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黃)씨도 기초의원에 당선될 수 있도록 하자

[김당의 톺아보기- 알고 찍자 ①] 선거법과 '기호 변수'

등록 2010.02.08 10:02수정 2010.02.08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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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민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와 의무를 명시한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이렇게 시작한다. 지난 2008년 촛불시위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불렀던 노래가 '헌법 제1조'였다. 그만큼 국민들이 자신의 '주권과 권력'을 잊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노래만으로 '주권'이 보장되고 '권력'이 통제되는 것은 아니다. 국민이 선거권 혹은 피선거권자로서 선거에 직접 참여할 때만이 '민주주의의 꽃'이 핀다. 내 손으로 직접 좋은 후보를 뽑을 때만이 '풀뿌리 민주주의'가 자란다.

좋은 후보를 뽑으려면 무엇보다도 후보자와 유권자의 상호소통이 필요하다. 후보자는 자신의 철학이나 비전을 유권자에게 충분히 전달할 수 있어야 하고, 유권자는 후보자의 자질과 능력 등에 대한 풍부하고 정확한 정보를 가져야 한다. 알아야 '면장'도 하지만 알아야 뽑는 것도 잘한다. 그것이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알고 찍자'라는 연재를 하는 이유다. [편집자말]
오는 6월 2일이면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대 규모의 선거가 치러진다. 약 4000만 명에 이르는 유권자들이 전국 246개 지방자치단체에서 일제히 그 대표자들을 선출한다.

우선, 이번 제5대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우리나라 선거사상 가장 많은 표를 행사하게 된다. 무려 1인 8표다. 기존의 광역시·도지사, 지역구 광역시·도의원, 비례대표 광역시·도의원, 기초자치단체장(시·군·구청장), 지역구 시·군·구의원, 비례대표 시·군·구의원 외에 교육감과 교육위원을 함께 뽑는다.

당연히 공직자 선출규모도 약 4000명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그 정수는 광역시도지사 16인, 광역시도의원 733인(비례대표 78인 포함), 시·군·구청장 230인, 시·군·구 의원 2888인(비례대표 375인 포함), 교육감 16인, 교육위원 77명(현행 기준) 등 3960명에 이른다. 출마자만도 1만 명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제17대 대통령선거일인 19일 오전 서울 창천동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한 유권자가 소중한 한표를 행사하고 있다.
제17대 대통령선거일인 19일 오전 서울 창천동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한 유권자가 소중한 한표를 행사하고 있다. 남소연

3연승 한나라당 vs 3연패 민주당의 '전국 대회전'이 '묻지마' 투표?

특히 이번 선거는 처음으로 지방권력과 교육권력을 동시에 선출하는 선거다. 그래서 이번 선거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이자 오는 2012년 총선과 대선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다.

2002년 대선에서 패배한 뒤에 '차떼기당'의 오명과 2004년 탄핵의 역풍을 딛고 회생한 한나라당은 2006년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승리한 이후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까지 내리 3연승을 했다. 민주당으로서는 처음으로 전국단위 선거에서 치욕적인 3연패를 당한 뒤에 맞는 첫 전국단위 선거다. 이번 선거에서 수도권에서 의미 있는 승리를 거둬야 2012년 총선과 대선을 기대해 볼 수 있다.

이처럼 중요한 선거임에도 유권자들은 후보자가 누구인지 제대로 모른 채 투표장에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전선거운동을 제한하는 까다로운 선거법과 그로 인한 후보자에 대한 정보 부족 탓이다. 후보에 대한 신상 정보가 부족하니 인지도가 약한 정치 신인들은 절대적으로 불리하고, 유권자는 어떤 후보가 좋은 후보인지를 고를 수가 없다. 특히 광역의원과 기초의원 그리고 교육감 및 교육위원에 대해서는 이번에도 '묻지마' 투표 양상마저 우려된다.


