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추적의 명탐정 정약용(12회)

얼음송곳에 숨은 계략 <1>

등록 2010.02.12 10:10수정 2010.02.12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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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물러가지 않은 성주 감영의 어둑새벽 고요함을 꽹과리 울음이 산산이 찢어놓았다. 깡깡대는 소리는 금이 간 쇳덩이가 울부짖는 것처럼 짜증스럽게 귓가를  할퀴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놈이 식전부터 소란을 떠는 거야?"


하릴없이 지지궁상 떨며 꿈자락을 잡아끌어 도망간 잠이 찾아오는가 싶더니 두서없이 쳐대는 꽹과리 소리에 삼천리 밖으로 단잠이 달아나버리자 칠복(七福)이가 고개를 뽑아든 채 구시렁댔다.

"사또! 이놈의 한을 풀어주소서! 억울하게 죽은 내 누이의 한을 풀어주소서!"

하품을 풀풀 날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칠복이는 관문을 열기 전 찾아온 사내의 목소리에 짜증부터 터져 나왔다.

"아주 지랄을 해요, 지랄을!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제 놈은 밥 안 처먹고 똥 안 누나. 관아에 있는 사람은 잠 안 자고 일을 하나 그 말이야! 어둑새벽 지랄 떤다고 언놈이 제놈일부터 봐 주누!"

짜증이 목밑까지 차오른 탓에 토해놓은 말이었지만 밖에서 꽹과리를 쳐대는 유장호(柳章湖)란 사내를 알고 있었다. 이곳 성주땅에서 목에 힘주고 다닌 이창배(李昌培) 대감이라면 울던 아이도 울음을 뚝 그친다는 호랑이 수염같은 위인이다. 판서 자리에서 퇴역했지만 한때는 조선의 범죄자들을 잡아 족치던 추쇄꾼들을 호령하던 인물이었다.


그렇듯 위세 있는 집안으로 누이동생을 시집보냈으니 유장호의 집안은 사돈집 위세를 보는 듯했으나 혼인한 지 두 해가 되도록 아이를 회임치 못하자 식솔들의 눈길은 싸늘해졌고 급기야 자식을 얻기 위해 여느 비방이라도 사용해 보려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가씨, 이슬(露) 비방을 사용해 보세요. 새벽이슬은 음기가 안으로 뭉치니 자식을 갖게 합니다. 그러니 새벽이슬을 받아 마십시오. 해 뜨면 음기가 산산이 부서지니 결코 해뜬 뒤의 이슬은 마셔선 아니 됩니다."


어찌 이것뿐이랴. 용하다는 성주 땅 무당 어미는 해거름녘에 찾아와 비방을 내놓았다.

"자식 얻기를 고집한다면 굳이 비방을 가리겠습니까. 아가씨, 매월 보름날엔 산 중의 빈 무덤을 찾아가 자식을 달라 발원 하십시오. 그리하면 대자연의 기를 받은 사령(蛇靈)이나 호령(狐靈)이 얼씨구나 찾아들 것입니다."

그녀 역시 시집을 오기 전 같은 또래의 아가씨들에게 얘기를 들은 적 있었다. 이른바 '독약처방'이라는 것이다. 여인으로 태어나 자식을 갖지 못하는 건 칠거지악(七去之惡)에 해당됐다. 시집에서 쫓겨나는 참사가 벌어지기 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식을 갖는 게 '빈 무덤 처방'이었다.

누군가가 쓴 무덤 자리를 찾아가 자식을 점지해 달라 천지의 신께 고하고, 무덤 자리에 들어가면 어느새 자식을 갖게 된다고 했다. 마음자리를 틈타는 두 영(靈)이 뱀과 여우의 원귀였다. 이런 비방이 효험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나 며느리 유씨는 그 해 복어(복쟁이) 고기를 먹은 후 독성으로 세상을 떴었다. 아이를 가지려는 그녀 행동을 볼 때 자식을 가진 듯한 분위기였으므로 이창배 대감은 성주 감영에 연락해 초검을 치르게 했고, 그게 미심쩍어 관찰사 박우철(朴佑哲)에게 복검을 의뢰했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음식 중독으로 인한 사망으로 결론 내렸다. 그 일이 벌써 1년이 넘고 다시 석 달이 지나고 있으니 아무리 세상일에 둔감한 자라 해도 대부분 기억했다. 큰 며느리가 횡사한 이후 이창배 대감이 먼저 세상을 뜨고 그의 아내도 두 달을 버티지 못하고 대감의 뒤를 따라갔다.

대감은 생전에 큰 며느리가 마음에 들었던지 잣나무 숲에 조성한 묘 자리에 묻게 한 후 매일 슬픔에 빠져 지냈었다.

