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더위는 팔았나요?

등록 2010.02.28 18:09수정 2010.02.28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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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나물, 오곡밥, 명태찌개로 차린 밥상

나물, 오곡밥, 명태찌개로 차린 밥상 ⓒ 김동수

나물, 오곡밥, 명태찌개로 차린 밥상 ⓒ 김동수

"인헌아!"

"예"

"내 더위 사가라."

"그게 무슨 말이예요?"

"응 정월 보름날 아침에 이름을 불러 대답을 하면 '내 더위 사가라'고하는 거다. 올 여름 더위를 파는 것이지. 여름은 덥지. 그러니까 더위를 팔면 시원하게 지낼 수 있다는 말이야."

"너도 다른 사람 이름 불러 더위를 팔면 된다."

"정말 더위를 팔 수 있어요?"

"우리나라 풍습이다. 재미있잖아."

 

아들에게 더위를 이렇게 팔아 먹었습니다. '내 더위 사가라'. 올해 더위 누구한테 팔았나요? 정월 대보름 아침만 되면 외쳤던 여름에 더위를 타지 않기 위해 팔았는데 요즘은 더위를 파는 풍습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사실 아무리 더운 여름이라도 에어컨이 있으니 더위를 팔 이유도 없는 것 같습니다.

 

눈과 귀를 밝게 해준다는 '귀밝이술'은 마셨나요? 술을 마시지 않았던 우리 집이었지만 이 날만은 술을 마신 것 같습니다. 청주를 데워 어른부터 아이들까지 조금씩 마셨습니다. <다음> 백과사전을 보니 '귀밝이술'은 "옛 문헌인 <동국세시기 東國歲時記>에서는, '보름날 이른 아침에 청주(淸酒) 1잔을 데우지 않고 마시면 귀가 밝아진다고 한다. 이 술을 이명주(耳明酒:귀밝이술)라 한다'고 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컴퓨터 모니터, 텔레비전, 휴대전화 따위 첨단기기와 환경오염으로 눈이 점점 나빠지는데 정월대보름 '귀밝이술'을 마시지 않아 그렇게 된 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귀밝이술을 마시면 정말 눈이 좋아질까요? 우리 집은 귀밝이술을 마셨을까요? 아쉽게도 마시지 않았답니다.

 

부스럼을 없애준다고 먹었던 '부럼'입니다. 머리에 부스럼 한 번 나지 않은 50대 이상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머리에 오백원짜리 동전만한 부스럼이 난 동무들이 많았지요. 왜 그리 부스럼이 많이 나는지. 부스럼 나지 않기 위해 보름에 부럼을 그토록 먹었는데 부스럼은 어김없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니 부럼이 정말 부스럼을 예방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하지만 호두, 밤, 잣, 땅콩 속에 들어 있는 불포화지방산은 분명 우리 건강을 지켜주는 것 같습니다. 특히 어린이들에게 더 좋은 음식들이지요. 큰 아들 녀석이 호두를 깐다고 나섰습니다. 기억하기로는 땅콩은 입을 깐 것입니다.

 

a  큰 아이가 호두를 까고 있다.

큰 아이가 호두를 까고 있다. ⓒ 김동수

큰 아이가 호두를 까고 있다. ⓒ 김동수

"부럼을 왜 먹는지 알아?"

"잘 몰라요?"

"부럼을 먹으면 부스럼이 안 낸다."

"부스럼이 무엇인데요?"

"피부에는 나는 종기를 말하는데 요즘은 별로 없어. 아빠가 어릴 때는 머리에 오백원짜리 동전만한 부스럼이 난 동무들이 많았다. 팔 다리에도 많이 낫고."

"정말 부럼을 먹으면 부스럼이 안 나요?"

"설마 그렇게는 하겠어. 아마 호두, 땅콩, 잣, 밤에 들어있는 풍부한 영양소 때문일거다. 특히 너희들같이 어린아이들에게는 정말 좋은 음식이지. 그런데 너희들은 이런 것은 잘 안 먹더라. 아빠는 호두와 밤, 땅콩이 맛있는데."

