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들의 친화력 2탄자니아 잔지바에서만 볼 수 있는 트럭 버스, 촘촘히 끼어앉은 사람들이 예뻐 사진을 찍자고 했더니 흭의 턱을 잡고는 포즈를 취한다
박진희
남미에 비해 아프리카는 영어를 꽤 잘한다. 하지만 처음 도착해서 그들의 발음을 들으면 전혀 영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심한 영국식 발음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너무 생소했다. 예를 들면 쏘까(축구), 쏙스(양말), 만(남자), 노트굿(낫 굿)…. 뭐 이런 식이다. 이렇게 간단한 단어도 내가 알아들을 수 없으니 여행 초반엔 거의 귀머거리나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한국 와서도 노트 굿, 노트 굿(not good) 하며 그들의 발음에 완전 동화되어서 가뜩이나 좋지 않은 발음 더욱 저질이 되고 말았지만.
그래서 영어 쓰기를 일찌감치 포기하고, 그들의 현지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간단한 인사라도 스와힐리어를 쓰면 그들은 너무너무 좋아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외국인이 한국어를 하면 신기해하듯, 우리 입에서 그들의 나랏말이 나오면 반색한다.
아프리카에서 내가 가장 많이 쓴 말은 '하바리 가니'(안녕), '키도고'(조금)이다. 현지어로 인사하면 그들은 깜짝 놀라며 묻는다. "너 스와힐리어 할 줄 알아?" 그러면 나는 손가락으로 작은 표시를 하며 '조금 할 줄 알아'라고 말한다.
그러면 '키도고'라는 단어를 쓰는 나의 모습을 보며 매우 잘한다고 칭찬한다. 나를 춤추게 하는 칭찬에 더욱 열심히 스와힐리어를 배웠고, 배운 것은 어떻게든 써먹으려고 노력했다. 심지어 부족언어인 끼꾸유어로 1부터 10까지 외웠을 때, 마을 사람들은 내게 박수를 쳐주었다.
가끔 외국에서 미국 사람들이 현지어 전혀 배우지 않고, 아주 간단한 말도 영어로만 쓰는 모습을 보면 얄미운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결국 그들은 모국어 하나로 온 세계를 누리는 특권이 있는 거니까. 그래서 다른 나라 언어를 배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거니 좀 무식해 보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어설픈 발음으로 하나부터 열까지 세는, 그런 지극히 사소한 것에 기쁨을 느낀다. 마음 문을 조금 더 열기도 한다. 물건 값을 조금 더 빼주기도 한다. '베리 굿'이라는 표현보다 '무이 부에노' '싸와'라는 나의 말에 더욱 미소 짓곤 한다.
유치원 때부터 죽어라고 배운다는 영어 공부, 영어학습법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아직 생기지도 않은 자녀에 대한 걱정을 하곤 한다. 어떻게 양육할 것인가!
남미에서 만났던 한 친구가 생각이 난다. 미학을 전공한 그녀는 졸업을 앞두고 혼자 6개월 정도 중남미 전역을 여행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중학교 때 처음 혼자 여행을 갔다고 한다. 여행 중에 정말 살기 위해 영어를 습득했다. 우스갯소리로 우리는 그것을 '서바이벌 잉글리시(생존 영어)'라고 불렀다. 나 역시 이 생존 학습법을 써먹어볼 참이다.
중요성을 알아야 즐겁게 배울 수 있는 법이니까. 그러면서 왜 배워야 하는지를 뼈저리게 체험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된다면, '영어'란 것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될 것이다. 혹은 영어가 매우 중요하지만, 취직을 잘하기 위해서 배우게 되진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나름의 경제 가치관도 생길 것이고, 그 나라의 문화나 역사를 온몸으로 체험하게 될 것이다.
빚을 내서라도 사교육비에 목숨 거는 사람들, 단지 그 돈으로 취직 잘하기 위한 영어만 배울 수 있다면, 나는 같은 돈으로 여행을 보낼란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따져봐도 여행을 보내는 것이 일거양득인 것 같다. 물론 아이가 동의하는 조건에서.
아, 물론 나는 그전에 결혼부터 해야 한다.^^
글. 니콜키드박
덧붙이는 글 | 아프리카 여행기 열세 번째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
낙담도 순식간에 뒤집어 즐겁게 살 줄 아는 인생의 위트는
혹시 있으면 괜찮은 장식이 아니라
패배하지 않는 힘의 본질이다.
쪽!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