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제, 그 쓸쓸한 축제

전설이 되어가는 풍경을 만나다

등록 2010.02.28 11:32수정 2010.02.28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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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 사회였기 때문에 자연의 영향을 많이 받고 살았던 탓인지 우리 조상들은 모든 사물에 정령이 있다고 여겼다. 때문인지 유달리 모시는 신이 많았다. 
하늘의 해와 달과 별, 조상신, 땅 위의 산과 나무는 물론 집에도 터주, 성주, 조왕신 등….
어쩌면 우리는 신의 나라에서 살았는지 모른다.


신이 많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의 하나는 우리 조상들의 삶이 현세에서 의지처를 찾아야할 고통스러운 일 즉 가난, 질병 등 너무 고달픈 일이 많았기 때문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내세보다는 현세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자손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현실중심의 사고가 많아 신을 모시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알 수 없는 내세보다는 눈에 보이는 현실을 더 중하게 여기는 기복신앙 때문에도 많은 신을 가까이 모시고 살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우리 속담에 "산개가 죽은 정승보다 낫다."는 말이 있는데 우리 조상들이 현실을 중히 여겼음을 알 수 있는 사례 아닌가 한다.

정월 대보름 마을의 당제도 고달픈 세상살이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염원,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단결과 농사의 풍년을 기원을 담아 마을의 수호신이라고 하는 산, 거목, 큰 바위 등에 모시는 제사였다고 이해한다.

숙지원이 있는 우리 마을 안에 대여섯 그루의 아름드리 느티나무들을 거느린 오래된 당산나무가 있다. 사계절 마을을 아늑하게 해주는 풍치림이면서 여름이면 마을 사람들의 휴식처가 되어준 당산 나무다. 


그 당산 나무에 당제를 모신다는 이야기는 이미 들었다. 아직도 당제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는 했지만 그간 한 번도 참석하지 못했는데 금년에는 시골 당제를 어떻게 모시는지 궁금하여 벼르다가 구경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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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산나무 당제를 준비하기 위한 물품들과 당산나무. 화려한 과거의 영광이 건물 벽에 걸려 있고 당산나무에는 금줄이 쳐있다. ⓒ 홍광석


마을 사람들의 단결과 화합을 위한 축제.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

정월 초사흘이 넘으면 당산 나무에 금줄을 치고 마을 사람들은 제관을 뽑고 당제에 쓸 술도 익혔을 것이다. 장정들이 지게로 장을 봐서 나르고 부녀자들은 온갖 음식을 장만 했을 것이다. 
마을 창고에 있던 북과 장구는 먼지를 털고 풍물놀이에 입을 옷도 손을 봤을 것이다.
전날이면 큼직한 돼지 멱따는 소리도 들렸을 것이다.

그리고 당제를 모시는 날 밤이면 부녀자들도 모처럼 집 밖을 나와 푸짐한 음식을 나누고, 남자들은 거나하게 술도 한잔 했을 것이다. 아이들도 눈치 보지 않고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었을 것이다.
마을 개들도 고시레 음식에 배를 불렸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찾아간 축제였는데….
퇴색한 그림 같은 풍경이 그곳에 있었다.
아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젊은이들도 보이지 않았다.
점퍼 차림의 노인 세 사람이 힘겹게 꽹과리와 북, 그리고 징을 들고 여태 들어보지 못한 가락으로 흥을 돋우고 있었다.

영농회장님께 언제쯤 제를 올릴 것이냐고 물었더니 7시라는 답변이었다. 그러면서 음식을 장만할 사람들이 없어 돼지 머리는 장에서 사오고, 떡도 맞추었다는 설명이다.
남평읍내 자연 마을 가운데 당제를 지내는 곳이 3곳뿐인데 우리 마을이 그중의 하나라고 자랑도 했지만 비까지 내리는 날씨만큼이나 쓸쓸한 풍경이었다.

옛날에 당제는 엄청나게 큰 행사였다는 이야기, 그 때는 집집마다 당산나무에 고사를 지냈다는 이야기, 한때 당제를 중단한 적이 있는데 계속 마을의 젊은이들이 죽거나 다치는 사고가 발생하여 다시 당제를 모시게 되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오가는 것을 듣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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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제 비가 시작하는 시간, 세 노인이 꽹과리, 북, 징을 치고 있는 모습이 오늘 농촌의 현실, 우리 문화의 현 주소 같아 순간 가슴이 막혔다. ⓒ 홍광석


이제 마을 사람들도 다양한 종교를 갖게 되어 당제를 미신이라고 거들떠보지 않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나 역시 당제에 종교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당제가 우리의 소중한 문화라는 관점에서 볼 때 사위어가는 듯한 당제의 모습을 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정월 대보름의 달맞이, 달집태우기는 이제 어쩌다 방송에서나 볼 수 있는 행사가 되었다.
이제 보름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희어진다는 속설을 믿을 아이들은 없을 것이다.
당산나무에 소원을 비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지신밟기를 아는 어른도 많지 않을 것이다.
보름날 아침 더위를 파는 풍습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될까.
오곡밥과 갖가지 나물을 먹었던 까닭을 가족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 주부들은 또 얼마나 될까?  

이제 남은 노인들마저 사라지고 말면 정월 대보름마저 잊힐지도 모를 일이다.
달맞이, 쥐불놀이, 부럼깨기, 더위팔기, 오곡밥, 그리고 당제조차 사전에서나 찾을 수 있는 낱말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문화의 뿌리인 농촌에 사람이 사라지고 전통 문화는 흐릿한 윤곽으로 남아 또 다른 전설이 되어간다. 노인들만 남아 힘겹게 지키고 있는 농촌.
빗줄기는 점점 거세지는데 당산나무는 무슨 생각을 할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겨레 필통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한겨레 필통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당제 #대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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