편식과 이를 부추기거나 방조한 어른들에게도 있다"고 생각하는 조선일보로서는 당연한 반응이다.

하워드 진은, 말하자면, 이처럼 '반미'로 쏠리는 "한국 독자들의 지적 편식"을 막기 위해 조선일보가 꺼내든 회심의 카드였다. 미국의 '원조 반미'를 들어 한국의 '반미'를 때리는 절묘, 오묘, 현묘한 신의 한 수였던 셈. 조선일보가 "원조 '반미 지식인'" 뒤에 "충고"라는 살가운 단어까지 붙여가며 그의 말을 애드벌룬 띄운 것도 그래서다. 변뱡의 추종자들(?)을 조롱하고 야유하자면 '원조'의 권위가 필요했을 테니까. 

이쯤에서 드는 의문 하나. 조선일보 말마따나 하워드 진이 "미국의 어두운 이면을 파헤친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우리의 시야를 넓혀준 측면"이 있고 "미국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빛과 소금 같은 역할"을 한 사람이라면, 조선일보는 왜 살아 생전에 그토록 그를 경원하고 멀리 했을까? 미국을 좀 더 살기 좋은 나라로 바꾸기 위해 싸우는 사람이지 미국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내친 김에 한 가지 더, 하워드 진은 타계하기 직전, 노엄 촘스키 등과 함께 이명박 정권의 민주주의 후퇴를 강도높게 비판한 적이 있다. 지난 해 12월 세계 인권의 날에 14개국 173명의 세계 진보 지식인들이 발표한 국제성명이 그것이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이에 관한 소식을 지면은 물론이고 인터넷판에도 올리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지금이라도 이멍박 정권에 대한 하워드 진의 애타는 '충고'를 지면에 반영할 용의는 없는가?

2010.02.06 13:46 ⓒ 2010 OhmyNews
#하워드 진 #조선일보의 '반미' 알러지 #조선일보와 하워드 진 #세계 진보 지식인들의 국제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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