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고백은 '역사'가 될 것입니다

[서평] <삼성을 생각한다>(김용철 씀, 사회평론 펴냄)

등록 2010.03.10 12:17수정 2010.03.10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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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을 생각한다>(김용철 씀, 사회평론 펴냄). 나도 가끔은 삼성을 생각한다. 삼성은 정말 노조 없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과연 삼성 직원들은 노조 없이도 행복할까. 임금 협상 때마다 머리띠 두르고 신경전 벌이는 다른 기업들보다 아무런 투쟁 없이도 월급이 상당한 자기들이 훨씬 이득이고 신사답다 만족하는 것일까.

 

아니면 삼성에서 노조 설립하면 어떻게 되는지 '김성환 위원장'의 인생역정이 웅변으로 말해줘 용기고 뭐고 혼비백산 말도 꺼내지 마라 뭐 그런 것인가. 정말 물어보고 싶은데 알 수가 없다. 왜냐하면 내가 하도 서민이다 보니 주변에 삼성 다니는 사람을 구경 할 수 없어서다. 그런데 이번 김용철 변호사의 고백록을 보니 노조의 '노'자도 꺼낼 수 없는 나름의 사정이 있었네. 

 

이를테면, 삼성 공장 관할 관청 공무원을 매수해서 노조 설립 신고서를 아예 수리 자체가 되지 않도록 했다. 매수된 공무원은 신고서가 들어오면 신고서 수리를 일단 미루고 바로 삼성에 알려줬다. 그러면 삼성은 재빨리 유령노조 설립 신고를 했다. 이런 작업은 구조본뿐 아니라 계열사 차원에서도 이루어졌다. 계열사마다 노조 담당이 있었고, 이들은 노동자들을 면밀하게 감시했다. 노동조합 설립 기미가 보이면, 관련 주동자를 사실상 납치해서 회유, 협박했다. 이런 식으로 한 명씩 각개 격파하면, 결국 노조 설립 시도는 불발로 끝나곤 했다.

- 본문 139쪽

 

노조가 없어도 (김용철 변호사는 10조라 했지만 많이 양보해서) 삼성특검이 밝힌 4조 5천억씩이나 되는 비자금 같은 것을 모으지 않는다면 나름 고개를 끄덕여 주겠으나 그렇지 않으니 우려가 되는 것이다.

 

4조 5천억. 비자금 규모로 볼 때 전두환은 이건희에 비하면 아래도 한참 아래다. 김용철 변호사는 과거 검찰 재직시절 전두환 비자금을 직접 조사하였던 바 전두환의 비자금은 '1조원에서 450만원이 모자랐다'고 한다. '1조'라 하니 감이 안 오는데 숫자를 바꿔서 한번 써보자. 1조는 얼마나 큰돈인가 하니 '9999억+1억'이다.

 

이건희의 비자금 4조 5천억 원은? 9999억+9999억+9999억+9999억+5000억+1억+1억+ 1억+1억= 4조 5천억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1억만 해도 꿈의 숫자이거늘. 

 

이건희 일가와 25만 삼성 임직원은 별개

 

2007년, 김용철 변호사가 '양심고백'하고 나서 주변 사람들이 보인 반응은 크게 두 가지였다고 한다. 첫째, 김 변호사가 하는 말이 다 참이라도 삼성하고 붙어서는 백전백패다. 둘째, 삼성의 비리를 밝히는 것은 좋지만 삼성이 무너지면 우리나라 경제의 중추가 무너지기 때문에 반대한다.

 

이 책은 우리의 이런 그릇된 우려를 말끔히 씻어준다. 이건희의 비자금을 몰수하면 삼성이 망하고 그리하여 우리 경제에 먹구름이 드리워지면 어쩌냐고? 천만에. 그리고 또, 어떤 이들은 자꾸 비자금 건으로 몰아붙이면 삼성이 한국에 있는 공장들을 해외로 다 이전해 버릴 거라 던데, 그런 걱정도 염려 붙들어 매시라.

 

왜냐하면 삼성은 해외로 화끈하게 가고 싶어도 못가는 이유가 있으니 그것은 노조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세계 50위 그룹 안에서 노조 없는 회사는 아마도 삼성뿐 일 것인 바. 세계 500대 안에 드는 기업이라면 설령 노조가 없다 하더라도 제멋에 산다지만 '국제 표준'을 부르짖으면서 '노조는 없어요'라고 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삼성이 노동자들에게 노조의 권리를 안 주고도 꿋꿋이 버틸 수 있는 이유가 다 비자금 때문일진대, 가계의 비자금은 비상시 천군만마이지만 기업의 비자금은 타락의 지름길일 뿐.

