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할아버지의 단칸방가스비를 아끼려고 보일러를 끈 이아무개(72) 할아버지의 단칸방에는 냉기만이 감돌았다.
김도균
서울시 영등포구 당산동 1가의 허름한 단독주택. 길게 이어진 복도를 따라 들어가면 나오는 맨 안쪽의 방 한 칸과 부엌 한 칸이 이아무개(72) 할아버지의 보금자리다. 햇빛이 들지 않아 종일 캄캄한데다 가스비를 아끼려고 보일러도 틀지 않아 방안에서는 찬 기운이 올라온다.
이 할아버지는 지난해 12월 초, 이 집으로 입주했다. 이 집은 한국토지주택공사가 보유하고 있는 다가구 매입 임대 주택으로 이 할아버지는 보증금 100만 원에 매달 7만8000원을 내고 있다. 이 집으로 들어오기 전까지는 '노숙인 복지와 인권을 실천하는 사람들' 사무실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배구 선수로 활약하기도 했다는 이 할아버지는 요즘 병원 신세를 자주 진다. 그가 먹고 있는 약은 내과와 신경과, 비뇨기과에서 처방받은 약들이다.
"전에는 건강 하나만큼은 남부럽지 않았는데, 이젠 나도 다되었나 봐요. 지난달에는 퇴행성 관절염이 심각하다고 의사가 그러더라고요. '이렇게 아파서 어떻게 걸어 다니셨느냐'고 놀라더라니까." 8년 전까지 평범한 가장이었던 이 할아버지는 광명시에서 부동산 사무실을 운영했었다. 그에게 불행이 닥친 것은 부동산 경기가 꽁꽁 얼어붙고 사무실 운영비를 대기도 벅찼던 2002년 무렵이다. 가지고 있던 카드 7개를 돌려가면서 현금서비스를 받아 생활을 유지한 것이 화근이었다. 금세 카드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1년 만에 원금과 이자를 합해 1억 원에 달했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부인과 이혼하고 거리로 나앉게 된 이 할아버지는 1년 남짓 영등포역 근방에서 노숙생활을 했다. 다행히 개인 파산신청이 받아들여져 채무는 탕감 받을 수 있었지만, 그에게 남겨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가족이 야속하고, 스스로 미워서" 한동안 방황도 했지만 마음을 다잡고 살아보려고 노력했다. 몇 년 전부터는 지역 노인복지회관에서 스포츠 마사지를 배워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요즘은 복지회관 알선으로 초등학교 앞에서 하루 3시간씩 등하교시간에 교통정리를 하고 월 20만 원을 받는다. 거기다 매달 나오는 기초노령연금 8만8000원을 합한 것이 이 할아버지의 월수입이다. 그 돈으로 한 끼에 2000원 하는 복지회관 밥을 사먹는다. 하루에 한 끼는 집에서 휴대용 가스레인지로 라면을 끓여 먹는다.
이렇게 아껴도 30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 한 달을 살기는 너무나 빠듯한데, 교통정리를 할 수 없는 방학 기간에는 기초노령연금만이 수입의 전부다. 구청에다 한시생계지원을 신청해서 2월에는 지원금 12만 원을 받았지만, 그나마도 최장 6개월 동안만 혜택을 볼 수 있다. 강추위가 몰아쳤던 지난 1월에 보일러가 동파되는 것을 막으려고 "(온도를) 딱 15도 아래로만 틀어 놓았는데, 가스비가 13만 원이나 나왔다"며 이 할아버지는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이 할아버지는 수입이 올해 독신가구 최저생계비(월 50만4344원)에 훨씬 못 미치는데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이혼한 부인과 사이에 1남 2녀를 둔 그는 부양할 가족이 있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속사정은 이와 다르다.
"아들이 직장생활을 하고 있지만, 결혼을 한 데다 암 수술을 한 엄마(이 할아버지의 전처) 보살피랴, 중증장애를 앓고 있어서 거동을 못하는 동생 보살피랴 해서 날 도와줄 형편이 못됩니다. 작년에 구청에 가서 이런 사정을 얘기했더니 아들에게 '부양포기각서'를 받아오라고 해서 그렇게 했어요. 근데 그 뒤에 구청에서 재산을 차압할 수도 있다는 서류를 아들에게 보냈다고 하더라고요. 그 일로 아들과 크게 다툰 후 지금까지 연락까지 끊고 살고 있습니다."이런 그에게 명절은 가장 괴로운 시간이다. 복지회관도 문을 닫는 데다 딱히 할 일도, 만날 사람도 없어서 종일 전철을 타고 이리저리 오가며 시간을 보낸다.
