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당 "침구분야 조선 명의, 허준 아니라 허임"

[역사논쟁] 조선 최고의 침의(鍼醫)는 누구인가①

등록 2010.03.23 12:22수정 2010.03.23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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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1월12일 헌재의 의료법 관련 조항의 위헌 여부에 대한 공개변론을 앞두고 뜸사랑 김남수 회장과 작가 조정래씨 등은 헌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해 11월12일 헌재의 의료법 관련 조항의 위헌 여부에 대한 공개변론을 앞두고 뜸사랑 김남수 회장과 작가 조정래씨 등은 헌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지환

오늘(23일) 오전 10시부터 잠실실내체육관에서 뜸사랑(회장: 구당 김남수)이 주최하는 '뜸자리잡기' 행사가 열리고 있다.

지난 주 뜸사랑은 이 행사를 알리는 광고를 주요 일간지에 일제히 실었다. 그런데 굵고 붉은 활자로 인쇄된 광고 문구 중 특별히 독자들의 눈길을 끈 대목이 있었다. 국회의원, 헌법재판관, 보건복지부장관 등 관계기관 당국자는 물론이고 한의사협회, 의사협회, 약사협회 등 의료단체 관계자의 행사참관을 공개적으로 요청한 대목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면서 뜸사랑은 "뜸 시술이 한의사 외에는 누구도 할 수 없는 위험한 의술인지 직접 보시고 판단해 주시기를 앙망한다"고 호소했다. 뜸사랑은 광고를 통해서 이번 행사가 한의사협회를 겨냥한 것임을 암시했는데, 다음과 같은 광고 문구에 그들의 진심이 오롯이 담겨 있는 셈이다.

"한의사님들께 진심으로 말씀드립니다. 일반인이 배워서 할 수 없는 것을 의사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배워서 할 수 있는 것을 한의사만 하겠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닐까요? 그것도 하나뿐인 생명을 두고서 말입니다."      

구당 김남수 선생 침뜸 논쟁의 본질

그렇다면 뜸사랑이 실내체육관까지 임대해 이런 대규모 행사를 열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여기에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는데, 그 배경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방송과 신문 등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진 구당 김남수옹에게 침구술을 배운 뜸사랑 부산경남지부의 회원들은 65세 이상의 불우한 노인을 상대로 무료봉사를 벌여오다 한의사 측으로부터 형사고발을 당했다. 무면허 의료행위로 기소된 그들은 2008년 2월 25일 법원으로부터 벌금을 내라는 약식명령을 받았다.


영리를 추구하지 않은 순수한 봉사활동에 제재를 가한 것에 분노한 이들은 법원에 정식 재판을 청구하는 한편 현행 의료법 27조 제1항(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 없으며 의료인도 면허된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에 대한 위헌신청을 제기했다. 위헌신청 대열에는 자기요법과 봉침시술 등의 민간요법을 활용해 의사들도 포기한 난치병 환자들을 고쳐준 '죄 아닌 죄' 때문 법적 제재를 당한 다른 재야의료인들도 동참했다.

의사나 한의사 등 제도권 의료인이 치료를 포기한 경우에 환자 스스로 제도권 밖에 있는 민간요법 등의 치료법을 선택할 자유마저 강제적으로 제한하고, 침구처럼 수천년 동안 민간에서 전승되어온 전통의술을 한의사 집단에게만 독점토록 한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 그들이 위헌신청을 제기한 기본 취지였다.     


그런데 위헌신청이 기각될 것이라는 일반의 예상을 깨고 헌법재판소가 전격적으로 위헌신청을 받아들였고, 2009년 11월 12일 오후 1시부터 장장 3시간 동안 공개변론이 진행됐다.

<소설 동의보감>과 <허준>이 만들어낸 '허준 신화'

필자는 며칠 전 헌법재판소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이 공개변론 동영상을 봤다. 그리고 최근 인터넷 매체에서 진행된 의료논쟁(이상곤 한의사, 이상호 MBC 기자, 배우 장진영 남편 김영균씨 등이 참여한 '구당의 배우 장진영 진료 적절성 논쟁')이 보다 본질적 논쟁으로 이어지려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그 무엇'이 있다는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도대체 그것은 무엇일까? 안개 속을 헤매며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그 무엇'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끙끙 앓던 필자는 어느 날 아침 명쾌하게 떠오르는 하나의 화두를 잡을 수 있었다. 영감을 제공한 것은 허임기념사업회 손중양 상임이사가 저술한 신간 <조선 침뜸이 으뜸이라-허임의 생애와 침의들의 역사를 찾아서>였다.

화두.

그것은 <소설 동의보감>과 TV 드라마 <허준>이 합작해서 만들어낸, 그리하여 일반 국민은 물론이고 전문가들의 뇌리에까지 '확고부동한 사실'로 자리잡게 된 '허준 신화', 바로 그것이었다. '신화'를 '사실'로 믿게 된 사람들이 한의사와 침구사의 전문 영역은 구분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반문하는 것은 따라서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는지도 모른다.

"한의사들이 원조로 삼고 있는 조선 최고의 명의 허준은 침과 뜸으로 수많은 백성을 고치지 않았습니까? 따라서 허준을 계승한 한의사가 침구 영역을 관장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닌가요?"

