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우회적으로 말한다
.. 그래도 미치나가는 그것을 숨김없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고사를 차용하여 우회적으로 말한다 .. <쓰지 유미/송태욱 옮김-번역과 번역가들>(열린책들,2005) 55쪽
'고사'는 '古事'일까요 '故事'일까요. 한글로만 적으면 못 알아듣습니다. 그렇다고 한자를 적어야 하지는 않습니다. 한자로 안 적어도 알아들을 수 있는 말, 한글로도 넉넉한 말을 적어야 옳습니다. '옛일'이나 '옛이야기'로 다듬어 줍니다. '차용(借用)하여'는 '빌어'나 '따와'로 손질하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하지 않고"로 손질해 줍니다.
┌ 우회적(迂廻的) : 곧바로 가지 않고 멀리 돌아서 가는
│ - 우회적 접근 / 우회적 표현 / 우회적 해결 방안 / 우회적인 설명 /
│ 우회적인 방법 / 일에 대한 불만을 직접 토로하지 않고 우회적으로 표현하였다
├ 우회(迂廻/迂回) : 곧바로 가지 않고 멀리 돌아서 감
│ - 우회 공격 / 우회 도로 / 우회 작전
│
├ 우회적으로 말한다
│→ 에둘러 말한다
│→ 돌려서 말한다
│→ 빙 돌려 말한다
│→ 슬그머니 말한다
│→ 어렴풋이 말한다
└ …
바로 말할 때에는 "바로 말한다"고 하면 됩니다. 그대로 말할 때에는 "그대로 말한다"고 하면 돼요. 누군가를 앞에 놓고 말하면 "대놓고 말한다"고 하면 되고, 남 앞에서 말을 않고 꼭 뒤에서 말한다면 "뒤에서 말한다"고 하면 넉넉합니다.
있는 그대로 말하기보다 꾸며서 말한다면 "꾸며서 말한다"고 하며, 그 자리에서 곧바로 말하지 않고 이리저리 돌리면서 말한다면 "돌려서 말한다"고 하면 알맞습니다. 때에 따라서, 곳에 따라서, 느낌에 따라서, 보이는 모습에 따라서 말하면 좋습니다. 돌려서 말하니 "돌려 말하다"이고 에둘러서 말하니 "에둘러 말하다"이며 어렴풋하게 말하니까 "어렴풋이 말하다"일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이하여 이와 같이 있는 그대로 말하는 길을 잃고 있는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어인 까닭으로 꾸밈없이 글쓰는 매무새를 잊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때그때 생각하여 바로바로 움직이면서 때와 곳을 슬기롭게 맞추는 몸가짐을 왜 버리거나 놓거나 내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 우회적 접근 → 돌아서 다가서기
├ 우회적 표현 → 돌려서 말하기
├ 우회적 해결 방안 → 에둘러 푸는 길
├ 우회적인 설명 → 돌려서 이야기
├ 우회적인 방법 → 돌아가는 길
└ 우회적으로 표현하였다 → 빙 돌려 나타내었다
돌아서 가는 일을 가리키는 낱말이라면 '迂廻'나 '迂回'가 아닌 '돌아가기'입니다. 우리는 '돌아가다'와 함께 '돌아가기'라는 낱말을 즐겁게 빚어내어 알맞게 낱말책에 실어 놓아야 합니다. 돌려서 하는 말을 가리켜 '돌려말하기'라는 새 낱말을 빚을 수 있어야 하며, 이처럼 한 낱말을 굳이 짓지 않더라도 '돌려 말하기'를 관용구로 삼아 낱말책에 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어느 누가 아닌 우리가 키워야 하는 우리 말이기 때문입니다. 나라밖 어디에서 들어와 돌보아 주는 우리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내버려 두어도 잘 자라는 우리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과 마찬가지로 늘 보듬고 어루만지며 갈고닦아서 빛내야 할 우리 말이기 때문입니다.
ㄴ. 우회적 질문
.. 승차 이후 내가 끝없이 던진 우회적 질문에 내 의도를 간파한 것이었다 …… 강요된 침묵 속에 주민들이 내게 선사한 건 때로는 한숨, 빙빙 돌려진 얘기들, 그것도 아니면 .. <이유경-아시아의 낯선 희망들>(월간 말,2007) 92쪽
"승차(乘車) 이후(以後)"는 "차에 타고서"로 손질하고, "던진 질문(質問)에"는 "묻던 말에"로 손질합니다. "내 의도(意圖)를"은 "내 뜻을"로 다듬고, "간파(看破)한 것이었다"는 "알아챈 셈이었다"로 다듬어 줍니다. "강요(强要)된 침묵(沈默) 속에"는 "닫혀진 입으로"나 "억눌린 입으로"나 "말할 수 없이 짓눌린 가운데"로 고쳐 봅니다.
