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궂은 한자말 덜기 (96) 중요

[우리 말에 마음쓰기 892] '몇 배는 더 중요한 일' 다듬기

등록 2010.04.01 16:24수정 2010.04.01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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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요 : 몇 배는 더 중요한 일

.. 그러니 내 몸을 고쳐 주는 이만큼, 아니 그보다 몇 배는 더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  <은종복-풀무질, 세상을 벼리다>(이후,2010) 223쪽


'배(倍)'는 '곱'이나 '곱절'이나 '갑절'로 다듬습니다. '치료(治療)하는'이라 하지 않고 '고쳐 주는'으로 적은 대목은 반갑습니다.

 ┌ 중요(中夭)
 │  (1) 중년에 죽음. 또는 젊어서 죽음
 │  (2) 뜻밖에 당한 재난
 ├ 중요(重要) : 귀중하고 요긴함
 │   - 중요 과제 / 중요 기관 / 중요 문제 / 중요 부분
 │     민주 정치에 매우 중요하다 / 한 가지 실천이 더 중요했다
 │
 ├ 몇 배는 더 중요한 일을
 │→ 몇 배는 더 큰 일을
 │→ 몇 곱은 더 뜻있는 일을
 │→ 몇 갑절 더 보람있는 일을
 └ …

"귀중하고 요긴하다"는 뜻이라는 한자말 '중요'입니다. 그래서 '귀중'이 무엇이고 '요긴'이 무엇을 뜻하는가를 국어사전에서 다시금 찾아봅니다. '귀중(貴重)'은 "귀하고 중요하다"를 뜻한다고 나옵니다. '요긴(要緊)'을 찾아보니 "= 긴요"로 나옵니다. 이리하여 다시 '귀하다'와 '긴요'를 찾아봅니다. '귀(貴)하다'는 "구하거나 얻기가 아주 힘들 만큼 드물다"를 뜻한다고 나옵니다. '긴요(緊要)'를 찾아보니 "꼭 필요하고 중요하다. '매우 중요하다'로 순화"로 나와 있습니다.

국어사전은 낱말뜻을 제대로 밝히는 책이라 하지만, '중요'라는 낱말이 무엇을 뜻하는가를 찾아보면서 아무 뜻을 알아볼 수 없습니다. '중요 → 귀하다/요긴 → 드물다/긴요 → 필요/중요'가 되면서, "중요는 그냥 중요일 뿐"이라는 얼개입니다.

다만, 이모저모 곰곰이 헤아리노라면 '중요 = 드물면서 꼭 있어야 할'을 가리킨다고 여길 만하구나 싶습니다. '드물다'와 '필요'라는 낱말을 돌아보며 '중요' 말뜻을 살피는 셈이지만, 처음부터 국어사전 말풀이가 올바르지 않기 때문에,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알아보고자 국어사전을 찾아보아도 그리 도움이 안 되리라 봅니다.


그런데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중년에 죽음"을 뜻한다는 '中夭'라는 한자말이 함께 실려 있습니다. 국어사전을 찾아볼 때마다 이처럼 '우리가 안 쓰는 한자말'이 실린 모습을 보면 무척 궁금한데, 이런 한자말은 왜 실어 놓을까요? 이런 한자말을 실어 놓고 우리 토박이말은 얼마 안 된다고 보여주고 싶기 때문일까요? 지난날 이 나라 지식인이나 권력자가 쓰던 한자말이라면 '옛날 책'에 다 나와 있으니 빠짐없이 국어사전에 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을까요?

 ┌ 몇 곱 더 훌륭한 일을
 ├ 몇 곱절 더 대단한 일을
 ├ 몇 갑절 더 값있는 일을
 └ …


다시금 곰곰이 생각합니다. '중요'라고 하는 낱말은 말 그대로 무척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참 자주 쓰는 낱말이며, 굳이 한자말이라고 치지 않으면서 쓰는 낱말입니다. 그런데 이 자주 쓰는 낱말을 국어사전에서는 형편없이 다루고 맙니다. 이 널리 쓰는 낱말을 국어사전에서는 엉터리로 실어 놓고 맙니다.

하도 자주 쓰거나 널리 쓰는 낱말이기에 말풀이가 힘들다고 한다면, '중요'하고 엇비슷하게 쓰는 다른 낱말들, 그러니까 '요긴'과 '귀중'과 '긴요'와 '귀하다'를 나란히 견주면서 쓰임새가 어떻게 다르고 느낌과 세기가 얼마나 다른가를 밝힐 노릇이라고 봅니다. 한 동아리로 묶을 만한 낱말을 죽 늘어놓고 다른 쓰임새를 보여주면 따로 말풀이를 하지 않아도 낱말 씀씀이를 알아볼 수 있으니까요.

 ┌ 중요 과제 → 꼭 할 일 / 큰일
 ├ 민주 정치에 매우 중요하다
 │→ 민주 정치에 매우 도움이 된다
 │→ 민주 정치에서 빼놓을 수 없다
 ├ 한 가지 실천이 더 중요했다
 │→ 한 가지 실천이 더 크다
 │→ 한 가지 실천이 더 뜻있다
 │→ 한 가지 실천이 더 알차다
 └ …

애써 고쳐쓰거나 굳이 털어내야 할 한자말 '중요'는 아닙니다. 그대로 널리 쓸 만한 낱말이요, 알맞게 살려서 쓰면 됩니다. 다만, 때와 곳에 따라서는 '중요'라는 낱말뜻을 곱씹으면서 손질할 수 있습니다.

"중요 과제" 같은 말마디는 그대로 두어도 되는 한편, "꼭 할 일"이나 "큰일"로 손질할 수 있습니다. "빼놓을 수 없는 일"이나 "몹시 큰 일"이나 "빠뜨릴 수 없는 일"로 손질해도 되고요.

"민주 정치에 매우 중요하다" 또한 그대로 두어도 되며, "매우 도움이 된다"나 "빼놓을 수 없다"로 손질할 수 있어요. 이야기 흐름을 살피며 "매우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나 "매우 큰뜻이 담겨 있다"로 손질해도 됩니다.

"한 가지 실천이 더 중요했다"도 그대로 둘 수 있는 가운데, "한 가지 실천이 더 중요했다"라든지 "한 가지 실천이 더 아름답다"로 손질할 수 있습니다. '크다'나 '뜻있다'나 '알차다'나 '좋다'나 '바람직하다'나 '거룩하다'나 '훌륭하다'나 '낫다'로 손질해 볼 수 있겠지요.

생각을 기울이는 만큼 고운 말을 찾을 수 있습니다. 마음을 쏟는 만큼 바른 글을 쓸 수 있습니다. 넋을 살리며 말을 살리고, 얼을 북돋우며 글을 북돋웁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한자말 #한자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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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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