대다수 국민과 전문가들이 이러한 '허준 신화'의 인식 수준에 머물러 있는데 생산적 논쟁을 기대하는 것은 한 마디로 연목구어였던 셈이다. 실제로 이번 공개변론을 주관한 이강국 헌법재판소장마저 "<동의보감>을 저술한 허준이 신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스승인 유의태를 해부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 아니냐?"는 취지의 질문을 던졌다.

물론 허준이 스승의 시신을 해부했다는 것도, 아니 유의태가 허준의 스승이라는 것마저도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은 고인이 된 <소설 동의보감>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서 창조된, 완전한 허구에 불과하다.            

침구 분야 조선 제일 명의는 '허임'

 노비의 아들로 태어나 선조와 광해군 인조 때가지 국가대표 침의(鍼醫)로 활동했고, 말년에는 '침구경험방'을 저술해 중국과 일본의 침술에도 크게 영향을 끼친 파란만장한 허임의 생애와 조선시대 침의들의 실재 역사를 발굴하여 엮은 책.
노비의 아들로 태어나 선조와 광해군 인조 때가지 국가대표 침의(鍼醫)로 활동했고, 말년에는 '침구경험방'을 저술해 중국과 일본의 침술에도 크게 영향을 끼친 파란만장한 허임의 생애와 조선시대 침의들의 실재 역사를 발굴하여 엮은 책. 허임기념사업회
'현대판 허준'.

구당 김남수 옹을 취재했던 기자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그의 이름 앞에 붙였던 수식어였다. 소설과 드라마에서 능수능란하게 침과 뜸을 시술했던 허준을 빗대어 구당을 설명하는 것이 독자의 이해를 도울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부끄럽지만 필자도 그런 사람 중의 한 명이었다. 하지만 당시 구당은 정작 그 표현을 보고 거부 반응을 보였다.

"허준은 첩약을 쓰는 의원이었어. 침과 뜸을 활용하는 침의는 아니었지. 그러니까 침구 분야에 종사해온 나의 뿌리는 '허준'이 아니라 '허임'이외다. 침구 분야에서 조선 제일의 명의는 허임이라고!"

허임.

필자는 백세를 눈 앞에 둔 이 노 침구사의 정정보도 요청을 통해서, 그때까지만 해도 생소하게 느껴졌던 허임이란 인물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리고 허준이라는 화려한 명성 뒤에 숨겨져 있던, '조선 제일의 침의' 허임을 만나게 되었다.

여기서 '조선 제일의 명의'라는 표현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은 구당의 독단적 표현이 아니다. 조선 중기에 영의정까지 지냈던 유학자 이경석은 허임을 이렇게 평가한 바 있다.

"태의 허임은 평소 신술을 가진 자로 일컬어져 평생 구하고 살린 사람이 손으로 다 헤아릴 수 없다. 그간 죽어가던 사람도 일으키는 효험을 많이 거두어 명성을 일세에 날렸으니, 침가들이 추대하여 으뜸으로 삼았다."(許太醫 素稱神術 平生所救活 指不勝屈 間多起死之效 名聲動一世 刺家之流 推以爲宗)

이경석의 인물평에 등장하는 '태의(太醫)'나 '신술(神術)' 등의 표현이 '조선 제일의 명의'란 평가가 결코 빈말이 아님을 짐작하게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조선의 국왕들도 허임을 높이 평가했다. 선조는 "일세를 울린 사람"(선조)이라 했고, 광해군은 "하늘이 내린 인재"라고 했다.

<동의보감>의 저자 허준까지 진료 현장에선 허임에게 두 손을 들어야 했다.

역사서에 허준이 침뜸 시술하는 장면은 없다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에는 선조 37년(1604년) 음력 9월 23일 심야에 발작한 국왕의 편두통을 허준과 허임이 함께 치료하는 장면이 나온다. 어의 허준은 통증으로 쩔쩔매던 선조가 "침을 놓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침의들은 항상 말하기를 '반드시 침을 놓아 열기를 해소시킨 다음에야 통증이 감소된다'고 합니다. 소신은 침 놓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이렇게 말하기 때문에 아뢰는 것입니다. 허임도 평소에 말하기를 '경맥(經脈)을 이끌어낸 뒤에 아시혈(阿是穴)에 침을 놓을 수 있다'고 했는데, 이 말이 일리가 있는 듯 합니다."

여기서 허준은 "침 놓는 법을 알지 못한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나아가 허임의 치료 방법을 구체적으로 소개해 국왕이 이것을 선택하도록 유도했다. 평소부터 허준이 허임의 의술 이론을 존중하고 임상 실력도 인정하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당시 허준과 허임의 나이는 각각 66세와 35세였다.   

한편 선조는 허준의 제안을 수용해 병풍을 치고 침을 놓으라 명하였다. 세자 부부만 방안에 남을 수 있었고, 나머지 대신들은 모두 밖으로 나가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침을 들어 벌거벗은 임금의 옥체에 직접 시술한 주인공이 바로 허임이었다.

치료 효과는 있었을까? 선조의 고질병이었던 편두통은 물론 허임이 시술한 직후 씻은 듯이 나았다. 만족한 임금은 6품 벼슬에 있었던 허임을 한 달 후에 당상관(정3품)으로 승진시켰다. 매우 파격적인 인사 조치였다.

놀라지 마시라!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어느 정사에서도 허준이 침과 뜸을 시술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계속)
#구당 #김남수 #허준 #허임 #침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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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환 기자는 월간 말 취재차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언론, 지역, 에너지, 식량 문제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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