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은 '키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란다'

자연과 놀이를 통해 성장하는 아이들, '숲유치원'

등록 2010.03.08 14:50수정 2010.03.08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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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진안이라는 촌(村)으로 들어오게 된 이유는 '무엇'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었다. 회색 풍경의 답답함은 작은 것이고, 끝없는 경쟁에서 이기기가 싫고, 돈을 벌기위해서 남들에게 아쉬운 소리나 내 물건을 과장해서 알리는 것도 극복하기 힘들었다. 거부감 해소를 위해 도시로부터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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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본 마을풍경 작년 여름의 풍광이다. 따뜻한 봄이 빨리 오길 기원하는 마음에서. ⓒ 임준연


곧, 이곳도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연한 것이지만 밥 먹고 외부와 소통하고 옷 입고 집짓기 위해선 어떤 방법으로든 돈을 벌어야 한다. 산으로 그득한 이곳에서 농업은(채취, 사냥을 포함) 판로의 한정성 때문에 경쟁을 낳는다. 그 판에 끼어들어 토박이와 경쟁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스스로 남들과 뚜렷하게 구분되는(쉽게 따라잡을 수 없는) 일을 해야만 한다. 좀 치사하게 생각되기도 한다. 잘난 체하듯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 인가.

뭔가 다르리라고 기대하고 왔던 지금이 결국 도시에서 삶의 지향점과 다르지 않다면 문제다. 중심이 흔들린다는 이야기다. 혼자면 상관없다. 스스로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에 대한 책임만 지면된다. 가족의 가장이 되면 달라진다. 특히 아이가 있다는 것은 본인밖에 모르던 인간의 삶에 변화를 요구한다. 사는 곳과 생각하는 것은 달라도 지금 사회의 분위기로는 아이의 미래가 걱정스럽다는 점에서는 같다.

교육문제 만이라도

몇 년이 지나면 아이가 학교에 가야하는데 그게 제일 걱정이다. 공교육 중에서도 가장 뒤처진 곳으로 자타(?)의 인정을 받고 있는 곳이 바로 시골의 초중등학교다. 학부모들은 학교와 소통하길 부담스러워한다. 선생들은 인사고과를 위해 한번 들러서 지나가는 곳 정도로 인지하고 지금 교육과정을 개혁할 의지가 없다.

당연히 학부모들은 학교를 신뢰하지 못하고 아이들을 도시로 유학 보낸다. 학생은 두셋만 남게 되고 선생도 학생도 힘이 나지 않는다. 학생 없는 학교엔 지원도 되지 않아서 학교 운영은 더욱 힘들다. 게다가 등하교 거리는 너무 멀다. 매일 버스타고 30리 거리를 통학해야 한다. 앞으로 인원이 더 줄면 폐교와 통합으로 학교가 더 멀어질 수도 있다.


학원이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이곳엔 없다. 다니려면 30킬로 길을 차로 왕복해야 한다. 지금 이곳의 아이들은 학원을 다니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기껏 방학 때 친척집에 보내서 그곳에서 '수학'하고 돌아오는 식이다. 그것도 여유 있는 집이나 가능한 일이다.

아이는 어리지만 고민이 갈등을 낳는다. 나 좋고 가족 좋자고 사는 촌에서 장점을 찾아야 할 것 아닌가. 자연과 더불어서 흙을 밟고 뛰어노는 아이. 다 좋다. 아토피 없고 스트레스 덜 받는 아이. 그래. 그런데 부모로서 나는 무엇을 해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어떻게 해 주어야 하지?


도시와 경쟁이 불가능하다면

이곳에서 감히 경쟁도 되지 않는 도시의 문화와 교육시스템을 좆는다면 아이만 열패감에 잠기게 되는 것 아닐까. 집에서 기를까? 어차피 공교육은 죽었다고 하지 않는가. 처는 집에서 아이를 마냥 놀리는 것은 부모로서의 책임을 피하는 것이라 비판한다. 사회성을 잃게 할 가능성이 있고 부모 밑에서 아이를 외롭게 만들 가능성도 크다는 판단이다. 그럼 방법은 별로 없다. 얼마 되지 않지만 동네 또래 아이들을 모아야 하지 않을까. 동네 안에 있는 폐교가 너무 아쉬웠다.

