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사장님보다, 김씨 아저씨에게 가혹한 '동네정치'

[바꿔! 동네정치 ③] 과천시의 아주 특별한 의정보고회 이야기

등록 2010.02.11 13:33수정 2010.04.20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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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지방선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지금의 지역정치는 '주민없는 정치'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기득권 정치의 뿌리입니다. 풀뿌리 동네정치부터 바꿔야만 대한민국의 정치에 새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습니다. <오마이뉴스>와 <풀뿌리좋은정치네트워크>는 '바꿔! 동네정치' 제하의 공동 기획을 통해 지역정치부터 바꿔야하는 이유를 제시하고 작은 성공 사례 및 변화의 움직임을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2006년 지방선거는 한나라당이 압승했던 선거였다. 수도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 와중에도 지역운동의 힘을 받아 기호 10번을 받고도 당선한 시의원이 있었다. 경기도 과천시의 서형원 의원이 바로 그 사람이다.

당시 경기도 과천시에서는 한나라당 광풍 속에서도 무소속 서형원 시의원과 진보신당(2006년 당시에는 민주노동당) 소속 황순식 시의원이 당선되었다. 지역에 뿌리를 내려 온 풀뿌리운동과 진보정당이 힘을 모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물론 2명의 시의원이 당선되었다고 해도 한계는 있었다. 총 7명의 과천시의원 중에서 나머지 5명은 한나라당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장도 물론 한나라당 소속이었다. 이런 정치적 조건 하에서 2명의 시의원들은 과연 무엇을 했을까?

특별한 의정보고회가 열린 이유

서형원 과천시의원(사진 맨 왼쪽)과 황순식 과천시의원(맨 오른쪽) ⓒ 최승우


지난 1월 29일 오전 10시 과천 시민회관 2층 세미나실에서는 약간은 유별난 의정보고회가 열렸다. 과천시에서 다양한 풀뿌리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서형원, 황순식 두 시의원들에게 의정보고회를 요구했고, 두 시의원이 이러한 요구를 받아들여, 4년 동안의 활동을  보고하는 자리가 마련된 것이다.

그런데 의정보고회에 참석한 사람들의 면면부터가 달랐다. 과천시에 있는 비닐하우스 마을(꿀벌마을) 주민들, 없어질 위에 놓였던 재래시장(굴다리시장) 상인들, 지체장애인협회 분들이 참석했다. 지역아동센터 운영, 학교평화만들기, 생협, 품앗이, 대안학교, 학교운영위원회 등 다양한 풀뿌리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이 의정보고회에 참석했다.

이날 별난 의정보고회에서 서형원 시의원은 "4년 동안의 시의원 활동을 하면서 든 생각은 바로 동네 정치가 힘없고 약한 사람에게 가혹하다는 것이었다"는 이야기로 의정보고회를 시작하였다. 그의 이 말 한마디 속에는 바로 우리가 동네 정치를 왜 바꾸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의식과 고민이 담겨져 있었다.


그는 초보 시의원으로 4년 동안의 의정활동을 전개하면서 지역의 많은 주민들을 만났다고 한다. 과천시민들의 사랑을 받던 재래시장(굴다리 시장)의 철거를 막아내기 위해 만난 시장 상인들, 과천시 빈곤계층에게 도시락 배달 사업을 진행하면서 만나게 된 비닐하우스 거주자 분들, '과천시 장애인 등 당사자에 의한 편의시설 사전점검 및 설치·개선 지원 조례'를 제정하기 위해 만났던 장애인 등등. 이들이 그가 발로 뛰어가 만났던 동네사람들이었다.

그는 "(시의원은) 몸이 하나이기 때문에 여기저기 다 다닐 수는 없습니다. 그럼 어디를 가야 할까요? 힘없고, 약한 분들을 찾아가서 그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하는 것이 바로 올바른 동네 정치"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지역에서 잘 나가시는 분들은 시의원 사무실과 공무원들을 찾아와서 하루에도 몇 번씩 이거 고쳐 달라, 저거 바꾸어 달라"는 이야기를 한다고 했다. 그런데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 평범한 사람들은 오히려 미안해서 그런 이야기를 안 한다고 한다. 그래서 시의원들이나 공무원들이 발로 동네를 뛰어다니지 않으면, 힘없고 약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절대 들을 수 없다고 했다.

