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을 은폐하고 왜곡하여 발표하라

[역사소설 민회빈강11] 동네 길이었으나 이제는 길들여지는 길

등록 2010.03.30 14:16수정 2010.03.31 09:41
0
원고료로 응원
동네 길이었으나 이제는 길들여지는 길

소현세자가 승하하자 조선은 청나라에 부음을 전하고 봉림대군의 귀국을 윤허해 달라고 청했다. 귀국을 허(許)한 청나라는 대군을 호위하여 조선에 나가는 장수로 하여금 문상하라 명했으나 정식 조문은 아니었다.


"압록강을 건너온 청나라 사신이 용만관에서 하룻밤을 묵고 한성으로 떠났습니다."

의주부윤 홍전이 급주마를 띄워 장계를 보내왔다. 이제 올 것이 온 것이다. 공부상서 흥능(興能)를 단장으로 한 조문 사절단은 소현세자의 문상보다도 세자 사후 조선의 정치 지형을 지휘 감독하기 위하여 국경을 넘은 것이다.

압록강에 위치한 의주는 만주로 나가는 길목이며 들어오는 관문이다. 한민족이 만주를 지배했을 때는 동네길 이었지만 만주를 잃었을 때는 길들여지는 길이었다. 길의 어원이 '길들여진다'는 뜻에서 유래했다던가. 아무도 다니지 않은 길을 자주 다니면 길이 된다. 만주를 지배한 한족과 몽골족이 그랬고, 이제는 여진족이 조선을 길들이기 위하여 다니는 길이 이 길이다.

공청증에 벌벌 떠는 조선

의주에 별도의 형옥을 마련한 청나라는 한양에 있는 반청(反淸) 신료를 의주까지 불러 매질을 가했고 옥에 가두었다. 청나라가 횡포를 부려도 조선은 한 마디 항의도 못했다. 청나라와 조선은 대등한 국제관계가 아니라 강화조약에 서명한 패전국으로서 갑과 을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청나라 사신이 강을 건너오거든 며칠 동안 푹 쉬어 올려보내라 했는데 하루가 무엇인가?"

임금 인조가 짜증을 냈다. 황제가 파견한 조문 사절이 올 것이라 예상한 인조는 서둘러 봉림대군을 세자로 책봉했다. 그리고 시간을 벌고 싶었다. 최대한 의주에 오래 붙잡아 두는 것이 유리했다.


"기생을 동원하여 유하도록 했으나 서둘러 떠났다 합니다."

평소에 청나라 사신은 입국 시 의주에서 3일간 머물렀다. 의주는 조선 땅이되 그들의 땅이나 다름없었다. 의주부윤을 비롯한 조선 관리들은 그들의 하인이었고 객관과 관아는 놀이터였다. 먹고 마시고 즐기며 유람하듯 남행길에 올랐다. 이러한 사신을 조선은 융숭히 대접했다. 후환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돈과 기생을 좋아하는 청나라 사신들이 서둘러 떠났다면 예사로운 징조가 아니다. 혹시, 청나라가 우리의 복안을 파악했단 말인가?"

인조의 뇌리에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흥능(興能)을 단장으로 한 청나라 조문사절 역시 의주에 입성하면서 이상한 감을 느꼈다.

"조선국의 왕세자가 죽었다. 국장이다. 그런데 너무 조용하다. 예를 중시한다는 조선이 아닌가? 헌데, 국상을 당한 백성들의 모습에서 조의를 찾아볼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다."

"조제사가 의주를 떠났다 하니 어떤 계책이 필요한가?"
청나라 사신을 조제사(吊祭使)라 칭한 인조는 실로 공청증(恐淸症)에 걸려있었다."

"세자를 세웠으니 원손과의 만남을 차단하고 사신들의 소현 상례 접근을 막아야 좋을 듯 합니다."