 

모든 일에는 뿌리가 있기 마련이다. 삼성 비리의 뿌리는 비자금이다. 비자금이 없었다면, 삼성이 권력을 매수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그런데 비자금은 결국 삼성 임직원들이 흘린 땀의 대가를 빼돌린 것이다. 여기에 더해 삼성은 생산 현장에서 흘린 땀의 대가를 빼돌려 정치인과 관료, 법관, 언론인, 학자를 매수했다.

- 본문 346쪽

 

그리하여,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이재용에게 삼성그룹 전체를 넘겨주기 위해 임직원들이 온갖 불법 탈법행위를 저질러야 했던 게 삼성의 최근 상황이었다. 나는 이런 현실과 역사를 고발했다. 삼성을 해롭게 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오히려 삼성의 건강한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을 치우고자 하는 의도였다. 이건희 일가와 소수 가신집단이 걸림돌이다. 이들은 기껏해야 100~200명 정도다. 한줌도 안 되는 이들 때문에 25만 삼성 임직원들이 범죄행각의 공범으로 몰리게 됐다. 오히려 멋진 포부를 품고 삼성에 입사한 임직원들이 이건희 일가에게 배신을 당한 셈이다.

- 본문 20~21쪽

 

이건희가 빼돌린 비자금을 모두 토해내어 투명한 회계를 지향하고 노조를 허용한다면, 삼성은 망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진통'은 있을지라도 세계적인 기업으로 거듭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부패상은 우리 모두의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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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을 생각한다. ⓒ 사회평론

삼성을 생각한다. ⓒ 사회평론

이 책은 누가 읽어도 쉽게 읽을 수 있게 쉬운 언어와 진솔한 고백으로 채워져 있다. 김 변호사가 첫 고백성사를 정의구현 신부님들께 했다면 이번 책은 이 땅의 시민들에게 하는 고백성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양심가인지 배신자인지는 책으로 된 이 조금은 긴 '고백성사'를 읽어보고 결정함이 더 타당할 것이다.

 

심리 분석가가 아니더라도 이 책을 읽으면 김 변호사의 마음결을 느낄 수가 있다. 삼성그룹에게나 이건희 개인에게나 김 변호사의 고백이 약이 될지언정 해는 안 되리라 생각하는데 글쎄 당사자들은 여전히 쓸까. 쓰다고 느낀다면 안타깝다.

 

사실, 내 경우는 문화방송 간판 뉴스진행자가 삼성으로 갈 때부터 이유 없이 삼성이 싫어졌다. '뭐 좋다 싶은 사람은 다 빼가는 거야?' 털린 기분이었다. 덥석 홀려서 가는 사람도 미웠다, 나랑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도.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화는 사라지고 진정으로 삼성이 거듭났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때문에 이 책의 추천글을 쓴 전종훈 신부님의 말씀이 깊이 와 닿았다.

 

'이 책은 일종의 고백록입니다. 특정인들을 향한 원망이나 미움 때문에 만들어진 기록이 아닙니다. 공연히 남의 치부를 공개해서 망신을 주자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름이 함부로 더럽혀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대한민국의 부패상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읽으시는 분들께서도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로 읽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독립과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했던 사람들의 간절했던 꿈이 경제의 민주화로 열매 맺는 날을 고대하며 기도합니다.

- 추천의 글 7쪽'

 

맺으며

 

광고도 없이 출간 보름만에 8만부(추정)를 육박한다면 진실에 목마른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증거일 것이다. 내친김에 쭉 나가서 3월엔 30만부, 4월엔 40만부, 5월엔 50만부…. 그렇게 계속 읽혀졌으면 좋겠다. 역설적이게도 이 책을 읽고 나면 진정으로 삼성이라는 기업에 애정을 갖고 싶어 질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식이 엇나가는 것을 보고도 계속 옹호만 하는 것은 진정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삼성의 비리를 보고도 눈감아 주는 것은, 세계적인 비웃음거리이자 궁극적으로는 삼성에도 도움 안 되고 오히려 삼성을 더 큰 '대도'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잘못된 부분을 도려내어 더 이상 삼성이 곪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용철 변호사는 자신의 고백록을 일러 역사도 못되고 신화도 못되는 '야사'라고 하였으나, 천만에, 당신의 고백은 훗날 반드시 '역사'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어떤 야사보다 재미(?)있었고 진솔했으며 진실이 주는 감동이 있었다.

2010.03.10 12:17 ⓒ 2010 OhmyNews

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지음,
사회평론, 2010


#김용철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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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이라는 말이 좋습니다. 이 순간 그 순간 어느 순간 혹은 매 순간 순간들.... 문득 떠올릴 때마다 그리움이 묻어나는, 그런 순간을 살고 싶습니다. # 저서 <당신이라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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