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리끼리 문화' 하이힐 폭행 만들어
MB, 교육비리척결 진의 의심스럽다"

[인터뷰] 조채구 전국공무원노조 서울시교육청지부장

등록 2010.03.10 16:03수정 2010.03.10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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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학을 했는데, 교사로서 학생들 앞에서 체면이 서지 않는다."

최근 교육계 비리 문제에 대해 한 교사는 이렇게 토로했다. 서울교육청의 매관매직 등 비리 사건이 고구마 줄기처럼 캐면 캘수록 계속 올라오고 있기 때문에 이 교사의 부끄러움은 괜한 게 아니다.

교육계에는 '감오장천'이라는 말이 오랫동안 떠돌았다. 교감 하려면 최소한 500만 원을, 교장은 1000만 원을 로비 자금으로 써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모든 교장교감이 돈의 힘으로 그 자리에 올랐다는 건 아니다. 교육계의 한 부분에 뿌리 깊은 비리가 웅크리고 있다는 걸 함축하는 말일 뿐이다.

그리고 이른바 '여 장학사의 하이힐 폭행 사건'으로 소문으로만 떠돌던 교육계의 매관매직이 일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교육을 직접 챙기겠다"고 선언한데 이어 9일에는 비리 척결을 위해 교육감 권한 축소를 예고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시선도 많다.

우선 서울시교육청 비리의 핵심으로 '리틀 MB'로 불렸던 공정택 전 교육감이 지목되고 있다. 공 전 교육감은 수월성과 경쟁을 강조하는 등 누구보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을 충실히 따랐던 인사다. 그래서 교육계 일각에서는 "정부가 6월 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꼬리 자르기 형식으로 이미 현직에서 물러난 공 전 교육감을 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고 있다.

또 일부 교육계는 정부의 교육감 권한 축소 예고 역시 문제의 본질을 잘못 파악하고 스스로 내건 교육자치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2008년 1월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학교 교육에 대한 정부의 개입과 통제를 대폭 줄여야 한다"며 "교육부를 축소하고 조직·정원이나 교원 임용·인사, 학사운영 등 초·중등 교육의 자율을 가로막는 규제는 폐지하거나 지방교육청으로 이양한다"고 밝힌 바 있다.

<오마이뉴스>는 교육계 비리 해법의 한 실마리를 찾아보기 위해 조채구 전국공무원노조 서울시교육청지부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서울시교육청 노조는 지난 2월 초부터 교육계의 비리 문제 해결을 촉구해 왔다.


조 지부장은 "교육계 비리는 고질적인 문제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청와대나 교과부 정책을 여과 없이 수용하는 과정에서 부정부패가 더 크게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조 지부장은 "교육계 비리를 해결하기 위해 교육감 권한을 축소하는 건 지방교육자치를 역행하는 것"이라며 교육청 내부의 제도 개선을 주문했다.

조 지부장이 제안한 제도 개선의 핵심은 교육인사의 외부 개방이다. 즉 교장, 장학사, 장학관 등을 교원 출신만이 아닌 일반인에게도 개방하자는 것이다. 또 조 지부장은 "교육청 감사담당 인사의 50%를 외부 인사로 채우자"고 제안했다.


아래는 10일 오전 서울시 과학전시관에서 조 지부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교육감 권한 축소? 그렇다고 하이힐 폭행사건 없어질까

 조채구 전국공무원노조 서울시교육청지부장

조채구 전국공무원노조 서울시교육청지부장 ⓒ 박상규

- 서울시교육청 내부 비리가 일파만파 계속 커지고 있다. "구조적이고, 고질적인 문제다. 이른바 '하이힐 폭행 사건'으로 우연한 기회에 노출됐을 뿐이다. 우선 검찰이 부정비리 발본색원하는 등 엄정히 수사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볼 때는 근본적으로 제도 개선을 해야 한다."

- 이명박 대통령이 9일 교육계 비리 근절을 위해 교육감 권한 축소 가능성을 이야기했다.
"부정과 비리는 일종의 권력과의 유착에서 나온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청와대나 교과부 정책을 여과 없이 수용하는 과정에서 부정부패가 발생했다. 일종의 권력과의 유착이다. 서울시교육청을 둘러싸고 있는 분위기는 현 정권의 정치적인 분위기와 연관 돼 있다.

