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393)

― '세 남자의 이야기', '봄의 음식', '한 사람의 역사' 다듬기

등록 2010.03.22 17:34수정 2010.03.22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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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세 남자의 이야기

 

.. 이것은 아돌프라는 이름으로 불린 세 남자의 이야기다 ..  <데즈카 오사무/장성주 옮김-아돌프에게 고한다 (1)>(세미콜론,2009) 8쪽

 

'이것은'은 '이는'이나 '이 이야기는'으로 손봅니다. 그런데 글 끝에 '이야기다'로 끝맺으니 '이 이야기는 ……를 보여준다'로 손볼 수 있습니다. "아돌프라는 이름으로 불린 세 남자"는 "아돌프라고 하는 세 남자"나 "아돌프라는 이름을 쓴 세 남자"로 다듬어 줍니다.

 

 ┌ 세 남자의 이야기다

 │

 │→ 세 남자 이야기이다

 │→ 세 남자와 얽힌 이야기이다

 │→ 세 남자를 다루는 이야기이다

 │→ 세 남자를 둘러싼 이야기이다

 │→ 세 남자가 살아온 이야기이다

 │→ 세 남자가 겪은 이야기이다

 └ …

 

지난 2008년에 <내 어머니 이야기>라는 만화책이 나온 적 있습니다. 북녘에 고향을 둔 어머니가 지난날 살아온 이야기를 담은 만화책인데, 책이름은 "내 어머니 이야기이지, "내 어머니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같은 해에 <세 엄마 이야기>라는 그림책이 나왔습니다. 이 그림책 이름 또한 "세 엄마 이야기"이지 "세 엄마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 보기글에서는 "세 남자 이야기"가 아닌 "세 남자의 이야기"가 되고 맙니다.

 

왜 "세 남자 이야기"가 아닌 "세 남자의 이야기"처럼 적었을까요. 토씨 '-의'를 이와 같이 적어야만 했을까요. 사이에 무슨 말인가를 넣고 싶었다면 "세 남자와 얽힌"이나 "세 남자가 나오는"이나 "세 남자를 둘러싼"처럼 적으면 넉넉하지 않았으랴 싶은데요.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들은 이 보기글에 나오듯 토씨 '-의'를 군더더기라고 느끼지 않고 즐겨씁니다. 토씨 '-의'를 넣지 않아야 올바르지만 깊이 헤아리지 않고 아무렇게나 씁니다. 늘 쓰는 우리 말이면서 '우리 말'임을 느끼지 않고, 언제나 주고받는 우리 글인데 '우리 글'임을 깨닫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앞으로도 "세 남자의 이야기"뿐 아니라 "세 여자의 이야기"와 "세 사람의 이야기" 같은 말투는 두루두루 퍼져 나가리라 봅니다.

 

 

ㄴ. 봄의 음식

 

.. 그래요. 산초의 새 잎은 봄의 음식에 향긋한 냄새를 더해 주지요 ..  <아와 나오코/김난주 옮김-바람과 나무의 노래>(달리,2009) 25쪽

 

"산초의 새 잎"은 "산초 새잎"이나 "산초에 난 새잎"이나 "산초에 새로 돋는 잎"으로 손질합니다. '음식(飮食)'은 '밥'이나 '먹을거리'로 손봅니다. '향기(香氣)로운'이라 안 하고 '향긋한'이라 적은 대목이 반갑습니다. 사람들이 제대로 모르고 있는데, '향긋하다'는 토박이말이고 '향기롭다'는 한자말입니다.

