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권력이 낳은 기형적 세상 지우기

김영헌의 '일렉트로닉 노스탤지어'전... 성곡미술관에서 3월21일까지

등록 2010.03.06 17:34수정 2010.03.06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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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렉트로닉 노스탤지어(Electronic nostalgia-p09011)' 146×112 캔버스에 유채 2009. 성곡미술관 2관입구에 붙은 김영헌전 포스터(아래) ⓒ 김형순


2009년 4월 유럽에서 귀국한 작가 김영헌은 '일렉트로닉 노스탤지어: 깨어진 꿈(Electronic Nostalgia : Broken Dream)'라는 제목으로 성곡미술관(관장 김인숙)에서 3월 21일까지 기획초대전으로 열린다. 디지털미디어로 설치작업과 영상을 해온 그가 이번엔 오색 찬연한 회화를 선보인다. 어린 시절 미디어매체에서 맛본 환상이 깨지는 과정을 작품화하였다.

깨어진 꿈에 대한 노스탤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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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증처럼 찾아온 단잠(A Nap that came like a giddiness)' 설치 2002 ⓒ 김형순


그는 1995년 중앙미술대전에서 '현기증처럼 찾아온 단잠'으로 대상을 수상한다. 이는 '때 묻지 않은 유년시절의 기억을 '단잠'으로, 현대인의 잃어버린 꿈을 '현기증'으로 비유하며 선풍기날개, 비디오프로젝터, 인조비단 같은 오브제를 결합한 발명품 같은 수작이다.


그는 당시 미술계의 유망주로 국내활동이 기대되었으나 레지던스를 계기로 미국과 프랑스로 떠났고 그 이후 유럽에 오래 머문다. 그리고 영국에서 순수회화 대학원과정을 마쳤다. 이번 전에도 알 수 있듯이 이 작가의 주된 주제는 깨어진 꿈에 대한 노스탤지어다.

미디어가 준 꿈과 환상 지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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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넘어서(Beyond Future-p0809)' 152×152cm 리넨에 유채 2008 ⓒ 김형순


작가는 이번 전에서 전자컬러에서 영감을 얻었는지 특이한 색채가 경쾌하고 산뜻하다. 여기에 뭉개는 방식의 유려한 붓질로 화폭 위를 그린 듯 지은 듯 그렇게 수놓는다.

이 작가의 화풍은 미국이나 독일의 신표현주의, 프랑스의 신구상주의, 이탈리아의 트랜스(탈)아방가르드, 추상주의, 초현실주의를 같이 비벼놓은 것 같다. 하지만 작가는 한국의 타이포그래피인 '혁필(革筆)'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색채는 멋지지만 이곳저곳에 섬뜩한 파편이 그림을 온통 뒤덮고 있다. 도대체 이게 무슨 파편인가. 가늠하기 힘들지만 작가는 미디어의 파현이라고 말한다. 그는 유학시절 방송기자도 병행했는데 거기서 경험한 미디어의 허위에 대한 비판적 발설이자 고찰이다.


미디어공세로 넋 나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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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넘어서(Beyond Future-P0811)' 360×190cm 리넨에 유채 2008 ⓒ 김형순


이 작품은 또한 기계문명이 가져온 도시의 약동을 표현한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미래파'라는 화풍도 생각난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힘차게 달려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미디어에 짓눌려 넋 나간 사람이라고 할까. 현대문명을 풍자한 일종의 '디지털 풍속화'해도 좋으리라.

최근 하이테크의 발달로 디지털이 보여주는 세계는 시공간을 넘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력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열광하지만 스마트폰 등 첨단통신에도 인간소통은 아이러니컬하게 어려움을 겪고 있듯이 미디어도 거꾸로 사회혼란을 가져올 수 있음을 지적한다.

미디어에 세뇌된 현대인의 뇌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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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지도(Cloud map p1001)' 리넨에 유채 130×162cm 2010 ⓒ 김형순


얼핏 보면 색채는 눈부시고 구성이나 배치에서 나무랄 데 없다. 우주의 궤도가 천체를 뱅뱅 돌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사람의 머리와 손발이 잘려 나갔고 내장 같은 물체도 해체되었다. 이것 역시 왜곡된 미디어로 사람들의 의식은 교묘하게 조작되고 세상은 조종당하고 있음을 구름모양으로 넌지시 비유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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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지도(Cloud map-p1002) 연작' 리넨에 유채 181×227cm 2010 ⓒ 김형순


여긴 핵폭탄도 등장한다. 미디어의 횡포가 바로 핵폭탄이란 말인가. 하긴 부지부식 간에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세뇌당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세뇌는 세수만큼 일상적이다.