지난 2007년 12월에 있었던 선거에 대해 물으면 사람들은 대부분 대통령 선거만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만 있었던 건 아니다. '교육대통령' 선거도 있었다. 2006년 12월 지방교육자치법 개정으로 2007년부터 임기가 만료된 각 시도 교육감을 직선으로 뽑게 된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지난 대선 당시 교육감 선거도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대선이라는 큰 이슈에 묻혀 전혀 주목을 받지 못한 탓이다. 그리고 더 많은 국민들은 2007년 12월 19일 대선과 함께 실시된 경남, 울산, 제주, 충북의 시·도교육감 선거에서 대통령선거의 이명박 후보와 같은 기호(2번)를 받은 후보자가 모두 당선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대선 당시 의석수에 따라 기호 2번을 배정받은 이명박 후보와 같은 번호를 받은 시도 교육감 후보들이 모두 당선된 것을 우연의 일치라고 할 수 있을까? 교육감 선거에서 기호는 후보 이름의 가나다순으로 결정되는데 유권자 중 일부는 교육감도 정당에 따라 기호가 매겨지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한 후보 캠프의 자체 조사결과에 따르면 기호에 따른 득실이 최대 7%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현직교육감이 떨어진 일부지역에서는 '현역 프리미엄'보다 '기호 프리미엄'이 더 셌다는 얘기가 나왔다.

선거도 잘 되면 '조상덕'이고 못 되면 '조상탓'?

4개 시·도 교육감 선거는 그나마 대선과 함께 실시해 투표율은 높았다. 그러나 이듬해 실시한 부산교육감 선거의 투표율은 15% 정도였다.

한해 30조원이 넘는 교육예산을 집행하고 44만명의 초중고교 교원에 대한 인사 및 지휘권을 행사하는 16개 시도의 '교유대통령'이 국민 10명 중 한두 명만 투표하는 무관심 속에 결정된 것이다. 그래서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아버지 성이 강(姜)씨면 당선 가능성이 크지만, 아버지 성이 황(黃)씨면 '말짱 황'이 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 정세분석국장과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수석전문위원을 지내고 정치컨설턴트로 활동중인 정창교(49)씨는 지방선거 예비후보자들을 대상으로 강의할 때 곧잘 이런 우스갯소리를 한다. 그런데 농담으로 넘길 일이 아니다. 지난 선거에서 실제로 그랬다.

지난 연말에 개정되기 전의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투표용지의 정당-후보자 게재순위는 같은 선거구에 2인 이상을 추천하는 경우 후보자 성명의 '가나다' 순으로 기호를 배정했다. 즉, 국회에 의석을 갖고 있는 정당 추천후보의 경우 의석수에 따라 전국적으로 통일된 기호(1. 한나라당 2. 민주당 3. 선진당 4.친박연대 등)를 부여받는데, 그 정당이 같은 선거구에 2인 이상의 후보자를 추천한 경우에는 후보자성명의 가나다순에 따라 '1-가, 1-나, 1-다' 등으로 표시했다.

이 규칙에 따르면 민주당 공천으로 출마한 후보가 강씨라면 '2-가'로 표시되지만 황씨라면 추천 후보수에 따라 '2-다'나 '2-라'로 표시되기 십상이다. 이 경우 '가' 후보와 '라' 후보 사이에는 아무런 우선순위의 차이가 없지만, 이런 사정을 잘 모르는 유권자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후보 가운데 '가' 후보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 같은 '기호변수' 때문에 선거에서 잘 되면 '조상덕'이고 못 되면 '조상탓'이라는 얘기가 나온 것이다.

그런데 지난 연말 '날치기' 와중에 개정된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이 조항이 "같은 선거구에 2인 이상을 추천하는 경우 해당 정당이 정한 순위(예, 2-가, 2-나 등)에 따르되, 정당이 정하지 아니한 경우 선관위에서 추첨해 결정"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즉, 정당이 여성후보나 정치신인에게 배려하는 등으로 기호를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거나, 적어도 후보자간의 추첨에 의해 기호를 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누구표가 많을까. 유권자의 한표
누구표가 많을까. 유권자의 한표 최병렬

술집 명함 돌리는 웨이터만 못한 공직 후보들

개정 공직선거법은 기초단체장 및 지방의원 예비후보자 등록 시기를 선거기간 개시일 전 60일(3. 21)에서 90일(2. 19)로 앞당겨 정치신인들이 자신을 홍보할 수 있는 기회를 늘렸다. 단, 군 의원 및 군수 선거 예비후보자 등록은 종전대로 60일을 유지했다.

