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8천억 원, 누구 주머니에서 나온 돈인가

[가정경제119] 2009년 신용카드사 경영실적 보고서와 머니 게임의 실상

등록 2010.04.05 16:32수정 2010.04.05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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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전업카드사 당기순이익 2009년 신용카드사 경영실적 (2010.3.10 / 금융감독원)
2009년 전업카드사 당기순이익2009년 신용카드사 경영실적 (2010.3.10 / 금융감독원)문진수
▲ 2009년 전업카드사 당기순이익 2009년 신용카드사 경영실적 (2010.3.10 / 금융감독원) ⓒ 문진수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2009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 6개 전업 카드사들은 총 1조8천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남겼다. 전년 대비 12.6%(2086억 원) 증가한 수치이며, 2005년 2/4분기 이후 모든 카드사가 5년 연속 흑자다.

 

법인세율 인하에 따른 비용 감소 효과까지 가세하여 영업이익 규모로 보자면 2조3천억 원이 넘는다. 230만 명의 사람들에게 1인당 100만 원씩 지급할 수 있는 돈이다. 신용카드 사업을 같이하고 있는 겸영은행까지 포함할 경우, 이익 규모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용카드 이용실적은 2005년 이후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서, 2009년 현재, 국내 카드 시장규모는 470조 원을 훨씬 상회하고 있다. 경기 악화에 따른 일반 서민들의 경제적 고통과 상관없이 카드사들은 '양호한 수익성과 튼실한 재무건전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카드사들의 현금서비스 수수료 인하, 알고보면

 

2009년 신용카드 이용실적 추이 2009년 신용카드사 경영실적 (2010.3.10 / 금융감독원)
2009년 신용카드 이용실적 추이2009년 신용카드사 경영실적 (2010.3.10 / 금융감독원)문진수
▲ 2009년 신용카드 이용실적 추이 2009년 신용카드사 경영실적 (2010.3.10 / 금융감독원) ⓒ 문진수

표에서 보는 것처럼, 신용판매는 전년대비 16.3% 상승했고 현금대출은 8.5% 감소했다. 전체 매출실적 가운데 현금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20% 수준으로 100조 원 남짓 된다. 그렇다면, 카드회사 입장에서는 신용판매와 현금대출 중 어느 쪽이 더 효자 종목일까?

 

말할 필요도 없이, 현금대출 영역이다. 신용을 통해 상품 및 서비스를 구입하고 제때에 카드대금을 갚는 일시불 사용자들은 카드 회사 입장에서 볼 때는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현금대출은 다르다. 현금대출 실적이 증가하면 할수록 수수료 수입 등 카드회사의 이익도 동시에 불어난다. 대출이자, 현금서비스 수수료, 연체료 등 수입의 원천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신용카드 회사는 재정적인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높은 수수료와 이자를 챙기는 데서 많은 이윤을 얻는다. 현금 흐름이 망가진 사람들이 이 카드로 저 카드 빚을 메우는 이른바 '돌려막기'에 가장 많이 활용하는 것이 현금서비스와 대출(카드론)이다. 신용카드 사업 이윤의 대부분은 이 영역에서 나온다. 카드사 입장에서 볼 때, 대출영역은 없어서는 안 될 효자 종목이요, 이른바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최근 신용카드 회사들이 잇달아 현금서비스 수수료를 없애거나 줄이겠다는 선심성(?) 정책을 내놓고 있다. 카드사의 이런 행보는 '그간 고객님들의 도움에 힘입어 많은 이익을 창출했으니 지금부터는 수수료를 받지 않겠다'는 도의적 결정인가? 천만의 말씀. 이것은 그간 시민단체들의 지속적인 문제제기(카드론 취급수수료는 '선이자' 개념이므로 고객이 만기 전에 상환하면 돌려주어야 한다는 것)와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명령에 따른 후속 조치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고객 입장에서 보면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대부분의 카드사들이 현금서비스 수수료를 내리거나 없애는 대신 대출금리를 인상했기 때문이다. 결국 수수료 인하분을 대출금리로 이전시켰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부담은 줄지 않았다는 뜻이다. 전형적인 조삼모사(朝三暮四)요, 고객을 '봉'으로 생각하는 구태의 표본이다.

 

원래 신용카드 취급수수료(연 0.4~0.6%) 징구는 2003년 카드사태 이후 카드사의 손실 보전을 위해 만들어낸 일종의 '특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수익 변동폭이 다른 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다는 카드 사업의 특수성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카드회사들 대다수가 5년 연속 높은 수준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취급수수료를 계속 받을 명분과 이유는 이미 소멸된 것이나 진배없다.

 

그런데, 취급수수료를 인하하면서 그 손실 보전을 위해 대출금리를 올리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신용카드 회사들의 리스크 관리 강화 노력에 힘입어 카드사 연체율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연체율은 계속 떨어지고 있는데 대출금리는 변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돈 떼일 위험성은 줄어들었지만 이자율은 변함없이 유지해야 한다'는 것인데, 참으로 해괴한 논리가 아닐 수 없다.

 

카드 회사는 자금 조달 어떻게 할까

 

2009년 카드사별 연체율  2009년 신용카드사 경영실적 (2010.3.10 / 금융감독원)
2009년 카드사별 연체율 2009년 신용카드사 경영실적 (2010.3.10 / 금융감독원)문진수
▲ 2009년 카드사별 연체율 2009년 신용카드사 경영실적 (2010.3.10 / 금융감독원) ⓒ 문진수

이자율이 하락하면 카드회사의 자금 조달비용도 떨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다면, 카드사의 대출금리는 이자율의 등락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카드사들은 신용카드 대출금리를 시장 금리와 연동시키지 않는다.

