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없애야 말 된다 (293) 문제적

― '문제적인 것', '문제적 인간' 다듬기

등록 2010.02.11 12:48수정 2010.02.11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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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문제적인 것

 

.. 중국을 주제로 다룬 서양 최초의 저서가 불분명하고 문제적인 것이 우리의 탐험과정에는 오히려 적절하다 ..  <조너선 D.스펜서/김석희 옮김-칸의 제국>(이산,2000) 23쪽

 

'최초(最初)의'는 '첫'으로 다듬고, '저서(著書)'는 '책'으로 다듬어 줍니다. '불분명(不分明)하고'는 '뚜렷하지 않고'나 '흐리멍텅하고'로 손봅니다. '적절(適切)하다'는 '알맞다'나 '좋다'로 손질하고, "우리의 탐험 과정에는"는 "우리가 탐험(探險)하는 과정(課程)에는"이나 "우리 탐험 과정에는"이나 "우리가 탐험을 떠나기에는"이나 "우리가 새길을 떠나기에는"으로 손질해 봅니다.

 

 ┌ 문제적 : x

 ├ 문제(問題)

 │  (1) 해답을 요구하는 물음

 │   - 연습 문제 / 문제가 쉽다 / 문제가 어렵다

 │  (2) 논쟁, 논의, 연구 따위의 대상이 되는 것

 │   - 환경오염 문제 / 학교는 입학 지원자의 감소로 존폐 문제가 거론되었다

 │  (3) 해결하기 어렵거나 난처한 대상

 │   -  문제가 생기다 / 문제를 해결하다 / 문제에 부딪히다

 │  (4) 귀찮은 일이나 말썽

 │   - 그는 늘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이다

 │  (5) 어떤 사물과 관련되는 일

 │   - 이 일은 가치관에 관한 문제이다

 │

 ├ 최초의 저서가 문제적인 것이

 │→ 첫 책이 문제가 많아

 │→ 첫 책이 문제로 가득해

 │→ 첫 책이 문제투성이라서

 └ …

 

한자말 '문제'를 쓰는 일이 잘못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연습 문제"나 "환경오염 문제" 같은 자리는 그대로 두어야 합니다. "문제가 생기다"나 "문제를 일으키다" 또한 그대로 둘 때가 한결 낫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다만, "문제가 생기다"와 "문제를 일으키다"는 "말썽이 생기다"와 "말썽을 일으키다"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국어사전에 실린 (5) 또한 "이 일은 가치관에 얽힌 이야기이다"로 다듬을 수 있고요.

 

그런데, 한자말 '문제'에 '-적'을 붙인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문제적 인물"이나 "문제적 영화"나 "문제적 상황"이나 "문제적 시각"처럼 쓰는 자리라든지 "이 같은 일은 문제적이다"나 "그 정책은 문제적이다"처럼 쓰는 자리는 곰곰이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왜 이렇게 써야 하는가를 깊이 되새겨야 합니다. 우리가 꼭 이렇게 써야 하는가를 찬찬히 살펴야 합니다.

 

문제가 된다고 느끼면서 "문제가 되는" 무엇인가를 가리키고자 '문제적' 같은 낱말을 쓴다고 할 텐데, 말 그대로 "문제가 되는"이라고 하면 넉넉하지 않으랴 싶습니다. 문제가 된다는 일이란 "말썽을 일으키는" 일이거나 "말이 많은" 일이곤 합니다. 이 같은 일은 곰곰이 "들여다보는" 일이거나 "눈여겨볼 만한" 일이 되기도 합니다. 영화나 소설이나 사진이 "문제가 된다"고 할 때에는 어떤 잘잘못 때문에 이렇다 할 수 있는 한편, 사람들이 숱한 이야기를 하도록 이끌어 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 많고 탈 많은 작품"이라 할 수 있고 "숱한 이야기를 낳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입방아에 오르는 작품"이라 할 수 있으며 "도마에 오르는 작품"이라 할 수 있어요. 썩 안 좋은 쪽으로 흐른다면 "말밥이 되는 작품"이라고 하면 됩니다.

 

 ┌ 문제적 인물 → 문제 되는 사람 / 말썽쟁이 / 눈여겨볼 사람

 ├ 문제적 영화 → 말 많은 영화 / 말썽 많은 영화 / 눈여겨볼 영화

 ├ 문제적 시각 → 깊이 살피는 눈길 / 깊은 눈길 / 꿰뚫어보는 눈

 ├ 이 같은 일은 문제적이다

 │→ 이 같은 일은 문제가 있다 / 이 같은 일은 말썽이 된다

 ├ 그 정책은 문제적이다

 └→ 그 정책은 문제가 있다 / 그 정책은 말썽투성이이다 / 그 정책은 말이 안 된다

 

그런데, 국어사전에 '문제적'은 안 실려 있습니다. 꽤 많은 사람들이 퍽 자주 쓰는 낱말인데 따로 안 실려 있습니다. 한자말은 거의 빠짐없이 실어 놓고 '-적'붙이 낱말은 어김없이 실어 놓는 우리네 국어사전인데, 용케 이 낱말은 안 실어 놓았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국어사전 매무새는 문제가 된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말삶을 말 많고 탈 많게 꾸리고, 우리 글삶을 말썽투성이로 내버려 두고 있습니다. 우리 말밭을 알차게 가꾸지 못하고, 우리 글밭을 야무지게 일구지 못합니다. 아름다운 길로 접어들지 못하고, 해맑은 자리를 마련하지 못합니다.

