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의 존재감 부재

환골탈태의 기회 상실한 대가

등록 2010.02.26 19:52수정 2010.02.26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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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한민국의 정치판에는 야당이 없다. 이름조차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그 존재감이 희미해졌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친이계는 여당노릇을 하고 친박계는 야당노릇을 하는 것처럼 보이나,  진짜 야당은 점점 국민의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가는 듯하다. 좋은 야당이 없는 정치는 그 나라의 미래를 어둡게 할 뿐 전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답하기에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혹자는 야당에 주목을 끌만한 인물이 없어서 그렇다고 말한다. 또 야당이 여당과 구별될만한 정책적 차별성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한나라당 내의 양대 계파 간 갈등이 워낙 부각되어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모두 일 리는 있는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보다 근원적인 문제는 지역구도에 있다. 얼핏 이해가 안 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대한민국의 정치는 지역구도가 지배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고, 인구구조의 변화가 지역 구도를 강화하여 지금의 결과를 낳은 것이다.

 

지역구도 정치의 근원을 살펴보자. 해방과 정부수립 이전부터 영남과 호남간의 지역감정이 존재했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리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문제는 박정희 군사정권의 집권과 독재 그리고 지역편중 개발에서 태동하기 시작한다. 선거에서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집권세력의 책략(보리문둥이 단결론)이 있었고, 특히 1971년 대선에서 호남의 김대중 후보와 영남의 박정희 후보라는 대결구도는 결과적으로 지역구도의 단초가 되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영, 호남 간 지지도가 그리 확연히 갈리지는 않았다. 차라리 도시와 농촌의 지지가 훨씬 두르러지게 갈려 있었다. 이른바 여촌야도의 구도가 그 것이다. 또 영남도 부산과 경남지역은 김영삼을 중심으로 야당을 지지하는 현상이 뚜렷했기 때문에 여야가 나름의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1987년 다시 직선제에 의하여 대선이 치러질 무렵에는 전국이 4등분된 구도를 하고 있었다. 대구와 경북은 민정당과 노태우, 부산과 경남은 통일민주당과 김영삼, 호남은 평화민주당과 김대중, 충청지역은 신민주공화당과 김종필이었다. 그렇게 해서 이른 바 지역할거 구도가 완결을 보았다. 그나마 야당이 3개로 나뉘기는 했지만 집권세력을 견제할 수는 있었으니 반드시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후에 총선에서 여소야대의 구도가 만들어진 것도 나름 의미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여소야대의 정국에 부담을 느낀 집권세력이 인위적 정계개편을 시도하면서 한국정치를 결정적으로 망치는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다. 노태우의 민정당과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 그리고 통일민주당의 김영삼이 3당 합당을 한 것이다. 김종필이 민자당에 합류한 것은 크게 이상할 것이 없으나 민주화 운동의 한축이었던 김영삼이 참여한 것은 아무리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야합이다. 호남을 지지기반으로 하는 평화민주당의 김대중만 야당으로 남아있는 구도가 되었다. 호남을 제외한 전국이 정치적으로 뭉쳐지고 호남이 고립되는 구도가 된 것이다. 한국정치를 망친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야합은 매우 부당할 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한국정치를 망치는데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첫째, 국민이 집권 군사정권을 견제하라고 선출해준 정치인들이 군사정권과 야합 했으니 국민과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린 것이고, 둘째는 정치인들이 신의를 저버리고 이익을 쫓아 야합하고도 집권하는데 성공하여 매우 나쁜 선례가 되었다. 이후 수많은 철새정치인이 탄생하는 시금석이 된 것이다. 셋째는 독재세력을 승계한 자들이 민주주의를 추구하던 정치세력을 압도하는 구도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게다가 3당 야합에 의하여 집권한 김영삼은 사상초유의 외환위기를 초래하고 말았다. 온 국민이 오래오래 기억하고 정치적으로 응징을 가해야할 일이다. 국가부도의 위기를 초래한 집권세력을 쉽게 용서하는 나라는 없다. 물론 10년간 반대세력에게 투표하여 민주화세력의 집권을 가능하게 했다고는 하나 여전히 높은 한나라당 지지율을 보면 너무 이른 용서가 아닐 수 없다. 이 또한 한국정치가 3당 합당으로 형성된 지역구도에 매몰되었기 때문이리라.