좋은 조례 만들고, 낭비예산 삭감하고

지난달 29일 오전 10시 과천시민회관에서는 서형원-황순식 두 시의원의 의정보고회가 열렸다. ⓒ 최승우


서형원 의원에 이어 발표한 황순식 의원은 한나라당 시의원들 사이에 끼여서 지난 4년 동안 두 시의원의 공동의정활동으로 개선한 사례들에 대해 소개했다. 두 시의원들의 노력으로 과천시의 학교급식이 개선되었고, 여러 조례들을 발의해서 통과시켰다. '과천시 저소득 틈새계층 지원 조례', '과천시 친환경상품 구매촉진 조례', '장애인 편의시설 사전점검 및 설치·개선 지원 조례'가 두 시의원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조례들이다. 낭비우려가 높은 예산을 삭감하기 위해서도 노력했다.

시민들의 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도 노력했다. 과천시 예산안이 인터넷으로 공개되도록 했고, 시민들과 함께하는 예산 워크숍도 진행해 왔다. 혼자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의 대리인'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해성 논란이 있는 초등학교 인조잔디운동장을 막기 위해 시위를 하기도 했고, 독성살충제 사용을 중단시키는 성과도 있었다.

4년간의 의정활동 성과로는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다고 할 수 있는 성과이다. 그러나 이런 가시적인 성과보다 중요한 것은 시의원과 주민들과의 관계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의정보고회에 참석한 다양한 주민들의 모습이 이를 보여준다.

과천지역의 풀뿌리언론인 '과천마을신문'의 시민기자로 활동하는 제갈임주씨는 "지난 4년 동안 두 시의원 때문에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돌아보게 되는 자리였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지난 4년이라는 시간이 두 시의원에게는 어떤 시간이었을까? 서형원 시의원은 스스로 "어설프고 부족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좋은 시의원이 되자는 처음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 하고, 나쁜 시의원이 아니라는 것에 만족하는 정도"라는 평가를 내렸다. 황순식 시의원은 "더 잘하기 위해서는 상시적으로 함께 논의하고 결정하고 일을 나눌 수 있는 지역활동가들이 모인 핵심 논의 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장기적으로는 중앙당에 대한 의견차이를 넘어 지역정당을 구성하는 것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냈다.

두 시의원들은 아쉬운 점들이 많아 보였지만, 4년간의 치열한 의정활동에 대해 이렇게 꼼꼼하게 유권자들에게 보고하는 시의원들이 얼마나 될까? 스스로 좋았던 점, 부족했던 점들을 솔직하게 유권자들과 나누는 시의원들이 얼마나 있을까?

그래서 이 두 시의원들의 존재가 희망이다. 그리고 이런 변화가 확산될 때에 따뜻한 정치, 시민들과 함께 하는 좋은 정치도 가능할 것이다. 두 시의원이 4년동안 몸으로 증명한 것은 이런 사실일 것이다.

공자는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 말의 뜻은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뜻이다. 그리고 가혹한 정치는 우리 동네의 힘없고, 약한 분들에게는 더욱 더 무서운 호랑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지금 우리 주변에 호랑이 같이 가혹한 동네 정치를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는 힘없고, 약한 분들에게 가혹한 동네 정치를 바꾸어야 한다.

"법으로 다 해결할 수는 없더라"
[인터뷰] 서형원 과천시의원

- 가혹한 동네 정치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는데,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나?
"얼마 전 추운 겨울날 비닐하우스 거주자 분들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수돗물이 안 나오기 때문에 눈을 녹여서 물을 만들어 드시고 계셨다. 난방비 때문에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아 녹인 물이 다시 얼어붙는 모습을 보았는데, 그 때 지금의 동네 정치가 힘없고 약한 분들에게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을 했다."

