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나의 삶을 짓누르는 질문이 있다. '둘째는 언제 가지냐'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첫 애를 낳고 1년도 되지 않아 곳곳에서 쏟아져 나왔다. 아이가 생기지 않아 마음 졸이고 있을 때 주위에서는 '아이는 꼭 필요한 거 아니니 조급해 하지 말라'며 위로했는데 이제 그 분들이 둘째를 빨리 가져야 된다며 난리다. 없으면 모를까 아이 하나는 너무 외로우니 첫째를 위해서라도 둘째를 꼭 낳아야 된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둘째를 가질 생각이 전혀 없다. 이런 이야기를 가까운 지인들에게 말하면 '너무 이기적이지 않냐'고 나무란다. '본인만 생각하지 말고 아이를 생각하라'고... 이런 말을 할 때마다 내가 늘 하는 말이 있다. '아이가 행복하려면 내가 행복해야 한다. 둘째를 낳고 기르는 동안 아이에게 나의 힘듦이 고스란히 전달될 것이고, 내 꿈이 그것으로 인해 좌절되면 또 원망하지 않겠냐? 아이를 위해 내가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은 것일 뿐이다'
내가 이렇게 비약에 가깝게 얘기할 수 있는 건 그 동안의 육아 과정이 그리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맞벌이 부부가 아이를 키우는 게 힘들다는 건 주위 사람들의 얘기를 통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많은 변수가 생기고 분란이 일어날 것이라 생각지 못했다.
사실, 내가 일하는 곳에서는 예기치 못한 일들이 일어날 때가 많다. 지역에 현안 문제가 생기면 갑자기 저녁에 회의가 잡힐 수 있고, 급하게 의견서나 성명서를 낼 때도 있으며 캠페인이나 농성 일정이 잡히기도 한다. 또 출장은 얼마나 많은지... 그동안 즐겁게 한 일들이 아이가 생기니 모든 게 부담으로 다가왔다.
처음에는 친정 어머니께서 아이를 봐주셔서 마음은 편했다. 하지만 자주 퇴근이 늦어지면서 친정 어머니는 내 월급 액수를 거론하시며 일의 양과 내 일하는 태도를 비난하셨다. 이런 분쟁이 자주 일어나니 결국 마음의 금이 생기게 되고 결국 시어머니께서 육아를 맡게 되면서 마음의 부담감은 훨씬 더해졌다.
회의가 잡힐 때마다, 출장이 있을 때마다 큰 죄를 지은 사람처럼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요즈음은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서 조금은 덜 부담스럽지만, 퇴근이 늦어질 경우 결국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한다.
맡길 곳 없는 아이, 책임은 온전히 엄마에게로
일을 하다 보면 일주일 내내 늦어지는 경우가 있다. 남편이 하는 일 또한 일찍 마치는 일이 아니라서 육아를 분담하기엔 한계가 있다. 어떤 땐 일정을 포기하고 또 어떤 땐 일을 싸들고 와야 했다. 아이랑 놀아주고 씻겨주고 나면 오후 9시가 훌쩍 넘어 버린다. 그때부터 일을 해야 하는데, 일의 맥이 끊기는 느낌이 들면 나도 모르게 분노가 치민다.
이런 하소연을 하면 일을 많이 시키는 쪽이 문제 아니냐고 지적한다. 8시간 노동시간 보장 즉, 퇴근 시간만 보장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그 노동시간이라는 게 무의미한 종류의 일도 있다. 내가 그렇고, 남편 일이 그렇다. 결국, 마음 놓고 일하려면 아이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곳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육아정책이 많긴 하지만 이렇다 할 뽀족한 대안은 없었다. '아이 돌보미' 지원사업이 있긴 하지만 이것 또한 이용하기에 만만치 않았다. 먼저 비용도 비용이지만, 믿고 맡기기엔 보육자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었다.
내가 일하는 곳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개설했는데 교육 대상자가 아이 엄마들이 많아 결국 국가의 예산을 받아 지자체가 운영하는 '아이 돌보미 서비스'를 이용한 적이 있다. 그런데 도우미 분들이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모르지만 아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만 했지 어떠한 놀이감도 만들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분들 때문에 나쁜 평가를 대상자들로부터 받아야 했다(이마저도 올해에는 예산이 축소됐다고 한다).
