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무 품속이 아늑해요

등록 2010.02.17 14:47수정 2010.02.17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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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에 사는 지인에게 언제가 가장 좋은지 물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나무의 벗은 모습은 지금이 아니면 볼 수 없다면서 지금의 산 모습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푸른 잎이 우거지고 흐드러지게 꽃피어있는 모습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하는데 벗은 나무의 모습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

 

추운 겨울, 헐벗은 나무들이 늘어선 숲길을 가만가만 걸으면서 그 사람의 말을 음미해본다. 숲속을 거닐어보니 왜 그런지 그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어린 시절 음악교과서에 나와 자주 불렀던 동요가 생각난다. 그땐 이 노래를 부르면 참 쓸쓸했었다.

 

나무야 나무야 겨울 나무야

눈 쌓인 응달에 외로이 서서

아무도 찾지 않는 추운 겨울을

바람 따라 휘파람만 불고 있느냐

 

그렇다. 평생을 살아 봐도 늘 한자리이면서 아무런 불평 없이 넓은 세상 얘기는 바람에게 듣고 흐드러지게 꽃 피던 봄여름 생각하면서 지금 나무는 추운 겨울 휘휘 휘파람만 불어대고 있다.

 

그러나 그 모습이 오히려 따스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더 깊숙이 더 가까이 다가온다. 잎에, 꽃에 가려져 알지 못했던 나무의 품이란 얼마나 그윽하고 고요한지 겨울 숲속에서 배운다.

 

봄과 겨울 사이에 있는 2월의 한파가 대단하다. 그런데도 햇살을 받으며 숲으로 난 오솔길을 걸으면 봄날처럼 포근하고 아늑하다. 헐벗은 나뭇가지 끝에서는 바람소리가 요란해도 아래는 풍랑 잔 바다의 수면처럼 고요하다.

 

양쪽에서 바람을 막아주니 추위 속에서도 추운 줄을 모른다. 마치 부모의 그늘에 사는 아이들이 세상 풍랑 모르고 편안하듯이. 그래서 추운 겨울에도 산책길이 그지없이 행복하다. 맨몸으로 저 바람을 맞이하면 얼마나 추울까. 부모 없이 세파와 맞서 싸우는 아이들은 얼마나 힘들까.

 

산길을 한참 걸으면 몸의 기온이 점점 올라가 마치 42도 열탕 속에 들어앉아있는 것처럼 온몸이 기분 좋게 따뜻해온다. 의학적으로 체온이 1도만 올라도 면역력이 30% 증가한다고 한다.

 

김형경의 심리에세이에 보면 우울증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우울증이 찾아오면 틀림없이 이런 상황 중 하나다. 일주일 이상 운동을 하지 않았거나, 너무 오래 사람을 만나지 않은 채 틀어박혀 있었거나, 심하게 추위에 노출되거나 햇볕을 적게 쬐었을 경우이다. 우울증에서 빠져나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운동이다. 운동복을 갈아입고 20분 정도만 걷거나 달리면 부정적인 생각들이 가라앉고 40분 정도 지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한 시간쯤 지나면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솟아오른다."

 

산길을 걸으면 나무들이 내뿜는 피톤치드와 햇살 그리고 깊은 산속에서만 맛볼 수 있는 맑은 공기가 넘친다. 이렇게 몸도 마음도 치유해주는 자연을 벗 삼아 살면 세상을 향한 욕심도 원망도 근심도 사라져 마냥 좋다.

 

지난 일주일째 해는 나오지 않고 비가 오락가락하더니 강우량이 많아졌는지 산 계곡에는 좔좔 흐르는 계곡의 맑은 물소리가 가슴을 열어주고 귀를 씻어준다. 얼마 만에 들어보는 물소리인지 신선하다. 얼음장 밑으로 졸졸 흘러내리는 저 맑은 물은 어디까지 흘러가고 있을까.

 

새소리도 들려온다. 산속은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사람소리가 어우러져 조화롭고 아름다운 세상이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도 자연처럼 그렇게 어우러져 조화롭고 따뜻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2010.02.17 14:47ⓒ 2010 OhmyNews
#겨울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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