공 전 교육감은 2008년 당시 주경복 후보와 대결했는데, 이 때 현 정부의 교육정책이 고스란히 '공정택의 정책'이 됐다. 교육계의 비리 소문이 무성했는데, 과연 청와대와 교과부는 몰랐을까? 하지만 정부는 공 전 교육감을 건드리지 않았다. 그를 건드리면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 근본이 흔들린다는 인식 때문이 아니었겠나.

이를 간과한 이명박 대통령은 교육계 비리를 해결하기 위해 교육감 권한 축소를 검토한다고 했다. 교육감 권한을 일정 부분 축소하는 건 동의하는데, 축소된 권한을 교과부나 청와대로 가져가면 절대 안 된다. 지방교육자치를 역행하고 훼손하는 것이다. 그건 개혁이 아니고 개악이다."

- 교육감 권한을 축소시켜 일부 권한을 지역교육청이나 학교로 주자는 것 아닌가.
"청와대는 지금 교육장이나 교장 권한을 강화하자는 것 같은데 뭔가를 잘못 알고 있는 것 같다. 이번 교육청 비리는 교장, 장학사, 장학관이 빨리 되기 위해 매관매직한 것이다. 지금도 교장 권한은 막강하다. 그러니 서로 하려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부정부패까지 저지르는 것 아닌가. 그런데 여기서 또 교장 권한을 강화한다? 거꾸로 된 정책이다.

학교에 있는 평교사, 행정직 직원, 그리고 학부모들이 교장을 견제할 수 있도록 힘을 줘야 한다. 필요하다면 교사는 물론이고 학부모, 교육행정직 공무원, 지역사회 인사 등 모든 사람들이 참여하는 가운데 교장을 선출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 교육계 내부의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많다.
"우선 교육청 내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교육청 인사 구조는 무척 폐쇄적이다. 교장, 장학사, 장학관 등을 모두 교원 출신들이 한다. 학연과 지연이 싹 틀 수밖에 없다. 이를 개방형으로 바꿔야 한다. 능력과 자질이 있다면 교육 행정직을 포함해 일반인들도 교장, 장학사, 장학관 등을 할 수 있게 하자. 그래야만 교육청의 '끼리끼리 문화'를 없앨 수 있다.

또 교육청 내에 사조직이 만연돼 있는데, 이를 일정 부분 통제해야 한다. 특히 인사, 감사, 예산부서 인사들은 어떤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고하고 공개해야 한다. 그래야 투명해지지 않겠나. '하이힐 폭행 사건'도 같은 학교에 근무했던 이들끼리의 매관매직에서 비롯된 것 아닌가."

- 교장 제도를 개혁하자는 말도 많다. 
"교감·교장-장학사-장학관로 이어지는 '일원 체제' 구조도 개혁 대상이다. 교장하던 사람이 장학관 하고, 그러다가 다시 교장하는 게 현 시스템이다. 서로 돌고 돈다. 이를 외부 개방형으로 바꿔야 한다.

또 이런 구조가 교장들이 기를 쓰고 장학관 하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령 52세에 교장이 된다고 치자. 교장 임기는 4년이고, 이를 두 번 할 수 있다. 즉 8년을 다 채워도 60세다. 교원 정년은 62세인데, 바로 퇴임할까? 대부분 장학관으로 2년을 보내려고 한다. 그러니 어떻게든 교육청에서 장학관을 하려는 것이다. 교장 퇴임 후 평교사로 돌아오는 인사는 우리 교육계에 거의 없다.

또 '한 번 교장은 영원한 교장'이라는 것도 바꿔야 한다. 교장이 징계를 먹으면 교감이나 평교사로 강등되나? 절대 안 된다. 징계를 먹어도 계속 교장이다. 강력한 제제 조치를 만들어야 한다. 징계 정도에 따라 평교사로 강등 시킬 수 있어야 한다."