그런데 며칠 전 벼락이 잣나무를 때리고 중등이 부러진 나무가 무덤을 덮쳐 봉분이 헐어지고 관까지 드러났다. 그뿐 아니었다. 관은 나무의 충격으로 반쯤 부서졌는데 그 바람에 안에 있는 시신이 밖으로 드러나자 그것을 보고 유장호는 성주 감영을 찾아와 꽹과리 울리며 격쟁(擊錚)한 것이다.

때마침 성주에 머문 정약용은 관문을 열기엔 이른 시각이었으나 동헌으로 나와 당사자를 불러들였다.

"네가 무슨 일로 관아를 찾아와 소란을 떠느냐?"

"사또, 시생의 어젯밤 꿈에 꿈길을 찾아 온 누이가 자신의 한을 풀어 달라 울며 사정 하였소이다. 어떤 한이 있어 이승을 떠나지 못하느냐 물었더니 자세한 건 자신의 무덤에 가면 알 수 있다 하여, 누이가 묻힌 무덤에 갔는데, 간밤에 벼락 맞은 잣나무가 누이 무덤을 덮쳐 봉분은 무너지고 관이 드러나 부서진 관 속에 이상한 징후가 있어 이렇듯 찾아왔소이다."

"이상한 징후라?"
"소인이 부서진 관을 수습코자 잣나무를 들어냈는데, 누이의 주검은 온전히 삭아 뼈만 남았는데 이상하게 배꼽 부위는 먹물과 청색을 뿌린 듯 검푸른 빛을 띠었고, 가까이엔 개미 등이 죽어 있었습니다. 이로 보아 그 부분은 독극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 되옵니다. 또한 그 아래엔 태(胎)에서 흘린 옅은 자국이 있는데 그것은 어린아이의 회임을 나타내는 징후였습니다. 누이가 자식을 갖기 위해 백방으로 손을 써 회임하는 비방을 얻으려 한 걸 보면 이는 아이의 태가 분명하옵니다."

"허면, 누군가가 누이의 몸에 몹쓸 짓을 하여 독물로 살해 하였다는 것이냐?"
"그러하옵니다, 사또! 명명백백 규명해 주소서!"

정약용은 항인(行人)과 오작인(仵作人) 그리고 사령 두 놈을 대동하여 장지로 향했다. 과연 유장호의 말은 틀림없었다. 동쪽을 향해 봉분을 세운 무덤은 일곱 자쯤 떨어진 곳에 줄지어 서 있는 잣나무에 벼락이 떨어져 무덤을 덮쳤는데 이미 유장호 주위의 흙먼지 등을 털어낸 탓에 달리 손 쓸 필요 없이 조사에 들어갈 수 있었다.

관속의 상황은 유장호가 올린 격쟁의 내용과 같았다. 다른 곳은 뼈들이 누런빛을 띤 백골이었는데 유달리 배꼽 부근만 검푸른 빛깔로 물들어 있었다. 수 없이 보아온 주검의 상황으로 보아 독물에 의한 중독사란 것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부위의 증거들을 채집하고 관을 손질하여 봉분을 덮었다.

정약용은 초검관 성주 현감 오진호(吳鎭鎬)호의 검시기록을 펼쳐들었다. 오진호는 독을 먹고 죽은 경우의 상황을 예시해 주검의 상태를 그곳에 대비했다.

<이창배 대감의 며느리 유씨녀의 주검은 입술이 퍼렇다거나 혀가 문드러지고 입술이 찢어지는 현상은 보이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독을 먹은 경우 그런 상황이 전개되고, 입안이 검붉거나 검고 손톱이 푸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주검은 은비녀를 인후에 넣었다가 꺼내보니 검은 반응이 있었을 뿐, 다른 현상이 없는 것으로 보아 비상이나 야갈 등의 독물에 중독된 게 아니라 복어와 같은 독이 있는 생선을 먹었을 때의 정황과 다름없다. 만약 주검의 임자가 벌레의 독으로 죽은 경우, 전신 상하의 머리와 가슴이 푸른색이거나 검은색이고 간혹 배가 부풀어 오르거나 입으로 피를 토하고 항문으로 피를 쏟는다.>

집안에 떠도는 말처럼 유씨녀가 아이를 포태하기 위해 금석약(金石藥)을 복용했을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것 역시 합당치 않다는 것이다.

<만약 아이를 갖기 위해 중원의 비방인 금석약이나 그와 비슷한 약을 먹고 중독됐다면 주검의 위아래에 한두 군데 푸르게 부어오른 부위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주먹으로 때려 상한 흔적과 유사하고  혹은 청흑색의 큼직한 멍처럼 된다. 또한 손톱은 검고 신체의 육봉(肉縫)에 피가 있으며 배가 부어오르기도 하고 쏟기도 한다.>

주검의 상태가 깨끗한 점에 대해 조사한 내용은 다음 같았다.

