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化)' 씻어내며 우리 말 살리기 (63) 브랜드화

[우리 말에 마음쓰기 854] '현대화되다'와 '새로워지다' 사이에서

등록 2010.02.08 20:07수정 2010.02.08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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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현대화되다

 

.. 〈활〉의 경우, 피그말리온 신화의 현대화된 버전이 당신을 노려본다 ..  <마르타 쿠를랏/조영학 옮김-나쁜 감독, 김기덕 바이오그래피 1996-2009>(가쎄,2009) 76쪽

 

 "〈활〉의 경우(境遇)"는 "〈활〉은"이나 "〈활〉이라는 작품은"으로 다듬습니다. "신화의 현대화된"은 "신화가 현대로 옮긴"이나 "신화가 오늘날 바뀐"으로 손질하고, '버전(version)'은 '판'이나 '모습'으로 손질해 줍니다.

 

 ┌ 현대화(現代化) : 현대에 적합하게 되거나 되게 함

 │   - 무기의 현대화 / 산업의 현대화는 기계화에서 비롯된다 /

 │     현대화된 공장 / 현대화된 장비 / 현대화하려는 노력

 │

 ├ 신화의 현대화된 버전이

 │→ 신화가 오늘날 바뀐 모습이

 │→ 신화가 요새 모습으로 되어

 │→ 신화가 새로워진 모습이

 │→ 신화를 새롭게 꾸민 모습이

 │→ 신화를 새로 빚어낸 모습이

 └ …

 

오늘을 살아가는 삶자락에 걸맞게 고치는 일을 놓고 '현대화'라는 낱말을 쓰고 있습니다. 어느 모로 보면 참 잘 지었구나 싶은 낱말입니다. 그러나 다른 눈길로 살피면 일본사람 말투를 고스란히 들여왔구나 싶습니다. 국어사전 보기글에서도 나타나지만 "(무엇)의 현대화" 꼴이 두 가지 보이거든요. 일본사람들이 토씨 '-의(の)'를 넣어 이름씨와 이름씨를 이은 다음에 끝에 '-화(化)'를 붙이는 말투를 꼭 한글로만 옮겨적은 "무기의 현대화"요 "산업의 현대화"이며 "신화의 현대화"입니다.

 

우리가 예부터 익히 써 오던 우리 말투가 그리 알맞지 않거나 영 어울리지 않는다면, 일본사람 말투이든 미국사람 말투이든 들여올 수 있습니다. 중국사람 말투라고 꺼려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그러면, 이 보기글을 생각해 봅니다. 이 보기글처럼 적을 때하고, "〈활〉은 피그말리온 신화를 오늘 모습으로 바꾸어 당신을 노려본다"라든지, "〈활〉이라는 작품은 피그말리온 신화를 오늘에 맞게 손질한 이야기로 당신을 노려본다"로 고쳐쓸 때하고 어느 쪽이 알아듣기에 알맞을까요. 아니, 우리는 어떻게 말을 다듬고 글을 추스르면서 우리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까요.

 

 ┌ 무기의 현대화 → 무기를 새로 갖춤 / 무기를 새로 함

 ├ 산업의 현대화는 기계화에서 비롯된다

 │→ 새로운 산업은 기계 쓰기에서 비롯된다

 ├ 현대화된 공장 → 현대 시설을 갖춘 공장 / 새로워진 공장

 ├ 현대화된 장비 → 새로워진 장비 / 새로 바뀐 장비

 └ 현대화하려는 노력 → 새로워지려는 움직임 / 탈바꿈하려는 땀방울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는 말입니다. 생각을 주고받자고 하는 글입니다. 내 이야기를 맞은편한테 알뜰살뜰 알려주고자 하는 말입니다. 내 뜻을 당신한테 속속들이 보여주고자 하는 글입니다.

 

껍데기를 씌우자는 말이 아닙니다. 겉발림에 매이자는 글이 아닙니다. 군것질처럼 군더더기를 하자는 군말이 아닙니다. 지식을 뽐내거나 자랑하자는 글이 아닙니다.

 

옳게 나누고 밝게 펼치며 즐겁게 주고받을 말이어야 합니다. 알맞게 적바림하고 슬기롭게 쓰며 따뜻하게 건넬 글이어야 합니다.