 

어머니가 말씀하시는데 옛날 보름 때는 나물을 12가지로 했다고 합니다. 아내는 이번 보름에 다섯 가지 나물을 했습니다. 고구마 줄기, 콩나물, 고사리, 시금치, 취나물입니다. 시금치가 보름음식에 들어가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다섯 가지 나물로 먹었습니다. 나물을 보면 한겨울 먹지 못했던 비타민, 무기질, 식이섬유소 보고입니다.

 

a  고구마줄기, 시금치, 취나물, 콩나물, 고사리 나물

고구마줄기, 시금치, 취나물, 콩나물, 고사리 나물 ⓒ 김동수

고구마줄기, 시금치, 취나물, 콩나물, 고사리 나물 ⓒ 김동수

"옛날에는 나물을 12가지나 했다. 아이가"

"나물을 12가지나 했어요?"

"하모. 가지 수만 많은 것이 아니고. 양도 많이 했다.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나누어 먹기 위해서다."

"나물만 나누어 먹었나요. 오곡밥도 나누어 먹었지요."

"하모. 오곡밥을 많이 할 때는 몇 되씩 해가지고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나누어 먹고, 얻어 먹고 했다. 요즘은 그런 풍습이 사라져버렸다. 하고 싶어도 사람이 없고, 힘이 없어서 하지 못한다. 아이가 그 때가 좋았는데."

"우리 집은 12가지는 못해도 고사리, 취나물, 시금치, 고구마줄기, 콩나물 했습니다."

"그래도 네가 나물을 5가지나 했네. 우찌 알고."

"어머니 이 사람 알고 한 것이 아니라 마트에 가면 다 있어요. 있어."

"이 사람이 어머니 앞에서 아내 귀좀 살려주면 안 되나요. 이런 것도 안 해 먹는 사람들도 있어요."

"알았어요. 당신 잘 했어요. 나물 정말 맛있는데."

 

아이들은 입맛에 맞지 않는지 나물을 잘 먹지 않습니다. 하지만 보름 나물은 요즘 음식들이 줄 수 없는 영양소를 풍부하고, 골고루 갖추고 있습니다. 변비 걸렸다고 약 먹고, 식이섬유소 음료수 같은 것을 마시지 말고 보름나물만 잘 먹어도 깨끗하게 낫게 될 것인데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조상들이 주신 좋은 음식은 먹지 않고 자꾸만 다른 것으로 건강을 챙기려고 하니 안타깝습니다.

 

정월대보름 음식 중에 최고는 '오곡밥'입니다. 쌀·보리·콩·조·기장이 들어가는데 동네 마다 조금씩 다른 것 같습니다. 지난 23일 농촌진흥청(청장 김재수)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오곡밥은 항당뇨, 항암, 항염증, 항산화 활성 등 건강기능성이 높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구명하였으며 그 중 수수와 기장의 기능성이 매우 뛰어나다고 합니다.

 

a  기름이 흐르는 오곡밥

기름이 흐르는 오곡밥 ⓒ 김동수

기름이 흐르는 오곡밥 ⓒ 김동수

특히 농진층은 기장과 수수 추출물을 암세포에 처리한 결과, 암세포 사멸율은 각각 77.7, 64.1%로 항암효과가 뛰어났다. 또한, 정상세포에서는 세포독성이 거의 나타나지 않아 암세포 특이적인 효과임을 확인하였고, 다양한 분석방법으로 잡곡의 항산화 활성을 측정한 결과 수수와 식용피의 경우 대표적인 항산화제로 알려진 토코페롤보다 우수한 효과를 나타냈다고 합니다.

 

이 정도이면 오곡밥 하나만으로 우리 건강을 챙길 수 있지 않을까요? 정월 대보름 음식을 우리가 골고루 섭취하면 항암효과, 성인병 예방 뿐만 아니라 자라는 아이들 건강도 챙길 수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물려준 정월대보름 음식들은 풍습이 아니라 우리 몸을 건강하게 하는 건강음식들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들 맛있게 먹고 건강한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2010.02.28 18:09ⓒ 2010 OhmyNews
#정월대보름 #부럼 #오곡밥 #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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