- 동네 정치라는 표현이 생소한데, 생각하고 있는 동네 정치라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생각하는 동네 정치는 별 것이 아니다. 힘없고, 약한 분들이 정말 살지 못해 목소리를 높이기 전에 발로 뛰어 다니며 듣고 다니는 것이 바로 '좋은 동네 정치'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 잘 듣고 다니는 것만으로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지 않겠는가?
"물론이다. 제도적으로 동네의 힘없고 약한 분들을 위한 노력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동네이기 때문에 풀어갈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이 분들을 만나게 되면 정치에 대한 불신과 응어리들이 남아 있는데, 동네 정치이기 때문에 이분들의 이야기를 가슴 속 응어리가 풀릴 때까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필요하다."

- 나쁜 시의원이 되지 않은 것에 만족한다고 평가하였는데, 동네 정치의 어떤 부분이 바뀌어야 할까?
"시의원이 주민들의 대리인이 아니라 개인 정치인이 되는 순간에 동네 정치는 꼬이기 시작한다. 지금 대한민국의 동네 정치가 꼬여 있는 것은 바로 시의원들이 지역 주민보다 정당의 공천을 더 무서워하고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문제이다."

- 지금 복잡하고 심하게 꼬여 있는 이런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나 대안은 존재하나?
"중요한 것은 동네 정치의 대리인으로 시의원과 동네 주민들이 어떤 관계를 만들어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인데, 이것은 고정적인 관계의 모델이 있다기보다는 소통을 통해 자리를 잡아가는 문제인 것 같다. 쉽지 않은 문제다."

- 4년 동안의 시의원 경험을 통해 배운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과천시 지역의 빈곤 계층에게 도시락 배달 사업을 진행하면서, 도시락 배달에 참여하시는 자원봉사자 분이 도시락 배달을 하면서 어렵게 살아가시는 동네 분의 모습에 어쩔 줄 몰라 인사를 나누고 부엌에 도시락을 놓고 나가는 경우들이 종종 있었다. 그런데 도시락 배달을 받으시는 대부분의 분들이 몸이 불편해 부엌에 있는 도시락을 가지러 가기 위해서 10~20분씩 어렵게 몸을 움직여 도시락을 가져와야 하는 일들이 발생했다.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은 제도와 절차가 아니었다. 이 분들이 친해지고 서로 이야기를 하면서 문제들이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이 경험에서 동네 정치는 제도와 절차, 법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달았다. 나는 발로 여기저기 뛰어다니기 때문에 동네의 이분 저분을 더 많이 알 수밖에 없다. 시의원으로서 이 분들이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함께 이야기하고, 서로의 고민을 나누면, 모두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공감대로 커져 나간다. 이 공감대가 동네 정치를 바꾸는 힘이며 동력이 될 때가 많다."

-과천시에서 풀뿌리활동을 하는 분들이 좋은 의도에서 의정보고회를 요구했지만, 시의원이라는 신분에서 부담스럽지는 않았나?
"아니다. 개인적으로 4년 동안 시의원으로 내가 무엇을 하였는지 정리하는 기회와 시간이 되어서 많은 도움이 됐다. 그리고 우리 동네의 많은 분들이 모여서 함께 소통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재미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2시간으로는 부족한 것같아서 아쉽기도 하다."  

- 4년 동안 시의원 활동에서 기억나는 아쉬움이 있다면 무엇인가?
"아쉬운 것이야 다 아쉽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 문원초등학교 인조잔디운동장 문제가 기억에 남는다. 이 문제가 기억에 남는 것은 주민과 학부모들과 소통하고 힘을 모았으면 일찍 해결될 문제를 예산삭감 등 의회활동에 안주하여 결과적으로 문제의 처리가 늦어져서 주민들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자책감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해결책은 언제나 주민들과 소통하면서 나온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 준 사건이다. 그래서 기억에 많이 남는 것 같다."  


#바꿔 ! 동네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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