그 사람 믿을 수 있을까... 육아정책의 핵심은 '사람'
'아이 돌보미 서비스'에 이어 올해부터 '야간돌봄 전담 유치원'이 150곳에서 시범 운영된다. 경남만 해도 총 10곳이 운영되는데 이러한 지원 정책에 반갑긴 하지만 얼마만큼 현실적인 육아 대안이 될지는 의문이다.
6·2 지방선거 정책에 육아 문제 해결은 빼놓을 수 없는 어젠다가 되어 버렸다. 공동육아시설 운영이니, 육아 지원금이니 등... 이제 조금씩 육아 문제를 여성의 문제에서 사회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 같기도 해 기대가 되지만 뭔가 빈 껍데기인 것 같아 불안하기도 하다.
결국 이러한 정책에 뒷받침되어야할 것은 사람이다. 어떤 사람이 아이와 마주하냐는 것이다. 사실, 아이 돌보미나 야간돌봄 유치원, 공동육아시설이 활성화 되려면 믿을 수 있는 인력이 충분해야 한다. 물론 많은 기관에서 보육교사를 양성하고 있지만 여기저기서 내세우는 공약에 비해 숫자도 부족할 뿐더러 믿고 맡길 수 있는 인력이냐에 의문이 생긴다.
특히, 올해 아이 돌보미 사업을 확대 시행한다고 하는데 내가 경험한 바로는 육아를 맡게 되는 인력이 보다 더 많은 경험과 교육이 필요해 보인다.
그러려면 먼저 인력을 양성하는 역할을 지자체나 정부가 맡아야 한다. 지금은 단체 위탁을 해 사회단체 등에서 인력을 수급하고 있다. 지식적 측면과 더불어 인성을 포함한 교육관과 맡은 일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주는 교육이 충분히 있어야 하며 이를 맡게 되는 기관 또한 매우 적극적으로 인력 관리를 해야 할 것이다. 아이 돌보미 도우미는 유치원 교사처럼 엄격한 자격과 요건, 인성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드는 건 왜 일까.
더불어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을 맡고 있다는 인식을 확대시키고 그만한 대우가 충분히 있어야 한다. 인력에 대한 준비 없이 시스템만 구축해 놓고 육아 문제를 해결했다며 뒷짐 지고 있는 것은 이 문제를 너무도 안일하게 보는 것이다.
육아 책임지는 지자체? 직장맘의 얘기를 들어봐
일을 하는 엄마로서 가장 힘든 건 육아에 있어서 '엄마'에게 너무도 큰 하중이 부여된다는 것이다. 아이가 아프거나 부부가 함께 늦을 경우 일정을 포기하는 건 (나의 경험에 빗대면) 항상 엄마 쪽이다. 남편과 의논하여 서로 육아 계획을 세워도 남편이 일찍 와서 아이를 보는 건 의미 없다고 어른들은 강조하시기도 한다. 수유할 때는 어쩔 수 없다지만 수유를 끊고 난 후에도 이런 모습은 계속됐다. 결국 육아 책임은 엄마라는 것, 다시 말해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 버린다는 것이다. 육아는 사회적 책임이라는 인식이 있어야 올바른 육아정책이 나올 수 있다.
그래서 프랑스의 경우는 육아 문제를 두고 단순히 부모 자식간의 가족문제로 보지 않는다는 데 시사점이 크다. 결국 육아문제를 사회 인력 재생산으로 보고 국가와 사회에 책임을 묻는 것이다. 프랑스의 육아정책은 재정적 지원 뿐 아니라, 공공탁아시설 운영은 기본이고 아이의 육아를 맡고 있는 조부모 교육 또한 책임지고 있다. 또한 모든 양육 방법에 지원을 해주고 있다는 것에서 육아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이 어떤지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육아를 책임지는 지자체'와 같은 육아와 관련해서 많은 구호와 정책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이 모든 정책들이 허울 좋은 겉포장만 그럴싸한 정책이 아닌 사회적 아이를 길러낸다는 책임 속에 만들어진 속이 꽉 찬 정책이길 바란다.
지금 현재 사회적 분위기에서 출산을 강요하는 건 폭력임을 강조하며 직장맘의 하소연을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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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YMCA에서 시민사업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올해부터 소통을 위해 여러방면으로..노력할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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