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끝나지 않은 볼거리들
아테네 국립 고고학박물관에는 대리석으로 만든 신상들이 수두룩하다. 이들 신상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의 모습을 조소의 형태로 만든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아마 신상하면 신상품을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신은 포세이돈,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 아테나 등이다. 그 중에서도 더 아름다운 것은 시라큐스 타입의 아프로디테 상이다.
이것은 남부 이탈리아의 바이애(Baiae)에서 발견되었다. 기원전 4세기 그리스에서 만들어진 것을 모방해 로마시대 다시 만들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아프로디테는 나신을 드러내기가 조금은 쑥스러운 듯, 왼손으로 옷을 들어 몸의 중요한 부분을 가리고 있다. 오른손도 왼쪽 젖가슴을 가리려는 자세다. 오동통한 몸매에 부드러운 곡선이 편안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이와 대비되는 또 하나의 작품이 매나드(Maenad) 상이다. 매나드는 디오니소스를 따라다니는 요정으로 또 다른 아름다움의 상징이다. 그녀는 나신으로 동물 가죽 위에 엎드려 잠을 자고 있다. 매나드는 술과 춤을 좋아해서 몽환적인 상태에 빠져드는 여인으로 즐겨 표현된다. 이 작품서도 우리는 나른하면서도 편안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아테네의 국립 고고학박물관에는 예술적으로 뛰어난 조각상들이 널려 있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들을 스케치하는 젊은 미술학도가 보인다. 그녀가 그리고 있는 대상을 살펴보니 디아도메노스(Diadoumenos)이다. 머리에 띠를 두른 젊은 청년으로, 운동경기에서 승리하고 환호하는 모습이다. 이 조각상은 대리석의 재질이나 조각기법, 몸의 비례나 얼굴 표정 등에서 그리스 로마시대 고전주의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스케치북에 그려진 그림을 보니 대상을 포착하는 능력이 대단하다.
1896년 제1회 근대올림픽 주경기장을 지나며
고고학박물관을 제대로 보려면 저녁까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오후 6시 피레우스에서 출발하는 히오스 행 배를 타야 한다. 그래서 오후 4시쯤 박물관을 나온다. 다시 버스를 타고 오모니아 광장을 지나 이번에는 스타디오 거리를 따라 간다. 가이드가 주변의 유명 건물들을 소개하는데 기억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는 잠시 후 기념품점에 들러 올리브 비누와 필요한 책자를 사고, 다시 내셔널 가든을 지나 파나티나이코(Panathinaiko) 스타디움으로 간다. 스타디움으로 가면서 김순자 가이드가 우리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퀴즈를 낸다. 선물도 있다고 한다. 파나티나이코 스타디움은 1896년 제1회 근대올림픽이 열린 곳인데 수용인원이 얼마나 될까 하는 것이다. 가장 근접한 사람에게 상을 주겠다고 말한다.
나는 손을 들어 6만이라고 대답했다. 곧 이어 4만, 8만, 10만이라는 답이 나온다. 김순자 가이드 왈, 6만 내지 7만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나에게 가장 열심히 쫓아다니며 사진을 찍더니 정확히 맞췄다고 우스개 소리를 한다. 차는 곧 이어 스타디움에 도착한다. 잠시 내려 운동장을 보니 아주 반듯하고 훌륭하게 잘 만들었다. 운동장에 이르는 넓은 공간에는 대리석이 깔렸고, 운동장에는 검은 색 트랙이 보인다. 그리고 400m 트랙 안 필드경기장에는 흙이 깔렸다.
이 운동장은 기원 전 330년에 처음 만들어졌다고 한다. 당시에는 나무로 만들어졌다. 그 후 헤로데스 안티쿠스(101-177)에 의해 대리석으로 개조되었고, 이후 모든 운동경기장의 모범이 되었다. 이곳에서는 또 파나티나이코 축제가 열렸고, 그 일환으로 운동경기가 열렸다고 한다. 운동경기 동안에는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그리스의 모든 나라들이 참가해 힘을 겨뤘다. 이것이 고대 올림픽 경기이다.
이러한 고대 올림픽 경기는 그 후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가 1896년 근대 올림픽 경기로 부활한다. 이를 위해 1869-70년 파나티나이코 경기장이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되었고, 메인 스타디움으로 사용되었다. 현장에서 보니 2단의 관중석 위로 오륜마크가 보인다. 오륜마크가 지금처럼 다섯 가지 색으로 되어있지 않고 하얀색이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때는 이곳에서 양궁 경기가 열렸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그때 TV로 경기장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히오스 섬으로 가는 넬 라인스
이제는 아테네를 떠날 시간이다. 아침부터 열심히 문화유산을 보러 다녀서인지 조금은 피곤하다. 한 30분이면 피레우스에 닿을 테지만 잠시 눈을 붙인다. 그런데 조금 있다, 피레우스 항구에 거의 다 왔으니 준비하라고 인솔자가 안내한다. 우리가 탈 배는 넬 라인스(Nel Lines)로 피레우스(Piraeus)와 히오스(Chios)를 왕복하는 여객선이다. 피레우스는 아테네의 외항으로, 에게해로 가는 거의 모든 배들이 이곳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여객터미널에 내리니 수많은 여객선들이 항구에 정박해 있다. 에기나 섬으로 가는 배, 미코노스 섬으로 가는 배, 산토리니로 가는 배, 크레타 섬으로 가는 배가 보인다. 우리는 그 중 히오스로 가는 여객선 넬 라인스에 오른다. 워낙 큰 배여서 걱정이 되지 않는다. 가방을 따로 짐칸에 싣고 우리는 객실을 찾아 간다. 네 명이 쓰는 방이다. 들어가 보니 2층 침대가 두 개 있다. 짐을 풀고 우리는 바로 갑판으로 올라간다. 에게해와 아테네의 야경을 보기 위해서다.