┌ 우회적 질문 (x)
└ 빙빙 돌려진 얘기 (o)
글쓴이는 '우회적 질문'을 말하다가 '빙빙 돌려진 얘기'를 말합니다. 책을 읽다가 덮습니다. 찬찬히 헤아려 봅니다. 글쓴이로서는 '우회적'과 '빙빙 돌려진'을 다른 말이라고 여겼기에 이렇게 적었겠지요. 두 말은 당신 생각을 여러모로 나타낼 수 있는 말, 이른바 다양성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느꼈으니 이와 같이 글을 썼겠지요. 그런데 '우회적'과 '빙빙 돌려진'은 참으로 다양성을 살리는 말투가 될까요. 이와 같이 적바림하는 글이 글쓴이나 읽는이한테 도움이 되며 즐거울 수 있을까요.
┌ 승차 이후 내가 끝없이 던진 우회적 질문에
│
│→ 차에 탄 뒤 내가 빙빙 돌려서 끝없이 묻던 이야기에
│→ 차에 타고서 내가 끝없이 에둘러 묻던 말에
│→ 차에 탄 다음 내가 끝없이 넌지시 묻던 말에
└ …
때에 따라서는 돌려 말해야 합니다. 곳에 따라서는 속내를 대놓고 밝히지 못하고 넌지시 읊곤 합니다. 그렇지만, 말을 너무 꼬면 탈이 납니다. 맞은편에서 못 알아듣기도 하지만, 말하는 이 스스로 혀가 꼬이면서 엇나옵니다. 우리 얼을 놓거나 우리 생각을 놓치면, 우리가 들려주려는 말이 얽히고 설키면서 뒤죽박죽으로 나뒹굴 수 있습니다. 마음을 차분히 다독이지 않는다면 말마디와 말결이 흐리멍덩하게 되고, 마음을 알차게 추스르지 않는다면 글줄과 글결이 엉성하게 흔들리고 맙니다.
ㄷ. 우회적으로 얘기하지요
.. 말씀드리기가 너무 어려운 문제인데, 조금 우회적으로 얘기하지요 .. <손석춘,김규항,박노자,손낙구,김상봉,김송이,하종강,서경식-후퇴하는 민주주의>(철수와영희,2009) 210쪽
"어려운 문제(問題)인데"는 그대로 두어도 되고, "어려운 일인데"나 "어려운 얘기인데"로 손질할 수 있습니다. 또는 "너무 어려운데"로 손질해 봅니다.
┌ 조금 우회적으로 얘기하지요
│
│→ 조금 에둘러 얘기하지요
│→ 조금 둘러서 얘기하지요
│→ 조금 다른 얘기를 해 보지요
│→ 조금 달리 얘기해 보지요
└ …
곧바로 말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다른 이야기를 하겠다는 대목입니다. 그래요. '다른' 이야기를 하겠다고 했으니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 보지요"라 적으면 됩니다. 또는 "달리 얘기해 보지요"나 "다른 틀에서 얘기해 보지요"나 "다른 눈으로 얘기해 보지요"나 "다르게 생각하며 얘기해 보지요"처럼 적어 봅니다.
바로바로 풀어내어 이야기를 하기 힘들기 때문에 아무래도 어떤 일을 '빗대어' 이야기하곤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빗대어' 이야기를 하거나 '견주어' 이야기를 하는 셈입니다. "말씀드리기가 너무 어려워, 조금 다른 이야기와 빗대어 보지요"라든지 "말씀드리기가 너무 어려우니, 조금 다른 이야기와 견주며 풀어 보지요"쯤으로 고쳐서 적어 봅니다.
┌ 바로말
└ 돌림말 / 도는말
이렇게 손질하고 고쳐쓰고 가다듬고 매만지면서 '바로말'과 '돌림말'을 떠올려 봅니다. 그때 그곳에 걸맞게 바로바로 내놓는 말이라면 한 마디로 뭉뚱그려 '바로말'이라 이야기하면 어떠할까 싶습니다. 그때 그곳에 맞추어 들려주기는 힘들고 찬찬히 에둘러서 꺼내야 하는 말이라 하여 '돌림말'로 갈무리해 보면 어떠할까 싶습니다.
뜻 그대로 적고 느낌 그대로 살립니다. 우리 깜냥껏 우리 마음과 모습을 살리거나 담아낼 말투를 북돋웁니다. 우리 깜냥껏 우리 말을 빚어내고, 우리 슬기에 따라 우리 글을 갈고닦습니다.
땀흘리는 사람한테는 보람이 돌아가고, 힘쓰고 애쓰는 사람한테는 열매가 돌아갑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말과 글을 가꾸려 한다면 우리들 누구한테나 살갑고 사랑스러우며 맑은 말마디 하나가 싱그러이 샘솟으리라 믿습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2010.02.08 13:32 | ⓒ 2010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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