 

어제와 오늘에 이어 새로운 앞날에 우리 딸아들한테 물려줄 말과 글이라면 어떤 모습 어떤 이야기 어떤 속살을 담아야 아름다울까를 헤아려 보면 좋겠습니다. 어제와 오늘과 글피를 잇는 말과 글이라면 어떤 흐름과 물결을 타도록 꾸리거나 일구어야 사랑스러울까를 곱씹어 보면 좋겠습니다.

 

한국사람으로서 아끼고 가꿀 말이란 어떤 말일까요. 한겨레로서 돌보고 보듬을 글이란 어떤 글일까요. 우리는 우리가 쓰는 말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우리가 나누는 글을 어떻게 갈고닦아야 하겠습니까.

 

ㄴ. 브랜드화

 

.. "농고 나온 우리 둘째 아들놈은 또 뭐라더라, 쌀을 브랜드화하라나." "그게 뭔 소리여?" "아, 그것도 몰러? 쌀에다 상표를 붙이라네. 농장 이름, 생산자 이름에 쌀 이름을 만들어 소비자랑 직접 거래를 하라는데 논밭에 나가기도 하루해가 짧은데 장사할 시간이 어딨어, 미친놈들." ..  <차은량-꽃멀미>(눈빛,2009) 99쪽

 

"직접(直接) 거래(去來)를 하라는데"는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곧바로 사고팔라"나 "우리랑 곧바로 사고팔라"로 손질해 볼 수 있습니다.

 

 ┌ 브랜드화 : x

 ├ 브랜드(brand)  = 상표. '상표'로 순화

 │

 ├ 쌀을 브랜드화하라나

 │→ 쌀에 상표를 붙이라나

 │→ 쌀에 상징이름을 붙이라나

 │→ 쌀에 이름을 지어 붙이라나

 │→ 쌀에 이름을 붙이라나

 └ …

 

국어사전을 들여다보면 영어 '브랜드'는 '상표'로 고쳐쓸 낱말이라고 나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런 말풀이를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농산물 브랜드화 한국능률협회'가 따로 있는 가운데 '명품브랜드화'라든지 '스타브랜드화'라든지 '도시브랜드화' 같은 말마디를 흔히 쓰고 있습니다. 더구나 '국가브랜드화'라든지 '국제브랜드화' 같은 말마디까지 여러모로 쓰고 있습니다.

 

 ┌ 물건이름 / 상징이름 / 상징말

 ├ 상표 / 상징

 ├ 브랜드

 └ ?

 

처음부터 '브랜드'를 찾는 우리들은 아니었을 텐데, 하루하루 길들고 익숙해지는 영어가 되면서, 우리 스스로 우리 말마디로 우리 삶을 나타내고 우리 생각을 주고받는 매무새가 옅어집니다. 그래서 오늘은 '브랜드'라 할지라도 바로 이듬날에는 또 무슨무슨 바깥말을 끌어들여 '물건이름'이나 '상표' 이야기를 꺼낼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또다른 영어를 쓸는지, 프랑스말이나 스페인말이나 독일말을 따올는지는 알 노릇이 없어요.

 

 ┌ 쌀이름을 하나 지으라나

 ├ 쌀이름을 하나 지어 붙이라나

 ├ 쌀이름을 하나 지어서 팔라나

 └ …

 

곰곰이 생각해 보면 '좋은 이름 붙이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마땅한 이름 찾기'라고도 느낍니다. '쓸 만한 이름 짓기'라든지 '아름다운 이름 만들기'이기도 하겠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를 하자니 '국제화'에 맞지 않는다고들 합니다. '세계화'에 거스르는 말마디라고들 합니다. 예나 이제나 속내는 그리 달라지지 않았으나 껍데기는 잔뜩 부풀리고 겉옷은 자꾸 껴입으면서 몸피만 불어납니다. 말옷은 두툼해지고 말알맹이는 속으로 숨어들면서, 우리 스스로 무엇을 말하려 했고 무엇을 나누려 했는지를 잊어버립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2010.02.08 20:07ⓒ 2010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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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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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외마디 한자말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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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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