 

 ┌ 봄의 음식에

 │

 │→ 봄음식에

 │→ 봄에 즐기는 먹을거리에

 │→ 봄에 먹는 밥에

 │→ 봄에 차리는 밥상에

 └ …

 

이 보기글 첫머리에도 토씨 '-의'가 끼어들었습니다만, 참말로 우리들은 토씨 '-의'를 아무렇지 않게 곳곳에 쉽게 적어 넣고 있습니다. 알맞게 풀어내고 보여주어야 할 말과 글을 느끼거나 찾거나 살피지 못합니다. 처음에는 얼결에 썼는지 모르고, 학교에서 이래저래 배우면서 길들었다 할는지 모르지만, 학문을 하든 책을 읽든 일을 하든 이야기를 나누든, 우리가 주고받는 말과 글이 얼마나 올바르거나 알맞는가를 헤아리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면, 사랑하는 짝꿍한테 편지를 쓰면서 띄어쓰기와 맞춤법이 빈틈이 없도록 살펴야 한다고만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띄어쓰기나 맞춤법이 틀릴 수 있겠지요. 또, 여러모로 멋을 부리거나 우리 마음을 더 드러내고 싶어서 영어를 섞거나 한자를 곁들일 수 있습니다. 쓰고 싶다면 이렇게도 쓰고 저렇게도 씁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러쿵저러쿵 붙이는 꾸밈말은 얼마나 우리 마음을 나타낼까요. 내 참마음이 맞은편으로 살뜰히 옮겨갈까요. 내 참사랑이 건너편으로 살랑살랑 날아갈 수 있을까요. 겉치레와 껍데기에 둘러싸인 채 살가운 속내는 묻혀 버리지 않을까요.

 

 ┌ 봄날 밥상에

 ├ 봄철 밥상에

 ├ 봄철 먹을거리에

 ├ 봄밥에

 └ …

 

아침에 먹어 아침밥이고 저녁에 먹어 저녁밥입니다. 그래서 봄에 먹으니 '봄밥'이라 해 보면 어떠할까 생각해 봅니다. 여름밥과 가을밥과 겨울밥을 생각해 볼 수 있고요. 따로 한 낱말로 삼지 않더라도 "봄날 밥상"이나 "봄철 밥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봄날 먹을거리"나 "봄철 먹을거리"라 해도 괜찮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북돋우는 길을 찾으면 좋겠고, 우리 힘으로 우리 글을 일구는 매무새를 익히면 좋겠습니다. 하루에 한 가지씩이라도 살피고, 틈틈이 몇 가지나마 다스릴 수 있으면 기쁘겠습니다.

 

 

ㄷ. 한 사람의 역사

 

.. 30년 새우깡을 돌이켜보면 마치 한 사람의 역사를 보는 듯합니다 ..  <30년 새우깡 이야기>(농심,2002) 3쪽

 

'회상(回想)'이나 '회고(回顧)'를 말하지 않고 '돌이켜보면'을 넣으니 반갑습니다. 누구라도 이렇게 쉽게 말을 하고 글을 쓴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때에 따라서는 '돌이켜보면'이라 하고, 자리에 따라서는 '돌아보면'이라 하며, 흐름에 따라서는 '되돌아보면'이라 하다가는, '뒤돌아보면'이나 '되새겨보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 한 사람의 역사

 │

 │→ 한 사람 역사

 │→ 한 사람이 걸어온 길

 │→ 한 사람이 살아온 발자취

 │→ 한 사람이 살아온 모습

 │→ 한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

 └ …

 

우리는 '-의'만 덜어 "한 사람 역사"로 적으면 됩니다. 두 사람 이야기라면 "두 사람 역사"이고, 세 사람 이야기라면 "세 사람 역사"입니다.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를 다루는 자리이니 굳이 '역사(歷史)'라 하지 않아도 됩니다. "걸어온 길"이라 할 수 있고, '발자취'나 '발자국'이라 할 수 있습니다. 꾸밈없이 "살아온 발자취"나 "살아온 모습"으로 적어도 괜찮습니다. "살아온 이야기"라 해도 되겠지요. 생각을 하면 말이 열리고, 말을 하면 마음이 열리며, 마음을 열면 삶이 환하게 열립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2010.03.22 17:34ⓒ 2010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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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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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토씨 ‘-의’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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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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