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것질 안 하는 아이들, 비결은 학교급식

[친환경급식 현장] 문래초등학교의 특별한 식단... "중요한 것은 지자체 의지"

등록 2010.03.24 11:30수정 2010.03.24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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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친환경급식의 선구자' 문래초등학교.
'서울시 친환경급식의 선구자' 문래초등학교. CRIC 농촌정보문화센터

 지난 2007년 10월, 문래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학교 간이 논에서 수확한 벼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지난 2007년 10월, 문래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학교 간이 논에서 수확한 벼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유관호

서울 문래초등학교 어린이들은 지난 18일 점심시간에 유기농 쌀로 만든 현미찹쌀밥과 친환경 한우로 만든 갈비탕을 먹었다. 반찬은 역시 친환경 식자재로 만든 감자샐러드, 김치묵무침과 유기농 재료로 담근 김치였다. 조리 과정에서 화학조미료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이렇게 만든 식사의 열량은 547.2㎉, 단백질량은 21.2g이다.

이 학교는 지난 2005년 서울시에서 처음으로 친환경급식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유기농 쌀로 시작했지만 다음해부터 김치를 제외한 모든 식재료를 친환경제품으로 사용했고, 지난해에는 구청 지원을 받아 김치까지 유기농으로 바꿨다.

가정통신문에 따르면 학교는 나물반찬을 주 2~3회 이상, 해조류와 신선한 과일은 주 1회 이상 제공한다. 이번 주에는 나물반찬으로 연근강정, 유채나물, 오이생채가 나왔다. 반대로 튀긴 음식은 주 1회 이하, 김치를 제외한 절임식품이나 가공식품은 주 2회 이하로 줄였다. 가급적 자연식품과 계절식품을 쓰고, 염분·유지류·단순당류·트랜스지방이 들어간 식품을 최소화했다.

서울 교사가 시골을 부러워하는 까닭

 서울 문래초등학교는 2005년 7월 쌀을 시작으로 2006년에는 청과류와 육류까지 친환경급식으로 바꿨다.
서울 문래초등학교는 2005년 7월 쌀을 시작으로 2006년에는 청과류와 육류까지 친환경급식으로 바꿨다. CRIC 농촌정보문화센터
이렇게 건강한 밥을 먹는 데 드는 돈은 한 달에 4만530원(한 끼당 1930원)이다. 초등학교 급식치고 가격이 만만치 않다. 친환경 농축산물을 사용하면서 급식비가 매달 3000원 늘었고 유기농 장류를 쓰면서 3000원이 더 늘었다.

시민사회단체가 주장하는 친환경무상급식에서도 돈이 걸림돌이다. 친환경무상급식풀뿌리연대(풀뿌리연대) 측에 따르면, 무상급식을 전면 실시하는 데는 2조9000억 원이 들고 전국적으로 친환경식자재를 사용하면 약 6750억 원 규모가 더 든다.

풀뿌리연대는 "직영-친환경-무상급식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안전한 급식, 건강한 급식, 평안한 밥 먹기가 가능해진다"고 주장한다.


전달체계로 지역별 급식지원센터를 설치하면 친환경농업 기반 확대, 일자리 창출, 농촌경제 활성화라는 여러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정부 여당은 당정협의 결과를 발표하면서 예산상의 이유를 들어 일반 무상급식을 전면 실시하는 것에 대해서도 반대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친환경'은 아예 급식정책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그러나 문래초등학교에서 환경교육을 이끌고 있는 유관호 교사는 "중요한 것은 지방자치단체의 의지"라고 말했다. 고민하면 방법은 많다는 것이다. 이 학교가 그랬듯이 일단 단계적으로 쌀부터 친환경으로 바꿀 수도 있고, 친환경 농업이 활발한 농촌 지자체와 도시 지자체를 연계해 추가 예산을 반씩 분담할 수도 있다.   

그는 경남 합천의 친환경 무상급식을 부러워했다. 그는 "아무래도 농민 유권자가 없는 서울의 시의원·구의원에게는 이게 중요한 의제가 아니"라면서 "사회적으로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좋을 텐데"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역사적으로 이렇게 학교급식이 전국적인 쟁점이 된 적이 없지만, 유관호 교사는 현재의 여론에 큰 기대를 보이진 않았다. 현재 시민들의 관심은 "친환경무상급식이 되면 좋다"는 바람 정도지, "꼭 해야겠다"는 의지가 크지는 않다는 생각이다. 그러면서 "충분한 토론과 공청회를 통해 친환경무상급식에 대한 철학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학교에서도 학부모들을 설득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기회가 닿는 대로 유기농 농촌체험을 실시하고 가정통신문도 보내서 왜 친환경농산물을 써야 하는지 설명했다. 1년의 시간을 보낸 뒤에야 학부모 90%의 찬성으로 급식비를 올려 친환경밥상을 만들 수 있었다.