저 멀리 야간 조명을 한 아크로폴리스가 보인다. 그리고 앞쪽으로는 나가게 될 에게해가 어둠에 묻혀 있다. 배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나는 다시 선실로 들어간다. 이제 9시간 후면 에게해의 동쪽 끝 히오스 섬에 닿게 된다. 히오스는 그리스에서 다섯 번째로 큰 섬이면서 산악지역으로 구성된 특징이 있다. 가장 높은 산은 섬의 북쪽에 있는 펠리나이오 산으로 1297m에 이른다.
히오스에는 신석기시대 말부터 주민이 살기 시작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스계 주민들이 살았으나 1349년부터 오스만 터키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1821년 그리스 독립 전쟁이 시작되었고, 1822년 4월 주민들은 술탄이 파견한 군대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 당시 주민 중 2만 명이 죽고 7만 명 정도만 살아남았다고 한다. 프랑스 지성인들은 이러한 대학살에 분개했고, 시와 그림으로 그 실상을 고발했다.
그 중 대표적인 작품이 빅토르 위고의 '히오스의 어린이'와 유진 들라크루아의 '히오스의 학살'이다. '히오스의 학살'은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대작(419㎝X354㎝)으로, 전쟁으로 고통 받는 인간 군상들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그림 오른쪽에 말탄 술탄 군사들이 마을과 주민을 유린하고, 이를 바라보는 백성들은 불안과 공포에 떨며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히오스 섬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보지 못하고
들라크로아의 그림을 보고 사진을 정리하고 나서 침대에 오르니 금방 잠이 든다. 물결에 따라 배가 조금씩 흔들리니 오히려 잠이 잘 오는 것 같다. 중간에 한두 번 잠을 깨기는 했지만 아주 잘 잤다. 아침 4시쯤 배가 히오스에 도착했다고 알린다. 밖에 나와 보니 아직도 어둡다. 서둘러 짐을 찾아 배를 내린다. 겨울이라 그런지 배에서 내리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여름 같으면 관광객이 많아 배표를 구하기도 어렵고 숙소를 구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 배를 뒤로 하고 부두로 나오니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바닷가라 그런지 바람이 차다. 모두들 정신없이 차에 오른다. 우리는 히오스에서 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카르파스에 있는 골든 오딧세이 호텔로 간다. 한국 사람이 경영하는 호텔로 이곳에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하도록 되어 있다. 아침식사는 6시쯤 한다고 하니 아직 두 시간 가까이 시간이 있다. 일부는 식당에서 휴식을 취하고 일부는 로비에서 대화를 나눈다.
나는 종업원으로부터 히오스 섬 지도를 하나 산다. 그곳에 보니 히오스 섬의 역사와 지리, 교통, 문화유산, 특산품 등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그 중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이 네아 모니(Nea Moni) 수도원과 매스틱 나무다. 네아 모니 수도원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고, 매스틱 나무는 히오스 섬에서만 자라는 특별한 나무다.
이 나무는 키가 1.5-3.5m에 달하는 상록수로, 나무 둥치에서 송진 비슷한 추출물이 나온다고 한. 이것이 반투명의 고체로 변하는데 약리작용이 있어 기능성 제품을 만드는데 사용된다. 그래서 매스틱 치약, 비누, 사탕, 음료수 등이 만들어진다. 치아를 희게 하고 잇몸을 건강하게 해준다고 해서 특히 치약이 많이 팔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비누 역시 피부 미용에 좋다고 한다.
네아 모니 수도원은 히오스 시에서 서쪽 내륙으로 조금 들어간 곳에 있다. 스필라키아 산악 지역에 있으며 11세기에 비잔틴 양식으로 지어졌다. 1822년 히오스 학살 때 폐쇄되었고, 1881년 지진으로 파괴되기도 했다. 1952년부터 수녀원으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다시 수도원이 되었다고 한다. 이 수도원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모자이크로, 마케도니아 르네상스 양식으로 되어있다. 마케도니아 르네상스 양식은 마케도니아 왕 바질 1세의 통치기인 8세기 후반에 시작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수도원을 볼 수가 없다. 6시에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8시에는 터키의 체쉬메로 가는 배를 타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네아 모니 수도원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라는 사실도 이곳에 와서야 알았으니 할 말이 없다. 그래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을 연구하는 나로서는 아쉬움이 많다. 다음을 기약하는 수 밖에 없다.
아침 해가 솟아 오르면서 기온도 조금 올라가고 날씨도 좋아진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다시 히오스 항구로 간다. 우리나라 사람이 경영하는 골든 오딧세이 호텔이 잘 되기를 기원하면서. 항구에 도착하니 터키 선적의 작은 여객선 에르튀르크 호가 기다리고 있다. 에게해를 건너온 넬 라인스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작다. 그래도 우리를 터키 땅으로 안전하게 건너다 줄 고마운 배다. 히오스 항에서 체쉬메 항까지는 1시간 정도 걸린다.
2010.02.23 22:29 | ⓒ 2010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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