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10.02.28 17:53수정 2010.02.28 17:53
이제 다시 길을 나서면 종로구 신문로의 옛 경희궁지 위치하고 있는 '서울역사박물관'이다. 박물관은 지난 1993년 착공하여 1997년 준공했다. 부지 7434㎡, 연면적 2만 130㎡ 3층 규모로 전시실과 시청각실·강당·휴게실·뮤지엄숍·물품보관소·카페테리아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난 이곳에 갈 때마다 우리 정부가 온전한 모습의 경희궁을 복원할 의지가 거의 없음을 느낀다. 서울시 땅에 그것도 예전의 궁궐터에 역사박물관을 지어 역사를 말하면서 역사복원에는 무관심한 태도가 늘 의아하다. 아무튼 경희궁의 옛터에는 현재 박물관을 비롯하여 서울시교육청, 기상청 분관, 경찰박물관, 서울시립미술관 분원 등이 들어와 있다.
이번에 박물관에 간 것은 박물관 내부 보다는 뒤편에 흉물스럽게 방치돼 온 방공호를 보기 위해서다. 최근 서울시에서는 일제 강점기 공무원과 학생들을 강제 동원하여 만든 방공호를 유물 수장고로 활용한다고 밝혔다.
길이 100m, 폭 9.3m, 높이 5m의 2층짜리 터널식 건물인 이 방공호는 1944년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조선총독부 체신부 직원과 경성공립중학교(현 서울중·고등학교) 학생들이 강제 동원됐다. 방공호로 지어지기는 했지만, 일제가 패망하여 한 번도 방공호로는 쓰이지 않은 이 건물은 외벽이 3m 두께로 지어졌으며, 내부에 10여개의 작은 방이 있다.
박물관은 최근 서울 시내 곳곳에 뉴타운 관련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면서 땅속에 묻혀 있던 유물과 유적들이 많이 발견되자 이를 보관할 장소를 찾다가 방공호를 활용하는 계획을 수립했다. 현재 박물관의 수장고는 70% 정도 차 있어 별도의 보관 공간 확보가 시급했다. 이에 방공호를 항온, 항습 시설을 갖춘 수장고로 개조해 활용할 방안이라고 한다.
나는 사실 잘 판단이 되지는 않지만, 일제의 만행을 그대로 알려주는 전시장으로 이 방공호가 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동안 경희궁 관리 창고로 사용되다가 이제부터는 박물관의 수장고로 쓰인다고 하니 약간은 기쁜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일제의 만행을 알리는 전시관으로 개조하여 쓰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방공호의 앞과 위에 올라 '경희궁(慶熙宮)'의 뒤편을 바라보기도 한 다음, 다시 담을 돌아 경희궁 안으로 들어갔다. 경희궁 자리는 원래 인조 임금의 생부인 정원군의 잠저였는데, 여기에 왕기(王氣)가 서렸다고 하여 광해군이 빼앗아 궁궐을 지은 곳이다.
숭정전(崇政殿)·융복전·집경당·흥정당·회상전·흥화문(與化門) 등의 여러 부속건물이 있었으나 1829년(순조 29) 화재로 대부분이 소실되었으나, 1831년에 중건하였다. 이후 국권피탈 때에는 숭정전·회상전·흥정당·흥화문·황학정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일본인들이 들어와 숭정전은 1926년 일본인이 만든 일본 절 조계사의 대웅전으로 팔려나가 현재는 동국대 구내에 위치한 절인 정각원의 본당으로 쓰이고 있다. 보존 가치가 거의 없어 동국대에서 그대로 쓰고 있으며, 현재의 경희궁 숭정전은 1988년에 설계도대로 복원을 한 것이라 새 건물로 별로 기품이 없는 것이 아쉽다.
또한 흥정당은 광운사(光雲寺)로 이건하였으며, 흥화문은 이토 히로부미를 추모하는 신사인 박문사(博文寺)의 산문으로 이축되었다가 장충동 영빈관 정문, 신라호텔의 정문으로 사용되다가 1988년에 원래의 위치에서 약간 벗어난 현재의 경희궁 정문으로 이전 복원되었다. 활을 쏘던 황학정은 1922년 사직단 뒤 등과정 터로 이건되어 현재 그 자리에서 남아있다.
경희궁에서 주목해서 보아야 할 건물은 태령전(泰寧殿)으로 영조 임금의 살아있을 당시 자신의 어진을 그려 이곳에 보관하였던 곳이다. 보통 선왕들의 어진을 그려서 보관하는 선원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조의 경우 자신의 어진을 태령전에 그려 보관하게 했다.