영의정 김류는 임금의 복심을 헤아리는데 동물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인조는 걱정이 태산 같았다. 소현세자 장례를 치렀으나 궁 안에 혼전(魂殿)이 있다. 혼전을 참배하겠다면 어떻게 할 것이며 세자 묘를 방문하겠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난감했다.

"한 점 빈틈없이 철저히 준비하도록 하라."

a

양화당 편액 ⓒ 이정근


한성에 입성한 청나라 사신은 모화관에서 여장을 풀고 이튿날 임금을 예방하는 관례를 깨고 창경궁으로 직행했다. 인조가 청나라 조문 사절을 양화당에서 접견했다.

"내가 고질을 앓고 있는 와중에 이런 참통(慘痛)한 상(喪)을 당하여 몸져누워 있다 보니 교영(郊迎)의 예까지 폐하였으므로 황공함을 감당치 못하겠습니다. 청컨대 이 누추한 자리에서 배칙(拜勅)의 의식을 거행하고자 합니다."

청나라 칙사가 벽제관을 출발하면 임금이나 세자 또는 영의정이 서교(西敎)에 나가 영접하는 것이 예법이었다.

"병 때문에 칙서를 예식대로 맞이하지 못하는 것은 형편이 진실로 그러하니 이해하겠다. 거행하도록 하라."

황제보다 기세등등한 통역관

정사(正使) 공부 상서 흥능(興能), 부사(副使) 예부 계심랑 오흑(鄔黑)과 머리를 맞대고 구수회의를 한 역관 정명수가 고압적인 자세로 명했다.

"조선국왕은 칙서를 받도록 하라."

이 상황에선 역관이 단순 통역자가 아니라 황제다. 인조가 칙서 앞으로 나아가 한 번 절하고 세 번 머리를 조아리는 일배삼고두(一拜三叩頭)를 행하고 칙서를 받았다.

"황제는 조선 국왕 이휘에게 칙유(勅諭)하노라. 네가 보낸 사신이 북경에 와서 너의 세자가 갑자기 죽었다는 말을 듣고 깊이 놀랐다. 세자가 북경에 있을 때를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의 말과 행동이 눈앞에 선하여 애처로운 마음을 느낀다. 동국(東國)이 옛 어진 임금을 본받아 우리 황실을 따를 훌륭한 제후국의 국왕이 되리라 여겼는데 갑자기 이 지경에 이를 줄을 어찌 헤아렸겠는가? 특별히 공부상서 흥능(興能), 예부계심랑 오흑(鄔黑), 통사관 고아마홍(孤兒馬紅)을 보내어 향폐(香幣), 생례(牲醴), 부수(賻禭)로 세자에게 유제(諭祭)하게 하였으므로 이렇게 유시하노라."

고아마홍은 역관 정명수의 청나라 이름이다. 향폐(香幣)는 향과 폐백이고 생례(牲醴)는 술이며 부수(賻禭)는 부의로 수의를 준다는 뜻이다. 청나라는 소현세자의 장례가 6개월 국장이라면 아직 장사를 지내지 않았으리라 생각하고 조제사를 파견했다. 헌데 조선은 소현세자가 승하하자 2개월도 되기 전에 경기 고양에 장사지냈다. 향과 술을 올리고 수의를 주겠다니 어떻게 할 것인가? 아득했다.

"섭정왕이 서신을 보내왔으니 국왕은 받도록 하시오."

정신이 혼미함을 느끼고 있을 때 정명수가 목청을 돋웠다. 인조가 앞으로 나아가 예를 갖췄다.