"이제 살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이렇게 하루하루 지내다가 혼자서 세상을 뜨는 날이 오겠지 하는 생각이 나면 속으로 눈물이 나요." 이 할아버지가 홀로 견뎌야 할 하루는 참으로 길어 보였다.
가난의 수렁에 빠진 노인들... 자살도 급증강북구 미아동의 한 재래시장 골목에서 17년째 호떡과 어묵을 팔고 있는 박아무개(77) 할아버지와 신아무개(72) 할머니는 부부다. 황해도 해주가 고향인 박 할아버지는 한국전쟁 때 혈혈단신 남하해서 가정을 꾸렸다. 젊은 시절 막노동판을 전전하며 고생해서 기반을 닦은 할아버지는 한때 광장시장에 포목점을 내기도 했다.
"그때는 멋쟁이 소리도 많이 들었어요. 아이들도 잘 자라 주어서 대학 공부까지 시켰고, 이제는 한시름 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슬하에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두었던 박 할아버지 가정에 불행이 닥친 것은 지난 1988년, 맏아들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뜨면서부터였다. 그로부터 2, 3년 뒤에는 가업을 이어 포목점을 운영하던 둘째 아들도 친구 빚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할아버지가 애써 키워온 가게를 남의 손에 넘겨줘야 했다. 빚쟁이에 시달리다가 가정불화 끝에 이혼까지 한 둘째 아들은 몇 년 전 종적을 감춰 연락도 되지 않는다. 딸도 사는 게 넉넉지 못해서 가끔씩 명절에 얼마간의 용돈을 주는 것이 다다. 그것도 사위 눈치를 보아 몰래 주는 것 같아 받고서도 마음이 영 편치 않다고 했다.
박 할아버지와 신 할머니 부부가 노점에서 버는 돈은 한 달에 50~60만 원이 전부. 이 돈으로 노부부가 간신히 몸을 누일 단칸 월세방값을 내고나면 30만 원 남짓으로 한 달을 살아야 한다. 작년에는 할머니에게서 백내장 증세가 발견돼 할아버지는 더 걱정이다.
실질적으로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하는 돈으로 생활하고 있지만 박 할아버지 부부 역시 기초생활수급권자가 되지 못한다. 몇 년 전 구청에 수급권자 지정을 신청했지만 출가한 딸이 서류상의 부양가족으로 되어 있어서 자격을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일을 하지 않고 노는 게 더 힘들다"는 노부부의 가장 큰 소원은 "크게 아프지 않고 사는 데까지 살다가 딱 같은 날, 같은 시간에 함께 저세상으로 가는 것"이다.
위의 두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다. 한국 사회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급속하게 노령화되고 있다. 지난 2000년 통계에서 이미 만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7%로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으며, 2008년에는 노인 인구가 500만 명을 돌파했다. 오는 2026년 무렵에는 노인 인구의 비중이 전 국민의 20%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이렇게 노인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데다 제도적 허점으로 인해 기초생활수급자 사각지대에 놓인 노인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한국의 노인 인구 빈곤율은 45.1%에 달해 전체 노인 가구의 절반 가까이가 빈곤 상태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전체 OECD 국가 평균인 13.3%의 3배가 넘는 높은 수준이다.
또 급증하고 있는 노인 자살 중 상당한 부분이 경제적 빈곤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61세 이상 노인 자살은 가파르게 늘어 지난 5년간 전체 자살자 수의 30%를 차지했다. 경찰대학교 치안정책연구소의 '노인 자살 실태 분석과 예방 대책'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노인 자살자 수는 1989년 788명에서 2008년 4029명으로 20년 만에 5배 이상 증가했다. 노인 자살 원인은 질병(37.1%), 경제적 어려움(33.9%), 외로움과 고독(13.2%), 가정불화(10.6%) 등 순으로 파악됐다. 빈곤이 질병에 이어 노인 자살 원인 중 2번째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노인 복지 서비스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시급히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홍미령 한국노인복지진흥센터 회장은 "전통적으로 자식이 부모에 대한 부양책임을 져온 우리 사회에서는 노인층에 대한 사회안전망에 허점이 많다"며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노후에 대한 준비가 전혀 없는 상태로 고령화 사회를 맞이했다"고 지적했다.
홍 회장은 또 "노인이 사회적 약자로 내몰리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지자체의 예산지원 뿐 아니라 노인 복지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개선 노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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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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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생계비 28만 원... 노인 절반이 '빈곤'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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