 

이제 지역구도 정치의 중심인물들은 모두 정치의 일선에서 물러났다. 문제는 그들이 남긴 정치구도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점이다. 지금 대표적 야당이라고 하는 민주당은 결국 호남을 지지기반으로 겨우 존립하고 있다. 수도권을 제외하고 나머지 전 지역의 인구를 합해도 영남인구보다 현저히 적다. 이제 지역적 기반을 수호하는 방식으로는 한나라당의 영구집권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지점에 한국정치의 절망적 요소가 자리한다.

 

지금 민주당의 낮은 존재감은 바로 그러한 구도의 문제이다. 또 거기에 더하여 이명박 대통령이 수도권 패권주의에 앞장선 서울시장 출신이라는  점도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금 한나라당의 내부 마찰은 이런 정치구조 아래서의 차기구도를 둘러싼 득실계산에서 나오는 것이다. 세종시가 중심적 문제처럼 부각되고 있지만 사실은 차기에 누구를 대선후보로 정할 것이냐는 권력다툼의 문제가 더 핵심이다.

 

친이계는 수도권패권주의를 중심으로, 친박계는 박근혜 전대표의 높은 지지율을 중심으로 집권전략을 구상하며 충돌하고 있다. 이들에게 야당들은 그리 위협이 되지 못한다. 이미 지역구도가 야당의 집권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두었기 때문에 한나라당 후보가 되기 위한 경쟁이 대선보다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 제 1 야당인 민주당의 존재감 상실은 이러한 구도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집권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주목을 받지 못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민주당의 잘못이 없이 희생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그들이 구도에 희생된 점이 있다손 치더라도 스스로 국민의 사랑을 받을 만큼의 노력을 하지 못한 점은 처절한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민주당의 잘못은 무엇인가? 3김정치가 끝나는 시점에서 한국의 정치는 중요한 업그레이드를 했어야 마땅하다. 특히 일인보스와 다수의 추종자로 구성된 정당의 구조를 혁파하고 새로운 민주적 정당의 전형을 구축하여 국민에게 다가섰어야 마땅하다.

 

여전히 지역을 기반으로 자신들의 국회의원 자리나 지방자치단체장 등 선출직을 획득하고 지키는데 집착할 것이 아니라 지역구도 정치를 압도할 정도의 가치지향과 정당민주주의를 확립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수도권 기득권을 수호하려는 세력에 대항하여 강력한 지방분권의 패러다임을 제시했어야 하지만 그런 이슈를 한나라당내 친박계에게 선점당하고 말았다.

 

또 여전히 정당의 의사결정 구조는 낙후되어 계파간의 나눠먹기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정치인들이 만든 유령정당이 아니라 민주적으로 구성된 정당이 정치인들을 끼워내는 구조를 만들었다면 국민의 상당수에게 어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미 성공한 전례도 있다. 2002년 국민경선으로 불리하던 대선구도를 유리하게 이끌었던 것이 그것이다.

 

정당은 여전히 국민과 유리되어 정치인들끼리 나눠먹는 구조이니 국민의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가 없다. 사실 여당과의 정책적 차별성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희미하다. 오로지 정치인들의 이익 나눠먹기에만 관심을 갖고 정당의 민주화도 정책적 지향점도 상실하였기 때문에 아무도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지역구도가 한국정치를 지배한다면 한나라당은 영원히 집권할 것이다. 그것을 극복하려면 확실히 다른 이슈와 확실히 다른 정당의 구조를 만드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 여전히 유령당원들을 만들고, 정치인들이 대의원 숫자를 나눠먹으며, 그런 유령과 같은 대의원들이 의사결정을 하는 정당이 국민과 호흡하고 국민 속으로 파고들 방법은 없다.

 

한국정치가 한나라당내 계파간의 경쟁에만 초점이 맞춰지고 야당들이 소외되고 있다면, 야당이 살 길은 진정한 민주정당의 모습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확실히 한나라당과 차별화된 서민과 대중의 삶에 천착하는 정책지향을 분명히 보이는 것이다.

 

한나라당과 비슷한 기득권층 비위맞추기로는 점점 존재감을 상실해갈 뿐이다. 올바른 야당이 없는 정치는 국민에게 재앙이며 나라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든다. 뭔가 달라진 바른 야당이 있어야 정치에서 일말의 희망을 찾을 수 있지 않겠는가? 야당들의 환골탈태가 진정으로 필요한 때이다.

덧붙이는 글 | 호주에서 발행되는 주간 코리아타운에 실린 글입니다.

2010.02.26 19:52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호주에서 발행되는 주간 코리아타운에 실린 글입니다.
#친이계 #친박계 #민주당 #세종시 #지역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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