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중동포에게 길안내 했어요

함께 울기등대 걷다

등록 2010.03.03 13:31수정 2010.03.03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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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일 월요일 15시 30분경 출근 준비하고 출근했습니다. 특근이라 17시까지 출근하여 밤새 일하고 3월 2일 화요일 아침 8시 퇴근했지요. 퇴근하면서 삼산동에 잠시 볼일 보러 갔다가 일마치고 남목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울산항 가려면 어떤 버스 타야 해요?"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가 길을 물었습니다. 울산항 부두는 화물 운반선 항구라 왜 거기 가느냐고 궁금해 물어 보았더니 그분은 중국에서 오셨는데 바닷가를 구경하고 싶어 그런다고 했습니다. 초행길이고 낯설지 싶어 잘 알려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럼 저랑 같이 타고 가시면 되겠네요."

 

마침 133번 버스가 왔습니다. 133번 버스는 마을로 돌아 가는게 아니라 아산로를 가로질러 가므로 바닷가를 지나는 길에 볼 수 있는 노선 버스 입니다. 해안 도로 아산로는 현대자동차가 만들어 울산시에 기증한 도로입니다. 아산로 말미에 대형 화물선이 서너 척 있고 생산된 승용차가 엄청 많이 세워진 곳이 있습니다.

 

"와~ 자동차가 엄청 많네요?"

 

그 분은 눈이 휘둥그래저 물었습니다.

 

"이 큰 회사가 현대자동차입니다. 여기가 수출 선적하는 곳이구요. 저 배 안에 3000대나 실린답니다."

 

그 분은 그 말에 매우 놀라워 했습니다. 큰 회사 규모와 수출하기 위해 엄청 큰 운동장에 줄줄이 세워진 자동차를 보고 흥미로워했습니다. 버스는 성내를 지나 남목으로 향했습니다.

 

"다음 정류장은 남목입니다."

 

버스에 달린 스피커에서 남목이라는 자동 안내방송이 흘러 나오고 이어 남목 정류장에 버스가 섰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 다시 버스는 출발했습니다. 저는 여전히 그분 뒷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아니 왜 남목 안 내리시고..."

 

그분은 의아해하며 나를 보며 말했습니다.

 

"예, 오늘 잠시 선생님 길 안내 좀 해드리려구요."

 

저는 내리지 못했습니다. 아니 내리지 않았습니다. 길을 모르는 중국에서 오신 나이든 분을 두고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철야 특근작업으로 밤을 새워 몸은 피곤했지만 할아버지 길 안내를 왠지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이거 고마워서 어떻해요. 야간해서 피곤하실 텐데 처음 본 노인에게 길 안내를 해주시니..."

 

그 분은 고맙다며 악수를 청했습니다. 저도 손을 내밀어 손을 잡았습니다. 그분은 손이 툭툭하고 거칠었습니다. 평생을 부지런히 살아온 흔적이 손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듯했습니다. 일산 해수욕장 정류장에 내려 바닷가로 갔습니다. 파도가 높게 치고 있었습니다. 지난 밤에 파도가 강했던지 바닷가엔 해초가 많이 떠밀려와 있었습니다. 돌미역과 다시마, 톳 같은 바다 풀이 엄청 많았습니다. 미역은 뿌리째 뜯겨져 있는 것도 있었습니다. 그 분은 뿌리째 뜯겨진 미역 줄기를 들어 보기도 하고 냄새도 맡아 보았습니다. 그리고 많이 신기해 하셨습니다.

 

우리는 산비탈을 타고 울기등대 공원 절벽을 구경하며 걸어서 한바퀴 돌았습니다.

 

"오늘 임자 덕분에 좋은 구경하네요."

 

그 분은 겸손히 그렇게 말하시며 이곳저곳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감상하셨고 가끔 바위 위에서 낚시하는 사람을 보자 낚시를 좋아하시는지 관심을 표명하기도 했습니다.