<비상(砒霜)이나 단장초 등에 중독된 경우는 봄이나 여름 가을 겨울의 더위 한 때를 지나면 온 몸에 포진이 발생해 청흑색이 되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눈동자는 터져 나오고 혀 위에 작은 혀 바늘이 돋고 혀 또한 터진다. 두 귀는 부어서 커지며 복부는 팽창하고 항문이 벌어진다. 그러나 유씨녀의 주검엔 이런 증세를 발견할 수 없다. 이런 여러 정황을 보면 복어로 인한 중독사가 분명하다>

복검관인 경상도 관찰사 박우철의 검시기록엔 다른 내용이 적혀 있었다.

<주검이 복어로 인한 치독이라고 하나 본관이 은비녀를 사용해 입에 넣고 다시 깨내 조각수로 씻어낸 후 다시 입안과 목구멍에 집어넣고 종이로 밀봉했다가 한참 지나 꺼내보니 청흑색으로 변했다. 이것은 조각수로 씻어냈어도 색깔이 지워지지 않았으므로 독사(毒死)의 의혹이 따른다. 물론 복어와 같은 독이 있는 음식을 최씨녀가 먹지 않았다면 주검의 몸에서 꺼낸 밥 알갱이 등으로 독이 든 음식을 시험해 볼 수 있으나, 이미 독에 중독돼 죽었다 하니 남은 건 생전에 먹은 음식이 있는 창자 안을 살펴보아야 검시가 바로 될 것이다. 곧, 곡도(穀道) 안을 시험해 보아야 주검의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으나 명문 사대부가에서 해부를 허락치 않으니 이것은 애석할 따름이다.>

초검관이 보는 관점은 복어에 의한 중독사로 보아도 무방했으나, 복검관은 치독의 의혹이 있다고 단언했다. 검시기록을 몇 번이나 들여다보아도 확실히 단언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주검의 상황과 관 속에 일어난 여러 가지 정황을 참조해 정약용은 '치독'이란 결론을 내렸다.

"누군가 독으로 부인을 살해한 것 같습니다. 죽은 자 몸에서 흘러나온 태(胎)가 있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죽기 전 회임한 것이 분명합니다."

이창배 대감의 큰 아들은 지난날 중원에서 유행하는 금석학의 하나인 오석산(五石散)에 취해 좋지 않은 상황을 맞이했다. 이러한 단약 처방을 귀띔한 건 성주 감영에서 오리 남짓 떨어진 곳에 자리잡은 광제원(廣濟院)이란 한약방에서 일하는 상구(相九)란 자였다. 그 당시 향시에 떨어진 큰아들의 마음을 잡는 데엔 그만한 것이 없었다.

"큰 서방님께 집안에 우환이 있다 들었습니다. 부인께서 병을 얻어 시난고난 어려운 처지에 있다 하는데···, 그래 가지고서야 큰 서방님의 마음자리가 편할 리 있겠습니까?"

아닌 게 아니라 그의 아내는 시집 온 후 여섯 달 만에 병석에 드러누웠다. 특별한 병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처녀 시절부터 몸이 아픈 내력도 없었다. 그저 하루 종일 죽은 듯 잠을 잤다. 나중에 광제원 의원이 찾아와 진맥하며 운독(運毒)임을 역설했을 때엔 병이 상당히 깊어진 때였다.

'운독'이란 환절기에 발생하는 질병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 순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독기(毒氣)가 인체의 허약한 부분을 파고드는 운독은 주로 여름에서 가을로, 겨울에서 봄으로 바뀌는 과정에 발생한다. 심한 경우 목숨을 위협하는 일이 종종 벌어졌다. 광제원 박봉사(朴奉事)는 진맥하기를,

"나으리, 불기운(火氣)이 왕성한 여름에, 서늘한 기후(金氣)가 시작되는 가을로 바뀔 때엔 온기인 토기(土氣)가 교량 역활을 합니다. 즉, 건강을 유지시켜주는 금기가 질병을 일으키는 화기(火氣)의 독성에 해를 입는 걸 말하지요. 이때 온기인 토기를 완화시켜야 하는 데 오행으로 화생토(火生土) 토생금(土生金)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교량 역할을 맡은 토기가 그 임무를 다하지 못하면 음식 등 여러 가지 질환으로 목기(木氣)가 날뛰어 금기(金氣)가 부족하게 돼 상한(傷寒)이나 열병이 잇달아 발생한다. 이러한 운독은 급기야 독감이나 뇌염 · 열병 · 괴질 등으로 발전하게 되므로 연신해독탕(靈神解毒湯)을 쓰는 게 일반적인 해법이었다.

유씨녀는 스스로의 병을 밖으로 나타내지 않은 채 줄곧 골골거리다 목숨을 잃었다. 몸이 약해 약을 쓰기엔 너무 늦었다는 게 박봉사의 진맥 결과였다.

[주]
∎조각수 ; 조각보(褓)를 만드는 여러 조각의 헝겊
∎곡도(穀道) ; 항문으로 통하는 창자
#추리, 추적, 명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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