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 이용 못하는 벽제화장장, 왜 그럴까

경기도 역외주민기피시설 44곳, 이제는 해결할 때

등록 2010.02.11 10:46수정 2010.02.11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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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단체장들이 주민의 환심을 사느라 빠지기 쉬운 유혹 가운데 하나가 거대한 개발계획이다. 단체장이 사용할 수 있는 산업정책수단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일자리를 만들고 싶어도 지방정부에는 관련 예산이 별로 없다. 고용정책과 중소기업정책은 수단과 전달체계를 중앙정부가 갖고 있다. 산업 및 고용지원 수단으로 지방세를 감면해도 그 효과는 크지 않다. 지방세는 주로 부동산 소유와 거래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방정부는 개발프로젝트에 눈 돌릴 수밖에 없다.

 

지방선거 때마다 개발 바람

 

개발권은 그 권한이 단체장에게 광범위하게 위임되어 있어 가장 강력한 정책수단이 된다. 게다가 개발로 발생할 경제적 이익은 매우 크다. 한 도시계획학자의 연구를 보면 서울시의 개발밀도를 10%만 올려도 부동산 가치는 250조원 가량 상승한다고 한다. 서울시 1년 예산은 21조원이고, 자치구 예산까지 합쳐봐야 30조원을 약간 넘는다. 서울시 1년 예산은 개발의 경제적 이익에 비하면 새발의 피밖에 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단체장들이 너도나도 개발사업에 집착하고, 토건업자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개발사업에 매달린다.

 

개발이익에 대한 기대로 많은 주민들은 개발사업에 반대하지 않는다. 개발대상지역에 토지나 건물이 있는 주민들은 적극 앞장서기도 한다. 그러나 주민들이 모든 개발을 두손 들어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특정시설에 대해서는 주민들이 결사 반대하기도 한다. 바로 기피시설, 또는 혐오시설이다. 교육문제, 환경문제, 치안문제 등을 내세워 반대하지만 가장 큰 사유는 집값 하락 등 경제적 손실 때문이다. 지역이기주의(NIMBY)라고 아무리 소리 높여봐야 해결되지 않는다. 눈앞의 막대한 경제적 이익이나 손실에 대해 초연할 것을 기대할 수도, 강요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런데 기피시설에 대한 모든 문제제기가 '님비현상'은 아니다. 시설사용에 따른 편익(benefit)과 비용(cost)이 일치하지 않는 역외주민기피시설에 대한 문제제기는 오히려 당연하다. 시설이 들어선 곳과 이용하는 곳이 다른 기피시설이 역외주민기피시설이다. 예컨대 경기도 고양시 벽제장제장은 '서울시립화장장'이다. 서울시민에게는 필수 편의시설이지만 벽제 주민들에게는 주거환경 저해, 재산상 피해, 도시발전 저해 등 많은 불편과 고통을 주는 기피시설이다. 서울시 시설이므로 지역주민들은 이용할 수 없다. 많은 기피시설들은 지역주민들 이용이 제한된다. 이용할 수 있는 시설도 일부 있으나 제한적이다.

 

a  경기도 부천시 부천화장장 조감도

경기도 부천시 부천화장장 조감도 ⓒ 생활정치연구소

경기도 부천시 부천화장장 조감도 ⓒ 생활정치연구소

 

늘어난 역외주민기피시설 문제, 이제는 해결할 때

 

현재 경기도에는 역외주민기피시설이 모두 44곳이다. 유형별로는 추모시설 12곳(화장장 1곳, 공설묘지 4곳, 납골당 7곳), 환경시설 4곳(하수시설, 분뇨시설, 폐기물처리시설, 음식물처리시설 각 1곳씩), 수용시설 28곳(노숙인시설 1곳, 장애인시설 15곳, 노인요양시설 6곳, 정신요양 시설 6곳)이다. 지역별로는 서울과 가까우면서 도시화가 상대적으로 늦은 고양과 파주에 가장 많다. 주민이 많이 살지 않아 민원제기 등 반발이 비교적 약한 곳에 기피시설을 세웠기 때문이다. 지방자치 실시 전이라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사전동의도 필요 없어 서울시 기피시설이 경기도에 쉽게 들어섰다. 게다가 서울의 우월한 지위를 전제로 한 서울특별시행정특례에 관한 법률 등이 뒷받침했다. 88서울올림픽과 2002한일월드컵 등 거대국제행사를 계기로 서울을 정비하면서 기피시설들이 또 옮겨왔다.

 

최근 기피시설에 대한 지원이 이뤄지고 있으나 역외기피시설에 대한 지원은 없다. 예를 들어 서울시는 서초구 원지동에 유치한 국립의료원 예산을 5천억원으로 늘려 추모공원부대시설과 주민지원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면서도 2003년부터 제기된 파주시 용미리의 서울시립묘지에 대한 1천억원 규모의 지원에 대해서는 10년 가까이 입을 다물고 있다. 도로 확장, 광역상수도 등 시립묘지를 이용하는 서울시민에게도 필요하지만 역외시설이라 나 몰라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서울과 경기도 사이에만 존재하는 특수 문제가 아니다. 부산과 경남, 대구와 경북, 광주와 전남 사이에도 비슷한 유형의 문제들이 있을 것이다. 역외주민기피시설 문제에 대해 당해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신규개발 프로젝트보다 우선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참다 못한 지역주민들이 단체행동에 나선다면 거기서 빚어질 갈등과 그로 말미암은 사회 비용은 엄청날 것이다. 그때 가서는 너무 늦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생활정치메타블로그(www.lifepolitics.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서울시 #경기도 #벽제화장장 #생활정치연구소 #지방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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