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궂은 한자말 덜기 (92) 생활

[우리 말에 마음쓰기 852] '이민 생활', '생활할 수 있다' 다듬기

등록 2010.02.06 13:47수정 2010.02.06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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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이민 생활에도

.. 이민 생활에도 고통은 당연히 있다 ..  <이승욱-웰빙으로 가는 이민>(호미,2005) 4쪽


'고통(苦痛)'은 '괴로움'으로 다듬고, '당연(當然)히'는 '마땅히'로 다듬습니다. '이민(移民)'은 그대로 둘 수 있으나, '나라를 떠나'로 손보아도 됩니다.

 ┌ 생활(生活)
 │  (1) 사람이나 동물이 일정한 환경에서 활동하며 살아감
 │   - 생활 방식이 다르다 / 야생 동물의 생활을 관찰하다
 │  (2) 생계나 살림을 꾸려 나감
 │   - 생활에 여유가 있다 / 생활이 몹시 어렵다
 │  (3) 조직체에서 그 구성원으로 활동함
 │   - 교원 생활 / 수사관 생활 하루 이틀 해 먹은 사람 아냐
 │  (4) 어떤 행위를 하며 살아감. 또는 그런 상태
 │   - 떠돌이 생활 / 취미 생활 / 봉사 생활
 │
 ├ 이민 생활에도
 │→ 이민 와서 살아도 / 이민 가서 살아도
 │→ 다른 나라에서 살 때에도
 │→ 나라를 떠나 살아도
 │→ 이민살이에도
 └ …

우리는 '살아갑'니다. 살아가는 우리들이니 '산다'고 말하면 넉넉합니다.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고 말하고, "들짐승이 어찌 사는지 살펴본다"고 말하면 그만입니다. "살림이 넉넉하다"고 말하며, "형편이 몹시 어렵다"라 하면 됩니다. "교원살이"를 이야기하고, "수사관 하루 이틀 해 먹은 사람"이라고 들려주면 됩니다. 떠돌면서 산다면 "떠돌이 삶"이요, 좋아서 하는 일이면 "취미로 하는 일"이거나 "좋아서 하는 일"입니다.

'-살이'라는 뒷가지를 붙여서 '타향살이-고향살이-더부살이-남의집살이-한동네살이'처럼 말할 수 있습니다. 이민을 가서 산다면 '이민살이'입니다. 또는 '나라밖살이'가 되려나요.

있는 그대로 '삶'이요, 꾸밈없이 '살다'이며, 수수하게 '살이'입니다. 우리 삶을 들여다보면서 삶을 말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모양새대로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들 말살이와 글살이를 곰곰이 돌아보며 어깨동무합니다.


 ┌ 생활이 몹시 어렵다 →살림이 몹시 어렵다
 ├ 생활 방식이 다르다 → 다르게 살아간다
 ├ 야생 동물의 생활을 관찰하다 → 들짐승 삶을 지켜보다
 ├ 생활에 여유가 있다 → 살림이 넉넉하다 / 삶이 느긋하다
 ├ 떠돌이 생활 → 떠돌이 삶 / 떠도는 삶
 ├ 취미 생활 → 취미로 하는 일 / 좋아서 하는 일 / 좋아서 즐기기
 └ 봉사 생활 → 봉사로 하는 일 / 베풀며 살기

보기글을 통째로 손질해 봅니다. "다른 나라로 가서 살아도 괴로운 일이 있다."로. 아니면, "다른 나라로 떠났어도 괴로움이 있기 마련이다."로. 또는, "다른 나라에서 새살림을 꾸려도 고달픈 일은 있다."로.


ㄴ. 생활할 수 있다

.. 당시 내몽골에서 귀국한 어느 선배가 몽골에서는 400마디만 알면 생활할 수 있다는 말을 했을 정도예요. 일상적인 단어가 겨우 400개라니, 어쩐지 한심한 생각이 들었어요 ..  <김달수,진순신,시바 료타로/이근우 옮김-역사의 교차로에서>(책과함께,2004) 27쪽

'당시(當時)'는 '그때'로 다듬고, '귀국(歸國)한'은 '돌아온'으로 다듬습니다. "말을 했을 정도(程度)예요"는 "말을 했을 만큼이에요"나 "말까지 했어요"나 "말을 하기도 했어요"로 손보고, '한심(寒心)한'은 '딱한'이나 '어처구니없다는'이나 '터무니없다는'으로 손봅니다. "일상적(日常的)인 단어(單語)가"는 "일상에서 쓰는 낱말이"나 "살면서 쓰는 낱말이"나 "사람들이 (흔히) 쓰는 낱말이"로 손질해 봅니다.

이 보기글을 살피면 '살아가면서 의사소통을 하고자 쓰는 낱말이 겨우 400개밖에 안 되어 몽골사람은 한심하다'고 이야기합니다만, 이런 모습을 놓고 딱하다고 바라보거나 어설프다고 여기는 눈길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몽골뿐 아니라 어느 나라이든 '기본 의사소통을 할 때에 알아야 하는 낱말'은 400∼500입니다. 영어도 그렇고 일본말도 그렇습니다. 중국말도 그렇고 프랑스말도 그렇습니다.