 

살가이 나누는 말마디를 헤아리지 않습니다. 넉넉히 함께하는 글줄을 여미지 않습니다. 그저 이냥저냥 흘러갑니다. 그예 아무렇게나 놓아 둡니다. 세상 물결은 너무 바빠맞고, 세상 물결에 휩쓸리는 우리들은 말이든 글이든 생각이든 마음이든 넋이든 얼이든 삶이든 목숨이든 다부지게 붙잡지 않습니다. 더 즐겁고 한결 빛나는 보금자리를 보듬지 않습니다.

 

ㄴ. 문제적 인간

 

.. 대학시절 학생운동의 현장에서 같이 운동하는 동지였던 K는 내가 얼마나 문제적 인간인가를 알게 해 주었다 ..  <박원순과 52명-내 인생의 첫 수업>(두리미디어,2009) 54쪽

 

'대학시절(時節)'은 '대학 때'나 '대학을 다닐 때'로 다듬고, "학생운동의 현장(現場)에서"는 "학생운동 현장에서"나 "학생운동 판에서"로 다듬습니다. '동지(同志)'는 그대로 두어도 되나 '벗'으로 손볼 수 있고, 'K는'은 'ㄱ은'으로 손봅니다. '인간(人間)'은 '사람'으로 손질해 줍니다.

 

 ┌ 문제적 인간인가를

 │

 │→ 문제투성이 사람인가를

 │→ 문제 많은 사람인가를

 │→ 골치투성이인가를

 │→ 골치아픈 사람인가를

 │→ 말썽쟁이인가를

 └ …

 

보기글을 하나하나 뜯어 봅니다. 이 글을 쓰신 분은 "동지였던 K"를 이야기합니다. "동지였던 ㄱ"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아마 오늘날 어느 글쟁이라 하더라도 'ㄱ'이라고 적바림하는 이는 없지 않으랴 싶습니다. 한결같이 'K'라고 적바림하지 싶습니다.

 

좀더 알맞고 바르게 글을 쓰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 말글을 다루는 책이나 글쓰기를 이야기하는 책이 나날이 쏟아지지만, 어떻게 말하고 글쓰고 생각하고 나누어야 하는가를 돌아보는 책까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 말다운 우리 말이란 무엇인가를 살피는 책을 찾아보기 어렵고, 우리 글다운 우리 글이란 어떠한가를 톺아보는 책을 집어들기 힘듭니다.

 

글쟁이나 지식인이 '문제적'을 들먹이는 모습은 더없이 자연스럽다고 느낍니다. 교수나 교사가 '문제적' 같은 말투를 가다듬으려는 모습을 볼 수 없는 일이란 그지없이 마땅한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이 땅 어버이들이 아이들 앞에서 '문제적'과 같은 말투를 털어내며 알차고 싱그러운 말투를 물려주려는 생각을 못하는 모습이란 참으로 흔한 일이라고 느낍니다.

 

 ┌ 내가 얼마나 못난 놈인가를 알게 해 주었다

 ├ 내가 얼마나 부끄러운 녀석인가를 알게 해 주었다

 ├ 내가 얼마나 철부지인가를 알게 해 주었다

 ├ 내가 얼마나 못난이였는가를 알게 해 주었다

 ├ 내가 얼마나 바보 같았는가를 알게 해 주었다

 └ …

 

생각해 보면, 오늘날에는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아이들한테 말을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아이들한테 말을 가르쳐 주고 삶을 물려줄 할멈과 할배를 만나기 어렵습니다. 큰식구를 이루어 서로서로 배우고 가르치며 어우러지는 삶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어른은 어린이한테서 배우고, 어린이는 어른한테서 배우는 물줄기가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교사 자격증이 있어야 가르칠 수 있지 않은데, 어머니와 아버지로서 가르쳐야 하는데, 할머니와 할아버지로서 가르쳐야 하는데, 이제 모든 가르침과 배움은 자격증으로 학교 울타리 안쪽에서만 이루어집니다. 지식과 학문뿐 아니라 말과 글마저 교과서와 교재로 가르치고 배웁니다.

 

삶을 다루는 말이 아니라 지식을 다루는 말입니다. 삶이 묻어나는 글이 아니라 지식을 쏟아붓는 글입니다. 삶을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라 지식이 줄줄 흐르는 책입니다. 삶이 스며드는 책이 아니라 지식을 되풀이하는 책입니다. 아름다움을 찾지 않는 말이며 책입니다. 즐거움과 웃음과 눈물을 고이 담지 않는 말이며 책입니다. 사랑을 놓고 믿음을 저버리는 말이며 책입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2010.02.11 12:48 ⓒ 2010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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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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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적的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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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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