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좀 뵐 수 있을까요?

등록 2010.03.25 14:28수정 2010.03.25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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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시골 교회에 목사님을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다. 가끔 신문에 쓴 칼럼을 잘 읽었다며 전화로 안부를 전해 오는 사람들은 있지만 모르는 사람이 교회까지 찾아와서 만나게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지난 24일, 필자는 수요 밤 예배를 마치고 몇 분의 성도님들과 함께 교리 교육을 하고 있었다. 공부하는 권사님 중 독감으로 콜록대는 분도 있고, 밖에 개 짖는 소리가 나는 것이 손님이 찾아온 것 같아 '오늘은 좀 일찍 끝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아내가 한 사람을 안내해서 예배당으로 데리고 왔다.

 

그의 첫 인상은 영락없는 노숙자였다. 그는 발 냄새가 많이 나서 예배당에 들어가기가 그렇다고 했다. 3일을 굶어 배가 몹시 고프다며 먹을 것과 잠 좀 재워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나는 우선 씻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되어 그를 사택 욕실로 안내하고 몸을 씻게 했다. 씻는 중에도 면도기가 없느냐, 치약은 어디 있느냐, 수건이 안 보인다는 등의 요청을 해오는 바람에 아내가 자상하게 그것을 들어주어야만 했다.

 

새 양말에다 나의 속옷까지 챙겨 욕실로 들여보내 주었고, 그 사이 아내는 그를 위해 따로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우리가 평소 먹는 몇 가지 찬에다 된장국을 따끈하게 끓이고 또 계란 후라이를 해서 밥상에 올리니 그는 감사하다는 말을 되풀이하며 맛있게 밥을 비웠다. 재작년에도 비슷한 상황의 사람이 밤에 교회를 찾아와 샤워와 식사를 한 뒤 차비를 주어 보낸 적이 있다.

 

이 사람은 서울에서 걸어 거제까지 가는 중이라고 했다. 여기까지 8일 걸렸다며 몸도 마음도 지쳐 있음을 얘기했다. 잠 잘 곳이 없어 그냥 눈비를 맞으며 걸어오는 중이라고 했다. 관공서와 마을회관 및 종교시설 등지에 하룻밤 유숙을 부탁했지만 좋은 답을 듣지 못했다며 씁쓸해했다. 오다가 눈길에 미끄러져 무릎 정강이 부근을 다쳤다며 찢어진 바지와 상처 부위를 보여주기까지 했다. 거제에 집이 있다는데, 식구를 물어보니 아내는 3년 전에 죽었다고, 중학교에 다니는 딸애는 노모가 돌보고 있다고 했다.

 

작은 사업을 하다가 급한 김에 사채를 끌어다 쓴 것이 화근이었다며, 그들의 빚 독촉 때문에 야반도주를 했다는 것이다. 큰 액수가 아니었음에도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도저히 갚을 길이 없고 사채업자는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와 칼을 들이밀며 상환을 요구하는 바람에 도저히 더 견딜 수가 없어 차비만 마련해 무조건 상경했다는 것이다. 그 사이 파산 신청을 했고 그것이 받아들여져 이제는 좀 숨통이 트인다며 고향을 향해 걸어가는 중이라는 것이다. 노모와 딸애가 보고 싶다는 것이다.

 

어떻게 구석진 우리 교회까지 알고 왔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를 좀 편하게 해 주기 위해서 던진 가벼운 질문이었다. 그는 인근 교회 몇 곳을 거쳐 우리 교회까지 왔다고 했다. 교회들이 각자 어려운 사정을 이야기하며 다른 곳에 가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바로 이웃에 있는 교회에는 목사님이 나와서 '바로 덕천교회라는 곳이 있다며 상세하게 설명을 곁들인 뒤, 그곳에 가면 도와줄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부담을 떠넘겨 받은 것 같아 잠시 서운한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 그들의 친구가 되어줄 수 있는 교회로 추천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이럴 때, 우리 교회에 그들을 묵게 할 공간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예배당에라도 자게 해 달라고 하지만 그것도 어려운 것이 매일 새벽 5시에 기도회가 있는데, 교인들이 나오는 시간이 한결같지 않아 잠자리 제공처로서는 적합하지 못했다. 예배당에서 자는 사람도 불편하겠지만 예배시간 훨씬 전에 나오는 여 권사님이 있다면 자고 있는 불청객을 보고 놀랄 것은 뻔한 일이다.

 

나는 몇 가지 방도를 생각해 보았다. 기차를 타고 가며 자는 방법, 찜질방에 가서 씻은 후 푹 쉬는 방법 등. 그는 기차를 타고 밀양까지 가면 또 무슨 방법이 있을 것 같다며 그 방법을 취하겠다고 했다. 문제는 가진 돈이 한 푼도 없다는 것이다. 지갑을 열어보니 2만 3천원이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의 전부였다.

 

그에게 2만원을 쥐어주며 열심히 일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선을 베푸는 사람이 되라고 권했다. 그는 감사하다며 나의 명함을 하나 요구했다. 다음에 돈 벌면 은혜를 꼭 갚겠다는 것이다. 또 고향에 가면 교회에 나가겠다며 물어보지 않은 것에 답까지 했다. 아내는 그 사이 빵과 음료수 그리고 바지 하나와 속옷 수건 등을 챙겨 넣은 쇼핑백을 그에게 들려주었다.

 

이 세상은 점점 살기 어려운 시대로 치닫고 있다. 양심껏 살면 도태되고 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 아닌가 한다. 부익부 빈익빈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는 다수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것이 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교회를 찾아 올 때면 나보다도 아내가 더 정성껏 그들을 챙겨준다. 예수님께서는 주린 사람, 목말라 하는 사람, 나그네, 헐벗은 사람, 병든 사람, 옥에 갇혀 있는 사람을 돌보라고 말씀하셨다. "여기 내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고 한 말씀은 오늘도 우리에게 살아있어 마음을 움직이게 만든다. 주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올바른 행동을 하게 하시니 참 좋다. 어제 밤 도움을 바라는 한 사람에게 우리가 한 행동은 그렇다면 우리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시키신 일을 대신 했다는 것, 참으로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2010.03.25 14:28 ⓒ 2010 OhmyNews
#노숙자 #식사 대접 #파산 신청 #예수님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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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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