 

산비탈을 한바퀴 돌고 나가는 길에 그 분은 배가 고프다며 식당으로 가자했습니다. 일산 바닷가에 있는 어느 음식점에 들러 늦은 점심을 먹었습니다. 제가 사드리고 싶었으나 주머니 사정이 좋지 못했는데 그 분이 오늘 길 안내 해주어 고맙다며 사주셨습니다.

 

우린 그렇게 걸으며 또 음식을 먹으며 서로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현재 현대차 사내 하청에 다니는데 3월 14일까지만 다닐수 있고 다음날부터 정리해고 당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분은 회사서 쫒겨나면 뭐하냐고 물어서 대책 없다고 했습니다.

 

다음은 그 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분은 올해 63세 되셨다고 합니다. 15년 전부터 구경도 하고 돈도 벌려고 한국과 중국을 왔다갔다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서울,강릉에서 활동 하다가 2년 전부터 울산 언양에서 일자리를 얻어 지내고 있다고 했습니다.

 

60세가 넘으면 5년 비자를 끊어 주는데 한국 오신 지 2년이 넘었고 아직 3년이 더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동안 한국서 번 돈으로 중국 연변에서 생활하는 가족에게 보내는데 보탬이 많이 된다고 합니다. 그분은 놀면 좀이 쑤시는 분이었습니다. 부지런하고 손재주도 많은 분이었습니다. 아는 친구분의 소개로 지금의 일자리를 얻었고 일당 8만원 받고 미장 기술자로 일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일을 성실히 잘해 줬는데 일을 시킨 업자가 부도가 났지 뭐예요. 그래서 그동안 밀린 노임이 팔백이나 되는데 그것도 못받고 일거리도 없이 이렇게 놀고 있어요."

 

일당 80,000원으로 계산 해보니 800만원이면 100일간 모아야 하는 큰 돈이었습니다. 그분은 3개월째 그렇게 어쩔수 없이 놀고 있다고 했습니다. 한국 노동자 3명과 중국 교포 2명, 이렇게 5명이 일을 맡아 해왔는데 부도가 나는 바람에 오도가도 못하고 방하나 얻어 합숙하며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일이 잘 안풀려 하두 답답해서리 바람이나 쐴까 해서 나와 봤지요."

 

답답하신지 그분은 바위 위에서 넘실 거리는 바다 파도를 한참이나 물끄러미 바라보며 서있었습니다. 잠시후 바다를 보고 있으니 답답한 심정이 확 트인다면서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고 했습니다.

 

"큰 딸은 중학교 선생님이고 둘째 딸은 대학 교수, 셋째 아들은 철밥통이지요."

 

그분의 자녀에 대해 궁금해 물어보니 그렇게 대답해 주시더군요. 철밥통이 뭐냐고 물어보니 거기선 공무원을 그렇게 부른다고 합니다. 그누구도 그의 밥통을 빼앗지 못한다는 의미를 지녔다네요.

 

"저는 자식들을 다 성공 시켰어요. 살면서 고생도 참 많이 했지만요."

 

그분은 자식들에 대해 많이 자랑스러워 하셨습니다. 또,그분은 15년을 한국에 살다시피 하다보니 이젠 한국 음식이 더 입에 맞는다고 합니다.

 

우리는 함께 식사를 마치고 일산 해수욕장 앞에서 시내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그 분은 오늘 길 안내 해주어 고맙다며 여러번 악수를 했습니다. 나는 남목서 내려 집에 오고 그분은 숙소가 있는 언양으로 가셨습니다.

 

오후 4시경 잠들어 6시경 일어나 야간 출근 준비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밤 9시부터 일하는데 많이 피곤했지만 보람있는 하루였습니다. 그분이 하루속히 밀린 노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다시 할 일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참 마음이 온순한 할아버지셨습니다.

2010.03.03 13:31 ⓒ 2010 OhmyNews
#중국 동포 #울산 #바다 #일산 #울기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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