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보다 감동스러운 20대 친구에게

김예슬씨의 자퇴를 바라보며

등록 2010.03.11 15:46수정 2010.03.11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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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대학생 대부분들은 술자리에서 '눈치게임'이란 걸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11명이 모여 있으면, 1부터 10까지 숫자를 순서대로 외치는 게임이다. 숫자를 끝까지 외치지 못한 마지막 1명이나, 동시에 같은 숫자를 외친 사람들은 함께 벌칙으로 술을 먹는다.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먼저 선수를 쳐서 살아남거나, 다른 사람이 먼저 걸릴 것을 기대하고 끝까지 침묵하는 사람. 어쩌면 20대들 대부분은 1을 숫자를 외치라고 강요받으면서도, 남이 먼저 걸려주기를 기대하며, 혹은 '나는 절대 걸리지 않을 것이다'를 기대하면서 끝까지 침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중간에 외치는 사람들은 다친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나왔다. 대학교 3학년 한창 침묵을 지키고 있어야 할 시기에, 멋지게 외쳤다. 침묵하고 있던 20대들을 모두 깜짝 놀라게 하면서 말이다.

 

김예슬씨의 이야기를 이렇게 마음대로 해석하고 떠들어도 될지 모르겠다. 경향신문의 11일자 아침신문에는 '나 개인에게 관심이 쏠리는 것은 부담스럽다'라는 그분과의 전화통화기사도 나와 있는 터였다. 그래도 같은 20대로서 침묵을 몸으로 깬 것에 대해 고맙다는 말과 지지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침묵 속에서 모두가 생각한 것은 김예슬씨와 다르지 않다. 88만원 세대의 절망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20대 개새끼론'으로 욕하지 않아도, 우리는 다 안다. 그래서 솔직히 사회의 이런 담론이 식상하다. 토익과 자격증, 스펙으로 시작되는 20대 세대에 대한 비판적 지적도, 혹은 그런 사회구조를 지적하는 것도 첫 문장만 보고 덮어도 된다. 뒤에 내용은 뻔 하니깐 말이다.

 

개그콘서트의 '동혁이 형'은 우리의 속은 시원하게 풀어주지만, 우리와 다른 존재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또 동혁이 형 뒤는 어쩐지 울적하고 씁쓸해진다. 당신은 당신이니깐. 연예인이니깐. 당신과 우리는 다르니깐. 우리는 그렇게 쿨(Cool) 하다. 그러니 방송개혁시민연대 여러분, 너무 걱정하지 마라. 동혁이 형이 우리들을 의식화시키지는 않으니깐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신선하다. 고려대라는 명문대 학생이기 때문에 주목받는 것은 어느 정도 현실이긴 하지만, 그런 이유에서라고 이야기하면 신선함이 떨어진다. 그러니 그런 얘기는 일단 접어두자.

 

그것이 신선한 이유는 같은 트랙을 뛰고 있는 나의 경쟁자가 이 시합 그만두자라고 하면서 은퇴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물론 아사다 마오가 금메달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대자보를 쓰고 은퇴를 선언한다면, 우리는 그녀를 '실력도 안 되는 주제에'라고 쉽게 비난할 수도 있다. 당사자가 아니면 비난도 쉬우니깐 말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스케이트를 신어야하고, 피겨를 하지 않으면 사람 대접도 못 받는 이상한 세상이라면 문제는 좀 달라진다. 그런데 나 이런 거 못하겠다고 나가버린 것이다. 그를 바라보는 빙판위의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전국체전에서 금메달을, 하다못해, 신림동 피겨스케이팅 대회에서라도 금메달 따려고 아등바등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그를 쉽게 비난 못한다. 우리 모두가 왜 그러고 있는지 모두가 이상하다고 생각한지는 좀 됐으니깐 말이다. 단지 관객들이 그런 소리하니깐 우리도 빙판처럼 쿨(Cool) 하고 시크 했을 뿐이다.

 

물론, 그가 이야기한 것처럼, "대학과 자본의 이 거대한 탑에서 내 몫의 돌멩이 하나가 빠진다 해도 탑은 끄떡없을 것"이다. 그러함에도 감동적이다. 탑을 치는 계란이 아니라, 탑을 구성하고 있는 돌멩이가 스스로 나간다고 하니 그런 말 못하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감동적이다.  

 

김예슬씨가 혹시나 싫어할지도 모를 말로 끝내려고 한다. 안 되는 싸움인 줄 알면서도 대학 안에서의 싸움은 계속되어야 한다. 돌멩이들이 있는 곳은 대학이다. 튕겨나간 돌멩이들은 짱돌이 되면 된다. 물론 요건 강요할 수도 없고 매우 힘든 일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흔들고 던지면 언젠가 무너지지 않겠는가? 그리고 다시 세우는 꿈을 꾸는 것도 나쁘지 않은 거 같다.

 

같은 대학생으로서 20대로서, 김예슬씨의 용기에 다시 한번 큰 박수와 지지를 보낸다.

2010.03.11 15:46ⓒ 2010 OhmyNews
#김예슬 #20대 #88만원세대 #대학생사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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