여기 뭉게뭉게 피어오는 것들은 서로 얽혀 있으면서 동시에 흩어져있다. 작가의 복잡한 심경 아니면 최첨단통신의 급속한 발달 속에 균형감을 잃고 있는 역사와 문화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비유한 것인가. 어쨌든 이 작가는 문명비평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작품을 보면 문어발식으로 반도체, 자동차, 중공업, 금융, 건설, 의류, 마트, 식음료까지 독점하고도 미디어(방송)까지 독식하려는 대기업의 위선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스조각 같으나, 손발과 머리는 잘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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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진 꿈(Broken Dream)' 혼합매체 2010 ⓒ 김형순


위 작품도 그리스조각처럼 이상미를 갖추고 있으나 손발과 머리는 잘려 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에서 낀 세대인 작가는 어릴 적 영웅이었던 미키마우스, 아톰, 슈퍼맨, 배트맨 등이 결국 문화식민주의, 신자유주의, 신국가주의의 방패막이였음을 깨달은 후 그런 각성이 준 상흔(트라우마)을 이렇게 형상화한 것 같다.

이에 대해 작가는 "대부분 몸은 파편화되거나, 분리된 상태로 그려졌다. 이는 늙어가는 육체와 일회적 삶과 기억의 소멸과 존재의 불안 등을 역설적으로 말한 것이다. 또한 융합되고 해체된 자연, 인간, 동물이미지는 동양적 세계관을 반영한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한정된 시간 속에서 과거와 현재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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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속해졌던 시간(The time that belonged to them)' 비디오 3'40" 모니터, 빛 센서, 소가죽, 팬, 방수천 2001 '돌처럼 느린 1(Slow like a stone) 1' 혼합매체 2003 ⓒ 김형순


여기서도 역시 사람과 동물의 두상과 수족이 훼손되어 있다. 이런 일관된 경향은 과거의 상처를 씻어내는 '지우기 미학'이라고 명명하면 어떨까싶다.

가운데 작품은 프로그래밍 되어있어 인공버튼을 작동시키면 소에 숨결이 들어가 그 부피감이 회복된다. 그런 방식으로 현실 속으로 소의 존재를 불러와 분리된 시간 속에서 과거와 현재를 연결 지어 만나게 해 준다.

'돌처럼 느린'은 사람의 털옷에서 채취한 것이다. 이것은 작가가 벼룩시장에서 직접 구입한 것으로 오래전에 만들어진 제품일 수 있어 이 주인이 나이가 많거나 작고한 사람일 수도 있다. 이런 오브제를 통해 작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 사라지는 육체와 정신을 말한다.

삶의 불연속성과 미래의 불확실성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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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딸을 위하여(For daughter's daughter)' 비디오 가변설치 2002. '미래를 넘어서-망각' 비디오 가변설치 2009 ⓒ 김형순


'딸의 딸을 위하여'는 부인을 잃은 할아버지가 웨딩드레스 입은 손녀들에게 호흡을 넣어주지 않으면 그녀들은 맥없이 쓰러지고 마는 설정이다. 작가는 이런 현재의 시간에 과거의 시간을 불어넣는 비유를 통해 삶의 불연속성과 미래의 불확실성을 끊임없이 묻는다. 

그러면서 작가는 우리가 좀비가 되지 않고 얼굴에 광채 나는 붓다처럼 존재하려면 할아버지가 그렇게 했듯 부유하는 영혼을 잡아매달아야 하고 사람들에게 심리적 불구와 기형을 낳은 괴물 같은 미디어에 대한 전횡을 극복해야 한다고 날선 고집을 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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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영헌 ⓒ 김형순

[작가약력] 2008년 런던예술대학교 첼시칼리지 순수미술석사과정 졸업 2006-2007년 런던대학교 골드스미스 칼리지 순수미술석사과정 1년 수료 1995년 중앙미술대전 대상수상 1988-1992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레지던시] 2003년 독일 뒤셀도르프 회어베크 초청작가 2000년 3월-2002년 2월 파리 삼성아틀리에 입주작가 1996년 미국 버몬트(Vermont) 스튜디오센터

[개인전] 2010년 성곡미술관 초대전 일렉스토닉 노스탤지어-깨어진 꿈. 2003년 독일 뒤셀도르프 회어베크(Hoherweg) 271. 2002년 에스파스 이카르 프랑스 파리 이시-레-몽랭노. 2001년 프랑스 파리국제예술관. 1997년 서울 달의 음지(Dark side of the Moon) 웅전갤러리. 1995년 장흥 토탈미술관

덧붙이는 글 | www.sungkokmuseum.com 서울시 종로구 신문로2가 1-101 02) 737-7650


덧붙이는 글 www.sungkokmuseum.com 서울시 종로구 신문로2가 1-101 02) 737-7650
#김영헌 #미디어권력 #트랜스아방가르드 #일렉트로닉 노스탤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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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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