 

불만의 소리가 나오고, 문제제기가 뜨거워지면 그 때서야 눈치를 보면서 소극적으로 대응할 뿐이다(현재 취급수수료와 대출이자율을 합한 현금서비스 평균 금리는 연 26% 내외이고, 3년 만기 카드채 발행금리가 6% 내외로 금리차가 무려 20%가 넘는다. 카드사들이 어느 정도 수익을 내고 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을 것이다).

 

그렇다면 카드회사는 어떻게 자금을 조달하고 있을까? 현행 상법은 일반회사가 회사채를 발행할 때, 순자산액의 4배를 넘지 못하게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카드사, 할부금융사, 리스사 등 여신전문금융기관들은 자기자본의 10배에 해당하는 금액을 사채로 발행할 수 있다. 이른바 여신전문금융업법 상의 '사채발행 특례조항(48조)'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신전문금융기관들이 법적 안전지대 안에서 과잉보호를 받고 있다는 대표적인 사례이며 자금조달의 용이성을 확보해주기 위한 또 하나의 '특혜'다. 여신전문회사는 수신기능이 없기 때문에, 일반회사와 마찬가지로 회사채 발행이나 금융기관 차입을 통해 자금을 동원한다. 즉 여신측면에서는 금융회사지만, 수신측면에서는 일반회사다. 어디까지가 금융기관인가에 대한 해석은 차치하고라도, 정부가 나서서 이들의 '돈 장사'를 보호해주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신용카드 회사들은 작년 한 해에만 2조원에 가까운 돈을 벌어들였다. 그렇다면 이 이윤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높은 금리와 수수료를 물고서라도 현금서비스를 받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바로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 생존과 파산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가정들이다. 대부분의 이익이 '가난한' 사람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왔다. 제도와 법을 통해 정부로부터 보호를 받는 대출기관들이, 깔아놓은 멍석 위에서 돈 장사를 해서 엄청난 이윤을 얻었다면, 이것이 과연 온당한 것인가?

 

자본주의 경제에서 이윤이란 새로운 '혁신'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정당'하다. 혁신이란 무엇인가? 이전의 상태보다 확연히 다른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것을 말한다. 경제학에서의 혁신이란 '생산자의 가치와 소비자의 가치 모두를 증대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난 수년간, 카드사들이 이룬 혁신은 무엇인가? 혁신은 없었다.

 

백번을 양보해서, 생산자의 가치는 증대했을지 몰라도, 소비자의 가치는 증대되지 않았다. 공중파 광고에 등장하는 모델의 얼굴이 바뀌었고, 상품의 이름과 가격표가 바뀐 것이 전부였다. 카드사들은 발생된 잉여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어떤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해주었는가? 카드론이나 현금서비스 이용자들이 줄고 있어서 걱정이라는 소리만 들려올 뿐, 달라진 것은 없다. 과거나 지금이나 소비자들은 변함없이 이자가 매겨진 청구서를 받고, 또 습관적으로 지불하고 있을 뿐이다.

 

빚을 재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 노출된 대다수 국민들

 

빚을 재생산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준 구조화된 시스템, 저신용자들의 돌려막기 게임을 뻔히 알면서도 이들 잠재적 신용불량자들을 대상으로 돈 장사를 계속할 수 있는 환경과 그 조건을 200% 활용하고 있는 카드회사. 그리고 이 먹이사슬 바로 아래 계단에 숨어서, 군침을 흘리며 추락하는 먹이 감을 기다리고 있는 대부업체들의 교묘한 상술에 대한민국의 '힘 없는' 국민 다수가 노출되어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신용카드 남용을 과연 개인의 의지박약으로만 해석할 수 있겠는가? 만일 신용카드가 신용불량자를 양산하는 촉매제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신용카드(Credit card)가 가진 순기능과 장점에도 부채카드(Debt card)라고 부르는 것이 더 맞지 않겠는가?

 

참으로 놀라운 것은, 2009년 신용카드사 경영실적 보고서 말미에 언급된 금융감독원의 평가 및 감독방향이다.

 

카드사들은 양호한 수익성 및 재무건전성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2010년 1/4분기 중 중소. 거래시장 가맹점 수수료 및 현금서비스 수수료 등의 인하가 시행되고, 시장 경쟁 심화 및 가계채무 상환능력 약화 우려가 제기되고 있어 수익성과 건전성 관리가 긴요하다. 금융감독원은 향후 금융시장 상황 및 카드사의 영업실태에 대하여 상시 모니터링을 지속하면서, 카드사의 수익성과 건전성에 대한 지도를 강화해 나갈 예정이다.

 

이 보고서 그 어디에도 이미 위험수위를 넘은 가계부채의 심각성과 그 직접적 원인제공자 가운데 하나인 신용카드 회사의 문제점, 혹은 수년에 걸쳐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 준 카드 사용자들을 위한 서비스 개선 사항, 소비자 보호를 위한 감독기관의 자구노력에 관한 언급은 보이지 않는다.

 

왜? 감독기관의 관심은 카드사이지 금융소비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2003년 카드사태의 '악몽'이 아무리 크다 한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카드사의 수익성과 재무 건전성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 금감원이란 말인가? 한심하고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신용카드 #2009 경영실적 #금융감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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