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와 멧돼지가 안내하는 곳에 세운 도시?

[그리스, 터키, 네덜란드 패키지 여행, 해볼 만하다] ⑨ 바닷가에 터를 잡은 에페수스

등록 2010.02.25 11:29수정 2010.02.25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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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오스 항과 석회암 산 ⓒ 이상기


배가 떠나면서 히오스 섬을 돌아보니 산이 밝은 회색으로 보인다. 그것은 산이 석회암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곳 히오스 섬은 내륙으로 갈수록 산악이 발달해 있어서 농사를 짓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자연경관과 온천을 이용한 관광이 히오스 경제를 이끌고 있다. 이제 배는 점점 터키 쪽으로 다가간다. 저 멀리 터키 땅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유럽을 떠나 다시 아시아로 들어가는 것이다.

한 시간 가까이 지나니 체쉬메 항구가 나타난다. 체쉬메는 이즈미르 서쪽 85㎞ 지점에 있는 작은 항구지만, 깨끗한 모래와 맑고 차가운 물 때문에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체쉬메라는 지명도 샘(fountain)이라는 터키어에서 나왔다고 한다. 배가 항구에 접근하면서 성이 하나 보인다. 체쉬메를 방어하던 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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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쉬메 성 ⓒ 이상기


이 성은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현재의 모습을 갖춘 것은 십자군 전쟁 말기인 1500년 전후이다. 당시 오스만 터키의 술탄이던 바예지드 2세(1481-1512)가 십자군의 침입을 막기 위해 1508년 성을 확장하고 강화했다고 한다. 현재 성은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쓰이고 있다. 박물관에는 고고학 유물들이 있고, 미술관에는 셀주크와 오스만 터키 시대의 예술품들이 있다고 한다. 멀리서 보니 성벽의 외부 구조물만 보인다.   

체쉬메에서 이즈미르를 거쳐 에페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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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 변으로 펼쳐진 이즈미르 시 ⓒ 이상기


체쉬메 항구에서 배를 내리니 바로 입국 심사가 이루어진다. 히오스와 체쉬메는 아시아와 유럽을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출입국심사가 꽤 까다로운 편이다. 입국심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터키 가이드인 김준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살이 좀 찌고 피부가 검고 가죽 잠바를 입고 있는 모습이 여느 가이드와는 상당히 다르다. 말투도 직설적이어서 첫 인상은 별로다.

차에 타자 김준씨가 자신을 소개하고는 안내를 시작한다. 그런데 한 마디로 말이 청산유수다. 또 전달하는 콘텐츠도 정확하고 내용도 풍부하다. 더욱이 역사의식까지 갖추고 있어 가이드로는 제격이다. 우리가 역사와 문화유산을 공부하는 단체라고 해서 특별히 배려했다는 생각이 든다. 김준 가이드는 터키를 안내하는 5일 동안 해박한 지식으로 우리를 감동시켰다. 가끔 막말을 하거나 조금 퉁명스런 것을 뺀다면 그는 최상의 가이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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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추크에 있는 오스만 터키시대 성 ⓒ 이상기


차는 이제 에페스(Efes)로 향한다. 에페스로 가려면 고속도로를 타고 우르라를 지나 이즈미르를 우회해야 한다. 에페스는 지금 아주 조그만 도시이기 때문에 지도상에서는 셀추크(Selçuk)를 찾아야 한다. 셀주크도 인구 2만3000의 작은 도시지만, 에페스는 이제 거의 고대유적만 남아있는 폐허이기 때문이다.


아르테미스 신전 터에서 본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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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테미스 신전터 ⓒ 이상기


우리는 먼저 셀추크 시내 아타튀르크 거리로 접어든다. 오른쪽으로 아야술룩 언덕에 오스만 터키 시대에 세운 성이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 보고자 하는 것은 아르테미스 신전과 에페스 유적이어서 서북쪽으로 차를 몬다. 3-4분쯤 갔을까, 차는 허름한 곳에 우리를 내려준다. 언덕 아래로 낮게 습지가 조성되어 있고, 그 가운데 1개의 석주가 우뚝하다. 주변에는 폐허가 된 신전의 남은 건축 자재들이 널려있다. 이곳이 아르테미스 신천 터다. 한 마디로 세월의 무상함을 느낄 수 있다.

에페스의 고대 이름은 에페수스이다. 에페수스는 한때 로마 제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였다. 기원 전 1세기에 이미 인구가 25만 명이 넘었다. 이때가 에페수스의 전성기이다. 기원전 27년 아우구스투스가 황제가 되자, 페르가뭄 대신 에페수스를 아시아 지역 수도로 삼았다. 이후 에페수스는 소아시아 지역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가 되었다. 기원후 100년 경 에페수스의 인구는 40-50만으로 추산된다. 에페수스는 2세기까지 전성기를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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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기의 에페수스 유적 ⓒ 이상기


에페수스는 기원전 10세기 안드로클로스(Androklos) 왕자에 의해 아야술룩 언덕에 처음 건설되었다. 그는 델피의 신탁을 받아 '물고기와 멧돼지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 아야술룩 언덕에 도시를 건설했다고 한다. 안드로클로스와 그의 개에 대한 일화는 2세기에 만들어진 하드리아누스 신전 벽면에 부조되어 있다. 나중에 그리스의 파우사니아스, 로마의 헤로도투스 같은 역사가들은 이 도시를 세운 것이 아마존의 여왕 에포스(Ephos)라면서 도시 이름을 신화와 연결시키고 있다.
 