"황숙부(皇叔父)인 섭정왕은 조선 국왕에게 글로써 위문합니다. 갑자기 세자의 부음을 듣고 깊이 놀라고 애도합니다. 세자는 온화하고 돈후하고 문채가 금옥(金玉) 같았으므로 국왕을 도와 덕화를 펴서 우리 왕실의 훌륭한 제후가 되기를 기약했는데 어쩌면 그리도 하늘이 착한 사람을 보우하지 않고 갑자기 중도에서 꺾어버린단 말입니까? 국왕 부자(父子)의 지극한 정리를 생각하면 어찌 그 슬픔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도르곤의 서신이다. 형 홍타이지의 명을 받은 도르곤은 동정군(東征軍)을 이끌고 조선을 정벌했던 인물이다. 조선을 유린한 도르곤은 소현세자를 데리고 심양에 도착했다. 볼모살이 하는 소현세자에게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었던 도르곤은 홍타이지가 죽자 장성한 맏조카와 권력투쟁을 벌여 6세 조카 복림을 황위에 밀어 올렸다. 정권을 장악한 도르곤은 북경을 정벌하여 명나라를 패망시키고 섭정왕에 있었다.

"황제께서 세자의 상을 측은하게 여기시어 사신을 보내서 칙서로 유시하시고 또 조제(吊祭)까지 내리셨으니 황제의 은혜가 망극합니다."

인조가 허리를 굽혔다.

'아버지의 나라' 라 떠받들던 명나라의 패망을 축복해야 하는 국왕

"황제와 섭정왕이 세자의 부음에 놀라고 슬퍼하시면서 우리들로 하여금 조위하게 하셨습니다."

"전하는 말을 듣건대 남경이 이미 평정되었다 하니 모두가 황제의 은덕입니다."
아버지의 나라 명나라의 패망을 축복해야 하니 가슴이 쓰렸다.

"하늘의 도움을 받아 이미 남경을 평정하였고 유적(流賊)의 두목 이자성은  팔왕(八王)에게 쫓기어 도망쳤습니다."

"황제와 섭정왕의 큰 복입니다."

"좌우 신하를 물리쳐 주십시오."

칙사의 요청을 받은 인조는 환관 두 사람만 남고 사관을 비롯한 시종 신하들을 합문밖에 나가 있도록 했다. 역관 정명수가 사신의 말을 받아 인조에게 다가왔다.

"소현세자의 사망 원인을 소상히 밝히시오."
"별도의 문건으로 보고 드리겠습니다."

"동방의 사정이 좋지 않은데 이럴 때일수록 법과 원칙을 따라야 할 것이며 그 방법은 원손을 후사로 삼는 것이 인심에 부합할 것이오."
"소방에 계책이 있습니다."

"원손에 대한 관심은 섭정왕의 각별한 뜻이오."
"분부대로 따르겠습니다."

밀담이 끝나고 칙사가 밖으로 나가자 인조가 도승지 김광욱을 불러들였다.

"칙사가 섭정왕의 뜻으로 전언(傳言)하기를 '동방의 인심이 좋지 않은데 이럴 때 어린 원손을 후사로 삼는다면 인심이 불안할 듯합니다.' 하기에 내가 사실대로 고하였더니 사신이 기뻐하여 말하기를 '국왕에게 이미 정해진 계책이 있으니 동방의 행복입니다.'고 했다. 이대로 발표하라."

인조는 사신과의 밀담내용을 왜곡하여 발표하게 했다. 현장을 목격한 사람은 환관 두 사람이다. 환관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뻥긋했다가는 목이 열 개라도 부족하다. 진실(眞實)은 사실(事實)에 덮혀 묻힐 수 있다. 그것이 사실(史實)이다.
#사신 #칙사 #도르곤 #소현세자 #민회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자식 '신불자' 만드는 부모들... "집 나올 때 인감과 통장 챙겼다"
  2. 2 10년 만에 8개 발전소... 1115명이 돈도 안 받고 만든 기적
  3. 3 김흥국 "'좌파 해병' 있다는 거, 나도 처음 알았다"
  4. 4 23만명 동의 윤 대통령 탄핵안, 법사위로 넘어갔다
  5. 5 김건희 여사 연루설과 해병대 훈련... 의심스럽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