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가 더럽히는 우리 삶 (92) 에코

[우리 말에 마음쓰기 857]

등록 2010.02.12 19:44수정 2010.02.12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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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코(eco-)

 

.. 리사이클 제품을 제대로 파는 시장이 생겨나면 좋겠습니다. 에코 상품을 선택하는 소비자가 늘어날수록 … 그것을 밑바탕으로 생태적 생활 정도인 에코eco 지수를 알 수 있고 ..  <혼마 마야코/환경운동연합 환경교육센터 옮김-환경가계부>(시금치,2004) 144, 182쪽

 

'리사이클(recycle) 제품'은 '재활용 제품'이나 '되살림 물건'으로 다듬습니다. "선택(選擇)하는 소비자(消費者)가"는 "고르는 사람이"로 손보고, '그것을'은 '이를'로 손봅니다. "생태적(生態的) 생활(生活) 정도(程度)"는 "자연을 얼마나 지키며 사는가"나 "환경을 얼마나 걱정하는 삶인가"로 손질해 봅니다.

 

"생태적 생활 정도"란 '에코eco 지수'를 풀이하는 말입니다. 아직 우리한테는 낯익은 낱말이나 낱말풀이라고 하기 어렵기에, 이 보기글에서도 보듯 일본책에 적힌 일본 한자말을 고스란히 따오기도 하고 영어를 그대로 드러내어 쓰기도 하는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아직 우리한테 없는 말이요 문화라 할 때에는 아예 새롭게 이름을 붙여 볼 수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굳이 바깥말로만 이야기할 까닭이 없습니다. '에코 지수'나 '에코eco 지수'가 아닌 '환경 지수'라 할 수 있고 '환경사랑 지수'라든지 '푸른 점수'라든지 '풀빛 점수'라 해도 어울립니다.

 

 ┌ eco- : (명사, 형용사, 부사에서) '환경, 생태'와 관련됨을 나타냄

 │   - eco-friendly 친환경적인 / eco-warriors 환경을 지키는 전사들

 │

 ├ 에코 상품

 │→ 자연사랑 상품

 │→ 환경사랑 상품

 │→ 푸른사랑 상품

 │→ 푸른 상품

 │→ 풀빛 상품

 └ …

 

우리 삶터가 흔들리거나 무너져 갈수록 '에코'라는 말머리를 붙인 이름이 늘어납니다. 예전 스무 해쯤 앞서는 '자연'이나 '환경'이라는 낱말을 앞에 붙이곤 했습니다. 그 뒤로 어느 때부터인가 '친환경'이나 '자연주의' 같은 말마디가 생겨났고, '초록'이나 '녹색'을 내세우는 말마디가 나타나는가 싶더니, 이제는 거의 모든 자리에서 '그린(green)'과 '에코(eco-)'를 들먹이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이렇습니다. 에코하우스, 에코프로, 에코에너지, 에코솔류션, 에코메트로, 에코샵, 에코마일리지, 에코맘, 에코디자인, 에코크림, 에코뮤지엄, 에코포인트, 에코골프…….

 

'에코메트로'란 무얼 말하는가 싶어 찬찬히 살펴보니 아파트 이름이었습니다. 요즈음 아파트 이름이야 워낙 갖가지 섞임말을 쓴다지만 '에코메트로'란 참으로 배꼽을 잡을 만한 말장난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름은 아무렇지 않게 쓰일 뿐더러, 이러한 이름이 붙은 아파트를 명품으로 여기거나 좋은 보금자리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인천에서 배다리 골목동네를 지키자고 하는 문화예술 활동가들이 '에코뮤지엄'이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알고 보니 '에코뮤지엄'은 벌써 여러 곳에서 으레 쓰는 말이 되고 있더군요.

 

'에코하우스'나 '에코디자인'이라는 말도 그렇습니다만, 세상을 한결 나은 쪽으로 바꾸어 나가고자 힘쓴다는 분들 머리에서도 온통 영어만 가득 차 있는 꼴입니다. 환경운동을 하는 분들조차 '에코샵'이라는 말을 버젓이 씁니다. 부끄러운 노릇 아닐까요? '푸른가게'라는 말이 입에 달라붙지 못하는지 궁금하고, '맑은가게'나 '깨끗한가게' 같은 이름을 쓰자는 마음을 품기는 그렇게나 힘이 드는지 궁금합니다.

 

이리하여 서울시는 '에코마일리지'라는 제도를 펼친다고 외칩니다. 아이들을 조금 더 아끼고 사랑한다는 어머니들은 '에코맘'이라는 이름을 즐겁게 붙입니다. 책을 사랑하는 어머니라면 '북맘'이라 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아니, 벌써부터 이와 같이 쓰고 있을지 모르는 노릇입니다. 요리를 사랑하는 어머니들은 '쿡맘'이라 할는지 모르고, 영화를 사랑하는 어머니들은 '씨네맘'이라 할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골프를 치는 이들 사이에 '에코골프'가 있다고 하는데, 한국땅에서 이루어지는 골프 가운데 '자연과 환경을 사랑하거나 생각하는 골프'가 있는지 알쏭달쏭합니다.

 

 ┌ 에코 상품을 선택하는 소비자가 늘어날수록

 └ 생태적 생활 정도인 에코eco 지수

 

보기글을 다시 한 번 돌아봅니다. 이 글을 우리 말로 옮긴 분은 처음에는 한글로만 '에코 상품'이라 적고, 두 번째로는 '에코eco 지수'라 적으며 알파벳을 밝힙니다. 두 번째로 적을 때에 알파벳을 밝혀 적어야 할 까닭이 있었나 모르겠습니다. 옮긴이도 펴낸이도 이 대목을 알아채지 않았습니다. 알아채면서 그냥 넘어갔다고 할 수 있습니다.

 

 ┌ 환경사랑 상품을 고르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 환경을 생각하는 상품을 사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 환경에 도움되는 상품을 즐기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

 ├ 환경사랑 삶을 재는 환경 점수

 ├ 환경을 얼마나 아끼는가를 살피는 환경 지수

 └ 환경에 도움되게 살자고 하는 푸른 점수

 

그나저나, '환경'이니 '자연'이니 '친환경'이니 '그린'이니 '에코'이니 하는 말마디를 앞세우는 모든 물질문명과 제도와 물건과 아파트 들은 우리 네 삶터를 어느 만큼 아끼거나 사랑하고 있을까요. 얼마나 우리 땅을 걱정하고 있으며 어떻게 우리 터전을 살리거나 북돋우고 있는가요. 환경을 생각한다는 휘발유는 어떠한 휘발유요, 이 휘발유를 만들어 파는 회사는 우리 나라를 어떠한 매무새로 돌보거나 살피고 있는지요.

 

말잔치로만 늘어놓는 환경사랑이 아닌가 궁금합니다. 말놀이로만 떠드는 자연주의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입으로만 외치는 푸른삶이 아니겠느냐 싶습니다.

 

우리 스스로 푸른 넋이 되고 푸른 말을 나누며 푸르디푸른 삶을 가꾸어야 비로소 겉으로 내세우는 푸른 무엇무엇이 아니라 할지라도 나를 아끼고 이웃을 아낄 수 있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얼이 푸르고 글이 푸르며 삶터가 푸를 때에 비로소 우리 일과 놀이도 푸른 물결이 넘실거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껍데기를 들씌우는 말을 내놓기만 할 뿐, 알맹이를 채우는 삶하고는 동떨어져 있는 우리들이 아니냐고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2010.02.12 19:44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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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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