유관호 교사는 "사실 교사는 수업과 업무에 바빠서 급식 문제까지 챙기기 어렵다"면서 "아이에게 먹일 밥이라는 생각으로 학부모가 좀더 나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래초등학교는 물론 대부분의 학교에서 학부모가 아닌 교사의 주도로 친환경급식이 도입됐다고 했다.

식자재 유통도 장애요인이 될 수 있다. 그동안 유 교사는 일선 학교나 급식 관계자들로부터 "친환경급식이 갑자기 늘어나면 공급량이 부족하지 않냐"는 질문을 자주 들었다. 그의 답변은 반대로 생각하자는 것이다. 일단 수요를 발생시켜 생산을 늘리자는 것이다.

그러면서 시민사회단체가 주장하는 지역급식지원센터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지역 단위에서 도시와 농촌을 직거래로 연결하고 식자재를 검수·입찰·공급하면, 밥값도 줄어들 뿐 아니라 단위 학교의 수고도 덜 수 있다. 지금은 영양교사들이 친환경식자재 품목에 따라 8개 업체를 별도로 정해야 한다.

"엄마 아빠, 전기플러그 뽑아요!" 잔소리꾼이 된 아이들

 지난 2007년 6월, 파주 장곡리에서 감자를 캐는 문래초등학교 아이들.
지난 2007년 6월, 파주 장곡리에서 감자를 캐는 문래초등학교 아이들.유관호

문래초등학교에서 친환경급식이 만든 변화는 결코 작지 않았다. 아이들은 스스로 집에서도 친환경 식단을 요구했고, 패스트푸드나 탄산음료 등의 군것질도 줄였다.

식생활을 바꾸면서 아토피가 개선되고 성격까지 차분해진 아이들도 생겼다. 지난 2008년 모발 검사를 실시하자 문래초등학교 학생이 인근 학교 학생들에 비해 중금속 수치가 현저히 낮게 나왔다고 한다.

요즘 아이들은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져 자연식품을 싫어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친환경농산물은 수분 함량이 적고 향이 진하다. 아이들이 먹기엔 딱딱하거나 매울 수 있다. 그러나 결과는 의외였다. 오히려 친환경급식을 도입하자 잔반량이 확 줄어든 것이다. 식품첨가물이 없어서 소화가 잘되기 때문에 집에서도 밥을 많이 먹게 됐다.

여기에 환경동아리의 농촌체험 등의 친환경 교육프로그램이 더해졌다. 급식과 교육이 별개가 아니라는 철학 때문이다. 아이들은 상자로 간이 논을 만들어 볍씨를 뿌리고 모내기를 했다. 직접 밭에 나가 고구마를 캐고 포도를 수확하고 우렁이논에서 벼메뚜기를 잡기도 했다. 쌀나무에서 벼가 익는 줄 아는 서울 아이들에게는 좀처럼 하기 힘든 체험이다.

이제 이 학교 아이들은 쓰는 말부터 뭔가 다르다. 교사가 "식물이 햇빛으로 자란다"고 광합성을 설명하면 "그게 태양에너지"라고 말하고, "물건 아껴 써야 한다"고 말하면 "그래야 지구가 살죠"라고 답한다. 집에서도 부모들에게 "전기플러그 뽑아라", "물 아껴라"며 잔소리를 한다.

이 같은 효과를 설명하면서 유관호 교사는 "의무교육이라는 관점에서 교육적인 차원으로 친환경급식도 무상으로 이뤄지면 더 좋겠다"고 말했다.

 유관호 문래초등학교 교사.
유관호 문래초등학교 교사.권박효원
밥상을 모두 친환경 먹을거리로 바꿨지만, 아직 문래초등학교의 친환경프로젝트는 끝나지 않았다.

학교 옥상에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하고 싶다는 것이 유 교사의 바람이다. 급식 조리에 필요한 에너지도 친환경적으로 이용해보자는 것이다. 또 간이 논이 아니라 제대로 된 학교 텃밭을 가꾸면서 가끔씩이라도 직접 기른 야채로 반찬을 만들자는 욕심도 있다.

그는 "지구를 살리는 친환경급식을 위해서는 총제적인 교육활동과 시설기반이 필요하다"면서 "전국의 학교가 친환경급식을 한다면, 한반도 전역이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게 되어 빠른 시간 내에 생태가 복원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무상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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