고민과 갈등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해답으로 향한 길은 점점 어두워지는 것 같았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얼마 전 직업 교육으로 수강한 숲해설가 소양교육과정에서 들은  '숲유치원'이 나를 흔들었다. 독일과 스위스를 비롯한 유럽에서 시작하여 미국과 일본으로 퍼진 취학 전 아동 교육시스템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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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청 '숲에온' 숲유치원의 외국 사례를 소개한다. http://san.go.kr/contents/view.action?si=40000605&mi=10041 ⓒ san.go.kr


한국은 초기단계이고 경기도, 인천, 강원도 일대 몇 곳에서 시행하고 있다고 한다. 산림청에서 적극적으로 도입하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도시의 아이들을 숲으로 데려와서 숲속에서 어울려 놀게 하는 것이다. 숲에서 아이를 놀리는 것. 독일과 스위스를 견학하고 돌아온 강사가 모은 자료를 통해서 사진과 영상을 접했지만 그저 아이들을 모아서 '놀리는 것'외에 특별한 것을 볼 수 없었다. 인터뷰하는 부모들은 모두 만족스러워 했고 아이들의 낙엽과 흙투성이가 된 옷을 바라보며 즐거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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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밀테베르그시 딱정벌레 숲유치원(환경스페셜 캡쳐) 아이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모여서 어울리거나 개인활동을 하며 놀이를 즐긴다. 이때 선생님의 역할은 관찰하는 것이다. ⓒ KBS


그곳 아이들은 자연과 어울려 놀면서 배운다. 나무를 오르고 내리면서 인간이 쓸 수 있는 근육과 균형감각을 배우고, 흙에서 뒹굴면서 흙에 사는 곤충과 나뭇잎, 풀들과 만난다. 쓰러진 나무줄기를 평균대 삼아서 줄지어 걷는 모습이나 나무위에서 가지사이에 엉덩이를 끼고 앉아서 친구들을 향해 소리 지르는 모습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한국의 아이들이 불쌍한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불쌍한 우리 아이들

우리 아이들은 맞벌이 가족의 경우 놀이방에 보내는데 그곳에서도 자유롭게 노는 것이 아니라 언어, 수학, 외국어 교육을 받는 것이 일과에 있다. 4세부터 시작되는 선행학습은 6세가 되면 악기와 태권도, 스포츠로 확대되며 그 즈음엔 거의 어른과 같은 시간의 일과를 소화해야 한다. 아동학대가 다른 게 아니다.

결국 이런 흐름의 교육을 통해서 주어지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아이들이 미래를 이끌어가는 모습은 지금 우리를 이끄는 이들이 모인 곳(국회, 행정부, 대통령 등을 상상하면 된다)과 그리 달라질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는다. 우리 미래가 나아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면 암울하기 짝이 없다.

얼마 전 서울의 친구들과 모임에서 숲유치원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고 그들의 의견을 물었다. 서울에 사는, 영유아를 키우고 있는 친구들은 관심을 보였다. 서울 근교라면 얼마든지 보낼 의사가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사는 마을을 와 본적이 있던 한 친구는 주말을 이용한다면 지금 내가 사는 곳까지도 데려오겠다고 했다. 나는 올해 잘 궁리해서 모둠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적어도 내 자식을 위해서 하는 일이니 좀 서둘러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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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인터뷰 독일 숲유치원의 학부모 인터뷰. 숲유치원에 보내는 것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 KBS


'숲유치원'은 자연과 인간은 떨어질 수 없다는 믿음이 기본이다. 영어, 수학을 미리 배우는 것보다 놀이를 통해서 인간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신체적, 정신적 수양을 하게 하려는 것이 우선한다. 게다가 공부를 시킨 아이들보다 학업성취도도 높다는 국내외 학계의 연구결과도 있다. 무엇보다도 애들은 놀아야 하는 것 아닌가. 어른들의 간섭 없이 마음껏 뛰어놀게 하는 것이 아이를 가진 부모의 소양이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환경스페셜 2009.10.21 '학교가 숲으로 들어왔다' 편 참조


덧붙이는 글 환경스페셜 2009.10.21 '학교가 숲으로 들어왔다' 편 참조
#숲해설 #숲유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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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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