모든 나라와 겨레에는 밑바탕을 이루는 낱말이 있어, 이러한 낱말을 놓고는 따로 뜻풀이를 하기 몹시 어렵곤 합니다. 그래서 따로 뜻풀이를 한다기보다는 이러한 '밑낱말'을 어느 자리에 어떻게 쓰는가를 낱낱이 살피면서 말씀씀이를 돌아보도록 이끕니다. 이를테면, 우리 말에서는 '하다'와 '가다'가 밑낱말이 될 테고, 영어에서는 'be'나 'get'이 될 테지요.

이러한 밑낱말은 사전에서 '풀이말을 달 때에 쓰는 낱말'이곤 하며, 5∼7살 어린이가 쓰는 낱말 숫자이곤 합니다. 고작 400∼500 낱말로는 깊이있거나 너른 생각을 나누기 어렵다고 여길 수 있을 텐데, 우리는 기껏 400∼500 낱말로도 얼마든지 깊이있거나 너른 생각을 펼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깜냥껏 우리 생각을 깊거나 너르게 펼쳐 보이려 하지 못하니, 이런 낱말로도 생각을 나누지 못할 뿐입니다. "쉬운 밑낱말로 학문하기"란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해 보고자 하지 않으니 못합니다. 밑낱말을 엮고 짜면 나타내지 못할 삶과 생각이란 없습니다.

 ┌ 생활할 수 있다
 │
 │→ 지낼 수 있다
 │→ 살 수 있다
 └ …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떤 낱말을 골라서 쓰느냐에 따라 '우리 생각을 나타내고 우리 삶을 보여주는 낱말 숫자'가 크게 달라집니다. 그러니까, '살다' 한 마디만 쓰면 낱말 숫자는 하나이지만, '살다' 말고 '생활하다'를 쓰면 낱말 숫자는 둘이 됩니다. 사는 모습이라서 '사는 모습'이라고 하면 밑낱말로 우리 생각을 나누는 셈입니다. 그런데 '생활방식'이나 '생활양식'이나 '생활형태' 같은 낱말을 받아들이면, 똑같은 삶자리를 나타내고 있는 데에도 낱말 숫자가 늘어납니다. 여기에 '라이프스타일'을 끌어들이면 낱말 숫자가 더 불어납니다.

신문이든 잡지이든 으레 '생활정보'를 이야기하며, 때로는 '라이프'나 'life'나 '生活'이라는 말마디를 기사이름으로 뽑아 놓곤 합니다. '살림정보'라든지 '살림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으며 '살림살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만, 이렇게 밑낱말로 우리 하루하루를 보여주고자 하지 않으니,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더 어렵게 어지럽히는 셈입니다.

아니, 이렇게 해서 '우리가 널리 쓰는 낱말 숫자'가 두 곱이 되며 세 곱이 된다고 할 때에, 우리들 '말 문화가 더 넉넉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한국사람'이라고만 하지 않고 '한국인'이라고도 하면서 낱말 숫자를 곱배기로 키우면 우리 말삶이 한결 푸짐하다고 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책 이야기를 살펴보아도 그렇습니다. 책을 다루니 '책'이라고만 하면 될 텐데, '도서'이니 '서적'이니 '신간'이니 '冊'이니 '북'이니 'book'이니 하면서 끝없이 낱말 숫자를 늘리고야 맙니다. 어느 한편에서 바라보자면 틀림없이 '다양성'이지만, 다른 한편에서 살펴보자면 '다양성을 빌미로 삼아 지식자랑을 하는 모양새'이거나 '다양성을 핑계로 내세우며 말장난을 하는 모습'에 지나지 않곤 합니다. 우리는 참말로 다양성을 북돋우고자 이 낱말을 쓰고 저 낱말을 다루고 있을까요? 우리는 거짓없이 다양성을 키우고자 바깥말을 잔뜩 끌어들이며 말과 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가요?

'갈림길'이라는 낱말은 젖혀 두고 '교차로(交叉路)'라는 낱말을 쓰는 일을 놓고 다양성이라 해도 될는지요. '건널목'이라는 낱말은 밀쳐 놓고 '횡단보도(橫斷步道)'라는 낱말을 외치는 일을 가리켜 다양성이라 할 수 있는지요. '자전거'라는 낱말 앞에서는 고개를 돌리고 '바이크(bike)'라는 낱말 앞에서는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다양성이라 할 수 있습니까. 사진을 '사진'이라 말하지 않고 '포토'이니 'photo'이니 가리켜야 다양성과 학문과 예술이 살아나겠습니까.

 ┌ 400마디만 알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 400마디만 알면 어려움이 없다
 ├ 400마디만 알면 모든 생각을 나타낼 수 있다
 ├ 400마디만 알면 하고픈 말을 다 할 수 있다
 ├ 400마디만 알면 지내는 데에 어려움이 없다
 └ …

우리는 우리가 늘 쓰는(←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낱말(← 단어)을 곰곰이 헤아려야지(← 고찰해야지) 싶습니다. 우리가 언제나(← 항상) 쓰는 말마디(← 어휘)가 더없이 알맞게(← 적절하게) 쓰는(← 활용하는) 말마디인지를 살피고(← 검토하고), 우리가 서로서로 나누는(← 교류하는) 말과 글이 참으로 알차게(← 온전하게) 어우러지는(← 통합하는) 말과 글인지를 생각해야지(← 고려해야지) 싶습니다. 말을 가꾸며 삶을 가꾸고, 삶을 가꾸며 말을 가꾸는 이음고리를 잘 짚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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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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