또 예비후보자의 선거운동 방법도 확대되었다. 이를테면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정치신인 예비후보의 경우 자신을 알리는 가장 일반적인 선거운동 방법은 명함을 배포하는 것이다. 그런데 유권자가 보기에는 명함을 돌리는 사람이 공직 예비후보인지 술집 웨이터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 예비후보일 때는 그 흔한 어깨띠 하나 두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후보가 유권자를 발견해 명함을 들고 다가가면 술집 웨이터인줄 알고 피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나마 술집 웨이터들은 명함과 함께 음료수병도 돌리고 업소방문을 호소하지만 예비후보들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릴 뿐 지지를 호소하는 것도 금지했다. 그래서 선거판에서는 "공직후보가 술집 명함을 돌리는 웨이터만 못 하다"는 푸념이 남의 얘기가 아니었다.

그러나 개정 선거법은 명함을 배포할 수 있는 자를 기존의 3인(예비후보자와 수행원 1인 그리고 배우자 또는 직계존비속 중 1명)에서 예비후보자와 수행원 1인, 배우자와 직계존비속, 배우자가 지정한 수행원 1인, 예비후보자와 함께 다니는 선거사무장·회계책임자·선거사무원 및 활동보조인 등으로 늘리고 명함을 건넬 때 지지 호소도 가능하게 했다. 식구가 많은 예비후보자가 유리(?)한 셈이다. 또 예비후보에 한해 어깨띠 또는 후보자임을 나타내는 표지물을 착용하고 선거운동에 가능토록 해 '술집 웨이터만 못 한 신세'는 면하게 되었다.

지난 2006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광주광역시당이 '더피플'에 의뢰한 여론조사결과(표본 738명, 오차범위 및 신뢰구간 95%±3.6%)에 따르면, 구청장 출마후보의 이름과 경력 등을 인지하고 있는 유권자는 13.8%, 시의원 후보의 경우 13.1%, 구의원 후보의 경우 9.6%에 불과했다. 당시 투표율 51%대를 단순 계산하면, 실제로 공직 후보에 대해 인지하고 투표한 유권자 비율은 각각 그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다. 결국 국민 열에 아홉은 자기 동네 구청장과 시의원, 구의원이 누군지도 모른 채 투표한다는 얘기다.

선거는 인지도와 선호도 그리고 투표율에 의해 결정된다

유권자는 일단 후보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야 후보에 대한 호오가 생기고 지지하거나 반대하기 위해 투표장에 가게 된다. 그래서 선거의 결과는 인지도와 선호도 그리고 투표율에 의해 결정된다. 출마자가 경쟁력을 가지려면 선거 전에 인지도가 최소 50%는 넘어야 된다고 한다. 지난 2005년 4.30 재보선에 출마했다가 고배를 마신 임좌순 전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장관급)의 사례는 정치신인이 인지도의 벽을 넘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잘 보여준다.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충남 아산에 임좌순씨를 긴급 차출해 공천했다. 그러나 임 사무총장은 중앙 정치권에선 유명 인사지만 지역에선 낯선 사람이었다. 선거 직전에 조사한 지역 인지도는 임 후보가 25.3%, 출마 경험이 많은 한나라당 후보는 60.3%였다. 결국 37년 동안 선관위에서 일해 '움직이는 선거법 박사'라고 불렸던 임 후보는 인지도의 벽을 넘지 못하고 분루를 삼켜야 했다.

임 후보는 선거 뒤에 한 언론 인터뷰에서 '심판일 때는 몰랐는데 직접 출마해서 선수로 뛰어보니 정말 선거법에 문제가 많다. 신인이 법을 지키면서 유권자에게 자신을 알릴 방법이 거의 없더라'고 밝혔다. 이처럼 대부분의 정치신인들은 선거의 첫 번째 관문인 인지도의 벽을 넘지 못한 채 좌절하고 만다.

연말 선거법 개정으로 예비후보가 전화 또는 문자메시지를 이용해 선거운동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선거운동 기간을 늘리는 등 경선을 앞두고 정치신인들이 좀더 자신을 홍보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사전선거운동을 제한하는 나라는 일본과 우리나라밖에 없을 만큼 선거법은 여전히 기득권의 그물망을 중심으로 촘촘히 짜여 있다.

그 그물망을 꿰뚫기 위해서는 주권자인 유권자의 공직후보에 대한 관심과 혜안이 필요하다. 우리 속언에 "알아야 면장도 한다"는 말이 있는데, 알아야 면장도 하지만 알아야 뽑는 것도 잘하는 법이다.
#지방선거 #인지도 #사전선거운동 #어깨띠 #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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