- 교육청 감사기구를 개혁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는데. 
"교육청에는 감사담당관이 있지만 그동안 인사비리, 각종 학교 공사비리, 사학비리 등을 사전에 발견하지 못했다. 이번에도 내부가 아닌 외부 사정 기관에서 문제가 불거진 것 아닌가. 교육청이 사전에 각종 비리를 발견하고 차단하기 위해서는 감사 기구를 강화해야 한다.

지금까지 감사담당관은 교육본청 자체 감사는 못하고, 주로 지역교육청과 학교만 감사했다. 하지만 이번 비리 사건은 전부 본청과 연루된 것 아닌가. 본청을 엄격하게 감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감사담당 인사의 직무 독립성을 보장해 줘야 한다. 그동안 교육청 감사담당 업무는 내부 인사가 돌아가면서 맡아왔다. 즉, 사학정책을 담당 하던 사람이 감사 업무를 보다가 다시 사학 담당으로 올 수 있는 구조였다. 이런 '인사 돌리기' 감사 시스템은 봐주기와 눈감아주기를 만연하게 한다.

감사 요원을 교육청 내부 직원으로만 채우면 안 된다. 적어도 50% 정도는 외부 공모를 통해 뽑아야 하다. 교육청 감사 업무는 다른 어느 곳보다 가장 도덕적이고 청렴한 사람들이 맡아야 한다."

교총, 대국민사과 하고 스스로 혁신해야

 조채구 전국공무원노조 서울시교육청지부장

조채구 전국공무원노조 서울시교육청지부장 ⓒ 박상규


- 최근 김경회 서울시교육청 부교육감이 6월 교육감 선거 출마 위해 사퇴했다. 
"김경회 전 부교육감은 공정택 전 교육감 아래에서 '2인자' 역할을 했던 인사다. 그동안 약 2년 동안 부교육감 권한을 행사했고, 최근에는 교육감 대행 역할도 맡았다. 본인은 억울할지 모르지만, 교육청 총체적 비리의 최고 책임자 아닌가. 그가 비리에 직접 연루되지 않았다 해도 부교육감으로서 도덕적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대오각성, 석고대죄해도 시원찮을 판에 교육감 선거에 출마한다? 도덕불감증의 극치이자 서울시민과 국민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이다."

- 사정의 칼날이 공정택 전 교육감을 향하고 있는 것같다.
"1차적인 책임은 공 전 교육감이 져야 한다. 그리고 교육 가족 모두가 책임을 져야 한다. 물론 거기서 나도 자유로울 수 없다. 모든 구성원들이 일정 부분 책임을 통감하고 국민에게 사죄하는 심정으로 제도와 분위기를 개혁해야 한다. 오는 6월에 뽑는 새로운 교육감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모든 교육가족이 자기반성을 하지 않으면 언제든 비리는 반복될 수 있다."

- 이번 교육계 비리 연루자들은 대부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소속 아닌가. 
"그렇다. 이번에 부정비리 연루된 사람들 거의 대부분은 교총 소속이다. 이건 대단히 분노해야 할 사항이다. 교총 차원에서 대국민 사과 성명 정도는 발표해야 한다. 그리고 교총은 스스로 개혁하고 혁신해야 한다. 그게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닌가. 만약 전교조가 이번 일에 연루됐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보수신문 등 외부의 공격이 엄청났을 것이다."

- 이번 비리 사건을 계기로 이 대통령이 직접 교육을 챙기겠다는데.
"진정성이 없어 보인다. 이명박 정부는 공직사회 부정부패 뿌리 뽑겠다면서 전교조와 공무원노조를 극심하게 탄압하고 있다. 전교조나 공무원노조의 기본 활동 목표에는 직무 권한 보호도 있지만, 공직사회 개혁과 부정비리 척결도 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이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니 자체 자정 능력이 많이 약화됐다. 전교조와 공무원노조가 자정 노력을 계속할 수 있도록 정부는 탄압을 중단하고 법이 인정한 활동을 보장해야 한다."
#서울시교육청 #매관매직 #교육청 비리 #공정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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