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원 세대' 정음의 눈물겨운 아르바이트.
MBC 화면캡쳐
해리가 어린아이의 시각에서 계급 간의 갈등과 가진 자의 아이러니를 그려냈다면, 정음(황정음 분)은 20대의 시각에서 보다 현실적으로 우리 사회의 '88만원 세대'가 당면한 문제를 묘사한다.
서울대에서 받침 하나가 달라 정말 서운한 '서운대'에 다니는 정음은 자신을 서울대생으로 잘못 알고 과외교사로 채용해준 현경(오현경 분)에게 진실을 말하지 못한다. 서운대생이라는 것이 알려지는 순간 일자리를 잃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녀는 준혁(윤시윤 분)에게 영어에 대한 흥미를 일깨워주려 노력하는 과외교사였지만 서운대라는 학벌 앞에 노력과 실력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본격적인 구직활동에 나선 정음의 눈물겨운 노력은 많은 시청자들의 가슴을 울렸다. 가는 곳마다 문전박대 당하고, 천신만고 끝에 취직한 회사는 영어 교재를 판매하는 영업을 시키고, 회사에서 요구하는 매출을 달성하지 못하면 심지어 폭력까지 행사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곳을 쉽게 그만둘 수 없었다. 서운대를 나온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이런 일 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고 지금까지 집에서 지원 받아왔던 것과는 반대로 이제는 자신이 돈을 벌어 집을 도와야하는 형편이 된 정음은 아르바이트에 전념하고, 그런 자신의 모습이 서울대 출신의 의사 남자친구 지훈(최다니엘 분)에게 당당하지 못한 자신이 싫어 결국 이별을 고한다. 사랑하지만 이별을 택하는 정음을 통해 <지붕킥>은 사랑마저 현실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는 모습을 씁쓸하게 그려냈다.
허를 찌르는 마지막 반전, 배신이 아닌 이유결말에서도 김병욱 PD는 시청자의 허를 찌르는 반전을 준비했다. 세경과 지훈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것.
19일 방송된 <지붕킥> 마지막회에서는 세경과 신애가 순재의 집을 떠나는 과정이 그려졌다. 지훈은 세경을 자신의 차로 공항에 바래다주고, 쏟아지는 비를 응시하며 세경은 지훈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시간이 잠시 멈췄으면 좋겠다"는 말을 끝으로 화면은 정지하고, 이내 흑백으로 변해갔다.
고향에 내려갔던 정음은 취직이 됐다는 합격 통보 전화에 기뻐 어쩔 줄 모르고, 그 시간 세경과 지훈은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희극과 비극이 공존하는 김병욱표 시트콤은 마지막까지 그 스타일을 잃지 않았다. 김병욱 PD가 말했던 '뒤늦은 자각'의 대가는 죽음이었고, 그 둘의 시간은 세경의 바람대로 영원히 정지했다.
이러한 장면들이 단순한 세태 풍자와 현실 반영에 그치고, 비극을 위한 개연성 없는 설정에 불과했다면 <지붕킥>은 이처럼 사랑받지 못했을 것이다. <지붕킥>의 작은 세계 속에는 계급 간의 갈등과 88만원 세대의 아픔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 안에는 늙고 젊음에 구애받지 않는 남녀 간의 사랑이 있었고, 사랑에 아파하고 힘든 현실에 부딪치며 스스로가 독립된 하나의 개체로써 오롯이 일어서는 변화와 성장이 있었다.
인나(유인나 분)의 가수 데뷔와 성공에 광수(이광수 분)는 박수로 그녀를 떠나보내며 아름다운 이별을 택하고, 세경을 짝사랑하던 준혁은 그녀를 떠나보내는 과정에서 한층 성숙해진다. 정음은 따뜻한 지훈에게 기대고 싶지만 그 앞에 당당하게 서기 위해 노력해 결국 취직에 성공하고, 해리는 탐욕의 상징이었던 갈비를 신애에게 나눠주고 아끼던 인형을 선물하며 신애와 한 침대에 누워 잔다.
어딘가 부족했던 <지붕킥>의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사랑을 하며 서서히 변화해 나가고 성장하기에 이른다. 그 사랑이 남녀 간의 사랑이든, 친구 간의 사랑이든, 짝사랑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정음은 정음대로, 준혁은 준혁대로, 해리는 해리대로 사랑을 통해 자신의 지붕을 뚫고 한 뼘 더 자란 모습으로 성장했다. 우리가 <지붕킥>에 환호했던 지난 시간들이 헛되지 않은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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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뚫고 반전! 김PD는 '배신'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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