에페수스는 그리스 시대인 기원 전 550년 경 아르테미스 신전으로 그 이름을 세계에 떨친다. 아르테미스 신전이 고대 7대 불가사의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신전은 기원전 356년 헤로스트라투스의 방화로 파괴된다. 에페수스 사람들은 이에 분노해서 그를 고문해 죽였고, 그의 이름을 영원히 말살하려고 했다. 기원전 323년부터 아르테미스 신전을 재건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완성에 이르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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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된 신전 ⓒ 이상기


기원후 2세기에 나온 <요한 행전(Acts of John)>에 보면 아르테미스 신전의 파괴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온다. 사도 요한이 대중들이 있는 가운데 아르테미스 신전에서 기도하니 악마의 령이 나오면서 신전의 제단이 산산조각 났다고 한다. 그러면서 신전의 절반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이에 대중들은 울거나 기도하면서 기독교로 개종했다고 한다. 262년에는 게르만의 일족인 고트족에 의해 또 다시 파괴되었고, 기독교의 공인과 함께 우상숭배의 장으로 여겨져 더욱 더 파괴되었다.

그리고 391년 테오도시우스 1세에 의해 모든 신전은 폐쇄되었고, 401년 콘스탄티노플 대주교인 성인 요한 크리소스토모스에 의해 아르테미스 신전 역시 완전히 파괴되었다. 그리고 이 신전에서 나온 석재와 장식은 소피아 사원(Hagia Sophia) 등 종교건축을 짓는데 사용되었다. 아르테미스 신전 터가 다시 발굴된 것은 이후 1450여년이 지난 1869년이다. 영국박물관의 후원을 받은 존 터틀 우드가 1874년까지 발굴을 했고, 이들 유물은 현재 영국박물관의 에페수스 실에 보관되어 있다. 

내륙과 바다를 왔다 갔다 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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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기의 에페수스 모습 ⓒ 이상기


에페수스의 역사는 아야술룩 언덕에서 시작해 아르테미스 신전 지역으로 옮겨진다. 기원전 334년에는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 군을 물리치고 소아시아 지역을 점령한다. 이때부터 에페스는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을 받게 된다. 기원전 290년부터 에페수스는 알렉산더의 부하였던 리시마쿠스 장군에 의해 통치된다.
 
그런데 이 지역에 말라리아가 창궐하고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었다. 그래서 현재의 에페수스 유적지가 있는 바닷가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 후 에페수스는 이집트와 페르가몬 왕조의 지배를 받는다. 페르가몬 왕조의 지배 하에서 에페수스는 어느 정도 도시 기반을 조성했으나, 기원전 133년 아탈루스 3세가 죽으면서 도시의 소유권은 로마에 넘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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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페수스의 음악당 ⓒ 이상기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에페수스가 세계적인 도시로 성장한 것은 아우구스투스가 로마 황제로 등극하는 기원전 27년이다. 이후 200년 동안 에페수스는 소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로 영광을 누린다. 통치자는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도로를 만들고 수로를 만들었으며 대중목욕탕을 만들었다. 또 시장을 만들고 도서관을 만들었으며, 극장과 음악당 그리고 운동장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영광은 263년 고트족의 침입으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다. 비잔틴 제국의 콘스탄티누스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때 잠시 옛 영화를 되찾기도 했으나, 614년 지진이 나면서 도시의 상당부분이 다시 파괴되었다. 또 강의 하상이 높아지면서 에페수스가 차츰 항구로서의 기능을 잃게 되었다. 그러므로 에게해를 대상으로 하는 무역업이 쇠퇴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경제력의 상실로 이어졌고, 사람들은 에페수스 해안을 떠나 다시 언덕이 있는 아야술룩 지역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654-655년에는 아랍 사람들이 이 도시에 들어왔고, 700년대 들어서 에페수스의 추락은 가속화되었다. 셀주크 터키가 이곳을 지배하게 되는 1,090년에 에페수스는 이미 작은 마을로 변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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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아르테미스 신전 ⓒ 이상기


고대 7대 불가사의는 고대 지중해 연안에 있던 가장 두드러진 건축물과 조각품을 말한다. 이들 7대 불가사의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 이들 견해를 종합하여 현재는 다음 7가지를 고대 7대 불가사의로 부른다.

이집트 기자의 피라미드, 바빌론의 공중정원, 올림피아의 제우스신상, 로도스 섬의 콜로서스, 에페수스의 아르테미스 신전, 할리카르나소스의 마우솔루스,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등대.

기원전 1세기 후반 시돈에 살았던 안티파터(Antipater)는, 이들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아르테미스 신전이 가장 뛰어난 것으로 생각한다. 기원전 140년경에 나온 <그리스 시화집>(9권 58장)에 보면, 그는 아르테미스 신전의 위대성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나는 바빌론 성벽, 제우스 신상, 공중정원, (로도스)의 콜로수스, 높은 피라미드, (할리카르나수스의) 마우솔루스 무덤을 보았다. 그러나 구름에까지 미치는 아르테미스 신전을 보았을 때, 다른 대리석 작품들은 빛을 잃었다."

#에페수스 #셀추크 #아르테미스 신전 #아야술룩 언덕 #에페수스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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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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