일제의 의해 파괴되었던 건물은 1988년 경희궁 복원사업에 의해 복원되었고, 태령전이라는 글씨는 석봉 한호의 글을 집자하여 만들었다. 현재 어진의 원본은 박물관에 보관 중이며, 영인본인 이곳에 그대로 전시되어 있어 볼만하다.
너무나 많이 파괴되어 궁궐 같지 않은 궁궐인 경희궁을 나오면서 우측에 있는 서울시립미술관 분원과 옛 경성공립중학교(현 서울고) 터를 알리는 표식을 본다. 그리고 흥화문을 나와 내일신문사와 이곳을 끼고 돌아 우측에 '경찰박물관(警察博物館)'으로 간다.
연우가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 인근의 영어유치원에서 매주 토요일 강의를 들은 다음, 시간이 되면 점심을 먹고서 간혹 찾았던 곳이다. 경찰이 되고 싶다고 말하던 연우가 귀엽다는 생각에 이곳을 방문하면서 경찰의 유래와 현재의 모습, 복장, 총 쏘는 사격장 등이 있어 좋은 공부가 될 것 같아 자주 방문했었다.
경찰박물관은 한국 경찰의 65년 역사를 살펴볼 수 있도록, 각종 관련 유물과 역사적 자료를 수집하여 보존·관리·전시하고 있다. 1995년 8월 창립 50주년을 맞은 경찰이 경찰 관련 사료를 모아 임시 사료관을 열고 자료 전시를 시작한 것이 그 기원이다. 같은 해 9월 1일에는 사료관 시설공사를 시작하고, 경찰청 보관 사료인 유품 180점, 문서 101점, 무기 57점 등 총 436점을 인수하였다.
1995년 11월 경찰박물관으로 정식 개관했다. 총면적 675㎡로, 총 5,025점의 소장 자료 중 1,676점을 조선시대·민족수난기·건국경찰·구국경찰·호국경찰 등 시대별 전시 및 인물·총기·장비·문서·세계경찰 등 주제별로 나누어 전시하고 있다.
전시품 중에는 조선시대의 포졸들이 사용한 육모방망이를 비롯하여 북에 남파된 간첩들로부터 노획한 각종 장비와 근래의 시위 진압 장비, 역대 치안총수 관련 자료, 세계 각국의 경찰복장 및 장비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자료들이 있다.
이 밖에도 1950년대의 경찰 백차와 순찰용 사이드카, 장택상 초대 수도청장의 퇴임기념 은잔, 조병옥 박사의 거북 등뼈로 만든 안경테 등 역대 경찰 수뇌들의 유품과 1924년 한국에 최초로 세워진 중부경찰서의 상량판(上樑板) 등 이색적인 사료들이 많다. 별도로 마련된 중앙관에는 경찰백차, 포돌이·포순이, 기념패류 및 사진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나는 경찰복을 입어보고, 사진도 찍고 형무소 경험을 할 수 있는 감옥에도 들어가 보고, 총을 쏘기도 하면서 놀다가 연우랑 같이 오지 못한 것을 후회하면서 이곳을 나왔다. 당일에는 유치원생들과 초등학생들이 부모랑 같이 많이 와 있었다.
경찰박물관을 나와 이동한 곳은 강북삼성병원 내부에 있는 김구 선생의 사저인 '경교장(京橋莊)'이다. 이화장(梨花莊)·삼청장(三淸莊)과 함께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 건국활동 3대 명소의 하나로 불린다.
친일파 최창학 소유의 별장이었던 이 집은 1938년 완공 당시에는 죽첨장(竹添莊)이라 하였으나, 최창학이 김구에게 넘긴 이후에는 김구가 경교장이라 개칭하였다. 1945년 11월 임시정부 국무위원들과 함께 귀국한 김구는 1949년 6월 26일 경교장 집무실에서 육군 소위 안두희에게 암살되기까지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건국에 대한 활동 및 반탁, 통일운동을 이끌었다.
현재 건물 2층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김구 선생의 옛 집무실이 원형대로 복원되어 김구 기념실로 운영되고 있다. 정문 앞에서는 나는 김구 선생을 기리는 기도를 하고 나왔다. 아직도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대접받지 못하고, 안두희 같은 사람들이 판치는 세상이라 마음이 아플 뿐이다.
역사문화와 함께하는 종로 중구걷기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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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8 17:53 | ⓒ 2010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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榴林 김수종입니다. 사람 이야기를 주로 쓰고 있으며, 간혹 독후감(서평), 여행기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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