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숲으로 간다, 한사코 성근 대숲으로 간다

봄날의 죽녹원, 죽림욕(?)하는 견공들

등록 2010.03.17 11:30수정 2010.03.17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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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의 고장 전남 담양. 중앙분리대 화단의 죽물 조각상이 인상적이다. 관방제림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징검다리를 건넜다. 죽녹원으로 향한다. 죽물공예품가게에는 갖가지 진기한 죽제품이 가득하다. 댓잎호떡을 통해 대나무향을 대신 음미해 본다.

 

사시사철 푸른빛을 잃지 않고 올곧은 대나무는 절개와 지조의 표상이다. 대나무를 좋아해 지조를 지키며 대나무처럼 살고 싶어 했던 시인 신석정의 <대숲에 서서> 현대시를 죽녹원 입구에서 읊조려본다.

 

대숲으로 간다

대숲으로 간다

한사코 성근 대숲으로 간다

 

자욱한 밤안개에 벌레소리 젖어 흐르고

벌레소리에 푸른 달빛이 배어 흐르고

 

대숲은 좋더라

성글어 좋더라

한사코 서러워 대숲은 좋더라

 

꽃가루 날리듯 흥근히 드는 달빛에

기적 없이 서서 나도 대같이 살거나.

 

봄날의 대숲은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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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챗살처럼 뿌리를 드러낸 대나무와 대나무로 만든 정자가 인상적이다. ⓒ 조찬현

부챗살처럼 뿌리를 드러낸 대나무와 대나무로 만든 정자가 인상적이다. ⓒ 조찬현

봄날의 대숲은 어떤 모습일까. 봄날의 댓잎은 어떤 소리를 낼까. 봄바람이 댓잎을 스칠 때마다 댓잎은 가슴시린 봄노래를 부른다. 하늘엔 햇살이 쏟아지는데 대숲에는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죽마고우길, 운수대통 길, 유모차 가는 길이 있다. 어디로 갈까, 대숲에서 서성인다. 마음은 이미 운수대통 길로 가야지 정했건만 이놈의 발걸음은 댓바람 따라 그냥 흘러간다.

 

죽마고우 길이다. 이곳의 대나무들은 다 올곧게 하늘로 치솟았다. 푸른 하늘을 닮았다. 하늘에는 흰 구름이 떠간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간 걸까. 앙상한 대나무뿌리가 발길을 붙잡는다.

 

봄날에 대숲 길을 걷는다. 아직 차가운 기운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건만 봄날의 대숲은 향기롭고 맑다. 대밭 사이에는 차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대숲의 차나무는 대 이슬을 먹고 자라 찻잎이 부드럽다고 한다. 따끈한 죽로차 한잔이 그립다. 우리는 일상에서 녹차를 즐기지만 우리나라 대표 차는 죽로차와 작설차라고 한다.

 

추억의 페이지를 열어본 듯 아름다운 느낌의 샛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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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에 대숲 길을 걷는다. ⓒ 조찬현

봄날에 대숲 길을 걷는다. ⓒ 조찬현

죽녹원은 테마별로 길이 나뉜다. 여덟 개의 길이 있다. 운수대통 길, 사랑이 변치 않은 길, 추억의 페이지를 열어본 듯 아름다운 느낌의 샛길까지.

 

아름다운 대숲에도 생채기가 있다. 사람의 발길 닫는 곳마다 아무렇지 않은 듯 대나무 표면에 저마다의 표식을 새겼다. 이름도 새기고, 사랑의 다짐도 하고, 어떤 곳은 세월이 흘러 대나무의 아픔처럼 글자가 커다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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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기 일행이 하룻밤 묵었다는 우송당이다. ⓒ 조찬현

이승기 일행이 하룻밤 묵었다는 우송당이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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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뒤란의 굴뚝이 멋스럽다. 굴뚝구멍에는 담배꽁초가 가득하다. ⓒ 조찬현

한옥뒤란의 굴뚝이 멋스럽다. 굴뚝구멍에는 담배꽁초가 가득하다. ⓒ 조찬현

1박2일 촬영지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인다. 너머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S라인길이다. 1박2일 촬영지 가는 길은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그만큼 아름답다는 걸까. 아니면 죽녹원에서 가장 자신 있게 내세울 만한 곳일까. 호기심에 따라 가보기로 했다. 내 마음처럼 이곳을 찾은 대부분의 발길이 이미 그곳으로 향하고 있다.

 

대숲의 풍광이 멋지다. 내리막길을 가다 선비의 길로 들어섰다. 울창한 대숲 사이로 한줌의 햇살이 쏟아져 내린다. 새소리 청아하다. 이 길에는 죄다 꼬부랑 할머니의 등을 닮은 대나무 뿌리가 투성이다. 어디선가 닭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참나무 등걸에 몸살을 앓은 대나무들은 봄바람에 비명을 질러댄다. 이놈의 닭은 시도 때도 없이 계속 울어 제친다.

 

굽이굽이 따라 오르는 길은 숨이 차다. 가파른 길을 오르자 소나무 숲이다. 햇살이 따사롭게 쏟아진다. 의향정 정각에 잠시 머문다. 추녀 끝 대나무에는 흰 구름이 걸려있다. 철학자의 길은 뭔가 심오해 보인다. 소나무 숲에는 신이대가 빼곡하게 자라고 있다.

 

이승기 연못이 있는 '죽향문화체험마을'

 

죽향문화체험마을에 당도했다. 대나무사립문을 열고 들어서니 고풍스런 한옥집이다. 한옥뒤란의 굴뚝이 멋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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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공이 대숲 가에서 죽림욕(?)을 즐기고 있다. ⓒ 조찬현

견공이 대숲 가에서 죽림욕(?)을 즐기고 있다. ⓒ 조찬현

대숲에서 죽림욕을 하면 심신이 안정된다고 한다. 음이온의 발생으로 시원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저런 세상에 견공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걸까. 견공이 대숲가에서 죽림욕(?)을 즐기고 있다. 옛 속담에 '개 팔자 상팔자'라더니, 녀석들은 늘어지게 자는지 정말 죽림욕을 즐기는지 팔자 좋게 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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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초와 춘란 꽃이 활짝 피었다. ⓒ 조찬현

복수초와 춘란 꽃이 활짝 피었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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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가의 수양버들 가지에는 연둣빛 새싹이 돋아나고 있다. ⓒ 조찬현

연못가의 수양버들 가지에는 연둣빛 새싹이 돋아나고 있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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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사적1호 이승기 연못이다. ⓒ 조찬현

1박2일사적1호 이승기 연못이다. ⓒ 조찬현

이곳에는 1박2일사적1호 이승기 연못이 있다. 일본인 관광객들이 연못 앞의 안내판을 보고 웃으며 관심을 보인다. 이승기 일행이 하룻밤 묵었다는 우송당이다. 처마에 대롱대롱 매달린 굴비가 이채롭다. 아저씨가 굴렁쇠를 굴리며 마당을 돌고 있다. 복수초와 춘란 꽃이 활짝 피었다. 연못가의 수양버들 가지에는 연둣빛 새싹이 돋아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전라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10.03.17 11:30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전라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죽녹원 #전남 담양 #이승기 연못 #죽향문화체험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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